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나와 (계18:1-24)
본문
거기서 나와(계18:1-24절)
1. 마지막이 좋아야
어떤 좋은님의 글입니다.
자주 다니던 목욕탕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문을 닫기 직전에 평소처럼 목욕탕에 갔습니다. 목욕탕 입구에서 표를 받는 아주머니가 “오늘까지만 영업해요”합니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는데 때를 밀고 청소도 하는 아저씨가 정성껏 거울을 닦고 바닥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아저씨! 오전까지만 영업하고 문 닫는다는데, 뭐 그리 열심히 닦아요? 손님도 없는데요?” 그러자 아저씨가 말합니다.
“문을 닫는 것 주인이고,, 나는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야지요.”
“다른 분들은요?”
“곧 문을 닫는데 끝까지 근무하면 뭐하냐고 며칠 전에 일자리 알아보고 떠났어요. 그런데 나는 마무리를 제대로 안 하면 맘이 편치 않아서요. 묻 닫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달 전에 건물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묵묵히 마지막 날까지 청소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과거에 충성하고 아무리 과거에 별별 특별한 은사를 받고 했어도 마지막에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영웅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을 본 받으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시작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의 우리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변함없는 믿음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지속해 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바벨론의 의미
우리는 16장과 17장을 통해서 바벨이라는 말의 뿌리와 그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의미하는 바를 잘 살펴보았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바벨은 세상정신의 뿌리입니다. 그 정신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에게서 시작되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노략질 하는 주된 정신이 바로 바벨정신인 것입니다. 이 바벨이 유다를 멸망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구체화된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라는 이름을 함께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된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고 자고하는 바벨론은 그때부터 세상정신을 포함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의미를 담게 됩니다. 이 바벨정신은 요한계시록에 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총칭하는 의미로 발전됩니다. 그래서 음녀 바벨론은 세상정신을 포함한 세 짐승, 즉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포함합니다. 즉 세상정신의 배후에 존재하는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을 포함하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녀 바벨론은 영적인 세력들을 포함한 모든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지칭합니다. 이 음녀가 권력과 손잡을 때 시대를 달리하면서 바벨론, 메대와 파사,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로마가 음녀가 아닙니다. 그는 그 시대에 사용된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음녀 바벨론의 멸망이라는 말이 로마의 멸망으로 와 닿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로마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음녀 바벨론의 멸망이라는 주제는 세상정신의 종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론적인 이 부분은 개괄적으로 바벨론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입은 권세 있는 한 천사가 힘센 음성으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고 외쳤습니다(1-2절). 여기서 주의해서 보실 것은 바벨론이 이미 무너진 것처럼 과거형으로 선언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멸망 선언은 바벨론 멸망을 선언한 이사야 예언을 반영한 선언입니다(사12:20-22).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것은 바벨론이 완전히 멸망하여 황폐화된다는 표현입니다. 폐허의 참상을 표현하는데 주안점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2-3절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개괄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는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바벨정신은 땅의 왕들과 땅의 상고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벨정신이 땅의 권력들과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인간들이 교만할 수 있는 근간입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국제적인 판도를 쥐고 있었던 로마를 생각해 보십시오. 땅의 왕들이 바벨정신의 노예가 되어 교만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상고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미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매매를 연결시켜 설명 했던 13:17절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님이 주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실 때 그 맘몬이 바로 돈, 즉 경제라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이 교만할 수 있는 근간이 되는 것은 권력과 돈이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움직이는 것들은 바로 권력과 돈입니다. 이것을 무기로 바벨정신은 그 세력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잔을 만국들로 마시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땅,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에 바벨정신을 충만하게 한 것이 바로 음녀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런 바벨정신이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4절부터는 이런 바벨론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장의 요절은 4절과 20절입니다. 바벨론, 세상정신은 결국 이런 종말, 이런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니 거기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자, 그럼 먼저 바벨론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보겠습니다.
3. 바벨 정신을 심판하심
우선 7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음녀 바벨론이 마음으로 했던 말입니다.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즉 바벨정신의 지배를 받는 당의 왕들과 땅의 상인들의 생각이며 음녀 바벨론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이 영원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함으로 꾸몄던 그 삶이 영원할 것이라는 음녀 바벨론의 착각은 산산이 부서진 꿈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음녀 바벨론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의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이 음녀 바벨론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불의한 일, 즉 하늘에 사무치는 그들의 죄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 이것이 바벨론이 종래 심판을 당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갚아주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요? 다시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그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 8절에는 하루 동안, 10절 한 시간에, 17절에 한 시간에, 19절에 한 시간에 그럽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믿고 신뢰했던 권력과 부와 마천루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에 그들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없어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하루나 한 시간은 모두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무엇입니까? 세상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들의 신앙으로 삼았던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 때가 되었을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불과 한 시간에 없어져 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믿을 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가치가 아닙니다. 세상정신이 그동안 속여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바벨정신에 심취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그들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 시간에 없어지는 심판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시간에 없어져 버릴 것에 인생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가치에 인생을 거십시오. 우리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리는 비극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올바른 것에 투자해야 합니다. 만국, 땅의 왕들, 상고들이 추구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견고한 성입니다. 한 시간에 멸망해 없어질 것입니다.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도 한 시간에 없어질 것입니다. 보배로운 상품도 한 시간에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견고한 성으로 상징되는 업적 중심의 사고방식, 또 각종 화려한 옷들과 보석과 진주로 상징되는 이 땅에서 누리는 화려한 외모, 부와 존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한 시간에 없어져 버릴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투자할 것에 투자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 시간에 없어질 것에 인생을 걸지 마십시오.
두 번째 주목해서 보아야 할 표현은 화있도다, 화있도다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회한과 후회로 얼룩진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의지하고 따랐던 것들이 한 시간에 없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이 그룹들은 앞서 서론에 등장했던 그룹들입니다. 첫 번째 후회로 땅을 치는 그룹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첫 번째 그룹입니다. 후회로 가슴을 치는 무리들은 땅의 왕들 그룹입니다. 이 사람들은 권력으로 신을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세상 통치자들이 바벨 정신과 함께 음행하고 사치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권력의 상징으로 세운 큰 성 바벨론이 불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겠습니다만 땅의 정신에 충만한 사람들이 엄청난 권력과 부를 자랑하면서 세운 권력의 상징으로서는 건물들이 다 불타는 것입니다. 그들의 권력의 원천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게 심판입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이 말은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로마도 영원하지 않고 세상의 그 어떤 권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후회로 땅을 치면서 화있도다, 화있도다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땅을 치는 그룹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상인들 그룹입니다. 권력이 아니라 돈을 숭배했던 사람들입니다. 11-16절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상인들이 애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건을 사는 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부가 한 시간에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2-13절에는 그들이 거래한 품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람이라도 돈만 된다면 매매가 가능한 것이 바벨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 대가로 이들은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살았습니다. 온갖 맛있는 과일들을 먹고 부를 탐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가 한 시간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믿고 따랐던 짐승의 윤리, 그것이 그들에게 쾌락과 부와 사치와 향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 때가 되자 한 시간에 없어질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치면서 화있도다, 화있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하늘 창고에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창고에 쌓는 것이 후회와 회한을 남기지 않는 비결입니다.
세 번째 그룹은 선주들입니다. 17-20절에 그들의 애통하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교역 품이 먼 땅에서 온 배를 통해 수송 되었고 상인들이 상품에 의존하여 부자가 되었듯이 배를 운항하는 자들도 수송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심판으로 멸망하게 되자 티끌을 머리에 뿌리며 울며 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멀리서서 그들의 물건들이 불타는 것들을 보면서 후회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데 화있도다, 화있도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 그룹은 무엇입니까? 바벨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정신이라면 권력을 숭배했던 사람들, 돈을 사랑하고 숭배했던 상인들과 선주들의 슬픈 노래는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세상정신의 종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큰 맷돌을 바다에 던지듯이(21-24절)
자,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결정적인 구절은 21-24절까지입니다. 이 단락의 반복되는 단어는 “다시 네 안에서”입니다. 더 이상 풍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세공업자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며, 맷돌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며, 등불 빛이 비치지 않을 것이며, 신랑, 신부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힘센 천사가 바벨론을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서 던지듯이 바다에 던져 버려서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맷돌의 크기는 약 450Kg 정도로 추산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원한 바벨정신의 종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최종적인 멸망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음녀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문맥에서 실제로 언급되는 내용들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돈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대한 내용이 전체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이 만들어낸 문화 가운데 쾌락을 즐기는 풍류소리, 세공업자들, 맷돌소리 등등은 전부가 세상에 누릴 수 있는 부와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암시적인 메시지는 바벨론이란 이 땅에 만연된 욕망의 문제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들이 추구했던 욕망과 흡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면 그런 종류의 쾌락과 즐거움이 완전히 바다에 가라앉은 맷돌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정신의 소멸입니다. 사탄은 늘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숨 쉬며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무슨 유형화된 귀신이나 박해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훨씬 치명적인 것들이 세상정신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고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계시록 18장에서 세상의 권력자들, 상인들이 선주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쫓는 것이 바로 사탄의 하수인이 되는 길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와 사데 교회 같은 교회들입니다. 이들 교회는 전부 크고 잘 사는 사람들의 교회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죽은 시체와 같은 교회였고, 토하여 내쳐야 하는 구토 나는 교회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이들이 바벨정신과 혼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실체로서의 음녀 바벨론도 중요하지만 사실 17장과 18장을 보면 그음녀가 하는 일이 세속화 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그런 바벨정신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판을 당해서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옳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
이것은 4절과 20절을 보면 확실해 집니다. 4절입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게 핵심입니다. 교회에게 세속화의 유혹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권력과 돈에 대한 유혹입니다. 세상을 따라가고 싶은 유혹입니다. 거기서 나오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저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권력과 돈에 대한 유혹은 그 안에 엄청난 세상만이 줄 수 있는 쾌락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2절 말씀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이루어 놓은 거대한 도시가 짐승의 소굴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수고해서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폐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바벨정신의 포로가 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만족과 유익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원래 이 편지는 교회에게 주는 편지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우상숭배와 음란과 각종 범죄들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바벨정신으로 상징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탄의 세력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함께 광야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결국 이 전쟁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20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음녀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너희를 위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아마 세상정신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먼저 순교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고난당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위하여 바벨론은 영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권력을 가지고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영적인 실체로서의 바벨론도 언급하지만 그 악한 영들과 연합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세상 정신에 더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짐승에 의해서 지배받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가치와 권력과 경제 구조가 성도들에게 가장 치열한 싸움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세상의 모든 부와 가치가 한 시간에 없어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그 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벨론 심판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교회에게 주시는 음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세속적인 가치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교회를 변질시키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