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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 (계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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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요한계시록 2:8~11





어느 목사님의 재미있는 글이 교단신문에 실렸습니다. 이분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서 소를 한 마리 사 오셨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살림에 소는 재산인지라 아버지는 소를 애지중지하면서 키웠습니다. 소는 이목사님과 같이 자라서 나중에는 어미소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소를 이용해서 논도 갈고 밭도 갈았습니다. 또 이 소는 새끼도 잘 낳았습니다. 그래서 송아지를 팔아서 목사님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록금을 다 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가 이 목사님을 키운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안에 트럭 한대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를 실을려고 하였습니다. 놀래서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인즉, 소는 어릴 때 우리 집에 와서 농사일도 하고 새끼도 잘 낳아서 너의 등록금을 충당했다. 그런데 이제 소도 나이가 들고 새끼도 못낳고 해서 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는 마당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답니다. 겨우 소장수와 아버지가 트럭 위로 실었는데요, 소가 아버지와 아들을 쳐다보는데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땅만 보고 마당을 서성거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소가 사람보다 나아, 저 소는 우리 집에 와서 모든 것을 다 주고 간거야. 저 소 때문에 니가 대학까지 공부했어. 사람이 소보다 못해서야 쓰겠느냐?”


이 목사님은 자기 집의 그 소를 보면서 충성을 배웠다고 합니다. 송아지로 남의 집에 들어와서 그 집에서 일하고 새끼 낳고, 식구들 공부시키고 나중에는 팔려가면서까지 집안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헌신이고 충성입니다. 이 목사님은 항상 이 말을 돼새긴다고 합니다. “사람이 소보다도 못해서야 쓰겠느냐?”


오늘의 말씀은 충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충성은 변치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10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시아의 7교회 중 서머나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아시아의 7교회는 지금의 터키지역에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의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시아의 7교회를 둘러보고 오는 코스입니다. 무엇을 보았냐고 물어봤더니 돌덩이만 보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옛날의 교회는 다 무너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7교회를 방문하는 성지순례가 있는데 흔적만 보고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7개의 교회중 하나인 서머나 교회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서머나교회에 하신 말씀은 10일 동안 핍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를 10일 동안의 환난과 핍박이라면 견딜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한 10일은 하루, 이틀, 사흘, 이런 숫자가 아닙니다. 10이라는 숫자는 꽉 찼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한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2019년 12월 달에 시작을 했으니 20년하고 이제 21년, 올 가을이면 집단면역에 들어간다고 하니 2년 걸린 것입니다. 코로나 기간은 2년인 것입니다. 이렇게 정한 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한 기간을 10 이라는 숫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무리 혹독한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더라도 정한 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리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은 이러한 핍박의 기간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을 이기는 것이 충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코로나의 기간도 우리에게는 불같은 시험입니다. 이 불같은 시험을 이겨내는 믿음이 충성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충성을 한 자로 쓸 때에 가운데 중(中)자 에다가 마음 심(心)자를 씁니다. 그러므로 충성한다는 것은 대상을 마음의 중심에 둔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있으니 늘 생각나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있으니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셨으니 주님이 원하는 대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마24장,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옛날에 어느 부자가 있었습니다. 덕망이 있는 부자였는데 환갑을 맞이하여 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잔치 바로 전날 부자는 하인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볏집 한단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볏짚을 가지고 밤새도록 새끼를 꽈 놓아라. 될 수 있으면 가늘고 길게 꼬아야 하느니라”


하인들이 몇 명 있었는데 불평을 했습니다. 내일이 잔치날인데 잔치날 까지도 우리를 부려 먹는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충 굵게 해놓고 잤습니다. 그런데 한 하인은 주인의 말을 철저히 들었습니다. 주인의 말대로 새끼를 꼬는데 가늘고 길게 꼬았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하인들을 광으로 불렀습니다. 올 때는 자신이 꼰 새끼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인들이 모였을 때 주인은 광의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이 잔치날인데 그동안 너희들이 수고한 것이 고마워서 여기 있는 엽전을 선물로 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간밤에 꼰 새끼줄로 엽전을 끼워 가라고 하였습니다. 가늘고 길게 꼰 하인은 엽전을 쏙쏙 잘 집어 넣었지만 불만이 있어서 대충 굵게 꼰 하인은 엽전이 들어가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인의 말에 충성한 하인이 많은 선물을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모시고 어떤 환경과 어려움에 처해도 변치 않는 것이 충성입니다. 환난이 와도 고난이 와도 주님을 향한 마음을 바꾸지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신실한 주의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들은 어떠한 시험이 와도 주님을 향한 마음을 변치않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충성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10절.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크라운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크라운은 왕관입니다. 크라운제과라고 있습니다. 그림이 왕관모양입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이런 왕관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므로 우리가 인내하면서 충성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면류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제가 밭에 김매기를 하러 나갓습니다. 호미들도 무작정 나가기는 했는데 생전 김매기를 해봤어야죠. 권사님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기억을 더듬으면서 해보았습니다. 김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매기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겨울도 나쁜 것은 아니구나. 겨울은 춥고 눈오고 미끄럽고 그래서 싫어합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김매기가 없어요. 잡초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모기도 없어요. 김매기 할 때 모기가 얼마나달려들던지.. 그래서 겨울을 싫어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할 때 우리는 열매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보면 달란트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먼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보니까 5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해서 5달란트를 남겼습니다. 2달란트 받은 사람도 장사해서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내가 많은 것으로 너에게 맡길 것이다”


그런데 1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두고 있다가 주인이 왔을 때 그대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도 장사해서 1달란트만 남기면 되는데 그것은 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충성이라는 것은 그가 얼마큼을 받았느냐, 얼마큼을 남겼는가가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충성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행여나 못 남겼더라도 주인은 야단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의 문제는 충성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땅에 묻어둔 것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충성은 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칭찬할 때 작은 일에 충성한 것을 칭찬하였습니다. 싸이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맡겨진 일에 충성을 하느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충성하는 자에게는 하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지순례여행을 가면 쥐엄열매 쥬스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맛을 보고서 쥐엄열매가 이렇게 맞있는 것이었냐고 놀란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볼 때 쥐엄열매는 탕자가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으려고 했느나 주는 자가 없었다고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쥐엄열매는 돼지들이나 먹는 하찮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쥐엄열매가 여행객들이 애용하는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찮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귀한 음식이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배를 타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까 배를 타고 그물을 내리면 쥐치라는게 잡힌다고 합니다. 쥐치라는 물고기가 있다고 합니다. 쥐모양이라고 해서 쥐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부들은 재수없다고 그냥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물고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누가 쥐포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쥐포라는게 처음 나왔습니다.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도 쥐포는 마트에서 팔고 있습니다. 한 때는 어부들이 잡으면 쓸모없다고 버리는 물고기 였습니다만 이제는 귀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아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귀도 예전에는 보잘 것 없는 물고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귀찜 하면, 없어서 못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나의 작은 하찮은 수고와 봉사가 하늘나라를 만들어 가는 귀한 요소라는 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충성이 하늘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충성으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작은 충성 하는 자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하는 충성에 하늘의 상급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를 세워가는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충성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5:22~23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 충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으면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충성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하고 또 한사람은 저쪽에서 나무를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쉬지않고 계속 도끼질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50분 일하고 10분 쉬고 하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 둘이 나무한 양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50분 일하고 10분씩 쉰 나무꾼이 더 많은 나무를 했습니다. 이상해서 옆의 나뭇꾼이 물어보았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쉬지않고 계속 일했고 당신은 쉬엄쉬엄 일을 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더 많은 나무를 했소?"


그랬더니 나무꾼이 대답하기를 "나는 쉬는 시간에 도끼날을 갈았습니다"



아무리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한들, 날도 서지 않은 도끼를 가지고 아무리 휘둘러 봐야 힘만 드는 것입니다. 잠깐 씩이라도 도끼날을 갈아가면서 도끼질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님의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힘으로 할려고 덤비면 힘이 듭니다. 지쳐버리고 시험에 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셔야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에 붙들린 사람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힘은 강하다”


나는 비록 약하지만 성령의 능력에 붙들릴 때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영접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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