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하다 행정고시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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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졸업하고 막노동·경비하다 행정고시 합격한 김종영출판년월: 97년 12월지난 11월 초 발표된 제41회 행정고시 합격자 중 유일한 고졸 출신인김종영 씨(35). 지난 7년 동안 무자격 영어 강사와 야간 경비, 막노동 등 힘겨운 생활을 하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그의 목표는 출세가 아니었다. 또 무슨 커다란 야망을 품고 고시에 도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바람은 단하나, 남들 앞에서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올해 서른다섯, 나이 제한으로 내년부터는 시험을 볼 수 없었다사진 촬영 장소를 찾던 취재진의 눈에 바로 옆에 있던 신축 공사현장이 보였다. 빗물이 고여 있는 길거리에서 서성이던 취재진은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사진 촬영장소로 어떻겠느냐고. 그는 초록색망이 여기저기 엉킨 공사현장을 둘러보더니 뒷걸음질 쳤다. ‘싫다’는 의미였다.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과거 아니냐,며 설득해 보았다.내키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지만,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번에 치러진 제41회 행정고시는 그가 행정고시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기회가 얼마 없다는 것은 잘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마지막 고비인 2차 합격 발표. 그는 자주 오르던 관악산에 올라 안정되지 않는 마음을 달래 보려 애썼다.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절에 들어가 목탁 두드리는 소리까지 들었다.사실 이번과 같은 ‘마지막 기회’는 처음 맞는 일이 아니었다. 지난1991년부터 준비한 시험은 행정고시가 아닌 외무고시였다. 외시 1차시험에는 두 차례 합격했지만, 최종 합격엔 실패했던 그는 응시생나이 제한에 걸린 작년부터 행정고시로 진로를 바꿔 지난해 행시1차 시험에 합격했었다.외시에 합격하지 못한 채 나이제한에 걸렸을 땐 정말 앞이 막막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1차라도 붙어 봤으니 너무 집착하지 말라며 그를 달랬다. 하지만, 하늘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행정고시 부문에 국제통상직이 새로 생긴 것이었다.어릴 적부터 외교관이 꿈이었던 그에게는 하늘이 다시 준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이번 시험에서마저 떨어지면 다시 기계 기능공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매달렸던 것이다.2차 행정고시 합격자 명단은 서울 신림동의 집 근처 서점에 붙어 있었다.처음엔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자칫하면 그냥 발걸음을돌릴 뻔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반쯤 틀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 둘빠져나가고 난틈으로 ‘김종영’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합격한 것이었다.“집에 바로 돌아와 고향(전북부안)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연세 많으신 부모님들이 제일 기뻐하셨죠. 3차는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붙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합격한 거나마찬가지였죠.”성적도 늘 1등이었지만,싸움도 진 적 없는 ‘독종’전라북도 부안에서 김장철(80)·오기용(75) 씨의 7남2녀 중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짜가사리 오기쟁이(오기가 많고, 성에 안 차는 일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붙여진 별명이란다)’로 동네에서 유명했다.어떤 일이 주어지건 대충 넘기지 않고 항상 열심히 매달렸다고 한다. 그런 그는 중학교 때까지 성적표에 2라는 숫자보다는 1이란 숫자를 더 많이 새겨 넣었다.외교관이라는 막연한 꿈도 그 무렵 비스마르크의 전기를 읽고 난뒤 가진 것이었다.“전 싸움을 해도 꼭 이겼어요.뒤에 10대 1로 싸우는 바람에 딱한 번 진 적을 빼놓곤요(웃음).”그런 그가 첫 번째 시련을 맞은 것은 고등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고였다. 반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던 그가 가정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는 형들이 있는 부산으로 옮겨가 부산기계공고 기계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에게기계라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상대였다. 영어를 좋아하고, 책을 들고 공부하는 것이 좋았던그에게는 말이다. 전 학년 학생이 모두 장학생이었던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성적표에 59등이라는 숫자를 새겨 넣었다.“집안형편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차라리 고아였다면 제 마음대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도 않았고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른 학생들 따라가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적성에는 맞지않았지만, 다른 애들에 게지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병역 특례자로 지금은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뀐 대한조선공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그는 꿈을 잃지 않고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다.“의무적인 근무 기간이 끝났을 때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대로회사에 눌러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저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겠죠.”1988년, 회사를 그만둔 그는 서울에 있는 누나 집으로 올라왔다. 새로운 자신, 새로운 삶을찾기 위해서였다.토익 시험에서 8백90점 받은 뒤 학력 숨기고 영어 강사로 취직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들고 무작정 올라온 서울이었다. 누나 집에서 머물던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익혀 두었던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그저 자신이 영어 공부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그러던 그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해 볼 생각에서 치른 토익시험에서 8백90점이라는 높은점수를 받게 된다.그러자 그에게 “영어 강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친구의 제의가 들어왔다. 영어 하나는 자신있던 그에겐 좋은 기회가 아닐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 학원의 영어 강사가 됐다. 하지만,공고 졸업생인 그를 학원측에서 어떻게 강사로 써 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아직 그 자신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그때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았어요. 또 학생들이 어느 대학을나왔느냐고 물을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도 아주 힘들었죠.”그는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 떳떳하게 자신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는 누나 집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들어가게 된다.고시를 시작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숙이나 자취보다는 방값이싸다는 이유에서였다.하지만, 값싼 고시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시원에 들어갔을 때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것은 바로 외무고시 시험 정보였다.어릴 적부터 막연하게나마 가져온꿈의 실체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래, 바로 이거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영어 공부도 결코 헛된것이 아니었어!’그는 3개월동안 사전 준비를 했다.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 보기도 하고, 어떻게공부해야 하는가에대해 알아 보기도 했다. 그리고 1991년 6월,그는 모든 것을 접어두고 경기도 청평에 있는고시원에 들어가게된다. 그것이 그의 고시공부의 시작이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몇 번의 기회를 머리 속에 입력해 두었다. 외무고시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나이 제한에 걸리는 마지막 기회까지 모두 합쳐서 네번.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 빨라야 3, 4년 안에 합격할 수 있다는 말에 그는 마지막 시험을 승부처로 삼기로 했다.그동안 모아둔 약간의 돈이 있었기에 그는 마음놓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가끔 누나와 형들의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는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기회까지 모두 실패로 끝을 냈다.1차 합격으로 만족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얘기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그는 우연히 한 친구로부터 희망이 보이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행정고시에 국제통상직이라는 분야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꿈인 외교관이 되는 길은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 다른 길도 아니었다. 그는 이번 기회마저 실패로 돌아가면 다시 기계 기능공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하늘이 다시 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야간 경비와 막노동을 하며 2년동안 행정고시를 준비 앞으로 두 번의 기회가 남은행정고시. 이제 그에겐 공부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더 커다란 벽이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러던 중에 그는 한 건물의 야간경비 일을 맡게 된다. 낮에 자는대신 밤에는 한숨도 잘 수 없는,밤낮이 뒤바뀐 생활이었다. 하지만, 밤에 집중이 더 잘 되는 것을 생각하여 그는 흔쾌히 일을 시작했다. 건물주도 좋아했다. 야간경비들은 대개 밤에 졸기 일쑤이기 때문에 밤새 공부하며 잠자지 않는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야간 경비 일은 쉬는 날이 없다.1년, 3백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을 새야 하는 것이다.사람들은 매일 잠자지 않고 공부하며 건물을 지키는 그에게 ‘독한 놈’이라고 수근거렸다.한 번도 빠진 날이 없고, 딴 짓 한 번 하지 않는 그가 다른 사람들 눈에 독하게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공부를 하면서 다른 일은 일절하지 않았어요. 텔레비전도 보지않고, 당구나 비디오 등 잡다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일들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죠. 딴 생각 할 틈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은 거죠. 대신틈만 나면 잠을 잤죠. 하루에 열시간 정도는 잤어요. 공부를 오랜시간 한다고잘하는 건 아니거든요.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하는것이 가장 좋아요.”하지만, 그의 건강은 그 덕에 많이 나빠졌다. 야간 경비 일이외에도 그는 막노동을 했다.힘든 시간들이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또 열심히 일했다. 그것이 그가 사는 길이었고, 그것만이 그를 이끌어줄 수 있는 길이었다.그리고 그는 마지막 기회인 이번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그는 힘겹게 살아온 지난 7년의 시간을 미화시키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을 하기위해 ,찾았던 공사현장에서 뒷걸음질 쳤던 것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함께 따라나섰던 후배를 일찌감치 돌려보낸 것도 바로 그런 것들 때문 이었다.“당사자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이 힘겹게 살았던 일들을 미화시키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이제다 지난 일이지만, 돌이켜보면짜증만 나는 걸요. 왜소한 체격에 막노동을 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거나 힘든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 그런 고통을 느끼면서 살 거예요.”그가 고마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한 친구와 동생이다. 고시공부를 함께 한 이만복 씨는 외무고시에 먼저 합격한 친구로, 국제통상직이 새로 생겼음을 그에게 알려준 바로 그친구이기도 하다.“예전에 공부할 때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가르쳐 주고 그랬어요. 특히 그 친구가 자료를 많이 제공해 주어서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했죠. 동생은…, 지금 사는곳이 동생 방이에요. 생색 한 번 내지 않고, 제가 공부를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어요.”결혼과 해외여행을 하고 싶고 영어 공부도 더할 계획이다“나이 많은 노처녀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저희 이종사촌 누님 같이 사리 분별이 정확한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이제 자신이 바라던 길로 들어선 김종영 씨는 연애도 하고 싶단다. 가능한 한 빨리 결혼도하고 싶다면서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내년 4월부터 연수를 받게 될 그는 그때까진 그동안 시험준비 때문에 소홀했던 영어 공부를 더할 계획이다. 학원도 다니고,예전에 공부했던 것처럼 집에서 혼자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다른 공부 하느라 영어를 다잊어버린 것 같아요(웃음). 영어공부도 하고, 돈이 모아지면해외여행도 하고 싶어요. 어차피 외국에는 많이 나가게 되겠지만요.”그가 합격한 행정고시 국제통상직은 다른 나라들과 무역 협상을 하기 위한 전반적인 업무를 다루는 곳이다. 그가 꿈꾸던 외교관과도 그리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행정고시 합격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종영 씨. 조금은 정신없기도 하지만, 재미있다고 한다. 자신이 어렵게 살아온 이야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일수록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자기의 목표를세워서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지닌 존재가 바로 인간이니까요.”이제 구체적인 그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고, 남들과 다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자리에서건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있다.글 / 이수진(자유기고가)/레이디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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