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세운 새 언약 (고전11:23-34)
본문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신 성만찬의 참된 뜻을 깨달아 신앙생활이 항상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1. 성만찬(Eucharist)이라는 낱말은 감사를 뜻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eis eucharistian) 그리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가능한 한 좀더 자주 모이도록 하자." 최초의 성만찬 기도들은 거의 전부가 감사의 기도들이었습니다.(디다 케) 잔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인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하여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신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를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영광이 세세토 록 있을지어다." 떡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신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통 하여 우리에게 생명과 지식을 알게 해주신 데 대하여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세세토록 영광이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먼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 버지를 알게 되었고, 그 앎으로 영생과 삶의 지혜를 얻게 된 것을 감사 해야 합니다. 스펄젼 목사는 주일 예배 설교 때 빈 새장을 들고 강단에 올라 섰습니다. 주일 이틀 전에 거리에서 $100(9만원)을 주고 산 것이었습니다. 거리에서 한 소년을 만났는데 참새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새장을 들고 있었습니다. 난폭한 이 아이는 가끔 새장을 흔들어 참새를 괴롭히고 있 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스펄젼 목사가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너 그 새를 어떻게 할 셈이냐" 라고 묻자 "조금만 더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릴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는 "
그렇다면 나에게 팔지 않겠니"라고 제안했습니다. 소년은 스펄젼 목사를 훑어 보더니 웃으며 농담을 했습니다. "$100 준다면 팔죠." 스펄젼 목사는 그 자리에서 $100을 내주고 새장 을 사서 문을 열어 새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튿날은 부활 주일 이었습니다. 강단에서 스펄젼 목사가 행한 새장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 습니다. 하나님은 죄라는 악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인간들을 어떻게 할 셈이냐" 그러자 죄가 말했습니다.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쳐 잠시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리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데 값을 얼마나 주 면 되겠느냐" 악마는 웃어버렸습니다. "이것들을 사서 뭐하게요. 그들은 당신을 배반하고 침ㅂ고 십자가에 매달 것입니다. 그래도 사겠다면 당신의 눈물과 몸과 피를 내놓으시 오." 스펄젼 목사는 설교를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요 부활입니다." 성만찬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성만찬을 진실로 감사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성만찬은 연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연합을 강조하는 기도를 '디 다케'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깨진 떡이 산(山)들 위에 흩어져 있다가 한데 모여 하나가 되듯 이, 당신의 교회가 땅 끝에서 모여와 하나가 되어 당신의 나라 안에 들 어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과 권세가 세세토 록 있을지어다." 이 기도를 흠정역에서는 "(고전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죄를 받는 사람은 성도들이 주의 몸이라는 것을 분별치 못 하고 그리고 그들이 성만찬에 참석할 때에 그들이 하나로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이 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교회 안에 분열과 당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 히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야 합니다. 이 분열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식탁이 주님의 식탁이지 결코 어떤 교회의 식탁이나 사사로운 개인의 파티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주의 만찬(성만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심각한 분 열과 성만찬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습니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는 친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식사를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를 '에바노스(Evanos)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아가페 밀'(Agape meal)이라는 이름의 애찬(愛餐) 을 즐겼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각자의 형편에 따라 먹을 것을 가져왔고 그것들을 전부 한데 모아 놓고 다시 나누어 먹으면서 함께 교제를 즐 겼습니다. 이와같은 애찬은 성도의 참된 친교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신앙 성장 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애찬의 본래 의도가 상실되고 왜곡되어 성도간에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부한 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 었습니다. 음식을 잔뜩 가져올 수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아무 것 도 가져 올 수 없는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실제 많은 노예들에게 있어 서는 애찬을 통해 한 주간에 한 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사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각자 가져온 음식을 자기들만 먹었습니다. 부자들 끼리 재빨리 먹어치웠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았 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거의 먹을 것도 없이 고픈 배를 쥐고 있던 형편 이었고, 부자들은 그 식사 시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자랑함으로써 가난한 형제에게 치욕적인 상처까지 입혔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교인들 간의 사회적인 격차를 없애려던 애찬이 오히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과 계급을 형성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가난한 자와 부자로 패가 갈라지게 되었고 두 계층간에 갈등과 긴장이 생겼습니다. 초대 교회는 세계를 갈라 놓았던 장벽, 인종과 계급, 성의 장벽 등을 타파한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고대 세계는 자유인과 노예, 헬라인과 야 만인, 유대인과 이방인, 남과 여 등등의 차별이 철저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든 인간이 자유로왔던 유일한 장소였습니다.(고전 12:12-13, 갈 3:27,28, 골 3:9-11) 사회적인, 계급적인 차별이 존재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참된 교회란 그리스도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하나여야 합니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초대 교회는 애찬을 통해 참된 교제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주는 참다운 교회였습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는 사랑으로 하나된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 니라." 물건을 혼자 독점하거나 자기들의 모임만이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크리스챤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참다운 크리스챤은 다른 사람이 빈곤에 처했을 때 자기만 가지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인의 최대의 특권은 단지 간수하는데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누어 주는 데 있습니다.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인류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습니다. 피로 세운 새 언약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이 웃에게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게 성만찬에 참예하는 사람이란 떡과 잔이 나타내주는 사랑과 그 사랑의 의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고전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합당치 않게 성만찬에 참예하는 자는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깨닫지 못하며, 형제와 싸우며, 그를 경멸하며, 그 이유야 어떻든 형제들과 마음이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형제에 대하여 증오나 원한이나 경멸하는 마음을 가진 채 주님의 식탁에 임하는 자는 합당치 않게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을 위해서도 십자가 에 죽으셨기 때문에 형제와 불화하면서 성만찬을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만찬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가 사하여졌음 을 믿고 회개하며,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체 험하는 의식(儀式)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처럼, 예수의 피는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새 언 약입니다. 예수의 피가 없이는 새로운 계약, 인간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절대로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 성만찬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새 언약의 상징입니다. 예수의 피 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였던 관계가 화목한 관계로 새롭게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교회는 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을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성만찬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 게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 죄가 비록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희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에게 성찬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성만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애찬 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은사를 받았느냐, 얼마나 축복을 받았느냐, 누가 믿음이 좋으냐 등으로 성도를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이 약해도 성도는 성도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도 있고 믿음이 강한 성도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성도의 우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강 조하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 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 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 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 이니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의견 차이가 생기면 옳고 그른 것보다 하나 됨이 깨지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아무것도 못하더라 도 싸우지 않고 화목해야만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 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저 사람이 천국에 간다면 천국에 가지 않고 차라리 지 옥에 가겠습니다." 이는 자기 신앙이 잘났다고 뽐내는 교만의 꼭대기 올라가 있는 사람 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의 죄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화목하여 하나가 되 지 못하는 것은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을 욕되게 하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는 자입니다. "(요일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 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 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 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 지 아니하되 (요일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 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임 을 명심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몸과 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이 되신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 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 여함이라." 제아무리 열심과 충성을 다 한다해도, 제아무리 능력과 은사가 많다 고 해도, 제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해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 겸손과 온유, 그리고 인내함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며 덕을 세우는 것이 주의 몸과 피, 성만찬에 바 르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롬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롬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3. 성만찬은 복음의 선포입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 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만찬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 서에 보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 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는 성만찬에서 주님의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의 당당 한 재림의 확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와 재림, 복음 전도의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만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언약으로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대할 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는 높은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바치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 고 모든 개인적인 일을 하나님의 일로 믿는 사람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두운 시간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축복을 받습니다. 그는 흔들리지않는 소망을 가 졌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을 확인하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주의 재림 신앙을 소망하는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4. 성만찬은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받고 죽으셨다는 것을 새롭게 기억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 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십자가에 죽으신 것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 라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 살아계신 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기억은 경험과 만남 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사신 예수님은 온 우주 안 어디에나 계십니다. 성만찬을 통해서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 모든 곳에 주님은 현존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항상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사는 것이 주님을 기념하며, 기억하며 사는, 성만찬의 생활인 것입니다.
5. 성만찬은 성례전(sacramentum)인데 이 성례전이란 말은 본래 군 인이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세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주님께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만난 복된 주님께 보다 충성된 마음가짐으로 헌신을 다짐 하지 않고서는 이 성찬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여러분은 주의 몸과 피를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축복에 자리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날마다 주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 여 감사함으로 복음 전파에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1. 성만찬(Eucharist)이라는 낱말은 감사를 뜻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eis eucharistian) 그리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가능한 한 좀더 자주 모이도록 하자." 최초의 성만찬 기도들은 거의 전부가 감사의 기도들이었습니다.(디다 케) 잔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인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하여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신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를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영광이 세세토 록 있을지어다." 떡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신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통 하여 우리에게 생명과 지식을 알게 해주신 데 대하여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세세토록 영광이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먼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 버지를 알게 되었고, 그 앎으로 영생과 삶의 지혜를 얻게 된 것을 감사 해야 합니다. 스펄젼 목사는 주일 예배 설교 때 빈 새장을 들고 강단에 올라 섰습니다. 주일 이틀 전에 거리에서 $100(9만원)을 주고 산 것이었습니다. 거리에서 한 소년을 만났는데 참새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새장을 들고 있었습니다. 난폭한 이 아이는 가끔 새장을 흔들어 참새를 괴롭히고 있 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스펄젼 목사가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너 그 새를 어떻게 할 셈이냐" 라고 묻자 "조금만 더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릴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는 "
그렇다면 나에게 팔지 않겠니"라고 제안했습니다. 소년은 스펄젼 목사를 훑어 보더니 웃으며 농담을 했습니다. "$100 준다면 팔죠." 스펄젼 목사는 그 자리에서 $100을 내주고 새장 을 사서 문을 열어 새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튿날은 부활 주일 이었습니다. 강단에서 스펄젼 목사가 행한 새장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 습니다. 하나님은 죄라는 악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인간들을 어떻게 할 셈이냐" 그러자 죄가 말했습니다.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쳐 잠시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리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데 값을 얼마나 주 면 되겠느냐" 악마는 웃어버렸습니다. "이것들을 사서 뭐하게요. 그들은 당신을 배반하고 침ㅂ고 십자가에 매달 것입니다. 그래도 사겠다면 당신의 눈물과 몸과 피를 내놓으시 오." 스펄젼 목사는 설교를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요 부활입니다." 성만찬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성만찬을 진실로 감사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성만찬은 연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연합을 강조하는 기도를 '디 다케'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깨진 떡이 산(山)들 위에 흩어져 있다가 한데 모여 하나가 되듯 이, 당신의 교회가 땅 끝에서 모여와 하나가 되어 당신의 나라 안에 들 어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과 권세가 세세토 록 있을지어다." 이 기도를 흠정역에서는 "(고전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죄를 받는 사람은 성도들이 주의 몸이라는 것을 분별치 못 하고 그리고 그들이 성만찬에 참석할 때에 그들이 하나로 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이 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교회 안에 분열과 당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 히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야 합니다. 이 분열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식탁이 주님의 식탁이지 결코 어떤 교회의 식탁이나 사사로운 개인의 파티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주의 만찬(성만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심각한 분 열과 성만찬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습니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는 친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식사를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를 '에바노스(Evanos)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아가페 밀'(Agape meal)이라는 이름의 애찬(愛餐) 을 즐겼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각자의 형편에 따라 먹을 것을 가져왔고 그것들을 전부 한데 모아 놓고 다시 나누어 먹으면서 함께 교제를 즐 겼습니다. 이와같은 애찬은 성도의 참된 친교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신앙 성장 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애찬의 본래 의도가 상실되고 왜곡되어 성도간에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부한 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 었습니다. 음식을 잔뜩 가져올 수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아무 것 도 가져 올 수 없는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실제 많은 노예들에게 있어 서는 애찬을 통해 한 주간에 한 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사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각자 가져온 음식을 자기들만 먹었습니다. 부자들 끼리 재빨리 먹어치웠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았 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거의 먹을 것도 없이 고픈 배를 쥐고 있던 형편 이었고, 부자들은 그 식사 시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자랑함으로써 가난한 형제에게 치욕적인 상처까지 입혔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교인들 간의 사회적인 격차를 없애려던 애찬이 오히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과 계급을 형성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가난한 자와 부자로 패가 갈라지게 되었고 두 계층간에 갈등과 긴장이 생겼습니다. 초대 교회는 세계를 갈라 놓았던 장벽, 인종과 계급, 성의 장벽 등을 타파한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고대 세계는 자유인과 노예, 헬라인과 야 만인, 유대인과 이방인, 남과 여 등등의 차별이 철저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든 인간이 자유로왔던 유일한 장소였습니다.(고전 12:12-13, 갈 3:27,28, 골 3:9-11) 사회적인, 계급적인 차별이 존재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참된 교회란 그리스도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하나여야 합니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초대 교회는 애찬을 통해 참된 교제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주는 참다운 교회였습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는 사랑으로 하나된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 니라." 물건을 혼자 독점하거나 자기들의 모임만이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크리스챤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참다운 크리스챤은 다른 사람이 빈곤에 처했을 때 자기만 가지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인의 최대의 특권은 단지 간수하는데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누어 주는 데 있습니다.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인류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습니다. 피로 세운 새 언약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이 웃에게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게 성만찬에 참예하는 사람이란 떡과 잔이 나타내주는 사랑과 그 사랑의 의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고전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합당치 않게 성만찬에 참예하는 자는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깨닫지 못하며, 형제와 싸우며, 그를 경멸하며, 그 이유야 어떻든 형제들과 마음이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형제에 대하여 증오나 원한이나 경멸하는 마음을 가진 채 주님의 식탁에 임하는 자는 합당치 않게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을 위해서도 십자가 에 죽으셨기 때문에 형제와 불화하면서 성만찬을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만찬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가 사하여졌음 을 믿고 회개하며,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체 험하는 의식(儀式)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처럼, 예수의 피는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새 언 약입니다. 예수의 피가 없이는 새로운 계약, 인간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절대로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 성만찬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새 언약의 상징입니다. 예수의 피 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였던 관계가 화목한 관계로 새롭게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교회는 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죄인을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성만찬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 게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 죄가 비록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희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에게 성찬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성만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애찬 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은사를 받았느냐, 얼마나 축복을 받았느냐, 누가 믿음이 좋으냐 등으로 성도를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이 약해도 성도는 성도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도 있고 믿음이 강한 성도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성도의 우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강 조하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 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 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 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 이니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의견 차이가 생기면 옳고 그른 것보다 하나 됨이 깨지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아무것도 못하더라 도 싸우지 않고 화목해야만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 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저 사람이 천국에 간다면 천국에 가지 않고 차라리 지 옥에 가겠습니다." 이는 자기 신앙이 잘났다고 뽐내는 교만의 꼭대기 올라가 있는 사람 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의 죄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화목하여 하나가 되 지 못하는 것은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을 욕되게 하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는 자입니다. "(요일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 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 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 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 지 아니하되 (요일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 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임 을 명심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몸과 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이 되신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 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 여함이라." 제아무리 열심과 충성을 다 한다해도, 제아무리 능력과 은사가 많다 고 해도, 제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해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 겸손과 온유, 그리고 인내함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며 덕을 세우는 것이 주의 몸과 피, 성만찬에 바 르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롬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롬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3. 성만찬은 복음의 선포입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 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만찬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 서에 보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 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는 성만찬에서 주님의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의 당당 한 재림의 확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와 재림, 복음 전도의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만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언약으로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을 대할 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는 높은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바치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 고 모든 개인적인 일을 하나님의 일로 믿는 사람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두운 시간에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축복을 받습니다. 그는 흔들리지않는 소망을 가 졌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을 확인하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주의 재림 신앙을 소망하는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4. 성만찬은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받고 죽으셨다는 것을 새롭게 기억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 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십자가에 죽으신 것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 라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 살아계신 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기억은 경험과 만남 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사신 예수님은 온 우주 안 어디에나 계십니다. 성만찬을 통해서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 모든 곳에 주님은 현존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항상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사는 것이 주님을 기념하며, 기억하며 사는, 성만찬의 생활인 것입니다.
5. 성만찬은 성례전(sacramentum)인데 이 성례전이란 말은 본래 군 인이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세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주님께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만난 복된 주님께 보다 충성된 마음가짐으로 헌신을 다짐 하지 않고서는 이 성찬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는 여러분은 주의 몸과 피를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축복에 자리에 참여하기 위해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날마다 주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 여 감사함으로 복음 전파에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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