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후의 감사 (합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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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후의 감사 (합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이 시간에 “전천후의 감사”라는 제목입니다. 전천후(全天候)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떠한 상황에도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바벨론의 위협 가운데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정국이었습니다. 바벨론은 B.C. 612년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605년 애굽마저 격퇴한 당시 최대의 강대국입니다. 이 바벨론이 이제는 애굽 편에 선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전체도 작은데 그 중에서 두 지파밖에 안 되는 조그만 유다가 대항할 힘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유다의 계승되는 왕들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자꾸만 유다가 당할 비극을 가르쳐 주시는데 아무리 외쳐도 미쳤다면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두가 안보불감증에 걸려 뭐 잘되겠지 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런 풍전등화와 같은 유다의 운명 앞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엘리사와 같이 나라의 방패가 되기로 결심하고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하박국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그의 절망과 애통은 감사와 찬송으로 변합니다. 그냥 감사가 아닙니다. 그냥 찬송이 아닙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뜨겁고 힘찬 감사와 찬송이었습니다.
시기오놋이란 ‘경이로운 곡조, 훌륭한 악보’라는 뜻을 가진 음악용어로,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는 음악의 한 장르(유형)으로 즐겁고 기쁨이 넘칠 때 부르는 곡조입니다. 19절에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라 했듯 이 찬양은 기도임과 동시에 모두가 함께 부를 찬양곡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떻게 함께 전천후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곧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그는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힘이 나고 찬송이 나옵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면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선한 왕 요시아가 죽고 여호아하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 애굽 왕 바로느고에게 폐위 당하고 동생 엘리야김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김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은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을 들어서 징계하고 하나님의 전을 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교만만 잔뜩 가지고 우상숭배와 형식적 예배 등을 통해 하나님을 패역했습니다.
이 백성들이 왕을 중심으로 패역해만 가니 그들을 바라보면 낙심만 나옵니다. 어려우면 믿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왕과 백성들에게는 믿음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부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부흥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는 그런 부흥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밖의 바벨론을 통해서라도 어떤 방법으로라도 부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실재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잡혀가서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영적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지 못한 결과라는 뉘우침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베끼고 연구하여 주석을 만들고 매 주마다 강가에 모여 예배하며 기도했습니다. 곳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고국에 돌아갈 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을 때 회개하고 부르짖고 기도해야 하지만, 그것조차 따르지 않는다면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 하시든 가장 좋을 대로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흥사 오관석 목사의 간증을 보면 피부병으로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가 은혜 받고 피부병을 고치고 ‘남편은 나를 버렸으나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심을 감사합니다.’감사한 간증이 생각납니다. 저는 어려울 때 천국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현실도피주의 같지만 그래야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현실에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하시는 일은 다 선하고 의로우시니 아버지의 가장 기쁘신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뜨거운 시기오놋의 찬송이 나옵니다.
2.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16절을 다 읽지 못하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스라엘의 구속사인 출애굽의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과거형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이스라엘이 누군지 그 정체성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지금 현실이 어떻든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나는 이미 죄악에서 구원 받고 세상과 마귀를 이겼으며 하늘에 속한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신령하고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우리를 예수와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혀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화상입니다. 이 진리에 견고히 서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더라도 육신의 눈으로 보지 마세요. 예수 안에서 새롭게 해 주신 그 모습을 상상하며 보시기 바랍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대하세요. 형편없는 사람도 귀한 일군 될 사람으로 격려하세요. 자신도 타인도 예수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대대적인 시각변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후5:16-17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했습니다.
환경도 그렇게 하세요. 나에게는 탄탄대로가 열려 있다고 믿으세요. 세계와 우주를 바라볼 때도 그렇게 하세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라보세요. 그 믿음으로 전진하고 전진하세요. 그래서 2:4에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합니다. 아담 안의 자기, 사탄 안의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 안의 자기를 바라보며 시기오놋의 찬송을 드시시기 바랍니다.
3.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은 육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침략할 것을 생각할 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16절에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7, 18절에 믿음으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와 육신적 환경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주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고 날마다 찬양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승리자다. 나는 형통자다. 나는 복인이다. 나에게 특별한 도움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외치고 다니세요. 믿음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육신적인 생각을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충만 가운데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강하게 시기오놋의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강한 믿음이 성령의 충만을 오게 합니다. 강한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전천후의 감사는 전화위복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전화위복이 없다면 어떻게 시기오놋의 찬양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찬송하시며 감람산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더 강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우리의 감사를 막습니다. 믿음의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박국과 같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전화위복의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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