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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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부활증언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아주 길다. 이 긴 한 장 속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되는 교리인 부활에 대하여 차례차례 설명하고 있다. 부활 사건, 부활의 진리, 부활 신앙 - 이런 문제에 대하여 아주 논리적으로 체계있게 한 가지 한 가지 설명해나가고 있다.처음 바울이 이 말씀을 내놓을 때에 그 내용으로 봐서 그는 성서적 증거를 든다. 성경이 예언한대로, 그러니까 성경을 아는 사람, 성경의 뜻을 깊이 알고 그 성서적 진리의 맥락을 이해한 사람은 부활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 성경을 떠나서 부활신앙을 알기는 참 어렵다. 그런고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된다. 부활신앙은 이 성서적 진리에 뿌리를 두었다는 것을.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 같은 분들이 부활을 증거할 때마다 성경을 들어서 성경 어느 장 어느 절에, 하고 성경 이야기를 들어서 그 맥락에서, 또 그 빛에 의해서 오늘 당한 이 부활 사건을 설명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그 다음으로 두번째의 논조는 체험적 신앙이다. "태반이나 살아있고"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만나 본 사람들이 태반이나 살아 있다. 지금도 살아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까 바울의 이 편지도 예수님을, 예수님의 부활을 만나본 사람들이 살아 있는 바로 그 처지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또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았고, 베드로도 만났고, 요한도 만났고, 열두 제자가 다 만났고 일시에 오백 여 형제들이 보았고... 하고 설명하게 된다.또 이 체험이 그렇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다는 육체적 체험, 오관을 통한 체험만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이것이 믿어지는 내용이다. 아무리 보고 만지고 해도 마음으로 믿어지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이것은 학실하게 믿어진다. 다 잊어버려도 이건 잊어버릴 수가 없다. 설사 내 생명을 부인하는 한이 있어도 이 사건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 확실한 부활 사건과 이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생각해보라. 부활을 믿으니까 죽는 거 아쉽지 않다. 언제 죽어도 좋다. 더구나 순교할 수 있다면 그건 영광된 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내가 증인이다, 우리가 증인이다, 한다.그리고 바울이 많은 핍박을 받았다. 날마다 죽는 그런 많은 고생을 했는데 자,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이다.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체험하고 내가 믿고 내가 아는 이 생명, 이 부활 생명이 너무나도 확실하기 때문에 나는 한평생 여기에다 운명(,좋지않은 설교용어)을 걸었다, 그리고 많은 고생을 즐겁게 나는 감수하고 있다, 이래도 아니냐 -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증거이다. 그렇게 설명을 했다.그리고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는 조금 더 다른 방법으로 설명을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자연 속에서 이해했다. 대단히 아름다운 것이다... 씨를 심고 가꾸고, 거기서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볼 때에 '아! 이게 부활의 이치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比辭는 어디까지나 비사지 부활 진리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무엇과 같다, 하는 것이지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을 통해서 알고 있는 진리를 더 밝히 알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 뿐이지 그 비유 자체에 우리가 너무 깊이 매여들어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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