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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렘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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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예레미야 12:5




[5]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요단 강의 창일한 물 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오늘 갑작스럽게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데 그 설교가 고별설교입니다. 충격적이지요. 그런데 고별설교를 하고도 5개월 이상은 선한목자교회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퍽 어려운 설교입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급하게 외부 설교를 하셔야할 사정이 생기셨는데, 올해 분립개척을 하게 될 저에게 미리 개척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는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렇게 강단에 서게되었습니다. 당장 개척을 하는 것은 아니고, 년 말 정도에 하게 됩니다만, 말 그대로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2019년 12월에 수요예배 때 예레미야서로 4번의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4번의 설교의 전체 주제를 “최악의 시대, 최선의 삶.”이라고 정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멸망하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예언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악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2019년 12월은 최악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도 우리는 최악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사실 팬데믹이 터지기전, 지금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2020년 1월에 필리핀에 청소년 단기 선교팀을 보내면서, 보내야할지 말아야할지 정말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수운 일입니다. 그 때 필리핀의 코로나 확진자는 1명 의심환자는 28명이었습니다.



사실은 작년에 분립개척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작년 한해 코로나 상황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분립개척이 미루어졌습니다. 저를 잘 아시거나, 혹은 교회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은 저를 볼 때마다, 개척을 언제 하느냐? 지금 이런 시절에 개척이 되느냐?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같이 가시던가. 혹은 어떤 분들은 준비가 잘되고 있냐고 물어 보시면, 도리어 제가 지금 무슨 준비를 해야 하냐고 묻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았습니다. 분립개척이 한해 미루어지는 결정이 되었을 때 제 손을 꼭 잡으며 너무 잘되었다고 하시 성도님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해가 지나 올해 다시 분립개척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해 더 미룰까요? 저는 이 시간에 2019년에 나누었던 최악의 시대 최선의 삶을 여러분과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진짜 최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익숙한 선지자는 아닙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가장 험난한 시대를 살았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야 했던 그런 인물입니다.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의 인생은 기적이 넘쳐나지만, 예레미야에게는 단 한번의 기적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온 몸으로 부딪혀 그 고난에 세월을 뚫고 나간 인물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 시절 요시아 왕 때부터 시드기야 왕 때까지 예언을 했던 사람입니다. 요시아 왕 시절에 유다에 영적인 부흥과 개혁을 지켜봤지만, 또 그 부흥이 얼마나 쉽게 사그라드는지도 똑똑히 본 사람이예요. 그리고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에 무너지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여호와 성전이 불에 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예레미야의 예언은 결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헛된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유다가 멸망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벨론 앞에 바짝 엎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예레미야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못합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합니다. 너무 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주 강경했습니다. 너는 어리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나서 예레미야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 한 가지 비유를 써서 설명하세요.



(렘 1:18)


[18]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를, 튼튼하게 방비된 성읍과 쇠기둥과 놋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나라의 모든 사람, 곧 유다의 왕들과 관리들에게 맞서고, 제사장들에게 맞서고, 이 땅의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하나님은 ‘저는 말을 못합니다. 저는 너무 어립니다.’라고 말하는 예레미야에게 너를 쇠기둥과 놋성벽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세요. 모든 사람, 왕들과 관리들, 제사장과 맞서고 온 백성과 맞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세요. 저는 이 말씀이 엄청난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말씀하세요. 누구도 이기지 못한 성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레미야의 정체성이예요. 그리고 실제로 예레미야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자주 힘들다고, 힘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교육목사를 하면서 신임교사 교육을 하면 꼭 하는 강의가 있어요. 교사로서 꼭 지켜야 하는 7가지 계명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1번이 뭘까요? “선한목자교회 교사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습니다.”예요. 직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가정에, 또 개인적으로 낙심이 오면 교사를 그만해야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중간이 바뀌는 일은 자신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니 중간에 그만두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힘들다고 하는데, 교사를 해서 힘든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직장 때문에, 가정 때문에 힘든 건데, 해결책은 교사를 그만하는 거예요. 교사를 그만둔다고 힘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니야. 너는 쇠기둥이야. 놋성벽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레미야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짓 예언자들에 관한 것이었어요. 유다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거짓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짓말쟁이들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고 승승장구했어요.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따집니다.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어찌하여 악인들은 형통하고 배신자들은 잘되기만 합니까? 물어요.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을 것 같습니까? 조근조근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만, 악인의 결말이 어떨 것이고, 의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설명해 주셨을까요?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렘 12:5)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요단 강의 창일한 물 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악한자가 승승장구합니다. 예레미야의 항변 앞에, 하나님의 대답은 너는 사람과 달리기를 할 수준의 사람이 아니다. 너는 말과 함께 경주할 사람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세요. 너는 그 세상을 능히 이길 만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과 달리기를 할 수준이 아니예요. 우리는 말과 함께 달릴 사람입니다. 그저 안전한 땅에서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우리는 요단강의 홍수를 거스르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예요.



아니예요. 목사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나 말과 함께 달리지요. 저는 걸을 힘도 없어요. 그렇습니까? 아니예요. 생각해 보세요.



아기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합니다. 맞아요. 힘든걸 아니라고 하면, 제가 뺨을 맞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 정도로 힘들다고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하나가 아니라, 쌍둥이를 낳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힘들다고 안할 겁니까? 아닙니다. 할거에요. 쌍둥이가 아니라, 아이에게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포기할 건가요? 안 키울거에요. 그래도 키워요. 저는 너무 평범한 엄마인데, 쇠기둥 놋성벽같은 어머니들을 많이 봅니다. 특별히 강한 사람이 아니예요.



어떤 여자분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쓴 글이예요. 어릴 때 소아암으로 고생했는데 이상하게 병원에서 지낸 기억이 행복하게 남아 있다고 해요.



열만 나면 무조건 응급실에 가곤했는데, 새벽 내내 응급실 잠도 이루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어머니가 너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딸, 우리 캠핑 온 것 같다 그치? 맨날 집에서 자다가 이 시간에 안 자고 여기 있으니까 진짜 재밌다.” 그러셨어요.


입원하는 날에는 ‘우리 병원 슈퍼에서 이것저것 사먹고, 티비도 실컷 보자! 재밌겠다. 그렇지?’ 그러면서 짐을 싸셨어요. 병원에 있는 내내 개미도 잡고, 식물도 관찰하고, 분명 몸 아팠던 건 기억나는데 병원은 되게 재밌있었어요.


그러다 진짜 아픈 날에는, “우리 딸 아파도 돼, 맨날 아파도 되고, 맘껏 아파도 돼.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러셨는데, 그 말이 ‘아프지마’ ‘얼른 나아야지’ 그런 말보다 듣기 좋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쓰셨어요. 그런데, 지금 35살이 된 지금 돌아보니, 그 때 엄마의 나이는 서른 하나였다고. 딸 앞에서 웃었지만, 강철같이 버틴거예요.



제가 교회를 섬기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사역자들과 동역 하면서 힘들다고 해요. 우리가 그런 말을 쉽게 합니다. 일이 많을 때가 있어요. 교회학교 같으면 지금이죠. 수련회, 성경학교 준비하면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일이 힘들지 않아도, 교회 안에서 갈등이 있고, 관계 문제로 힘들다고 합니다. 선교지에서도 선교현장에서 핍박과 탄압 때문에 힘든게 아니라, 한국에서 온 동료 선교사들과 관계 때문에 속이 상하고 힘들어서, 철수 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로 무너질 사람들이 아니예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레미야의 시절처럼 나라가 멸망하는 때라든가, 요한계시록에서 처럼 심각한 박해 가운데 있는 시절을 우리가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예수 안 믿을 건가요? 중국 같이 교회가 폐쇄되고 목사님들이 감옥에 가게 되는 일들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주의 일을 하고 예수님 믿어야 할 사람들이예요.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요단강이 넘쳐 흘러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우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너무 좋은 시절에 살아서, 별 것 아닌 일에도 지치고 낙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도가 아니예요. 고난아 더 와봐라. 내가 무너지나? 더 공격해 봐라 내가 낙심하나? 그것이 쇠기둥과 놋쇠방벽이 할 말입니다.



사실 지난 겨울부터 저희 가정에는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 아내의 언니, 저에게는 처형이시지요. 처형이 인도네시아 선교사님이신데, 작년 가을에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말기이고, 가장 공격적이고, 치료제가 없는 암종이라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겨우내 아내는 항암치료를 하시는 처형을 돕고, 저는 조카들을 위로하려고, 저희 아이들과 함께 많이 놀러다녔어요.



그러다 4월에는 남편 선교사님이 인도네시아에 들어가야 할 사정이 생겨, 한달 간 제 아내가 언니네 집에 가서 간병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기에서 두 아들을 학교에 유치원에 보내는 일을 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4월 한달이 제에게는 많은 사역이 몰려있었던 때였어요. 교육관 건축을 마무리하고 봉헌 예배를 준비해야하고, 맡은 설교도 몰려있어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들 보며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아내가 떠나고 제가 아이들을 맡게 된 날, 혼자서 아이들 등교를 시켜야 하는 첫 날, 아침에 차를 타려고 하는데 배터리가 방전된 거예요. 너무 난처했습니다. 간신히 지나가던 목사님 차를 빌려 등교 시키고, 차를 고쳐 점심에 심방을 가는데,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이걸 감당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때 너무나도 번쩍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있어요.



“살아 있으니까 하는 일이 아니냐?” 처형이 살아 있으니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 이게 감사입니다. 힘든게 아니에요. 그렇게 한 달을 보냈는데, 처형의 상황은 더 안좋아져서 병원에서는 임종을 준비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기적같이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가족들의 품에서 한달을 더 사시다가 두 주전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으셨어요.



제가 처형을 섬기느라 아이들을 돌본 시간은 두달이 조금 넘어요? 이게 힘든건가요? 아니요. 힘든 시간 아니었습니다. 고작 두 달이었어요. 세 달이고 네 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들과 지내면서 하루는 자기 전에, 8살 큰 아들에게 물어봤어요. 혹시 엄마가 없어서 힘들지 않냐고. 그랬더니 저희 아들이 저를 이렇게 쳐다 보더니. ‘아니, 아빠가 더 힘들지 않아?’ 그러는 거예요. ‘아빠가 힘들어 보여?’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우리 밥해주고, 설거지하고, 아빠 일할 시간도 없고, 그렇지 않아?” 그래서 제가 “아빠 안 힘들어. 하나도 안 힘들고, 너무 행복해.” 그랬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진짜 힘든 겁니까? 몇 년 전에 처형이 사역하던 인도네시아에서 안식월을 한 달 보낸 일이 있었어요. 저는 인도네시아라고 해서 에메랄드빛 바다 옆 야자수 밑에서 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가 아니더라구요. 안식월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가게.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면서 3년 동안 비자가 나오지 않아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달에 한번씩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 주변의 다른 나라를 다녀와야 했다고 했어요. 그 때 큰 조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작은 아이는 걸음마 할 때였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두 달마다 짐을 싸서 또 여행을 다니고, 그곳에서 숙박비를 아낀다고 교회 예배당에서 며칠을 침낭을 깔고 잤다고. 그래요. 그렇게 살았다고 했어요. 선교사니까, 사람과 뛴 게 아니예요. 말하고 뛴 거지.



제가 선한목자교회에 23살에 전도사로 와서 이제 41살이 되었습니다. 고생은 별로 안했습니다. 그중 10년은 교회학교 담당하는 목사로 살았어요. 해마다 겨울과 여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성경학교를 하고 수련회를 했습니다. 보통은 3-4회 많을 때는 한 시즌에 7번까지도 했던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오늘도 고별 설교하는데, 어제까지도 성경학교 준비 엄청했어요. 고별 설교하고 나서도 또 합니다.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았어요. 여기서 다 말할 수가 없지요. 제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것을 보면서, 청소년 사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일 같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스스로 한 가지 다짐을 했어요. 혹시라도 아이들 데리고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말아야겠다고 떠날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서든, 불이라도 날까봐, 대피시킬 곳은 있는지, 문은 다 열려있는지, 소화기는 어디에 있는지 늘 점검했지요. 책임감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다 좋았어요. 왠지 아세요?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얼굴이 변하고, 회개를 하고 기도를 하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찬양하는게 좋았어요. 사실 다른게 없어요. 그거 보는 맛에 10년을 했어요. 힘든게 아니지요. 말하고 뛰라고 해도 신이 나서 뛰었을 거예요.



이제 분립개척을 준비합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다 힘든 때라고 해요.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도 못하는데, 개척은 어떻게 하냐구요? 저도 왜 제가 이런 때 하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힘들면 안하나요? 왜 저는 꼭 좋은 때 해야 합니까? 힘들어서 안하는 것 아닙니다. 말하고 뛰어 보실 분들 있으시면 갑시다.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요단 강이 범람을 해도 능히 건널자가 아니냐? 그렇게 물으시는 것 같아요.



한국 교회 다음세대는 위기라고 합니다. 다음세대 사역은 더 이상 장밋빛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많지만, 중소형교회에는 아이들이 없다고 해요. 저도 알아요. 쉽지 않은거. 그런데 다음세대 사역을 잘 하는 그런 개척교회도, 그런 작은 것이 약점이 아니라, 작기 때문에 작은 것을 무기로 삼아, 우리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다음세대를 일으킬 그런 교회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제가 꿈꾸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는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차근차근 제 유튜브에 올리겠습니다. 블블티비라고 있어요. 제가 유튜브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쇠기둥, 놋성벽이예요. 이 나라, 온 백성이 달려들어도 능히 무너뜨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뛰면서 힘들다고 할 자들이 아닙니다. 말과 뛰어도 능히 뛸 사람들이예요. 잔잔한 요단강만 건널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풍랑이 이는 홍해 바다라도 능히 건널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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