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15:35-49)
본문
미국 보스턴 정신병원에 한 소녀가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성격이 거칠어서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녀를 '작은 애니' 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노 간호사가 그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였습니다 6개월후 애니는 점점 변화되어 마음을 안정하였답니다. 그때 신문에 한 어린아이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는 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그 아이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3중고를 가진 아이 였습니다. 애니는 이일에 지원하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3 중고의 아이는 헬렌 켈러가 되었고, 그를 간호하던 소녀는 앤 설리반 선생 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사랑이 훗일에 얼마나 큰 변화와 축복을 주는 것입니 까 우리가 누구를 만나는가 이는 내 생애에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아침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3일후 그 무덤에 찾아갔던 많은 제자들은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천사의 소리 만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부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궁금한 것이 부활한 몸은 과연 어떤 몸일까 하는 것입니다. 본문 49절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였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우리는 부활한 우리의 몸의 모습을 살펴보면 서 부활의 축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입니다. (누가24;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부활의 몸은 우리가 가진 지금의 몸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도 분명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 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도마가 나중에 와서는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 라,'하니 그 말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마는 자기 일이 바빠서 제자들의 모임이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지, 자기가 똑똑한 척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다는 데도 끝까지 믿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입니다. 얼마후 부활하신 주님께서 도마에게도 나타나셨 습니다.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어 보고 네 손을 창자 국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 라.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부활의 몸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의 믿음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네가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이 신앙은 참으로 복된 신앙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믿는 성도들의 신앙, 참으로 놀라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이 신앙에 놀랍게 축복하셔서 부활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내러 줄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 부활의 몸은 인간의 연약함을 초월한 몸입니다. (요한20;19-20),,,"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문이 꼭 닫혔는 데도 주님은 들어오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어떤 장벽이나 장애도 받지 않는 초능력의 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행사 할 수 있는 능력의 몸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얼마나 연약합니까 조그만 추어도 벌벌 떨고, 조그만 더워도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먹을 것이 없으면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고, 배고픈 슬픔이 제일 이라지 않습니까 또 아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걸핏하면 감기요, 걸핏하면 몸살이요, 조금만 무리하면 온 몸이 죽을 지경이니 참으 로 한심할 노릇입니다. 저는 요즘 이빨 치료를 하는데 온통 이가 썩고 힘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몸이라는 것이 이토록 연약한 존재인 것을 우리는 진작 알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이렇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900여세를 살았으니 얼마나 강건하였습니까 추위도 더위도 모르고 살았으니 얼마가 강건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원래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강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토록 연약하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다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하고 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조그만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연약하고 나약한 모습 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더 이상 죄악에 머뭇거리지 말고,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놀라운 부활의 영광을 입어 담대하고 강한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73년 아프리카 우간다의 이디 아민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하고 있을 때, 셈판기 목사님은 부활절 예배 설교에서 부활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실 것을 설교하였답니다. 그날 밤 목사님의 사택에 무장 괴한 5명이 찾아와서 총을 거누었 습니다. 목사님은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2분의 시간을 달라 고' 하면서 그 젊은이들이 모르고 하는 이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답니다. 청년들은 자신의 무례함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답니다-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이 용기, 곧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부활의 날에 엠마오의 제자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 믿음과 신앙에 힘을 얻는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3, 완전한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1)육신의 욕망이 없는 몸입니다.(결혼없음) (마태22;23-)에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첫째가 장가들어 죽고
둘째가 그 여인과 장가들고,,,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한 여인에게 결혼하였습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의 아내가 될까요 하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질문입니다. 주님의 답은 천국에는 시집도 아니 가고 장가도 아니 가고 천사와 같다고 답하셨습니다. 천국에는 인간의 욕망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신의 욕망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모든 범죄와 악한 모습들이 육신의 욕망을 바로 행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들입니다. 결혼이 좋은 것이지만 이것을 육신의 욕망으로 이용하면 부도덕한 자가 되고 맙니다. 물질이 중요하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하고 지나치게 탐욕을 가지면 타락하여 죄악의 길로 갑니다. 그러나 이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이와 같은 것을 벗어나기란 좀처럼 어렵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진정으로 올바로 사는 길이 신앙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나 인간의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서 멀어지고 세상으로 달려가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 자신을 벗어버리는 더 많은 기도와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을 입으면 이러한 모든 욕망에서 초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앙은 부활의 몸을 입을 연습 을 하는지 모릅니다. 마치 배우가 무대에서 할 연기를 리허설 하듯 이 말입니다. 이 땅은 하늘나라의 연습장입니다. (빌3;21)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 시리라," 부활의 몸은 인간의 육신적 추함이 사라진 놀라운 몸이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몸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 됩시다.
2) 참된 거룩한 모습일 것입니다. 어느 한 마을에 조그만 구멍 가계를 하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초라하고 가난하기 그지없는 노인 이였지만, 그는 항상 웃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이 "할머니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서 항상 웃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낸들 왜 어렵고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도 3일 후에 부활하셨으니 나도 3일만 기다리면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지요. 그리니 마음이 즐겁더군요" 우리에게는 3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3 세 번만 합시다 라고 합니다. 처음에 힘들어도 세 번만 하면 습관이 되고 어려움이 없습니다. 무슨 이이던 3번만 연달아서 하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됩니다. 처음 예수 믿고 교회 올 때, 3주만 연달아 오시면 그 다음 주 부터는 자연스럽게 예배에 출석할 수 있게 될것입니다. 처음 십일조 드릴 때 어려워도 3달만 연달아 드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 자연스럽게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3번중요) 마태17장에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제자들 은 놀랐습니다. 그 놀라운 모습이 바로 부활의 모습일 것입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면 제자들은 이곳에 천막을 치고 살자 고 했겠습니까 부활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습 일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학생 집회를 하는데 제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회하시는 전도사님이 나를 소개하면서 하는 말이"전 목사님은 언제 보아도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표현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목회사역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목사 닮았다고 말하는 것 을 기대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때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목사 같 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내가 기도 생활을 너무 못하기 때문이겠지, 라고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목사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 하였습니다. 그후 나는 참다운 성도의 모습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제는 이웃집 맘씨 좋은 아저씨가 되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어떤 권위나 위엄보다는 사랑이 넘치고 정이 있는 다정한 모습이고 싶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갔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의 모습 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천사 스데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누가 나를 보고 천사와 같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땅에서 천사로 살다가 하늘 나라에서 진짜 천사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악마로 살다가 하늘나라에서 천사로 살수 있겠습니 까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고전13장)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희미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 땅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부활의 몸 을 입을 때에는 정말로 확실하게 변화된 모습을 볼 것입니다. (고전15;43-44)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의 속한 형상을 입어라!' 부활절 말씀의 제목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상 곧 부활의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 이대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아직도 부활의 몸은 아니지만, 부활의 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엠마오의 제자처럼 낙심과 절망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으 로 돌아오는 신앙이 됩시다. 거기 잡으로 돌아갔던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실패와 좌절에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상량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 했던 스데반 집사처럼 천사의 모습으 로 변화되는 여러분의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있지만,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형상을 입고 사는 담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놀라운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의 먼저 신앙이 부활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먼저 부활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아침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3일후 그 무덤에 찾아갔던 많은 제자들은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천사의 소리 만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부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궁금한 것이 부활한 몸은 과연 어떤 몸일까 하는 것입니다. 본문 49절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였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우리는 부활한 우리의 몸의 모습을 살펴보면 서 부활의 축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입니다. (누가24;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부활의 몸은 우리가 가진 지금의 몸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도 분명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 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도마가 나중에 와서는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 라,'하니 그 말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마는 자기 일이 바빠서 제자들의 모임이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지, 자기가 똑똑한 척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다는 데도 끝까지 믿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입니다. 얼마후 부활하신 주님께서 도마에게도 나타나셨 습니다.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어 보고 네 손을 창자 국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 라.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부활의 몸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의 믿음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네가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이 신앙은 참으로 복된 신앙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믿는 성도들의 신앙, 참으로 놀라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이 신앙에 놀랍게 축복하셔서 부활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내러 줄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 부활의 몸은 인간의 연약함을 초월한 몸입니다. (요한20;19-20),,,"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문이 꼭 닫혔는 데도 주님은 들어오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어떤 장벽이나 장애도 받지 않는 초능력의 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행사 할 수 있는 능력의 몸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얼마나 연약합니까 조그만 추어도 벌벌 떨고, 조그만 더워도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먹을 것이 없으면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고, 배고픈 슬픔이 제일 이라지 않습니까 또 아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걸핏하면 감기요, 걸핏하면 몸살이요, 조금만 무리하면 온 몸이 죽을 지경이니 참으 로 한심할 노릇입니다. 저는 요즘 이빨 치료를 하는데 온통 이가 썩고 힘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몸이라는 것이 이토록 연약한 존재인 것을 우리는 진작 알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이렇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900여세를 살았으니 얼마나 강건하였습니까 추위도 더위도 모르고 살았으니 얼마가 강건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원래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강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토록 연약하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다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하고 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조그만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연약하고 나약한 모습 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더 이상 죄악에 머뭇거리지 말고,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놀라운 부활의 영광을 입어 담대하고 강한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73년 아프리카 우간다의 이디 아민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하고 있을 때, 셈판기 목사님은 부활절 예배 설교에서 부활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실 것을 설교하였답니다. 그날 밤 목사님의 사택에 무장 괴한 5명이 찾아와서 총을 거누었 습니다. 목사님은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2분의 시간을 달라 고' 하면서 그 젊은이들이 모르고 하는 이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답니다. 청년들은 자신의 무례함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답니다-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이 용기, 곧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 부활의 날에 엠마오의 제자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 믿음과 신앙에 힘을 얻는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3, 완전한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1)육신의 욕망이 없는 몸입니다.(결혼없음) (마태22;23-)에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첫째가 장가들어 죽고
둘째가 그 여인과 장가들고,,,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한 여인에게 결혼하였습니다. 천국에 가면 누구의 아내가 될까요 하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질문입니다. 주님의 답은 천국에는 시집도 아니 가고 장가도 아니 가고 천사와 같다고 답하셨습니다. 천국에는 인간의 욕망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신의 욕망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모든 범죄와 악한 모습들이 육신의 욕망을 바로 행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들입니다. 결혼이 좋은 것이지만 이것을 육신의 욕망으로 이용하면 부도덕한 자가 되고 맙니다. 물질이 중요하지만 이것을 잘못 사용하고 지나치게 탐욕을 가지면 타락하여 죄악의 길로 갑니다. 그러나 이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이와 같은 것을 벗어나기란 좀처럼 어렵습니다. 이러한 인간이 진정으로 올바로 사는 길이 신앙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나 인간의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서 멀어지고 세상으로 달려가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 자신을 벗어버리는 더 많은 기도와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을 입으면 이러한 모든 욕망에서 초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앙은 부활의 몸을 입을 연습 을 하는지 모릅니다. 마치 배우가 무대에서 할 연기를 리허설 하듯 이 말입니다. 이 땅은 하늘나라의 연습장입니다. (빌3;21)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 시리라," 부활의 몸은 인간의 육신적 추함이 사라진 놀라운 몸이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몸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 됩시다.
2) 참된 거룩한 모습일 것입니다. 어느 한 마을에 조그만 구멍 가계를 하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초라하고 가난하기 그지없는 노인 이였지만, 그는 항상 웃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이 "할머니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서 항상 웃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 "낸들 왜 어렵고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도 3일 후에 부활하셨으니 나도 3일만 기다리면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지요. 그리니 마음이 즐겁더군요" 우리에게는 3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3 세 번만 합시다 라고 합니다. 처음에 힘들어도 세 번만 하면 습관이 되고 어려움이 없습니다. 무슨 이이던 3번만 연달아서 하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됩니다. 처음 예수 믿고 교회 올 때, 3주만 연달아 오시면 그 다음 주 부터는 자연스럽게 예배에 출석할 수 있게 될것입니다. 처음 십일조 드릴 때 어려워도 3달만 연달아 드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 자연스럽게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3번중요) 마태17장에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제자들 은 놀랐습니다. 그 놀라운 모습이 바로 부활의 모습일 것입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면 제자들은 이곳에 천막을 치고 살자 고 했겠습니까 부활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습 일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학생 집회를 하는데 제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회하시는 전도사님이 나를 소개하면서 하는 말이"전 목사님은 언제 보아도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표현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목회사역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목사 닮았다고 말하는 것 을 기대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때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목사 같 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내가 기도 생활을 너무 못하기 때문이겠지, 라고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목사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 하였습니다. 그후 나는 참다운 성도의 모습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제는 이웃집 맘씨 좋은 아저씨가 되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어떤 권위나 위엄보다는 사랑이 넘치고 정이 있는 다정한 모습이고 싶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갔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의 모습 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천사 스데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누가 나를 보고 천사와 같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땅에서 천사로 살다가 하늘 나라에서 진짜 천사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악마로 살다가 하늘나라에서 천사로 살수 있겠습니 까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고전13장)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희미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 땅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부활의 몸 을 입을 때에는 정말로 확실하게 변화된 모습을 볼 것입니다. (고전15;43-44)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의 속한 형상을 입어라!' 부활절 말씀의 제목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상 곧 부활의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 이대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아직도 부활의 몸은 아니지만, 부활의 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엠마오의 제자처럼 낙심과 절망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으 로 돌아오는 신앙이 됩시다. 거기 잡으로 돌아갔던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실패와 좌절에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상량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 했던 스데반 집사처럼 천사의 모습으 로 변화되는 여러분의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있지만,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형상을 입고 사는 담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놀라운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신앙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의 먼저 신앙이 부활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먼저 부활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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