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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바라는 자여! (시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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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바라는 자여! 시42:1-6, 롬8:31-39


마이클 플랜트(Michael Plant)는 세계적인 요트 조종사였습니다. 홀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수차례 항해하였고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기술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992년 다시 항해를 준비하였습니다. 최고의 항해 장치를 부착한 최신식 요트를 구입한 후에 '코요테'(The Coyote)라 명명합니다. 최첨단 요트에는 자동무선레이더와 위치 인식시스템(GPS)이 설치되어 좌표 상에 그의 위치가 정확히 표시될 수 있었습니다. 요트는 그의 꿈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플랜트가 항해를 떠난 지 11일 만에 무전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수색이 시작이 되었지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포르투칼 근처에서 전복된 요트를 발견하였습니다. 코요테호가 전복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요트는 거의 전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뒤집힌 이유를 조사해보니 요트 밑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ballast)가 선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밸러스트는 3.6톤이나 되는 보트를 안전하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떨어져 나가 배가 전복된 것입니다. 조사단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플랜트가 자기 기술과 힘만 믿고 요트를 만들 때부터 보이는 부분에는 신경을 썼지만,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밸러스트에 대해서 신경을 덜 쓴 것 같습니다." 풍랑이 없는 바다를 항해할 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풍랑이 불어 배가 요동치자 밸러스트 부분에 문제가 생겨 손도 쓰지 못하고 요트는 뒤집히고 그는 실종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보여 지는 육신의 건강, 젊음, 일의 형통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성을 쏟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영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견고한 신앙으로 영혼이 잘되어 육신의 건강보다 더 무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영혼이 잘 되는 것은 요트에 견고히 붙어 있는 밸러스트와 같아서 인생의 풍랑을 만나 뒤집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설 수 있게 됩니다. 어떤 풍랑을 만나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자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여,


1.낙심하지 맙시다.


구약 본문 시42: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다윗은 왕자 압살롬의 모반으로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이런 큰 반역죄를 짓다니 얼마나 가슴 아프고 낙심될 일이며, 부끄럽기도 할 뿐더러 아들과 맞서 싸울 수도 없습니다. 거기다 온 나라와 백성들은 대세를 따라 그를 반역하고 압살롬 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만난 상황은 낙심할 수밖에 없는 칠흑 같이 어두운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낙심하는 상황을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 때문에,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나, 어떤 것을 잃었을 때 낙심하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들을 때,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느꼈을 때 등, 등으로 낙심 하게 됩니다.


이런 낙심의 상황이 올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에 보면 다윗은 자기가 당한 기가 막힌 상황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갈급히 찾았습니다. 본문 시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했습니다. 다윗이 피난길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심정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 사막이고 4월부터 9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인데 대부분의 사슴이 이때 새끼를 뱁니다. 더구나 사슴은 열혈동물이어서 갈증을 잘 느끼는데 때로는 주변에 자기를 노리는 적이 있는 위험 상황에도 물을 마시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 ‘나를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 주리라.’하셨습니다. 분노하고 있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강에서 필사적인 기도를 드린 야곱처럼, 민족이 멸절 될 수 있는 위기를 보며 금식하고 기도한 모르드게와 에스더처럼,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늘 말씀과 찬송으로 자기를 격려하며 강해져야 합니다. 5절과 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했는데, 이처럼 성도는 묵상이나 말로 자기와의 대화를 잘해야 합니다.


곤고한 상황을 만났을 때 근심, 걱정, 미움,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밤새 잠 못 이루며 생각하게 되면 시험에 들게 되고, 일은 더욱 꼬이게 되고, 결국 문제의 올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살피며, 내 생각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으로 자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어느 유명 가수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붓글씨로 꼬박 1년에 걸쳐서 표구에다 성경의 잠언서를 모두 필사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다 써놓고 보니 그 글씨들이 따뜻한 열기를 발산하고, 더 신기한 것은 이 잠언서 표구가 해로운 수맥을 차단하더랍니다. 다시 성가대의 합창을 녹음해서 틀어놓고 수맥현상을 실험해 보니 미신 같지만 거기서도 동일하게 수맥차단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운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사건이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되새기며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했습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10년이라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그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 생명을 보존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파도와 물결이 엄몰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시4:1에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했습니다. 골리앗 앞에 나가 싸울 때도 지난 날 양들을 돌볼 때 사나운 짐승을 이길 힘을 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담대했습니다.


모세는 신7:19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어떤 산이 놓여있을지라도 지난 날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믿음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낙심이란 단순히 낙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는 성도가 됩시다.


2.두려워 말고 담대 합시다.


구약 본문 5절에서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기는 점점 더 편리해 져 가는데, 갈수록 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떤 이는 직장을 잃고, 어떤 이는 자녀 문제로, 어떤 이는 질병의 문제로, 어떤 이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떤 이는 경영의 어려움으로, 어떤 이는 미래의 대책이 서지 않아서 등 등 많은 문제들로 인해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두려움을 세상의 재물이나 술이나 권력으로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견고한 요새에 들어가 피해 있는 다고, 지하에 견고한 벙커를 만들고 거기 피해 있는 다고 불안과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에 서입니다. 시편 본문 5절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자를 주께서 도우시고 지켜 주시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 희생을 통해 죄 사함의 길을 열어 놓으셨기에 죄책감의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셨기 때문에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신약 본문 롬8:31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때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몇 가지를 언급 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적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질병도, 박해도, 공산주의도, 핵무기도, 죽음도, 사단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게 되면, 누가 우리를 위해줄 수 있을까요? 남편이 나를 돕고, 아내가 나를 돕는다고, 자식이 나를 돕고, 부모가 나를 돕는다고, 친구가 나를 돕고, 유력자가 나를 돕는다고, 의사가 나를 돕고, 대통령이 나를 돕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실 때는, 그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하심에서 건져낼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유명한 루터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면, 누가 우리를 위하리요.” 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송사하거나 정죄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33절에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송사한다.’는 말은 ‘고소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고소해서 괴롭히는 요소가 셋이 있는데, 그것은 양심과 율법과 사단입니다. 양심은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찔러 가책을 받게 합니다. 또한 율법은 죄인임을 드러내고 범죄 한 인간을 고소하고 정죄하는 일종의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고소합니다. 마귀를 가리켜 ‘디아볼로스’(διαβολο?)라고 하는데, 그 뜻은 곧 ‘고소자’ 또는 ‘참소자’라는 뜻입니다. 마귀가 사악하고 악질적인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죄를 짓게 하고 그리고 나서 인간의 범행을 낱낱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언자요, 변호사인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죄값은 이미 십자가에서 대속이 되었으니 그는 나의 소유요, 무죄라고 변호해 주십니다. 그러니 아무도 정죄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다고 했습니다.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라고 했고, 39절에는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8절에 보면 바울은 열 가지, 즉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존재하는 유형, 무형의 것들을 총망라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와 권세자도 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능력도, 높음이나 깊음도 끊을 수 없습니다. 다른 피조물도 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믿고 두려워 말고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 하고 앙망하며 찬양합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요16:33). 주님은 믿는 자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비록 환난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 이해할 수 없는 환난을 만나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만나는 때도 있지만 그런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욱 주님을 앙망하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 오히려 그런 중에도 구약 본문 시42:5의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신약 본문 롬8:37에도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했습니다. 중국 모택동 시절 지하교회에서 복음전도자로 사역했던 왕명도(王明道, 왕밍따우) 목사의 일화입니다. 그는 지하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다 공안당국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를 부인하고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석방되어 나오자 주님께 대한 송구한 마음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두통이 떠나지 않고 신앙의 양심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일들이 성령의 통곡임을 깨닫고 북경 거리로 나와 목에 간판을 걸고 다니며 울면서 외쳤습니다. "저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신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안당국에 다시 체포되었고 그 후 19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수감소식은 지하교회 지도자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고,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지도자에 의해 중국 지하교회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19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감옥에서 나오자 재커라이스 목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19년 동안 감옥의 무서운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손마디는 고문으로 뒤틀려 있는 상황이었지만 왕명도 목사는 빛나는 눈동자로 찬송을 부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찬송가 384장을 부른 후 그는 말합니다. "감옥에서 이 찬송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의 가사처럼 하늘의 위로가 지난 19년 동안 제게서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낄 때마다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절망하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짜증내는 대신 오히려 찬송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기쁨으로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앙망하며 찬송하는 일입니다. 찬송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기적으로 환경을 바꾸어 넉넉히 이기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도 어떠한 상황을 만나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욱 앙망하며 찬양함으로 넉넉히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자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여,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갈급히 찾음으로, 늘 말씀과 찬송으로 자기를 격려하면서, 과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되새기며 용기를 얻어 낙심치 맙시다.


◎.두려워 말고 담대 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대적할 자가 없고, 송사하거나 정죄할 자가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으니 담대 합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 하고 앙망하며 찬양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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