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맛보았던 문화를 이겨내며 살아요 (출32:1-35)
본문
전에 맛보았던 문화를 이겨내며 살아요 /출애굽기32;1-35
PW : 믿음 BIW : 옛적의 문화를 깨뜨리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전에 살았던 문화를 깨뜨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새로운 문화를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자의 생일잔치
숲속 동물나라에서 동물의 왕 사자가 생일파티를 거나하게 열고 있습니다.
사자는 고기를 무척 좋아해서 파티에 오는 모든 동물들에게 선물로 고기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호랑이, 곰, 늑대, 표범, 여우 등등 모든 동물들이 고기를 선물로 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꽤돌이 원숭이는 고기를 구할 길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바나나 3개를 들고 옵니다.
사자는 원숭이가 가져온 바나나를 쳐다보고는 화가 나서 원숭이에게 힘껏 던져버립니다.
바나나를 2개째 던지는데 원숭이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합니다.
원숭이가 보니까 저 멀리서 토끼가 늙은 호박 3개를 낑낑거리면서 들고 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바나나 3개 가져와서 사자에게 맞았는데, 토끼는 늙은 호박을 가져와서 늙은 호박으로 맞을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 고소해서 웃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아주 좋아라 합니다.
너무너무 고소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박수치며 웃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 되는 것을 보면서 함께 좋아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극성인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지구촌을 힘들고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이 때에 우리들은 행복의 바이러스를 마구마구 퍼뜨려서 웃음꽃이 활짝 피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바이러스에 걸려서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P4.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40일 동안 독대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장치들인 성막과 성물들을 만들라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해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온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간 후에 여호수아는 모세가 내려올 때까지 40일 동안 산 중턱에서 지내면서 모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를 만나서 함께 백성들이 머물고 있는 진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한 소리를 들은 여호수아는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라고 하면서 이상한 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모세는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라고 하면서 백성들이 진 치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 백성들이 춤을 추며 발악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모세는 백성들이 춤을 추고 왁자지껄 소리치는 이유를 알고는 대노한다.
모세는 크게 분노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돌판을 던져서 깨뜨려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만다.
백성들은 왜 모세가 크게 분노하면서 십계명의 돌판까지도 깨뜨려버리도록 하는 일을 저지른 것일까?
모세는 아론과 나납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는 며칠이 지나도, 보름이 지나고, 몇십 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모세를 찾아서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가 볼 수도 없다.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모세의 생사 문제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경계선을 넘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셨기 때문에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가 볼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드론을 띄워서 찾아볼 수도 없는 일이고, 헬리콥터를 띄워서 산을 살살이 살피면서 찾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세가 죽어서 영영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만약에 모세가 죽었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들은 어떻게 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지?
만약에 모세가 죽었다면 우리를 인도할 지도자가 없지 않나?
지금까지는 모세의 인도로 여기까지 왔는데, 모세가 죽어서 없다면 우리들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없지 않나?
그러니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나?
뭔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지, 200여만 명이 넘는 우리 히브리민족이 이 광야에서 굶어 죽거나 방황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나?
지난번에 아말렉 족속들이 공격해왔던 것처럼 다른 민족들이 우리 민족을 공격해온다면 우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지 않겠나?
그러니 빨리 대책을 세워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신다는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야만 하지 않겠나?
무언가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을 이끌던 지도자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 식구 중에 누군가가 없어진다면, 행방불명이 되어 도무지 생사를 알 수 없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겠는가?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대책을 세우면서 지금 발생한 위기를 타개해 나가고 극복하려고 할까?
어쩌면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하지는 않을까?
2020년 작년에 코로나 19바이러스로 인해서 온 나라뿐만 아니라, 온 지구촌이 큰 위기에 몰렸을 때, 어떤 정신 나간 문화재청 수장이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경상도 무당과 전라도 무당을 서울에 불러서 굿을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는 모습이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모습이나 무엇이 다른가?
똑같은 모습이지 않나?
그 당시 국무총리라는 사람이나 여당 대표라는 사람은 소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문제로 풀려고 하지 않고 민속문화라는 미명으로 온갖 잡동산이 귀신들을 불러서 굿을 하면 바이러스 액운이 물러간다고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런 추잡한 행위를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몰려가서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하면서 모세를 대신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아우성이다.
그러자 아론은 백성들에게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서 내게로 가져오라.”라고 요구한다.
백성들은 아론이 요구하는 대로 금을 모아서 가져온다.
아론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백성들의 요구대로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라고 하면서 돌로 제단을 쌓고는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라고 하면서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대신하여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백성들에게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면서 발광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애굽에는 많은 종류의 신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다른 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론이 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많다.
백성들은 아론에게 금으로 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내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론이 독단적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아론은 애굽에서 살 때에 금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했던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애굽에서 살 때, 금을 제련하는 기술을 습득하지 않았다면 금으로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론은 금으로 무언가를 만들 줄 아는 기능공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무언가라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면서 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선뜻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금방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다른 짐승들도 많은데 아론에게 하필이면 왜 송아지를 만들어내라고 요구한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애굽에는 개구리, 부엉이와 같은 각종 들짐승들과 황소와 암소를 신상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민족이다.
특히 아피스(Apis)라는 황소의 신과 하토르(Hathor)라는 암소 신를 섬기는 민족이다.
소는 모든 가축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가축에는 소를 비롯하여 말, 나귀, 양, 염소 등등 많이 있지만, 소를 가축의 대명사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황소라는 아피스 신과 하토르라고 하는 암소 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토르라는 암소 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피스라는 수소 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토르가 아니라 아피스 신을 만들게 된 근본 원인에는 바로 시내 광야까지 이동하여 모세가 모든 백성들, 특히 청년들을 참여시켜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수소들을 제물로 삼아서 제사를 드렸던 적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금으로 수소를 만들어서 자신들을 이끌어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수소들을 제물로 삼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피스라는 신이야말로 신들 중에 최고의 신으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생각으로 꾸민다면 12지신이 있지만, 12지신 중에 최고의 신은 용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12지신에는 용만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쥐, 소, 돼지, 닭, 말, 원숭이, 등등 다른 짐승들은 실존하는 짐승들이다.
그런데도 용은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기 때문에 12지신 중에 최고의 신으로 용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왕을 대신하는 말로 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전에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나 ‘육룡의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왕이 앉아 있는 자리를 왕좌라고 부르지 않고 용상(龍床)이라고 부르고, 왕이 입는 옷을 왕복이라도 부르지 않고, 곤용포(袞龍袍)라고 부르고, 왕의 얼굴을 용안(龍顏)이라고 부른다.
그런 것처럼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잡다한 신들이 많았지만, 수소는 신들 중에 최고의 신이라고 인정하면서 금으로 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서 최고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인도의 흰두교에서 소를 최고의 신으로 신성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도의 흰두교에서는 수소보다는 암소, 곧 아피스신보다는 하토르신을 더 숭상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실까?
D4.
① 진노하시는 하나님.
시내산에서 마지막으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실 말씀을 다 하신 후에 하나님은 7-8절에서 모세에게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9-10절에서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직접 이끌어 낸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하게 진멸시켜버리겠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세는 급하게 11-1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애원하면서 탄원한다.
모세의 애절한 탄원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서 백성들을 진멸하는 징계를 철회하신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에는 진노하시는 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으로 수소 형상만 만들지 않았어도, 그 수소 형상을 만들면서 “이 송아지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이로다.”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진노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십계명의 말씀을 통해서 “나 여호와를 위하여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라고 말씀하셨건만, 버젓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놓고는 ‘이것이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든 하나님의 형상이든, 예수님의 형상이든, 성령님의 형상이든, 천사의 형상이든, 위인의 형상이든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셨는데도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각종 신상들을 만들어 추앙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로마 카토릭교회의 마리아상이든, 예수상이든, 브라질 리우에 세워놓은 커다란 예수상이든 이 모든 신상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나 예수상이나 마리아상이나 브라질 리우에 세운 커다란 예수상이나 불교법당에 대형 불상을 세워놓은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하나도 다르지 않다. 형태만 다를 뿐 똑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죄악을 보시면서 진노하시는 것이다.
②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0절에서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세가 급하게 11-13절에서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탄원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한다.
모세의 애절한 탄원을 들으신 하나님은 14절에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찮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낸 너희의 하나님이로다.”라고 금송아지를 추앙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너무나 기가 막히는 것이다.
‘신 중에 신이요 창조주 하나님이신 나를 금송아지에 비유하다니, 나를 기껏 아피스 신에 비유를 한단 말인가?’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참사를 당한 꼴이 되는 것이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백성들을 더 이상 이끌고 가야 할 명분이 없다고 하나님은 판단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기로 작정하시는 것이다.
애굽에 10재앙을 내리면서 애굽의 각종 잡동산이 신들을 징계하고 심판했는데, 이제 와서 내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가 심판한 그 신을 자신들의 신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떠벌리고 있으니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워나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완벽하게 진멸하시겠다고 결단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친구인 모세가 애절하게 탄원서를 올리며 애걸복걸 애원하자, 모세의 탄원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려던 계획과 뜻을 돌이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친구의 탄원에 무한히 약해지셔서 결단을 바꾸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의 애절한 탄식과 간구에 귀 기울여 주시면서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는 분이다.
신앙인들은 정말로 저주하는 대상은 없어야 하지만, 정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몇몇을 보면서 탄식 아닌 저주가 나올 때도 많다.
누군가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죄의 굴레에 빠져서 허덕이는 사람을 보면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저절로 탄식하며 저주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감정을 느끼고 표출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저주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가급적이면 저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창세기 12:3에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아브람에게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축복하는 자라면 아브람도 그를 축복할 것이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라면 아브람도 그를 저주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신앙인이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고, 신앙인이 진심으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책임져 주시면서 축복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의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이 그 집에 들어가면서 빌어준 그 평안이 그 댁이 합당하면 그 댁에 평안이 찾아와 임재할 것이고, 그 댁이 그 평안을 누릴 자격이 없으면 그 평안을 빈 당사자에게 돌아온다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③ 죄에 합당한 징계를 내리시는 하나님.
모세는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어 가루를 만들어서 물에 뿌린다.
백성들에게 그 물을 마시도록 한다.
모세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각기 칼을 차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라고 한다.
약 3,000여 명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대참사가 발생하고 만다.
3,000여 백성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라고 요청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소극적으로 다른 백성들의 요구에 동참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금송아지를 만들면 안 된다고 반대한 이들도 포함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든, 수수방관하며 참여하지 않았든, 반대했든 간에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하여 3000여 명의 귀한 생명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심판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33-34절에서 모세에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35절에서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한 죄, 성령을 훼방시킨 죄, 우상숭배의 죄악에 따라서 징계하시는 분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신다.
죽음, 사망으로 끌어가는 죄악을 한꺼번에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쳐 주시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신다.
L4 & B4.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사이에 모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라고 하면서 금으로 수소를 만들어낸 것은 이들이 애굽에서 살 때, 아피스 신과 하토르 신을 보면서 살았던 애굽의 문화 때문이다.
더더구나 시내 광야에서 제단을 쌓고 수소들로 제물을 삼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소로 금신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발광하면서 축제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 전통, 관습, 습득이 되어진 문화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 문화가 전통이나 관습이나 습관이나 민속문화라는 이름으로 붙여지면서 그 민족이 살아가려고 하면 그 문화의 틀 속에서 살아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대대로 무속신앙인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에 의해서 형성된 우상숭배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민족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주팔자를 본다거나 관상을 본다거나 길일을 찾는다거나 12지신의 띠를 거론하는 것들이다.
심지어는 자식을 낳아서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서 묘터를 찾는 것에도, 집터를 세우는 것에도 이 문화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문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문화를 교회 안으로까지 끌고 오려고 한다.
우리는 좀 더 크고 깊고 넓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 송아지에게 제사를 지내고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사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3,000여 명의 귀한 생명을 잃은 사건을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가?
우리들 자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 금송아지에게 온갖 제물을 바치면서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사자는 아닐까?
사실은 목사인 나도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저도 한민족으로 태어나 한민족의 문화 속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민족이 지닌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들 내면의 세계와 문화 속에 깊게깊게 파묻혀 있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의 우상문화, 더 나아가 사탄의 문화에 맞서서 피 터지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거듭거듭 세워지는 고통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습득이 된 문화, 전통, 습관, 관습, 의식구조, 세계관, 인생관, 신앙관을 훌훌 털어내고 거룩한 하나님의 문화로 탈바꿈시키시려고 3,000여 명의 생명까지도 서슴지 않고 거두어 가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에서도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살았던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에 물들이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단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쫓아내라고 말씀하신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온갖 주상들, 목상들을 미련없이 파괴하라고 수도 없이 반복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하늘의 신령한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추구하는 거룩한 문화를 지닌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았던 문화의 테두리를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면서 새로운 예수님의 문화를 세워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 중심으로, 우리 가정 중심으로, 우리 교회 중심으로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바꿔 가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예수님의 문화로 바꾸어가다 보면 어느새 놀라운 변화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한 주간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내는 삶, 문화를 개혁하고 바꾸어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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