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심 (신1:30-33)
본문
안아주심 /신명기 1장 30~33절
우리는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미래를 안다면 좀 더 잘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작년 초만 하더라도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이렇게 온 국민이, 또 온 세계가 고통을 당할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저희 장인어른이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할지 저희 가족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겠지요. 이렇게 우리는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광야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을 흔히 광야에 빗대어 말하지요. 광야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광야를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우리의 앞길을 환히 알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무지하고 연약한 인간에 비해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지 결코 비굴한 것이 아닙니다. 지음 받은 존재가 지으신 분을 의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오히려 사람이 스스로 강하다 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교만이요, 어리석은 것입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몇 가지로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30절에 보면,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대적과 싸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에게는 자녀를 보호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녀가 어려운 일을 만나고 위험한 가운데 있는데도 자녀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같은 반에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쎈 친구가 있었는데, 가끔씩 저를 괴롭힐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함께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데 논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높은 논두렁 위로 걸어갔고 저는 논두렁 아래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꾸만 제게 돌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걸어가면서 계속 돌을 던졌고, 저는 그때마다 그 친구가 던지는 돌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저의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저를 데리러 오시다가 그 장면을 보셨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어떻게 했을까요?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그 친구의 뺨을 힘대로 때리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오토바이에 태워서 안전하게 귀가를 시키셨습니다.
저는 그때 그 친구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 제가 돌에 맞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그 친구는 교회를 안 다니는데 그 친구가 나를 괴롭힌다고 해서 아버지가 그 친구의 뺨을 때리면 앞으로 그 친구가 교회에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때 저는 아버지의 보호 본능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라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내 아들이 돌에 맞을 수 있는 상황인데 그냥 넘어가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도 보호 본능이 있습니다. 자녀 된 우리들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고자 하는 본능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대적들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아말렉과 하나님이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선포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갈 길 다가도록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그들을 출애굽 하도록 역사하신 것과 같이 이제 광야에서도,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그들을 위해 싸우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하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를 위해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을 넘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크고 작은 일들마다 하나님이 간섭하고 역사하시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더 큰 문제들이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과거에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 하나님이 그 큰 어려움들도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가 되어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과 위기를 만났습니까?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 삶 속에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싸우시고 애굽의 군대와 싸워주신 것처럼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대적들과 싸워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오늘도 우리 앞에 놓인 험한 산을 여유롭게 넘어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를 안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여기 ‘안다’고 번역된 단어의 원래 뜻은 ‘들다, 옮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들어서 옮긴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안다’라고 번역한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처럼 하나님도 너희 이스라엘을 안아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고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광야 여정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안아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참 은혜롭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안아주셨습니다. 그들을 품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안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안아서 40년 동안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자기들이 힘들게 광야 길을 걸은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두 발이 땅을 밟아서 이동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광야에 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과 동행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안으시고 동행하셨습니다. 혹시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장면을 보면서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입니다. 이스라엘을 안으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도 안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아주시는 따뜻한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쯤 들어보셨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어렵고 힘든 때에 우리 눈으로 보면 나 홀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업고 가십니다. 지금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나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지 않고 멀리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이 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거나 안 계신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등에 업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안고 인도하십니다.
셋째,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33절을 볼까요?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보다 먼저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명령만 내리시고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안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다 알아서 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만 60만 명이고 모두 200만 정도로 계산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장막을 치고 거주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의 지도자이긴 하지만 이 큰 무리가 어디서 장막을 치고 어디서 물을 마셔야 하는지 모세 혼자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가만히 계셔서 모세 혼자 백성의 짐을 다 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먼저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고 이스라엘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길로 가면 편히 갈 수 있는지 미리 사전 답사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장막 칠 곳을 찾으셨습니다. 200만 명이나 되는 무리가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진영을 이루어 장막을 치고 거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들을 하나님이 앞서 가셔서 찾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을 쳐서 진을 형성한 것은 총 40번입니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장소를 옮겨 장막을 친 셈입니다. 하나님은 40번이나 그들이 장막을 칠만한 넓은 평지를 찾으셨습니다.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40년 동안 40번이나 장막 칠 곳을 찾아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한 곳에 머물고 있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에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장막을 칠 때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형성했습니다. 가운데에 성막을 먼저 세우고 성막 주위로 레위인들이 장막 사방에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 동서남북으로 유다 진영, 에브라임 진영, 르우벤 진영, 단 진영이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성막 위로 구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구름이 머물러 있으면 한 장소에 머물러 있으라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그러다가 구름이 성막 위로 떠오르면 이제 장막을 걷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라고 하는 신호였습니다. 이 구름은 낮에 볼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구름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불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로 그들이 갈 길을 지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낮에는 이 구름기둥이 그늘을 형성하여 시원하게 해주고, 밤에는 불기둥이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오늘 동일하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이제는 네가 다 알아서 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이스라엘보다 먼저 가셔서 장막 칠 곳을 찾으신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가셔서 우리의 길을 만드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내 모든 필요한 것을 예비하실 여호와 이레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싸우십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우리를 안아서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길을 만드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날마다 경험하고 누리시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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