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고전1:18-25)
본문
고린도교회의 하나님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 고린도교회가 제일 먼저 책망받은 것은 이 교회가 겉으로는 하나인 것 같았지만, 실은 안으로는 내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분열은 오늘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간중심, 정실을 떠나지 않고는 이 분쟁과 분열을 피할 수 없숩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원인 중에 또 하나가 그 교회 안에 세상적으로 지혜있고, 똑똑하고, 잘난 자들의 교만함과 자기를 나타내는 자기 자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 지혜를 비교해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혜있는 자들의 잘나고 똑똑한 지혜가 얼마나 허무한 것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이를 가르치기 이해서 ‘십자가의 도’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십자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세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봅니다. 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십자가에 관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어 구원얻게하는 진리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에게는 꺼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22절 말씀같이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메사야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이 갈망하는 메시야가 오면 강력한 힘을 가진 다윗과 같이 정복자로서 모든 대적들을 멸하실 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으로 그 영광을 되 찾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도 이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지금까지 3년 이상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가르쳤지만, 이제 승천할 때가 된 지경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또 유대의 서기관 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지만,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시편22편과 이사야53장의 말씀이 대표적인 말씀인데 이 서로 모순된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광되고, 전능하신 메시야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흔한 범죄자 중에 하나로, 십자가에서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목수의 아들을 도무지 메시야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외에는 다른 표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싫어하고 거리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연약함의 표상이 아니라, 놀라운 능력의 도구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한 것 보다 강한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이는 헬라인들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구합니까 그들은 철학과 많은 학문을 한 사람들입니다. (행17: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행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할 일은 사색과 연구입니다. 스스로 지혜를 가졌다고 하며 지혜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만에 빠져있습니다. 이 지혜를 제일로 삼았던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떤 것으로 보입니까 그들의 보기에 이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흠모할만한 어떤 것이나, 자기들의 지식욕에 만족을 줄만한 새로운 신지식도 아니었습니다. 시시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어무런 지혜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보는 눈이 문제입니다. 그들의 판단하는 지식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지식이 제일이고, 이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만약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를 보았으면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알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멸망할 자였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무엇을 봅니까 죽은 자가 보고 아는 것이 있다고해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있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의 인간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그 마음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최고라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고, 자기를 신뢰하여 하나님을 봅니다.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과학이 어떻게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가 있습니까
셋째로, 이 십자가의 도는 오히려 세상에 똑똑하고, 지식있고,지혜있는 자보다는 세상에 미련하고, 세상에 못 배운자들에게, 세상지혜는 없으나, 없기 때문에 잘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능력과 지혜가 됩니다. 이를 찬양해야합니다. 19절: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 총명있다고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의 그 지혜와 총명을 헛 것으로 아시고, 폐하신다고 했습니다. 20절:하나님 앞에 지혜있는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선비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말 잘하는 변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이 구원의 도리를 하나도 깨닫지 못하게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혜를 가진 자들은 하나님 앞에는 미련한 자, 어리석고, 어린 자로 나서야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지식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비할 때에 참으로 없는 것으로 겸손해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 곧 세상이 미련하다고하고, 거리낀다고하는 이 복음을 가지고,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지식을 가지고 이 하나님의 지혜를 따지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까 믿는 자만 구원을 얻는데, 믿는다는 것은 먼저 자기의 것을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실력, 자기의 경험, 자기의 어떤 이력도 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 곧 세상의 능력과 지혜는 없어도 이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에게는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지혜가 인간보다 못합니까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까 죄로인하여 죽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야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하고,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도 만족케하는 하나님의 지헤입니다. 이 십자가는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가 이 삽자가는 볼 품없고, 비참하고,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을 이루신 장소입니다.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하신 것으로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마귀에게서 구원했습니다. 이러니 십자가는 겉은 실패요, 죽으심이지만, 이 십자가의 현장에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대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죽으셨으나,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겼습니다. 대신 저주를 받으심을 우리가 받을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신 것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 자신들에게 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참으로 능력이요, 인생이 걸어갈 길이 되는 하나님이 내신 지혜임이 믿어집니까 오직 이 한 길이 있을 뿐이라는 복음이 믿어지고, 이 복음을 받은 것에 감사가 넘치고, 또 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바을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한다. 이 복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복음은 세상에서 미련하게 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예수 믿는다고 하고 있다. 어떻게 예수 이름을 믿는다는 것으로 천국을 가는가 제가 착한 일을 하려고하지 않고 누구 덕에 천국을 간다고하는 이상한 말을 한다. 또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제 종교를 말하면 좋은데 예수쟁이들은 꼭 저희가 믿는 하나님만 참신이고, 예수만 구원자라고하니 배타적이고, 유 일신사상은 많은 폐단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쨌던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좁은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려고하고, 비판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줄 알아야합니다. 인간들의 지헤와 능력을 따라서 부르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의 어리석고, 능하지 못한 자, 약한자, 천하고, 멸시 받는 자 가은데 택하시고 부르셔서 구원하셨으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 은헤를 입은 줄 알아야합니다. 아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이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다른 것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심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를 자랑하라.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구원을 얻은 은혜를.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 못난 자를 돌아보사 구원하신 하나님.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이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원인 중에 또 하나가 그 교회 안에 세상적으로 지혜있고, 똑똑하고, 잘난 자들의 교만함과 자기를 나타내는 자기 자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 지혜를 비교해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혜있는 자들의 잘나고 똑똑한 지혜가 얼마나 허무한 것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이를 가르치기 이해서 ‘십자가의 도’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십자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세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봅니다. 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십자가에 관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어 구원얻게하는 진리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에게는 꺼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22절 말씀같이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메사야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이 갈망하는 메시야가 오면 강력한 힘을 가진 다윗과 같이 정복자로서 모든 대적들을 멸하실 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으로 그 영광을 되 찾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도 이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지금까지 3년 이상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가르쳤지만, 이제 승천할 때가 된 지경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또 유대의 서기관 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지만,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시편22편과 이사야53장의 말씀이 대표적인 말씀인데 이 서로 모순된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광되고, 전능하신 메시야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흔한 범죄자 중에 하나로, 십자가에서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목수의 아들을 도무지 메시야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외에는 다른 표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싫어하고 거리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연약함의 표상이 아니라, 놀라운 능력의 도구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한 것 보다 강한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이는 헬라인들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구합니까 그들은 철학과 많은 학문을 한 사람들입니다. (행17: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행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할 일은 사색과 연구입니다. 스스로 지혜를 가졌다고 하며 지혜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만에 빠져있습니다. 이 지혜를 제일로 삼았던 헬라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떤 것으로 보입니까 그들의 보기에 이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흠모할만한 어떤 것이나, 자기들의 지식욕에 만족을 줄만한 새로운 신지식도 아니었습니다. 시시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어무런 지혜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보는 눈이 문제입니다. 그들의 판단하는 지식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지식이 제일이고, 이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만약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를 보았으면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알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멸망할 자였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무엇을 봅니까 죽은 자가 보고 아는 것이 있다고해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있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의 인간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그 마음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최고라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존하고, 자기를 신뢰하여 하나님을 봅니다.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과학이 어떻게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가 있습니까
셋째로, 이 십자가의 도는 오히려 세상에 똑똑하고, 지식있고,지혜있는 자보다는 세상에 미련하고, 세상에 못 배운자들에게, 세상지혜는 없으나, 없기 때문에 잘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능력과 지혜가 됩니다. 이를 찬양해야합니다. 19절: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 총명있다고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의 그 지혜와 총명을 헛 것으로 아시고, 폐하신다고 했습니다. 20절:하나님 앞에 지혜있는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선비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말 잘하는 변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이 구원의 도리를 하나도 깨닫지 못하게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혜를 가진 자들은 하나님 앞에는 미련한 자, 어리석고, 어린 자로 나서야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지식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비할 때에 참으로 없는 것으로 겸손해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 곧 세상이 미련하다고하고, 거리낀다고하는 이 복음을 가지고,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지식을 가지고 이 하나님의 지혜를 따지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까 믿는 자만 구원을 얻는데, 믿는다는 것은 먼저 자기의 것을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실력, 자기의 경험, 자기의 어떤 이력도 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나, 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 곧 세상의 능력과 지혜는 없어도 이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에게는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지혜가 인간보다 못합니까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까 죄로인하여 죽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야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하고,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도 만족케하는 하나님의 지헤입니다. 이 십자가는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가 이 삽자가는 볼 품없고, 비참하고,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대속을 이루신 장소입니다.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하신 것으로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마귀에게서 구원했습니다. 이러니 십자가는 겉은 실패요, 죽으심이지만, 이 십자가의 현장에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대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죽으셨으나,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겼습니다. 대신 저주를 받으심을 우리가 받을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신 것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 자신들에게 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참으로 능력이요, 인생이 걸어갈 길이 되는 하나님이 내신 지혜임이 믿어집니까 오직 이 한 길이 있을 뿐이라는 복음이 믿어지고, 이 복음을 받은 것에 감사가 넘치고, 또 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바을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한다. 이 복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복음은 세상에서 미련하게 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예수 믿는다고 하고 있다. 어떻게 예수 이름을 믿는다는 것으로 천국을 가는가 제가 착한 일을 하려고하지 않고 누구 덕에 천국을 간다고하는 이상한 말을 한다. 또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제 종교를 말하면 좋은데 예수쟁이들은 꼭 저희가 믿는 하나님만 참신이고, 예수만 구원자라고하니 배타적이고, 유 일신사상은 많은 폐단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쨌던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좁은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려고하고, 비판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줄 알아야합니다. 인간들의 지헤와 능력을 따라서 부르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의 어리석고, 능하지 못한 자, 약한자, 천하고, 멸시 받는 자 가은데 택하시고 부르셔서 구원하셨으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 은헤를 입은 줄 알아야합니다. 아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이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다른 것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심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를 자랑하라.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구원을 얻은 은혜를.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 못난 자를 돌아보사 구원하신 하나님.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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