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능력있는교회 (계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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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능력있는교회(계3:7-13)
엄청나게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큰 일을 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능력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능력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쓰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외견상으로는 그다지 능력 있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교회가 능력 있다고 하면, 흔히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요.
예를 들면, 교회 안에 재벌이 몇 명 있다든지, 고위 관리가 누구누구 출석하고 있다든지, 저명인사가 많다든지, 하는 것들로 그 교회의 실력을 평가하기 쉬운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겉으로는 그런 조건들을 찾기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큰 일을 해낸 교회였습니다.
본문 3:8을 읽어보시겠습니다.(시작)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여기서 말하는 “작은 능력”은, “눈에 뜨이지 않는 능력”, “잘 보이지 않는 능력”, “드러나지 않는 능력”을 의미합니다.하지만, 진짜 강하고 큰 능력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능력이지요.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졌던 능력은 드러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잠재된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능력으로 두 가지 역사를 해냈습니다.
첫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어떻게 해요? ‘지키며...’라고 되어있지요. 여기서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말씀대로 살고, 실천했다는 것이지요. 은혜나 축복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국가도 지키지 못하면 넘어지고, 재산도 지키지 못하면 없어지고, 명예도 지키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그리고 신앙도 지키지 못하면 깨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가능합니다.
시편 119:44을 보면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이 한 구절 고백 속에서 강력한 신앙과 실천의 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되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겠다는 것은 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영원히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즐겁든지, 괴롭든지, 잘살든지, 못살든지,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주의 말씀만은 지키며, 살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손으로 두 개의 무엇인가를 잡고 하루하루를 살 아간데요. 한쪽은 ‘두려움’이라는 것을 붙잡고 있고, 다른 한쪽은 ‘믿음’이라는 것을 붙잡고 살아간대요. 그런데 신앙은 비록 두려움과 떨림은 있지만, 믿음을 붙잡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왜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리면,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길 잃은 나그네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두운 세상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등불이요 빛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생길을 걷는 것은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부딪쳐 큰 사고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며,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둘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두 가지 면에서 시련받는 교회였어요. 하나는 유대인들의 시기와 중상과 모략과 박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신앙의 시험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는 안팎으로 시련의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통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주님 곁을 떠나다가 결국에는 아주 주님을 떠나 버리고 맙니다.
추운 겨울날, 불 곁을 떠날수록 점점 더 추워지게 되는 것처럼, 주님을 떠나면 떠날수록 우리 삶속에는 절망과 좌절이 다가오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안과 밖에서 그 어떤 바람이 불고 유혹이 몰아쳐 와도 절대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33년 생애 동안 주님이 가장 마음 아파했던 사건은 아마도 십자가의 고통보다 가룟 유다의 배신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가룟 유다는 두 개의 가면을 쓴 채 주님 곁으로 다가오면서 “랍비여 평안하십니까?”라고 거짓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지요? “차라리 너는 태어나지 아니했더라면 좋을 뻔하였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배반한다는 것은 등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내가 빛을 향하여 바라보고 서 있으면, 내 얼굴에 빛이 쏟아져서 내 얼굴이 밝게 빛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빛을 등지면 내 얼굴은 어두운 그늘이 드러나게 됩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내가 주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등지면 내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삶속에 슬픔과 절망의 그늘이 드리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빛이신 주님을 똑바로 바라보고, 돌렸던 등과 얼굴을 주님께로 향한다면 그 순간 내 얼굴은 다시 밝고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주님을 향해 등 돌리고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큰 교회, 작은 교회 상관없어요. 어쩌면 예수님이 가롯유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차라리 너는 태어나지 아니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씀 하실 수 있는 교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워가는, 교회는‘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빛을 향해 등 돌리지 아니하고, 그 빛의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의 어두움 부분들이 치유되며, 날마다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가 만들어가는 교회는, 언제나 주님이 주인공이 되는 교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예배에 주인공도 예수님이요. 교회의 모든 행사도 예수님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 중심태도는 어떻습니까? 주님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이벤트를 보러 올 때가 더 많은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예배는 사람이나, 어떤 특별한 이벤트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주님을 만나고, 그분께 내 마음과 헌신과 영광의 찬양을 드리러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함없이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아니 꼭 만들어 가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안팎의 시련의 파고가 심해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지만 강한 능력 있는 교회이고,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여기 “능력”이란 말은 원어로 “두나미스” 곧, “폭발하는 능력”이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폭탄은 제아무리 커도 폭발하지 않으면 하나의 쇠붙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폭발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폭발하기 전에는 작은 능력이지만 그것이 일단 폭발하게 되면 땅이 파이고, 건물이 날아가는 강하고 큰 능력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강한 교회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의 말씀 늘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그분을 배반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성과 인격, 능력, 사명감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을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충만할 때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서 이 시대에 책임을 능히 감당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 나에게 주시는 성령 충만을 항상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중에 임하는 성령 충만이 분명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받은 것처럼, 우리가 섬기는 교회들이 모두 하나님께 칭찬받는 그런 교회 만들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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