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 (행4:32-37)
본문
바나바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행4:32-37)
위로의 아들 바나바
사도행전 4:32-37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이름 앞에는 그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별명들이 있습니다.
슈바이처에게는 "밀림의 성자"라는 별명이 있고, 조지 뮐러에게는 '고아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어 다닙니다.
손양원 목사님에게는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이 늘 붙어 다닙니다.
한경직 목사에게는 은퇴 후에 빈손의 성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가 얼마든지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한사코 마다하고 남한 산상 영락 여자 신학교의 십여 평 되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별명은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이름으로 별명을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쁜 의미의 별명을 듣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장차 듣기 원하고 바라는 별명은 무엇입니까?
구브르에서 태어나 에루살렘 교회에 출석하는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로부터 "바나바"란 별명을 들었습니다.
바나바란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요셉이 다른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을 너무 잘하였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를 높이고 칭찬하여 바나바란 별명을 붙여 주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왔다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예루살렘 교회에 출석하게 된 평신도였습니다.
평신도였지만 그는 사도들 못지않게 다른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란 아름다운 별명으로 불리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많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지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잘 한다는 의미에서 "전도 왕" 늘 기도하는 일에 힘쓰므로 '기도의 어머니'로 불러지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기에 덧붙여 '바나바-위로의 아들'이란 별명으로 불러지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도와주는 바나바의 삶에 관심을 갖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경쟁이 치열합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적대적이 되고 있고 그런 와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상처를 받고 좌절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인생을 비관하며 눈물과 한숨의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바나바와 같은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교회, 가정, 직장, 사회 어느 곳에서든지 다 필요합니다.
아내들은 내가 남편을 격려해주는 바나바아내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남편들도 내가 아내를 격려해주는 바나바남편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사에 가서도 내가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바나바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어머니는 바나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살려주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삽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또한 바나바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을 잘 격려해서 살려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요셉이라는 한 성도가 어떻게 해서 무엇을 했기에 사도들로 부터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는 귀한 별명을 들었을까요?
먼저 ,바나바는 자기 밭을 팔아 제자들에게 갖다 주어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도록 함으로써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였습니다.(행 4:36-37)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을 방문하러 왔다가 성령을 받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교회가 해야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에는 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교회가 감당하려 할 때 교회가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또한 교회에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도 사실 힘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책임 맡고 있던 사도들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낙심이 되고 실망이 될 때 바나바는 자기 고향에 있는 큰 밭을 팔았습니다.
그 밭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그 판값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성경에 그런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유독 바나바의 이야기만이 기록된 것을 보면 그 규모가 가장 컸다고 볼 수 있고,
그 일을 바나바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의 이 용기 있는 일은 사도들은 물론이고, 교회와 모든 성도들과 과부와 고아들을 크게 격려하고 위로하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00교회는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지만 교회당을 아름답게 건축하고 교회 규모도 장년출석 200명을 넘는 제법 규모가 갖춰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시작될 때 한 장로님이 땅을 팔아 3억 원을 헌금하였습니다.
2억 6천만 원으로 지금 현재 교회 터를 구입하고 나머지 4000만원을 가지고 교회를 시작하여 오늘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0000교회를 건축할 때 성도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성전건축을 크게 격려한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결혼을 앞둔 여자 성도인데 결혼을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모아둔 1000만원을 건축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 헌금을 앞에 놓고 목사님과 장로님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 헌금이 그들을 크게 격려했고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였습니다.(행13:13절)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의 지시를 받고 세계 선교여행을 떠나게 될 때 바나바의 생질인 마가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습니다.
마가요한의 입장에서나 또 그를 믿음으로 키우려 했던 그의 어머니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과 바나바 선교 팀에 동참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기쁜 일이었겠습니까?
오늘날 빌리 그레이엄 선교 팀에 동참하는 이상의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중간에 마가요한은 전도 팀을 이탈하여 그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돌아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입니다만 어쨌든 이 실수는 사도바울을 크게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사도바울은 절대로 마가요한을 다시 데리고 갈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여기에 비해 바나바는 비록 한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그 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자고 그를 데려갈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바나바는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며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는 마가요한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절친한 친구요, 동역자요, 사도인 바울과 헤어지는 아픔까지 감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한 영혼이 귀했습니다.
한 일꾼을 키우는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도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을 다시 세우는 것은 적절한 때가 있음을 알았기에 그는 마가 요한을 붙들었습니다.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이러한 바나바의 격려에 힘입어 마가요한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마가 요한은 사도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이 되었고 바울에게도 꼭 필요한 동역자가 되었고 복음서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을 쓰는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바나바와 같은 위로의 사람, 격려의 사람, 실수를 책망하지 않고 다시 일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 바나바는 사울을 제자들에게 소개를 하여 제자들의 공동체에 참여하게 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 받은 후 3년 만에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바울의 변화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워낙 과거에 교회를 무자비하게 핍박 하였던 바울이었기에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받아들이지 못하자 바울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나서서 바울을 변호해 주고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음을 강력하게 설명하자 비로소 제자들이 바울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따돌림을 받는 자, 외톨이가 된 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 헌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여 늘 자신 없어 하는 사람들을 살리고 그들을 잘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나바와 같은 위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바나바는 바울을 불러 함께 목회하도록 함으로써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위대한 신학자요, 선교사요, 성경을 13권이나 기록한 사도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크게 3사람의 공헌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스데반의 사랑과 기도의 공헌입니다.
두 번째는 다메섹성에서 사울을 영접하고 그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전달하였던 아나니아의 공헌입니다.
세 번째는 사울을 제자들에게 소개하고, 사울을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초청했던 바나바의 공헌입니다.
비록 바나바는 바울만큼 큰일을 하지 못하였고 바울만큼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바울 뒤에는 바나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바울 됨은 바나바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교사 뒤에 바울과 같은 인물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어머니 뒤에 바울 같은 아들이 태어납니다.
바나바와 같은 장로 뒤에 바울과 같은 목회자가 만들어 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바나바와 같은 위로의 사람, 격려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성령의 충만이 있어야 합니다.
행 11:24절에 보면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이런 위로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성령의 마음이 없으면 갈 곳 없어, 할일 없어 집안에 있는 남편이 아주 꼴 보기가 싫습니다.
왜 남자가 집안에만 있느냐고 짜증이나 내고 화를 내고 말을 막합니다.
할 일 없어 걱정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하고 격려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그래서 사랑이 충만할 때 위로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격려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 실수하면 계속하여 그를 좋지 않게 보려고 합니다.
한번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저 사람은'시간도 못 지키는 사람이야'하면서 시간 못 지키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위로할 수 없고 격려할 수 없습니다.
실수를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위로의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남을 좋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남을 극히 좋게 보는 사람들과 극히 나쁘게 보는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제자들은 사울을 나쁜 쪽에서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 다메섹까지 원정을 갈 정도로 악랄한 사람...
그래서 사울을 사귀지 않고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좋은 쪽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요, 예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요, 그의 학식과 열심으로 볼 때 앞으로 크게 쓰임 받을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남의 단점이나 약점이나 나쁜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을 격려할 수 없습니다.
위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고 약점이나 나쁜 모습도 있지만 좋은 모습, 가능성 있는 모습도 있음을 볼 줄 알 때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장점을 보고 격려하는 지혜로운 어머니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내의 장점, 남편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지혜로운 배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의 특성을 보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우리 교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장점과 특성을 보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바나바와 같은 성도들이 많을 때 교회는 화목하고, 끈끈한 정이 흐르고,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가족들이 될 때 가정이 화목해지고 행복해집니다.
집에 들어오고 싶어집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때 이 사회는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바나바를 찾고 있습니다.
목회자를 격려하고, 낙심된 자를 위로하고, 실망한 자에게 용기를 주고, 실패한 자에게 재기의 힘을 줄 수 있는 이 시대의 바나바를 찾고 있습니다.
잘 하는 자에게 박수를 쳐줄 줄 알고, 못하는 자를 위로하고, 장점을 찾아 격려하는 바나바를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게십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이 시대의 바나바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정의 바나바, 교회의 바나바, 직장의 바나바, 학교의 바나바가 되는 성도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2019.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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