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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인품과 의리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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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인품과 의리의 선비김상헌[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올 떠나고자 하랴마는/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마침내 남한산성이 청나라 병사에 의해 포위되자 주화파 최명길 둥은 항복하는 국서를 기초하였다.그리자 예조판서 김상헌이 67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와그것올 찢어버리고 실성통곡하면서 죄를 질타하였다. 선대부의 명성이 사우간에 자자한데 공은 어떻게 차마 이런 일을 하는가 라고 그러자 최명길은 찢는사람도 없어서는 안되고 그를 다시 붙이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되오.대감은 옛날부터 척화신이었소.때문에 나랏 일은 이 지경이 되었소.아마 대감의 명성은후일까지 남겠지만 종사는 결단이 난다는 것이오 라면서 노성을 발하였다.김상헌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나는 한 번 죽음이 있을 뿐이오. 자결하지는 못하였으나 만일 오랑캐 진영으로 보내주면 거기서 싸우다 죽겠소 라고되받았다마침내 인조가 항복하고 청군이 철수한 뒤 김상헌은 심양으로 잡혀갔다.그러나 그는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그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굳은 절개와 타협을 모르는 강직성에 감복하여 청나라에서는 3 년만에 그를 돌려보냈다.앞서 나온 시는 그가 심양으로 잡혀가면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척화의 거두 김상헌은 1507년에 본관을 안동으로 하며 태어났다.윤근수의제자이며 백사 이항복의 문인이기도 한 그는 대사헌, 예조판서를 거쳤고,청나라에서 돌아온 후에는 좌의정을 지내기도 하였다김상헌의 80여 평생이 높이 평가되고 그를 흠모하는 이들이 오늘도 많은것은 그의 청렴,. 강직 . 고결한 기품 때문이다장약관 박시량이 어느날 조회 때에 흙이 묻는다고 덧신올 신었다.그리고,부호역관 장현은 자기 집을 지었는데 일견 호화주택 같이 보였다.이때 이 두가지는 나라의 법으로 금한 것이어서 짐상헌은 대사헌이 되어 두사람을 체포하고 다스리려 하였다.이때 박시량의 처자가 오윤경에게 구명운동을 하러갔는데 오윤경은 김상헌의 공사분별을 잘 아는지라 비록 내 친아들이 법을범하였더라도 김공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일갈하면서 돌려보냈다.두사람이 준엄하게 심문을 받은 뒤 한 관원이 정자를 지으면서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가 김공이 대사헌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곧 기둥을 깍아서 모나게하였다.이는 전각같은 공공건물에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고 개인 집에는 감히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그가 운명을 달리하고 얼마 후 시호를 [문정] 이라 하였고 효종의 묘정에배향 되었으며 여리곳에 서원을 세워 그의 유덕을 기렸다.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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