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하나님의 사랑 vs 이스라엘의 불순종 (시106:1-15)

본문

하나님의 사랑 vs 이스라엘의 불순종/시106편 1-15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06: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시 106: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06: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시 106: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시 106: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시 106: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시 106: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 106: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시 106: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시 106: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시 106: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시 106: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시 106: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시 106: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시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는 대표적인 작품들이 있습니다(78, 105, 106, 136편). 이 시편들의 특징은 끊임없이


불순종하는 백성들과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사이에 있는 신학적-실존적 갈등을 다룹니다. 오늘 본문 106편 4권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해서 바벨론 포로까지의 긴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층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전편 105편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말하였다면, 오늘 106편에서는 그들이 주님을 거역한


범죄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 시편을 누가 썼는가에 관해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무명의 어떤 시인이 썼을 것으로 봅니다.


시인은 출애굽과 같은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1-5)


 


 


 


시인이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분이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제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에 거하는 영광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일을 행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죄악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고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신 것은(롬 6:6)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욜 2:13).


 


특별히 ‘선하시며’라는 말은 ‘토브’라고 하는데 강조형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되 악한 것이 전혀 섞여 있지 않은,


즉 완벽하게 선하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라고 묻습니다. 시인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능력을 다 말할 수 없으며,


주께서 받으실 합당한 찬양을 다 선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이 복된 자들입니까?


 


시 106: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 찬송이 단순히 입술로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결부되어 있는 모든 행실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들이 찬양을 선포하기에


합당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절대 어떤 경우에도, 은혜의 복음을 바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임시허가증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자비로우시고 오래 참아주시지만 그러기에 더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항상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 이쯤은 괜찮지 않느냐는 식의 핑계가 용납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끝이 없는 자비의 곳간과 공의를 요구하는 엄정한 명령이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기우는 것이 인간의 성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 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당시는 아마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인 듯합니다. 불순종하고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의 땅에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 106: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시 106: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의 대열에 서야 합니다. 불순종과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형통을 보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시고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홍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6-12절)


 


 


 


시인은 그 당시 백성들의 죄악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시 106: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이 고백은 당시 백성들이 범하는 여러 가지 죄악들이 결코 그들의 선조들이 지었던 죄악들과 비교해볼 때


더욱 심했으면 심했지 못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하는 것은 조상의 죄로부터


당대의 죄까지 온갖 죄가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혈통적인 연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조상의 죄를 고백하지만, 그들의 죄와 당대의 죄도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접속사도 없이 ‘범죄하여’(하타), ‘사악을 행하며’(아와), ‘악을 지었나이다’(라샤)라고


연달아 고백합니다. 바로 이 세 단어는 솔로몬과 다니엘의 기도에도 나옵니다.


 


왕상 8:47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단 9: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이렇게 죄를 짓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시 106: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인간이 죄를 짓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서 발견됩니다. 깨닫지 못함과 기억하지 않음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베푸신 놀라운 기적과 홍해의 기사와


수많은 은혜를 잊은 것입니다. 즉 감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출애굽 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재앙을 면하게 해 주시고 출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홍해에 도달해서 곧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출 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출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바로가 이스라엘을 순순히 보내주겠습니까? 곧 바로 추격대를 보냅니다. 그런데 앞에는 홍해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대의


추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며 거역한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보았던 기사와 기적이 있었건만


그들은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배은망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시 106: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 106: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시 106: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시 106: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였도다


 


시 106: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구해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홍해에서 구원받은 사건이 그들에게 그만한 공로나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 비방 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출 14: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홍해가 어떻게 갈라졌습니까? 여호와께 꾸짖으시니 곧 말랐다는 것입니다.


 


출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고 당신의 크신 권능을 인간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악인을


심판하며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보면서 그 배후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이름과 권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13-15절)


 


 


 


이스라엘은 왜 광야에서 욕심을 내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을까요?


 


시 106: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시 106: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들이 무엇을 체험하였습니까? 홍해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너온 사건과 애굽 군대가 수장된 사건을 체험하였는데


곧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 어디에 도착하였습니까? 마라에 도착하였습니다. 물이 있기는 했는데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망합니다.


 


출 15: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았다’(개역, 개정, 표준). 여기에서 ‘가르침’(에차)은 주님의 ‘모략’으로서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하여 그들을 먹이시려는 ‘특별한 계획’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한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했지만, 기다릴 수 있는 믿음도 인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욕심을 크게 내었기’ 때문이었습니다(14절 상). ‘욕심을 크게’(타아와)라는 말은


비정상적인 욕망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광야에서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그들을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신 1:31).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 욕심쟁이였으며,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자식이었으므로 하나님을 계속 시험한 것입니다.


 


 


 


그들은 신 광야에서 고기를 먹지 못해 불평하였습니다.


 


출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는 탐욕에 가득 찬 불만을 토로하게 된 것입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러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한즉 사망을 낳게 됩니다. 그들은 탐욕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기브롯핫다아와’(탐욕의 무덤)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주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시 78: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시 78:56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시 95: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신적인 욕망을 다 채웠지만,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으므로 ‘영혼이 쇠약하게 되었습니다.’(15절 하). 즉, 그들에게 진정한 만족감과 자족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는 어떠했을까요? 그때도 광야생활 때와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욕심 부리는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택하신 백성이 돌아오도록 그들의 영혼을 쇠약하게 하시고 대적의 손에 넘기기도 하셨지만, 인자하심을 결코


거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삶속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인자와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우리가 감사하며


겸손히 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불평스런 상황이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해서 기억하도록 어떤 상징을 활용할 수 있을까요?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