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강의안-김철우목사
본문
1. Q.T의 정의
Q.T는 Quiet Time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우리말로는 '경건의 시간', '묵상의 시간', 또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경건의 시간에 대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예수님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하루의 첫시간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시간은 그리스도인들이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세주이며 주님이신 그분과의 만남을 위해 미리 따로 떼어 놓은 시간을 말합니다.
"Quiet Time의 약자인 QT가 성경묵상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이 시대에 QT에 진정한
제목을 붙이고자 한다면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차례대로 읽어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촉촉이 적셔주는 이슬비, 이것이 날마다의 성경묵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래된 내 가치관이 깨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조금씩 씹어서 소화해(겔3:3), 나에게
새로운 조직이 될 때 비로소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의 인생관이 성경적 가치관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성경 공부나 통독으로도 안되던, 성경이 꿰뚫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2. Q.T의 역사
큐티의 역사는 아무래도 성경을 통해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구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창조시에 하나님은 인간과 깊이 교제했으며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을 매일 가졌습니다. 창3:8에 "아담과 하와가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 피조물과 교제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유독 사람과만 사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시간은 창조 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족장시대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교제하신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창18장의 기사는 그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서 여호와의 임재를 사모하고 있을 때 길 가는 나그네를 보고 그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게 될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후에도 모세, 사무엘, 다윗, 느헤미야... 모두경건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Q.T에 대한 모본이 나타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아라비아 3년 동안의생활을 말씀 읽기와 묵상 기도의 생활로 자신을 정비했습니다. 그는사역 중에서도 경건의 시간을 찾는 것을 정기적인 스케줄로 잡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지역에 갔을 때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강가에 가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16:11-15).
분명히 기독교회사가 진행되면서 경건한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가져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중세시대가 부패해지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경건한 삶을 유지해 갔던 것입니다.
Q.T(quiet time)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사람은 1882년 영국 켐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 후퍼(Douglas Hopper)'와 '도르톤(Thorton)'이였습니다. 1학년 때 캠브리지에서 열린 무디(D.L Moody)의 전도집회에서 회심한 후, 친구들과 열심히 경건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이들은 후에 켐브리지 7인으로 불리웠습니다. 이들이 시작한 경건운동은 세계를 변화시킨 영적운동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마음과 생활이 세속적인 경향으로 꽉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도하면서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하루 중 일부를 성경읽기와 기도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Quiet Time'이라 불렀고, "경건의 시간을 기억하자!"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약서에 서약을 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것은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아침 일찍 최소한 20분, 가능하면 한 시간씩을 기도와 성경연구를 위해 따로 떼어놓으며, 또한 잠자기 전에도 계속해서 잠깐씩 그러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이들은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고, 평생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후에 이들의 경건 훈련방법인 QT라는 용어를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3. QT 를 위한 준비
1)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먼저 드리십시오.
큐티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귀한 시간인 만큼 첫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부터 보십니까? 신문부터 보십니까? 신문에는 갖가지 사건, 사고가 나오기 때문에 아침에 신문부터 보게 되면 늘 근심과 걱정이 앞서게 되지만 성경에는 모든 문제의 해결이 나와 있어서 힘든 사건이 생기더라도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큐티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어려운 주문이 될지 모르지만, 사실 시간확보의 문제는 시간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관심과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바쁜 것과 소중한 것의 차이를 기억하십시오.
2) 주님과 함께 할 작은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장소이면 최고입니다. 예수님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큐티(?)를하셨습니다.(막1:35) 다른 식구들에게 방해 받지 않는 작은 골방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골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한 켠에 언제라도 말씀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과 여유를 마련해 두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남편의 투자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자 60평 아파트에서 살던 네 식구가 한 칸짜리 오피스텔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하는 말이, 완전히 망해서 한 칸짜리 집으로 쫓겨 가고서야 말씀이 제대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빈 방이 많고 아무도 없는 곳이라고 꼭 큐티가 잘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여럿이 북적대는 중에도 내 마음의 골방이 있으면 주님과 황홀한 시간을 가지며, 주님의 세미한 음성까지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큐티 보조 교재를 잘 선택하십시오
성경만 가지고 큐티를 잘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단락을 정한다든지, 전체를 골고루 묵상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루 빠져도 별 부담이 없어 지속적인 큐티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큐티교재를 사용하면, 날마다 주어진 분량만큼 큐티를 하지 않으면 빈공간이 남게 되어 확실히 표가 납니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어느 정도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여러 지체들이 같은 본문을 묵상하기 때문에 나눔과 교제가 풍성하게 됩니다.
사랑의교회 홈페이지에 큐티나눔터를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교재를 선택하여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날마다 솟는 샘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4) 큐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큐티는 주님을 만나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고픈 기대와설레임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무슨 말씀으로 나를 찾아와 주실까? 어떤 교훈을 주시고, 어떤 깨달음을 주실까? 이런 마음없이 의무감이나 형식적으로 큐티를 한다면, 점점 율법적인사람이 되고 맙니다. 큐티를 안 하면 괜한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큐티를 우상화하거나 일종의 종교활동으로 취급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엔 큐티의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코 지속적으로 큐티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큐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감정이 오고 가고, 기쁨과 감격이 있을 때 진정한 큐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4. 큐티의 구체적인 방법
언젠가 기독교서점에 가서 큐티교재를 살펴보니 20가지가 족히 넘었습니다. 그 교재들이 소개하는 큐티방법이 다양한 것처럼 보여도 핵심은 한가지입니다. 큐티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읽고 깨닫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묵상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요?
1) 큐티의 문을 여는 찬양과 기도
바울은 빌립보 깊은 감옥의 문을 기도하고 찬미함 으로 열었습니다.
찬양은 내 영혼의 코드를 주님께로맞추어 가는 과정입니다. 찬양은 온갖 세상의 찌끼들을 태우는 내 영혼의 용광로와 같습니다. 영감있는 찬양은 잠자던 내 영혼을 깨워 주님 앞에 앉게합니다. 하나님은 찬양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기도는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 위해 나의 고정관념, 순종에 대한 두려움, 다급한 필요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듣겠습니다'라는 자기부인과 순종에의 결단을 확보하는 준비기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하소서(시 119:18)"
2) 큐티의 금맥을 캐는 본문읽기
어떤 목사님은 "본문을 여러번 읽으면 본문에서 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읽기는 다른 말로 하나님으로 부터 '듣기'입니다. 본문을 읽다보면 모르는 낱말, 궁금한 배경등이 나와 금방 해설이나 주석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큐티가 성경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내가 성경을 다 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 마저도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세번 이상 읽어야 합니다. 소리내어 읽고,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세번을 읽어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본문읽기는 성경이라는 거대한 광맥속에서 금을 캐내는 작업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계속해서 캐들어가야 합니다. 단어와 대명사, 앞뒤문맥을 잘 살펴보면서 읽어갑니다.
그렇게 본문을 읽다 보면 어느새 특별히 와닿는 말씀이 있을겁니다. '강한 의문'으로나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말씀이 바로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됩니다.
한가지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통독을 꼭 병행하시란 것입니다.한 본문을 깊이 읽는 것과 성경전체를 보는 일을 병행하여 숲과 나무중에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겠습니다.
3) 큐티의 캐낸 금을 풀무질하는 묵상
묵상은 명상이 아닙니다. 자기를 통찰하는 수도(修道)나 창의적인 사색도 아닙니다. 명상이자기를 비워내는 작업이라면, 묵상은 하나님으로 자신을 채우는 일입니다.
묵상이란, 아기가 잉태된 순간부터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기까지의 10개월과 같은 과정입니다. 마음밭에 심기운 말씀의 씨가 자라는 과정이며, 성령안에서 더욱 깊이 구체적으로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본문 읽기를 통해 캐낸 말씀의 금맥을 풀무질을 통해 순금으로 제련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그 당시 그 독자에게 주신 그 의미(The Meant)를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의미들(means)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묵상에 있어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큐티를 묵종훈련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묵종은 묵상과 복종의 합성어겠지요.
4) 큐티의 열매, 큐티의 생명 적용
적용이란 묵상 중에 발견된 현재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내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큐티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고, 하나님과 만나는 황홀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되지 않습니다. 묵상한 말씀을 오늘 내 삶에 구체적인 순종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면 모래위에 집을 세우는 어리석은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인 적용꺼리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잘 살펴보면 한가지 정도는 적용할 말씀이 있을 겁니다. 적용이 없는 큐티는 열매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적용에도 줄기적용, 가지적용, 잎사귀적용, 낙엽적용까지 다양합니다.
줄기적용은 본문에서 바로 나온 문자적인 적용입니다.
가지적용은 본문의 행간에서 찾을수 있는 적용으로 생각됩니다.
잎사귀적용은 한 모퉁이의, 다른 사람들은 보지도 않는, 그런 적용이지요.
낙엽적용은 본문과는 별로 상관없는 듯한 적용이 아닐까 합니다.
5) 큐티의 능력, 나눔에서 확인하세요!!
적용이 큐티의 ‘열매’라면 나눔은 ‘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눔을 통해 큐티의 풍성한 너무나도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 놓쳐버린 부분들을 나눔을 통해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눔은 다소 주관적일 수 있고 잘못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눔은 우리들이 지속적으로 큐티를 할 수있도록 하는 좋은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제자훈련에서 큐티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제자훈련의 목적이 인격과 삶의 변화와 성숙이라면 큐티는 그것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훈련생들이 큐티를 어려워하는데 있다. 왜 큐티를 어려워하는가?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성경 자체를 어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경은 어렵고도 쉬운 책이다. 성경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에게만 주신 책이 아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책이다.
사사기 13장에 보면,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묻는데 자신을 ‘기묘자(beyond understanding)’라고 소개한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기묘자가 마노아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와 대화하고 있다. 성경은 이런 책이다.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의 대화의 창구인 것이다. 큐티란 내가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조용히 내 삶을 내려놓으면 말씀이 나와 내 삶을 조명하고 해석해 주는 것이다.
큐티는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묵상의 산물이다. 이것은 큐티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D형 큐티’이다. D형 큐티는 귀납적 성경묵상이라고 할 수 있다. 큐티다운 큐티를 하되 객관적인 관찰과 연구를 통해 주관적 해석이나 잘못된 묵상을 최소화하고, 귀납적인 과정을 거쳐 결단과 적용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큐티를 처음 시작할 때 D형으로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받으면서 최소한 60개 정도의 중요한 성경 본문을 D형 큐티로 다루어 본다면 성경의 뼈대를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큐티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D형 큐티를 통해 귀납적인 성경묵상의 방법을 체득하게 되어 귀납적으로 진행되는 제자훈련의 적응력을 높이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D형 큐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에 제시된 몇 가지의 실제적인 예문을 통해 구체적인 도움을 받아보자.
1. 내용관찰
예문 1) 창 39:1~6 애굽 사람 보디발이 이스마엘 사람들 손에서 요셉을 샀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케 되자, 보디발이 그를 가정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에게 맡겼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주인이 그 소유를 모두 맡기고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본문의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면이 돋보인다. 이처럼 짧고 잘 아는 본문이면 내용관찰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잘 아는 본문일 경우 선입견으로 대충 관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문 2) 막 5:25~34 이 사건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는 길에 일어난 일이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병을 낫고자 하여 무리 속에 섞여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 낫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것을 아시고 그 여인을 찾았고 그녀에게 네 믿음이 구원 받았으며 병이 나았음을 알게 하셨다.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이 어느 때인지를 전문맥을 통해 파악한 것이 좋다. 본문을 육하원칙에 의해 핵심내용으로 잘 요약했다. 긴 본문을 짧게 줄여보는 연습을 통해 관찰실력을 키울 수 있다. 자기의 말로 한 두 문장으로 내용을 요약해보고, 제목을 붙여보는 것도 관찰을 잘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큐티를 잘하는 사람은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다. 관찰은 본문을 읽는 것으로 출발한다.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 ‘소리내어 읽고, 눈과 마음으로 읽고, 손으로 읽어야 한다.’ 손으로 읽는다는 것은 펜으로 표시를 하면서 읽는 것을 말한다. 특히 등장인물, 시간, 장소 등을 염두에 두고, 인칭대명사나 접속사를 잘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전후문맥을 함께 읽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관찰을 잘하려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 후에 육하원칙으로 정리해보자.
2. 연구와 묵상
예문 1) 창 39:1~6
(1) 요셉을 영향력 있는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리게 함으로써 만남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2)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보잘 것 없는 종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거하게 함
(3)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최선과 노력을 다하여 주인의 신임을 얻는 요셉
(4) 가장 낮고 천하고 악한 자를 높이시고 강하게 하시며 귀하게 쓰시는 권세를 갖고 계시는 하나님
(5) 영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만남은 영적인 복만이 아니라 육적인 복도 누릴 수 있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6) 요셉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자세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본문 속에서 몇 가지 교훈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찾아내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의 연구와 묵상은 생소하고 어려운 본문이거나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본문일 경우 힘들 가능성이 많다. 이런 경우는 연구와 묵상의 형식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위의 본문을 보고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할까? 그러면 욥의 고난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가정 총무란 당시 어떠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하는가? 과연 형통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시는 복은 어떠한 복이었을까?’ 등. 이렇게 본문을 보면서 궁금한 것,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들을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예문 2) 막 5:25~34
(1) 여인의 상태는?–12년간 혈루증을 앓았고,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당했으며, 치료를 위해 재산도 다 허비했지만 낫기는커녕 도리어 더 심해진 상태. 절망적이고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2) 그녀는 예수의 어떤 소문을 들었을까?–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는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그 소문에 그녀는 귀가 번쩍 뜨였을 것이다. 그런 능력이 있는 분이라면 의사들이 못 고친 자신의 불치병이 틀림없이 고쳐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였을 것이다.
(3) 왜 그녀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까?–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얼굴을 천으로 가렸을지도 모른다. 밀리는 군중 속에 섞여서 예수님 가까이에 가보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그의 옷자락만 만질 수 있다면 하는 절실한 심정으로 밀리는 군중 틈에서 여러 번 손을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부정한 병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제대로 외출도 못했을 것이기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비록 떳떳하게 나서지는 못해도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질 수 있다면 자신의 병이 꼭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의문점들에 대한 질문을 통해 훌륭한 연구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여인과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있다. 그리고 연구의 소재는 인물, 사건, 장소, 시기, 배경, 어려운 단어 등 여러 가지로 삼을 수 있다.
연구를 효과적으로 잘하려면 좋은 질문들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본문 속에서 객관적인 답을 찾는 것이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려운 단어나 지명을 사전이나 주석을 통해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들의 도움을 받기 전에 문맥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찾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다. 좋은 D형 큐티는 스스로 연구한 흔적이 있는 것이다. 묵상은 연구를 통해 얻은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당시의 상황, 표현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한 상상, 그 사건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느낌이나 생각 등을 그들의 입장에서 묵상해 보는 것이다. 즉 ‘행간을 읽으라, 거룩한 상상력을 동원하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묵상과 느낀 점의 경계선이 모호할 때가 많은데,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그(He)’와 ‘나(I)’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3. 느낀 점
예문 1) 창 39:1~6 삶에 있어서 만남이란 참으로 소중한 생각이 든다.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이 내 삶의 물꼬를 바꾸어 놓았듯이, 삶에서 영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것은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 가장 큰 복일 것 같다. 하나님은 또한 그 만남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 같다. 우리가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요셉과 같이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깨어 있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때에 나를 쓰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작은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함을 또 한번 절감한다.
‘나’와 ‘우리’라는 표현이 중복적으로 쓰였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요셉의 경우라면 어떻게 했을까?’도 생각해 보고, 나의 처지와 요셉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만약 연구와 묵상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면 자연스럽게 느낀 점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예문 2) 막 5:25~34 이 여인의 믿음과 용기는 대단히 본받을 만하다. 그녀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님 앞에서 자신을 고백했으며, 주님은 용납하고 받아 주셨으며 구원을 허락하셨다. 주님 앞에 나아옴으로, 옷자락에 손을 대는 그 믿음으로 여인은 혈루증의 근원이 깨끗이 말라버렸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나의 붉은 죄악들을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신다. 사람들조차도 부정하다고 가까이 하려 들지 않는 자에게도 관심을 가지시고 사랑을 베푸셨다.
나한테 무슨 의로운 구석이 있어서 당신을 알게 하셨단 말인가!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 여인에게 일어난 사건이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인양 동질감 내지는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 느낀 점은 이렇게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자면 나의 혈루증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느낀 점은 ‘나찾기’ 혹은 ‘말씀의 거울에 나 비추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내가 요셉이 되어 보고, 혈루증 여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느껴 보는 것이다. 자기 성찰이나 깨달음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4. 결단과 적용
예문 1) 창 39:1~6 제자반 집사님들과의 만남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생각하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보디발의 집이 이방인의 집이었음을 생각하면 제자반 보다는 직장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적용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소중히 여기고,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겠다’ 등의 표현은 구체적이지 않다. 만약 섬기겠다는 적용을 하셨다면 무엇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좋겠다.
예문 2) 막 5:25~34 혈루증 앓는 여인이 간절히 주님을 만나고자 나아갔던 것처럼 나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겠다. 죄성으로, 나약함으로, 불결함으로, 교만함으로, 게으름으로, 나태함으로 얼룩진 나의 모습 그대로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께로 나아갈 것이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으로….
어떤 시간에 주님께로 나아갈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이면 좋겠다. 주님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나의 혈루병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결단도 좋은 적용이 될 수 있다. 마음의 각오나 회개 등, 태도와 성품을 바꾸기로 하는 것도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매일 그런 적용을 하기란 쉽지 않다. 적용은 ‘말씀이 내 사건을 해석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험과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았던 나와 내 인생과 세상을 말씀의 기준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즉 내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내가 끼고 있던 세상 안경을 벗어던지고, 말씀의 안경을 껴보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이것이 가장 놀라운 큐티의 능력이자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