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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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깊은 산속에 취락한 티베트족은 조기교육을 시킨다. 다섯살 전후만 되면 어머니 슬하에서 떼어 절간학교에 보낸다. 이 절간은 강건너 깊은 산속에 있게 마련이며 그 강물에는 칡덩굴로 꼰 외줄 다리가 걸려있을 따름이다. 이 외줄 다리에 매달려 강을 건너기란 담력이 필요하며 부모들은 아이가 네살만되면 다리 건너는 과외공부를 시킨다. 일단 건너가면 2∼3년동안 공부를 마칠때까지 집에 돌아오지못한다.관음보살이 나타난다는 축제일에 단한번 어머니와 아이는 강의 양편 언덕에 서서 음성만을 교감할 따름이다. 히말라야의 험한 조건속에서 살아내려면 강인한 정신력과 자립심을 떡잎부터 주입시키지 않으면 안되고 그 오랜 히말라야 인생의 체험이 이 조기 격리교육을 불가피하게 했음직하다.이 응석 단절과 자립심 배양의 조기교육은 중세 유럽에도 있었다. 귀족이나 부호들은 아기가 서너살에 이르면 시골 농가에 양모를 정해 1∼2년동안 격리양육을 시킨다. 18세기 루소의 [에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가난한 농가에 맡겨진 이 아기들은 양부모들이 밭에 나가 일하거나 가사에 종사하는 동안 누더기로 둘둘 감싸인채 나뭇가지나 못에 걸어놓아 얼굴이 샛노래져있는 것을 흔히 볼수있다.] 세상 살기가 쉽지않다는 것을 이렇게 떡잎부터 터득시켰던 것이다.우리 나라 왕족이나 양반집들에서도 호강에 겨우면 인성에 결함이 생긴다하여 가난하고 엄하며 법도있는 집에 의탁해 양육하는 관행이 없지않았다.연산군도 어릴적에 남대문밖 성희안의 집에 의탁, 양육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동서고금할 것없이 어머니 응석으로부터 자립시키는 조기교육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빨리 교육시킬수록 공부를 잘해좋은 대학가고 출세하리라는 공리심에서의 조기 교육은 백해무익이다.송나라때 요주땅에 주천석이라는 아기가 신동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얻자 너도나도 너댓살만 되면 사서오경을 가르치는데 닭장처럼 죽롱속에 가두어 주야로 잠도 재우지 않으며 닥달을 했다. 그리하여 요주는 신동의 산지란 말이 났으나 급제하기 전에 반이 고달파 죽고 급제한 신동들도 하급과거인 향시에 하나도 급제하지 못했다 한다.지금 다섯살 취학을 앞두고 그 나이 또래 부모의 4명에 한명꼴이 조기취학을 시킬 셈이라하고 그 취학문이 좁아지자 네살배기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한다. 티베트 조기교육과 요주 신동교육을 비교해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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