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두 아들 브라질서 기른 이혜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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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군(성균관대 경영학과2)은 4살부터 12살까지, 세상의 모든 것과가치관까지도 가장 강력하게 흡수하는 시기를 브라질에서 보냈다. 동생윤표군(고2)은 2살부터 4학년까지, 포르투갈어와 영어만으로 컸다.귀국 자녀들이 교육환경과 문화 차이로 갈등에 시달리고 학업과 적응에큰 어려움을 겪는 것에 비하면 홍군 형제는 꽤 적응을 잘한 편이다. 브라질 현지에서부터 한국생활 적응훈련을 시킨 엄마 이혜숙씨(43)의 "지혜"가갈등 기간과 크기를 줄여준 덕분이다.이씨와 4살, 2살난 형제는 78년 포항제철 상파울루사무소로 파견된 아버지 홍주영씨를 따라 나가 8년 넘게 살았다 . 이씨는 친정 어머니가 한꺼번에 보내온 1년치 일일학습지를 매일 한장씩 나눠줘 풀게 했다. 5년동안 토요 한국학교 자원봉사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쓸 기회도 줬다.중학교부터는 한국서 다니게하자, 이렇게 결정한 부모는 1년만 더 머물렀으면 받을 특례입학 혜택도 마다하고 정표의 중학 진학에 맞춰 귀국했다. 이씨는 "한국 아이도 외국 아이도 아닌 정신적 국제 미아가 될까봐 남편과 1년반쯤 떨어져 사는 것을 감수했다"고 말한다.브라질서 애쓴 덕분에 한국말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와보니그게 아니었다. "공무원"같은 일상 단어를 몰랐어요. "형광등"이라고 놀리는데, 그게 놀리는 것인지도 몰랐지요." 사춘기에 들어선 정표는 그래서더 힘들었다."한반에 60명씩 있는 게 이해가 안됐어요. 선생님께 일제히 차렷경례하는 것도 어색했고 프라이버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정표는 선생님이 같은 반 친구를 걸레 자루로 때리는 것을 보다 못해"그만 좀 하세요" 했다가 그 역시 흠씬 맞은 경험도 있다.정표는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허공에 대고 비명을 질러댔다. "얼마나 답답하면 저러랴 싶어 안쓰러웠지만 자극을 줄까봐 캐묻기도 어려웠어요."한자도 배울겸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예를 해보라는 생각에서 정표를 동네서예 교실에 보냈다. 정표는 명심보감을 1년 가까이 공부하면서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다.그는 "우리의 전통 정신유산에 감명을 받았다"며 "서예 선생님과 학교이야기나 브라질서 살던 얘기도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씨는아들에게 1주일에 한차례씩 미국인 유학생을 영어회화 선생님으로 붙여줘갑자기 만난 한국 문화와의 충돌도 완충해가도록 했다."국제학교가 빨리 세워져야 합니다. 특혜로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외국에서 나라와 회사를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자녀교육기관을 제공해주는 게 오히려 공평한 게 아닐까요." 귀국자녀들을 별다른 보호장치도 전담교사도 없는 일반 학교에 "내던지는 것"이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이씨는 톡톡히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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