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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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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체 수가 보통보다 삼배체가 되면 씨가 없어진다는 유전학을 응용,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을 때 각광을 받았었다. 근년에는 방사선 등으로 염색체에 변형을 유발해 씨가 적은 수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인위적 변형으로 장점이 생기면 그를 보상이라도 하듯단점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씨 없는 수박은 껍질이 두껍고 속에 공동이 생기며, 씨가 적은 수박은 당도가 떨어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우리 옛 설화에 목마른 장수가 물 긷는 아가씨에게 샘물을 청했을 때 물바가지에 버들 잎 띄워 바쳤다듯이 수박에 씨가 들어있는 것은 조화의 이치가 곁들어 있었다. 목마른 김에 빨리 물을 마시면 탈이 나기에 버들잎 띄웠듯이 수박도 빨리 먹거나 짧은 시간에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 설사를 하게 마련이기에, 천천히 조금씩 먹지 않을 수 없게끔 적당하게 씨가 박혀있게 한 것이다. 지금 온 세상에 공황을 몰아오고 있는 유전자 변형 식품들도 어떤 형태로든지 조물주의 조화파괴에 보복해올것이 뻔한 일이다.이 같은 염색체나 유전자 변형 아닌 둥근 수박을 네모나게 한 외형 변형의 수박을 길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운반, 저장하는 데 편리하고 공간을 절약하며 썰기 좋고 먹기 좋아졌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중북부가 원산인 수박이 중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글안이 서역의 회흘을 정복했을 때(840년)로 호교라는 이가 씨앗을 갖다 심은 것이 시초요, 서역에서 들여왔다 하여 서과라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조국을 배반하고 원나라에 붙어 항몽저항하는 삼별초를 멸망시킨 홍다구가 원나라에서 개성에 옮겨 심은 것이 한국에서 수박의 시초고ㅡ. 하지만 오랑캐나라로부터 전래했다 해서인지, 반역자가 들여왔다 해서인지 상류층이나 선비로부터 소외받아 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연산군 일기에 보면 명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마다 수박을 구해오도록 시키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연산군은 연희궁에 자주 행차해 궁녀들과 어찌나 많은 수박을 파먹으며 음란하게 놀았던지 연희궁 까마귀 골수박 파먹듯 한다는 속담까지 생겨났었다.이제 네모난 수박의 출현으로 별의별 모양의 수박이 나오게 됐으니 무상한 한국 서과사에 씨 없는 수박 이래의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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