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무력론의 피해자 의식

본문

언젠가 택시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열지어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택시를 탔다. 한데 나보다 먼저 앞자리에 올라타는 젊은이가 있었다.운전사는 아마 일행인줄 알았던지 이 낯선 두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앞자리 손님과 뒷자리 손님과는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었고 무법자인 앞자리 손님이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빠져 더 이상 시비를 할 수 없게 되자 이 젊은이는 나는 권력도 [빽]도 없는 노동자니까 맘대로 하시구려 하며 자세를 고쳐 눌러앉는 것이었다.웬 난데 없는 권력도 [빽]도 없는 무력자를 내세우는지 도시 알 수없었다.불법과 무력은 통하는 것인지 또는 무력이 유력보다 강하고 또 무질서가 도덕이나 법률보다 강하다는 어떤 개연성이 있지 않고는 이 궁지에 몰린자가 무력을 방패로 삼으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우리 한국인은 말로써 시비할 수 없는 그런 경지에서 곧잘 이 무력을 내세우며 서로가 먼저 상대방으로부터의 피해자가 되고자 한다. 예외없이 서로 몸을 내밀며 [때려…] [때려…]한다. 싸움은 이겨야 하고 이기려면 선제 공격을 하도록 하는 이 행위는 바로 자신을 무력자로 만들어 육체적으로 피해를 받음으로써 주변사람으로 하여금 무력이라는 공감 측면에서 응석을 떨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은 무력이란 공감에 응석을 떠는 버릇이 보편화 되어있다.옛날에 산송이라 하여 무덤자리를 두고 가문끼리 싸움이 잦았다. 왜냐하면 풍수를 믿었기에 무덤자리가 가문의 성쇠와 직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가문이 번창하거나 세도가 있거나 또는 벼슬아치가 있을 경우 약자의 가문에서는 약자인 부녀자들로 하여금 그 묘자리에 가서 연좌시키는일종의 약자대결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도 이같은 무저항의 저항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던 것은 지극히 한국적이랄 것이다. 33인의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고 종로 경찰서에 연락하여 체포해 갈 것을 통고했던 것이다.무력에의 공감이 한국인에게는 어떤 도덕, 질서, 법률, 권력보다 우위에 있으며 이 공감을 촉발시킴으로써 한국인은 그같은 가치로부터의 소외에서 구제 받았던 것이다.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재판관 앞에서 [조실부모하고 사고무친인데 먹을것도 없고 동생들은 배고파 울며…] 하고 무력과 약자를 강조할때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또 그에 일단 공감하면 한국의 대중들은 그 흉악범죄를 잊어버리거나 용서해 준다.한국인에게 어떤 요소가 이같이 무력에 응석을 떨고, 그것이 힘을갖게 했을까. 여러가지 복합요소가 있다고 본다.첫째, 한국인은 아이가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응석을 부리는 그런 모성 의존적 퍼스낼리티가 강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곧 어머니에의 응석은 사리, 도리나 법률 같은 이성사회를 초월한 행위다. 서양인이 이성적이고 독립적인 부성문화라면 한국인은 정실적, 의존적인 모성문화라 그 응석이 실생활에서 무력 공감에의 응석으로 나타난다.둘째, 한국인은 가족 외적요소에 낯설다는 것을 들 수 있다.그러기에 어떤 가족 외적요소에 침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있으면 가족 내적 요소로 도피하여 구원을 받으려 한다.셋째,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항상 피해자로 살아온 역사시간이 그렇지 않은 역사시간보다 길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외침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정착된 중앙집권제의 정치가 백성으로부터 빼앗아만 갔지 돌려주는 것이 없었다는 기나긴 체험에서 약자의식, 피해자의식이 체질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 약자끼리 공감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 피해가 피해자의 잘못 때문이라도 피해자끼리의공감은 이 역사적 상황 아래에서 생존의 조건이었기에 이같은 퍼스낼리티가 체질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49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