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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주신대로 크게 감사하라 (신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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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주신대로 크게 감사하라 (신명기 16장 9-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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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서는 보리를 거둘 시기에는 ‘맥추(麥秋) 감사절로, 쌀을 수확하는 시기에는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절기, 혹은 기독교 역사의 감사의 전통들이 우리나라 특유의 농경문화와 융화된 토착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추절에는 꼭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맥추절은 구약시대의 절기인데 이 시대에도 꼭 지켜야 합니까?”, “추수 감사절은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서 지키던 문화인데 우리가 꼭 따라가야 합니까?”, “사라져 버린 절기, 외국의 문화를 무턱대고 답습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심지어는, “우리는 구약절기까지 제대로 지키라고 하면서, 유월절 절기들을 열심히 지키는 이단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질문합니다. 이해가 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끝이 없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입각해 본다면, 감사절기가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하겠죠. 이단들이야 자신들의 특정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절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이니 대꾸할 가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하는 분들에게, “그럼 여러분은 범사에, 매일 같이 감사하시며 살고 계십니까?”, “앞으로 교회에서는 따로 감사 절기를 하지 않겠으니, 감사절기의 의미에 맞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실 자신이 있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답변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셔서, 맥추절, 추수감사절, 일 년에 두 번이나 감사할 수 있는 날짜를 정해 주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고, 평소에 못했던 감사생활을 이날만큼이라도 몰아서 감사드릴 수 있음에 더욱 더 감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3대 절기, 혹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라고 하면,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을 말합니다. 유월절(1월 14일, 이후 7일간은 무교절)은 출애굽 당시 장자를 죽인 재앙이 있던 밤에 어린양의 피가 문에 발라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넘어가서(히, 페사흐, pass over)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草幕節, 7월 15일부터 8일간)은 광야에서 초막(풀이나 나뭇가지로 지은 움막)를 치고 지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장막절(帳幕節, 임시거처의 장막, The Feast of Tabernacles)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 곳간에 저장한다는 의미로 ‘수장절(收藏節)’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마지막 절기가 맥추절(麥秋節)인데, 이 절기는 보리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로, 유월절로부터 7주(49일)가 지난 그 다음날에 지켜지는 절기라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오시기까지의 기간이 7주(50일)였기 때문에, 이 절기의 이름을 ‘오순절’, 혹은 ‘성령 강림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의 절기인데 같은 이름이 많아서 헛갈리실 가봐 한 번 더 말씀 드리면, 초막절=장막절=수장절은 같은 절기이고, 맥추절=칠칠절=오순절도 같은 절기입니다. 성경 많이 읽으시다보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맥추절’ 이라는 절기의 이름은 한국문화에 맞게 번역해 놓은 것이며, 실제 어원을 직역하면, “첫 열매의 절기”입니다. 보리와 밀 같은 곡식이 주 식량이었던 당시의 시대에서 처음 맺은 곡식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매우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모든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복의 근원(유일한 신, 전능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가장 처음 것으로 제사(예배, 영광)드리는 신앙인의 기본 삶의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주셨으면 감사하고, 감사했으면 다시 주실 것을 믿고 생활해 나가는 것, 이를 확인하고 예배하는 것이 감사절기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농사의 첫 열매가 아니어도 감사 생활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역자들 중에 처음 사역지에서 처음 사례비를, 신앙인들 중에, 처음 직장에서 처음 월급을, 사업자들 중에서 하루 처음 매출 금액들을 모아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대상황에 맞는 변형된 ‘첫 열매’의 감사생활입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은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데, 처음 손님에게서 받은 매출액 전액을 돈 통에 넣어 두지 않고, 자리 밑 의자에 깊숙이 넣고 깔고 앉아서 장사를 하셨습니다. 처음 손님이 많은 물건을 사 가셔도 액수에 상관없이 돈을 모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처음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수 십 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렇게 하셨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절기를 구약시대에만 지켜야 하느냐, 신약 시대에는 폐지해야 하느냐의 논쟁은 사실 소모적인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아마도 “첫 열매의 절기”라는 맥추절의 어원도 아시지도 못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성경지식으로 논쟁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감사의 생활을 잘 하고 계시고, 첫 열매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셨습니다. 문자적인 해석보다는 실제적인 감사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취할 자세입니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올 후반기에도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을 믿고 인도함을 구하는 예배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맥추 절기를 지키라는 신명기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감사생활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10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아멘.


 


출애굽기 23장에서도 3대 절기에 관하여 말씀 하실 때,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23:17),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23:15) 라고 했습니다. 절기 때에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의무규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악 성경에서는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라면 굉장한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것을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태도가 진정한 감사의 자세입니다.


 


“네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을 잘 보시면, 강요하거나 부담감을 주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물(헌금)을 드리는 태도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합니다. ①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감동 주시는 대로) 할 것(고후 9:7), ② 인색하거나 억지(의무감, 부담감)로 하지 말 것(고후 9:7), ③ 즐겨(기쁜 마음으로) 낼 것을 말하며, 이렇게 예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처럼(막 12:41-44), 예물의 가치는 드리는 사람의 정성어린 마음의 무게만큼 커집니다. 하나님은 예물의 많고 적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자의 마음을 달아 보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물이, 보험이나 적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의 체면을 살려주는 증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과시용으로, 목소리 크게 내기 위해 쌓아놓는 수단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예물 드리는 일이 의무가 아닌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땀 흘림과 수고를 통한 정당하고, 합법적인 소득 안에서 드려야 합니다. 무언가을 바라는 조건을 내걸지 말고, 그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쓰여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드리면 됩니다. 맥추절을 맞이하여 각자의 예물 드리는 상황을 점검해 보시고, “복을 주신대로, 힘을 헤아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11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아멘.


 


절기를 드리는 장소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주시려고 택하신 곳”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2절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장소에서도 동일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절기라고 해서,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하나님은 아무 곳에나 오시지 않습니다. 택하신 곳에만 임재하십니다. “자기의 이름을 두신다”라는 뜻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찬양이 울려 퍼지는 장소를 한정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00교회 이 예배당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하여 계시는 장소 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해야하는데, 이 때 우리와 함께 하여야 하는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자녀들, 레위인(땅이 없다. 기업이 하나님), 객, 고아, 과부들입니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약자들입니다. 절기의 감사 정신은 내 자신의 안위를 얻는 것에 우선하여, 이와 같이 돌봐 주어야 하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시선을 두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초청하여 동참하게 하라는 겁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예배드리는 장소에 함께 하지 못한다면, 예배드린 후에라도 그들에게 찾아가서, 위로하고,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맡은 주역이 누구냐?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택하신 곳에서 예배를 드린 이 땅의 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이라는 겁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우리 이웃에게 시선과 마음을 주어야 하는 전달자,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 절기를 대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입니다.


 


고린도 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공동체 내에 될 수 있는 대로 예물을 많이 내라, 내 자신을 위해 예물을 많이 쌓으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예물을 많이 내게 하는 압박을 위해 이 말씀이 악용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은, 가난한 성도와 이웃을 위한 연보(구제헌금)를 독려하는 상황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드리면 좋습니다. 열심을 내고, 분발하여 많은 예물을 아낌없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교회 중에 빌립보 교회는 넘치는 연보를 한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이러한 연보의 실적이, 순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고 칭찬하고, 기뻐했습니다.


 


우리 00교회는, 내적으로도 믿음이 성장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로 세워지는 것을 지향하지만, 외적으로도 실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필요를 적극적으로 채워주는 공동체가 되어가기를 소원합니다. 항상 우리 교회 예배당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택하신 곳,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임하는 장소가 되기를 최우선으로 바라며, 많은 소외된 이웃들이 이곳에 몰려와 함께 나누고, 교제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아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자신의 비참했던 과거를 잊어버리면 감사는 사라집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나를 생각할 줄 알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시절을 잊고 살아간다면, 자유롭게 밀과 보리를 거두는 맥추절을 감사의 절기로 지킬 수 없었을 겁니다. 항상 종이었다는 과거, 그 종의 족쇄를 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에 기반 하여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 제가 천안에 교육 받으러 간 월, 화요일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래도 교회 걱정을 안했습니다. 더 이상 물이 새지 않는 교회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예전의 교회를 잊는다면 감사가 사라지겠죠.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을 조금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지치고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조건을 만드시려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이 어려워지면, 세상 사람들은 술로, 유흥으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크리스천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습니까? 지금 나의 육체적인 상황, 정신적인 상황, 물질적인 상황은 감사의 조건을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적의 상황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크게 열어 주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12절 중간에, “기억하라”는 부분을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일까요? 신약성경일까요? 신약성경인 요한복음에서 성경을 언급 했으니 당연히 신약성경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연구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영생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시고, 구약성경은 자신인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책이라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과 역사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 쓰여 졌고, 성경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 한 분 이심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자 그러면, “기억하라”는 부분은 누구를 기억하라는 겁니까?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 곧 신약에서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입니다. 이 절기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의 주인공이 누구냐 라는 질문의 대답은 항상 예수님입니다. 절기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17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멘.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은 모두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실체가 나타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절기’라는 문자에 빠져 버리면, 아직도 그림자만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감사절에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껏 감사 하시되, 감사절의 실체 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을 빠트리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가 절기의 주인공이시며, 오직 감사의 주체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크게 입을 벌려 최대한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맥추감사절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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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맥추감사절에, 우리 모두가 크게 입을 열어, 복을 내려 주신 대로, 택하여 주신 이 곳에서,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 하시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며, 이웃을 섬기고 돌보는 복된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절의 주인공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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