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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처치로 전환하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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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도시를 탈환하라


나는 항상 만약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군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군대의 전략과 전술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내가 구약성경 중에서 여호수아서를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군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땅을 정복하는 내용을 즐겨 읽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싱가폴 군대가 싸우는 것을 결코 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군대의 지위가 나에게 매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전쟁에서 실제적인 적과 대면할 기회도 없는 군인경력은, 결코 아파 본 적이 없는 주역배우를 위한 임시 대역배우로서, 그저 훈련에만 시간을 보냄으로써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나는 목사이자 군인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적들과 실제 전투에 참여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싱가폴 군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군대는 평화시에 전쟁 놀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긴장은 육체적인 영역보다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위험은 실제적이고 위험은 더 높은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지나 용어로서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신자로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이 그것들에게 매력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심을 갖든 그렇지 않든, 성경은 어두움의 영적 권세들을 대항하여 우리가 무장된 전사로서 저항과 싸움을 취하도록 부릅니다(예를들면, 시144:1, 149:6, 고후10:3-4, 딤전6:12, 딤후2:3을 보십시오). 우리는 에베소서 6:12의 말씀처럼, 혈과 육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악한 영들과 그리고 그들의 악행에 대해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이 땅에서 영원히 포로로 잡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왕되신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철저하게 사탄과 싸웁니다. 그때 우리의 도시들과 국가들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것은 사탄과 그의 음모를 패퇴시킬 것입니다.


 나의 사역 첫날부터, 내가 신학교 시절 달라스에서 출석했던 작은 교회를 돌볼 때 조차도, 나는 요한계시록 11:15의 메아리를 외쳤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적에게 사로잡혀있던 더 많은 사람들과 공동체들이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로 다시 돌아가서 기쁨을 찾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전시(戰時)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후, 우리는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함께 해온 나의 사역과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했던 그 여정을 채색할 수 있는 한 구절이 있다면 바로 고린도후서 2:14일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나의 삶과 사역을 뒷받침 해 준 이 핵심 구절은, 황제와 백성들에게 선물할 전리품을 가지고 승리의 개선을 하는 로마 장군들의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토를 되찾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어두움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빛의 나라로 옮겨지도록 하는 영적 군대의 지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전시 중에 있는 군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그를 찬양하고 있는 교회당 안에서 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유난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하며, 그리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상한 자를 섬겨야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탄에 대항하여 전쟁을 선포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도시와 나라들을 회복시키시는 그의 군대를 전진하도록 부르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네 개의 진리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전시에 관해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 지금은 (1) 하나님의 때이다. (2) 돌파의 때이다. (3) 우리의 때이다. (4) 승리의 때이다.


하나님의 때

 지난 십년을 뒤돌아 보았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나의 지역과 나라에서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해 놀라고 있습니다. 본서 2장 처음에서, 오늘날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주요 세계적 운동에 대해서 요약했습니다. 예를 들면, 성령님은 이전에 본적이 없는 표적과 기사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기름을 부으시고 있습니다. 세계복음화 여정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나아가기 위한 신선한 전략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형태들 가운데 기도를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먼저 우리 죄를 깨끗케 하시는 강력하고 연합된 기도를 하게 하고 그 다음에 침투해서 적의 영토를 탈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부으심을 받을 수 있는 셀 처치와 같은 새로운 가죽부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운동은 우리를 구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 도시들을 탈환하도록 하였습니다.


 싱가폴에서, 나는 지난 수년동안 놀라운 변화를 보고 있는데, 특히 1993년 10월 한국 서울에서 열린 국제영적전쟁네트웍의 기드온군대 회의에 참석한 이후 그러합니다. 그 때 이후 몇 년 동안 싱가폴에 있는 목회자들의 연합은 들불과 같이 퍼져갔습니다. 다른 국제적인 관찰자들은 이것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열쇠는 사랑의 관계성과 발전된 정직과 상호책임성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임무나 행사중심의 연합이 아닙니다. 목회자들은 함께 만나서 서로를 위해 헌금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때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연합은 점증되고, 기름부음이 흘러 넘쳤습니다.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교회의 평신도들도 성령의 이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함께 나아와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울거나,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향해 나아갑니다. 개인기도와 함께 연합기도가 공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이전 세대들보다 더 낫거나 혹은 더 거룩하다든지, 하나님을 더 많이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운동들은 오직 성령의 능력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때인 것입니다.


 싱가폴에 있는 약 400개의 교회 중에 100개 이상의 교회들이 러브싱가폴(4장에서 말한)의 비전에 헌신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두 가지 면에서 적어도 120개의 교회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나라의 가장 큰 몇몇 교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1/3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싱가폴 복음화를 보기 위하여 지금 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 도시 국가의 기후는 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비그리스도인들이 신자들을 찾아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받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군대를 위한 영적 교두보를 세웠으며, 그리고 거기서부터 지금 악한 것들에 의해 점유되어 있는 영토를 해방시키기 위해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움직임을 갖도록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

 내 친구 애드 실보소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도시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와 많은 회중들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내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아시아 전체 대륙에 예수 그리스도 아래 연합된 오직 하나의 교회를 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몸으로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러 갑시다. 교단이나 교파의 이름이 아닌 오직 하나의 이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된 교회로서 움직입시다.” 우리가 이런 방법으로 함께 사역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의 교회와 많은 회중들로 인해 이 지역이 구원받을 것인가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남아프리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에서 이같은 기름부음의 사역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모자이크와 같이 우리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손을 잡을 때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어울릴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세계를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몸 된 교회로서 일어설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다시오실 때를 우리에게 정확히 말씀하셨던 것을 알고 있습니까? 데살로니가 5:2은 주님의 날은 밤에 도적과 같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어둠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4절과 6절은 계속해서 빛의 자녀들이 이 날에 놀라서는 안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4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의 아름다운 신부로서 일어날 때 그리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이르는 것을 보기 위해 세계를 가로지르는 기도의 손들이 참여할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신부로서 신부가 준비될 때 오실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 영광의 새 부대로 변화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술을 부어주시고 계시며 또한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새 교회를 창조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대장 사령관께서는 그분이 강력한 침공군대로서 일으킨 기름 부음 받은 교회를 사용하면서 적들에 대한 승리를 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도적인 시대 가운데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병들을 지휘하는 장성들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계실 때인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권위와 기름부음을 인정받습니다. 그들은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때다!” 그때 모든 사람이 응답합니다. “예! 장군님” 그리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정말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이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돌파의 때

 지금은 또한 돌파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우리가 주님의 승리를 볼 것이며, 그분에 대한 향기로운 지식이 모든 것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할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로 모든 지역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사실, 1999년 한해 동안에, 싱가폴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나라에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 가운데 적진을 돌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견고한 진들을 세밀하게 관측하고 조사하고 있으며, 우리의 여리고성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셀을 개척하고 성장할 때까지 각각의 이웃들을 위해 기도대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싱가폴에 있는 교회는 나라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어판 신문인 The Straits Times조차도 3면에 러브싱가폴기구(the Love Singapole Fund)의 창립 소식으로 덮었습니다. 풍성한 자원들의 흐름이 교회가 가난한 자들에게 부를 재분배하도록 하게 만들었습니다.


 FCBC 우리 역시 주요 돌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2000년말에 우리가 5000개의 셀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1998년 말, 새해를 바라보는 우리의 1년 계획 회의에서, 우리는 단지 620개의 셀 - 셀처치로서 10년 만에-을 가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 숫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가지고 몸부림쳤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싱가폴 전부에 대한 비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이 지역과 이웃을 얻을 수 있는지 그 전략에 대해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네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 전체 땅을 위해 그 비전을 주었다. 하지만 네가 해야할 일은 내가 각기 이웃에 도달하기 위한 그 전략을 줄 다른 사람들을 풀어놓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목회팀에 되돌아 가서, 그들 앞에서 다시 그 비전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변화시키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 5000개의 셀들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전체 팀이 성령께서 그 비전을 성취하도록 강력하게 움직이시도록 하기 위해 믿음으로 그 비전을 소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각 지구목사들이 주님을 찾아 이렇게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얼마나 많은 셀을 얻을 수 있는지 내가 믿을 수 있습니까?” 일주일간 기도를 한 후, 우리는 모두 되돌아왔고, 그리고 숫자를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2000년말까지 도합 2,000개의 FCBC의 셀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5,000개의 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었습니까?


생생한 비전이 일어남

 바로 그때, 주님은 나를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폭발적인 셀 성장에 대한 책으로 이끄셨습니다. 그 저자는 세자르 카스텔라노스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는 I.C,M(the 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을 집중적으로 조명했습니다. 1996년에 이 교회는 년말까지 10,000개의 셀로 성장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10월까지 그들은 그저 5,600개의 셀을 가졌습니다. 저자는 그때에 비꼬는 논평을 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 “이 은사주의 교회는 현실에 순응하도록 자신들의 목표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러나 후에 그는 회개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1996년 12월까지 그들의 목표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10,000개에서 600개나 초과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1997년에 그 교회는 셀그룹을 세배나 목표했고, 그리고 성공적으로 30,000개의 셀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도록 우리의 목표를 바꾸지 않는다.” 이 진술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궁리를 짤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더 위대한 현실, 즉 성령의 왕국의 실재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목회팀에게 되돌아가서 만약 우리가 약 5,000개의 셀을 정확하게 들었는지 아닌지 하나님께 구하기로 했습니다. 기도후에, 각 사람은 이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전략을 위해 주님께 되돌아갔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1999년 말까지 모든 셀이 1,300개로 배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첫 번째 단계는 그 자체가 도전적인 목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의 사실은 FCBC가 12내지 18개월내에 각각의 셀이 배가하는 자체 비전을 항상 성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한 조사에서 우리 셀들의 10%가 3년간 한번도 배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비전에 남아있으며, 각 목사들은 각 셀이 1999년말까지 배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전략의 다음 단계는 2000년말까지 각 셀안에 4개의 셀 개척을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약 1,300개의 셀이 그해 말까지 4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학교와 직장과 클럽, 주택단지 그리고 사회부문들 안에서 영적 기술과 셀 개척 기술들을 완성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우리의 부담을 증진시킬 것이며, 모든 그룹이 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외침을 북돋을 것을 믿습니다.


 5,000개 셀에 대한 FCBC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결코 싱가폴에서 복음전도의 임무를 완성시킬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는 이 나라는 약 10,000개의 “블록” 혹은 고층건물의 정부보조를 받는 공동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각각은 하나의 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파트를 하도록 영감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함께 참여한 그리스도의 전체 몸은 이 나라가 주님의 향기로운 지식으로 넘쳐흐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적진을 돌파할 때입니다.


우리의 때

 이 전시는 하나님의 때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의 때입니다. 고리도후서 2:14에서 나머지 것들을 봅시다 :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함축된 것에 대해서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물론 하나님께서 그 땅을 취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습니까?


 주님은 그의 백성인 우리가 부르심을 받고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권한을 부여한 믿음을 움직이고 계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권위를 가지고 일어서서 선포할 때입니다. 만약 그것이 행해진다면, 우리를 통해서 행해질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에 나는 세대주의 신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 신학-초자연적 은사들을 부정함-의 가장 큰 손실은 그리스도인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입니다. 박해 이전의 많은 견해에 따르면, 세상이 내리막길을 가는 동안 교회는 용감하게 나아갑니다. 그런데 가장 나쁜 일들이 일어나기 바로 전, 교회는 그 장면을 와락 붙잡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얼마나 충격적인 빈혈의 그림입니까! 나로서는 내가 고난을 통해 살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 역사의 가장 흥분할만한 때임이 틀림없으며 나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흔들 때 그 주변에 있기를 원합니다.


 현재, 주님께서는 교회를 에베소서 4:11-13의 오중직을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 구절에서 나는 성장의 치수들이 증대되는 것과 무장이 몸에게 약속되어 있음을 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직 그 자체 충만한 키로 일어서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말씀은 교회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 완전하고 승리롭게 될 때입니다.


 교회가 성숙에 오를 때, 우리는 적진 돌파를 위해 성령님의 능력을 풀어놓는 열쇠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그것을 되가져오기 때문에 올 것입니다. 나는 잭 헤이포드 목사가 자신의 책 「기도는 불가능을 공략한다」에서 말한 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 없이는 그분도 할 수 없다.”


우리 땅을 다스림

 성경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땅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지시합니다. 시편115:16은 말씀합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오셨을 때, 그분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회복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할 권세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역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화성을 얻거나 또는 얼마의 은하수를 얻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 아담은 첫 아담의 축복을 우리에게 회복하셨습니다. 그것은 땅을 정복하고 그것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땅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우리가 사는 부분을 주장하는 권세와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명기 32: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사도행전 17:26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계획하셨을 때,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경계들을 정하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태어난 곳이나 혹은 살고 있는 곳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할당하신 장소는 우리가 상속받은 장소입니다.


 에스겔 47:21-23로부터, 우리는 그 땅에 와서 정착한 이주민들 조차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그 땅을 받았고, 상속 된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출생지와 거주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정확한 곳이며, 우리는 그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싱가폴 정부는 우리의 기술 있고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외국의 목장으로 떠남으로서, "두뇌 유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집니다. 이러한 것들과 같은 성경에계시된 진리 때문에, 나는 항상 싱가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 한, 당신이 이민가야 한다는 것을 금하십니다. 이 땅의 유산은 당신에게 속해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그리스도인들은 싱가폴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탄생시켰고, 여기서 우리가 살도록 하셨으며, 그분은 신성한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한 우리는 이 땅에 대한 영적유산 뿐만 아니라 국가적 유산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땅에 헌신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 땅에서 권세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우리의 이웃, 도시, 국가에게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땅은 나에게 속하였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 땅을 나에게 주셨다. 너는 이 땅에서 떠날찌어다!” 이것은 단순히 한 승리자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승리의 때

 우리의 주제구절인 고린도후서 2:14은 “항상-가끔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퇴보를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인 승리는 약속되어 있습니다. 항상 말입니다. 내 인생과 사역을 뒷받침하는 이 구절과 더불어, 나는 변명하지 않는 낙관주의자로 남습니다. 나는 놓치는 것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나는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승리하며 우리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취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굴의 시간과 도전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흥분할만한 방법들 가운데 행하시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제공됩니다.


 우리는 이 승리를 나오게 하는 역할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의 문은 지금 넓게 열려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주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흔들고 계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땅을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달라스 신학교의 나의 스승인 하워드 핸드릭 교수가, 한 육군하사관이 자기 부하들에게 말하는 것을 인용하였습니다. “장병들이여, 우리는 적에 의해 둘러 쌓여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적들 가운데 하나라도 감히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라.”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은 이 전시에 예수님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쟁에 대한 공헌-적의 영토에 대해 순교나 혹은 적극적인 공격을 통해서 오는 분투-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분은 여전히 승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체념, 혹은 우리의 하늘의 집에 대한 수동적인 기다림은 승리를 더디게 하거나 사탄의 세력에 매여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미국의 화려한 사령관인 조지 패튼 장군이 한번은 어떤 부하들에게 충고를 주었습니다. 의역해서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전쟁의 목적은 조국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서 적군을 죽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영적인 타격을 받는 매순간, 나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 승리는 임박해 있습니다. 승리가 오고 있습니다. ” 나는 결코 현실의 실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 가운데 있는 더 높은 실재를 인정합니다. 목회자들은 패배의 영에 대항하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들이 어두움의 세력들을 이기는 믿음 가운데 서 있도록 지도력의 권위를 부여하실 것입니다. 자신들의 지도력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들은 일치된 가운데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변화나 전환을 해나가는 중에 방해나 역류를 경험할 것입니다. 승리가 확실하다 할지라도 문제들은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이것들에 대하여 경계를 잘해야 합니다.


관계성에서의 문제

 우리가 전환이나 변화를 만들어갈 때, 당신은 하나님의 신성한 지혜 속에서 나아가기 위하여 주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다른 사람들을 믿음가운데 있게 하고 나눌 수 있는 말씀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계획한다고 하더라도, 관계성은 시험받을 것입니다. 나의 사역에서 오는 변화를 보는 매 순간, 관계성은 의문으로 나옵니다. 어떤 때는 이러한 종류의 이슈들이 사탄의 영향력 때문에 일어나지만, 다른 때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작용하십니다. FCBC는 분열가운데 태어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의 1장에서 나는 그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내가 해고당하기 전에 경험했던 그 고통과 혼동이 있었으며, 그리고 주님은 요한복음 16:21의 명백한 말씀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며, 나를 새로운 사역으로 진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에, 나는 내가 우리 교회 바같으로 내던져 졌던 다름 아닌 바로 그 고통의 한 기간을 경험했습니다. 관계성에서 상처와 어려움들이 깊이 도려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나는 네 인생가운데 새로운 것을 탄생하고 있다. 그리고 너는 고통의 수고를 격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새로운 사역을 주고 있으며, 너는 계속 나아 가야하고 나의 승리를 외쳐야 한다.”


비효율적 기간

 당신의 교회가 성장하고 더 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다가서도록 전환(a transition)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그 교회는 잠시동안 정체하거나 혹은 크기에서 약간 후퇴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환은 발전이 오기 전에 변화 과정으로 들어가는 쟁기질을 해야만하는 방책들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 노력은 수동 기어차에서 기어를 변속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더 높은 기어로 옮기기 원하는 매순간, 먼저 당신 안에 있는 기어의 접속을 풀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변화를 일으켜서 당신을 더 높은 수준 위에 참여시키기를 원하실 때, 당신은 종종 잠시동안 겁을 내거나 혼동스러울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들이 자기가 사용되곤 했던 그 방법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불면에 시달리거나 절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셀처치의 전략들은 당신에게 새롭기 때문에, 전환의 길은 성가시고 너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괜찮다. 내가 너를 승리의 길 위에 있는 다른 수준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어떤 것들을 풀어놓는 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십니다.


정서적인 피로

 전환과 변화의 유출은 우리 인간의 몸과 영혼 위에서 희생을 취합니다. 몇 년 전에 나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했을 만큼 지쳐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정서적인 피로를 겪고 있는 중이었음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고갈이라는 재앙과 직면합니다. 특별히 전환이라는 어렵고 도전적인 기간동안에는 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신선한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사야 40:31은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께서 그들의 힘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은퇴를 심사숙고할 그해에, 주님은 40일 금식을 하도록 나를 이끄셨습니다. 나는 이전에 일주일상 금식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40일 동안 나는 단단한 음식을 먹지 않고 오직 물과 쥬스만 마셨습니다. 나는 매일 일했습니다. 폴로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기다리는 기간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약진을 허락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내 인생을 새롭게 하심을 통해 나아왔습니다.


그 시간은 지금


 이 책의 독자들을 위한 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새롭게 하시고 강하게 하셔서 우리의 대장 사령관의 섬김 가운데 있는 당신의 자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이 우리 각자를 하나님의 군대의 전사와 하사관과 장교 그리고 장군이 되도록 훈련시키고 있음을 믿습니다. 전쟁이 하늘의 영토 안에 있는 우리 주위에 거세게 몰아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과 전략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적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보려는 새 비전이며, 전례 없는 숫자로 그들을 회수하는 새로운 전략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고정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승리를 붙잡을 수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용기와 믿음가운데 앞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일어나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교회를 받을만하도록 말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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