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자녀들아 (욜2: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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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자녀들아(욜2:23-32)
구약시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려고 성전을 오를 때, 온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기쁨으로 즐겨 불렀던 찬송 시 가운데 하나가 시128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모든 성도들은 안다. 그리고 경험한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고,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로 오는 복의 통로가 무엇인가? 우리 하나님이 어디에서 복을 주시는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시온이 어딘가? 백과사전에 보면 시온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BC 10세기에 다윗이 왕국의 수도를 건설한 곳이며 역사 속에서 야훼가 활동한 장소다. 20세기 초에 시온의 위치가 지금 오펠인 동쪽 언덕으로 확인되었다. 〈구약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시온은 시적·예언적인 명칭이며 정서적이고 종교적인 뉘앙스를 함축하는데 예루살렘을 왕의 도시이자 성전의 도시로 중요시했음을 보여준다. 시온은 유대인의 고향, 유대주의의 상징, 유대인의 민족적 소망의 대상을 뜻하며 그리스도교 문학과 찬송에 자주 사용되어 왔다. 이때 시온은 천상이나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를 가리켰다>. 천상이나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란 곧 교회를 말한다. 교회란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kklesia-call together)로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고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구원받은 공동체를 말한다. 성령 받은 성도들, 즉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입고 함께 모인 공동체가 곧 교회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구원공동체다. 여기에는 예배가 있고, 기도가 있고, 찬양과 감사가 있으며, 거룩한 성도의 교통이 있고,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가 있다. 이 하나님의 교회가 시온이라고 명명되는 것의 실체다. 구약시대에는 시온 산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져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렸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임재하시고, 그들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신 곳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시온의 자녀들아>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자녀들아, 언약의 백성들아, 하나님께 제사하는 백성들아,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아, 부르심을 입은 백성들아--->라는 뜻이다. 곧 내 백성들아, 나의 자녀들아,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오늘도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을 소망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부르신다. 그렇다면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되고, 예배하는 백성이 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23<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말씀이 자주 나온다. 왜 그럴까? 시37:4<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 무엇인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행복을 위함이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행복이 무엇인가? 23-27<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사랑의 교제 속에서 은혜 베푸시기 위함이다. 즉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면서 때를 따라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아 풍성함 속에서 복을 누리기 위함이다. 신28:11-13<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겔34:26<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시는가? 모든 삶을 풍성하게하시고, 복을 주시는가? 우리가 착해서? 의로워서? 똑똑하고 잘나서? 하나님 앞에 큰 공을 세워서? 절대 아니다. 우리는 안다. 우리 속에 죄악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안다. 우리가 아주 이기적인 것도 안다. 욕심 덩어리인 것 도 안다. 선과 정의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보다, 항상 내 욕심에 더 끌리는 내 모습을 내가 안다. 이런 나를 왜 하나님께서 부르셨는가?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며, 풍성하게 하시는가? 주님 말씀하신다. 딤후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가?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특별한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왜 창조하셨는가? 거룩한 교제를 위함이다. 자기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과 거룩한 교제, 곧 예배를 통하여 기쁨을 누리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적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그리고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귀한 것들을 다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택하심을 입었다. 부르심을 입었고,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시온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시온의 자녀들로 부르심은 입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풍성함으로 채워주셔서 우리가 여호와를 인하여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영약하고 이기적이어서 이 놀라운 은혜와 복을 제대로 누리지를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놀라운 선물이 있다. 28-32<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심이다. 성령 안에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장래 일을 알게 하시고, 이상을 보게 하시며, 꿈을 꾸게 하려 하심이다. 연약하여, 좌우로 치우치기 쉽고, 넘어지기 쉽고, 낙심하기 쉬운 우리의 심령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며, 승리자로 살고, 미래를 확실하게 열어 갈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주님께 집중하게 하심이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속에 살게 하기 위함이다. 인도의 개척 선교사였던 스코트 목사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미개척 선교지를 향하여 가다가 적의를 품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그들은 긴 창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었다. 이젠 꼼짝 없이 죽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늘 가지고 다니던 바이올린을 켜면서 원주민들의 언어로 찬송을 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그 앞에 무릎 끓고서 면류관 드리세.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스코트 목사는 잠시 후면 다가 올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찬양을 계속했다. 그러나 3절이 다 끝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눈을 떠보니 그를 겨누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교여 있었다. 사람들은 찬양을 받으실 그 높으신 이름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여러 해 동안 그들 가운데서 거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를 담대하게 하셔서 세상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며, 능력으로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채워주시고, 모든 풍성함으로 부요케 하시려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시온의 자녀들아---하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기쁨으로 이 놀라운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동행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풍성함으로 채우심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창조되었고, 선택받았으며, 부르심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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