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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 참는다 (고전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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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목석 같은 사람이라도 사랑이라는 말만 들으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또한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도 가지가지입니다. 그 만큼 모두가 "사랑"에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런 말들이 있습니다. "여자는 사랑으로 살아간다.남자는 사랑할 사람이 있는 한 절대로 타락하지 않는다." 다 맞는 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고 하면 대개 남녀 관계를 생각합니다. 짜릿한 느 낌이라든가 부푼 가슴을 사랑이라고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사랑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전혀 다른 방 향에서 사랑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 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이번 과(科)에서는 "오래 참는 것" 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수많은 책들을 뒤져 보았어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하는 책은 성경을 제외하고는 단 한 권도 없었습니다. 오래도록 참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얘기요, 우리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사고 방식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은 짜릿 한 것", "사랑은 설레이는 것", "사랑은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반면,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에 대한 첫번째 정의를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정반대일 때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이 과연 맞는지 깊이 생각해 야 합니다. "오래 참는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마크로쑤미아입니다. "마 크로"는 영어의 "마이크로"(micro)에 반대되는 말로서 "크 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크로쑤미아란 아주 큰 고통을 잘 감내할 줄 아는 것을 말하며 성경은 바로 이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 말은 이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더 많이 따르며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고통과 관계된 것이지 즐거움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스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어여 쁜 여자를 사랑하는 것, 귀여운 아기를 사랑하는 것, 자기에게 잘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은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 가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 "오래 참음"에 담긴 뜻 =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말 속에는 네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참된 사랑은 고통과 관계됩니다. 참된 사랑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용납하고 오래 참아주면서 고통을 감수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둘째로, 인간은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그 시간은 아름답고 경건하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식 전날까지는 고통을 안 주던 사람들이 결혼식이 끝나는 그날부터 서로에게 고통을 줍니다. 왜 그런지 아 십니까 사실 결혼식 전까지는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부터 이성(理性)을 잃기 시작한다." 결혼할 때까지 사람들은 대개 서로에게 홀려 있습니다. 사실 이렇 게 홀리지 않으면 결혼도 안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결혼하고 나면 안심이 되니까 그때부터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죄성(罪性)이 가득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기 시작하니까 자연히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때는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주는 경우들도 가정 생활에서 체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선(善)을 베푸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사랑입니다.
셋째로, 나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욕을 했을 때 그에게 욕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 입니다. 내 쪽에서 참아 내는 것입니다.
넷째로, 참되 말없이 끝까지 참아 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대 상에도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우선 순위를 잘 알아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꼭 써야 할 때 적절하게 써야 합니다. 조금 덜 써야 할 때는 덜 쓰고, 먼저 쓸 때는 먼저 써야 합니다. 불평하지 않고 조용히 참아 주고 인내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첫번째 대상은 우 선 배우자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자녀들과 부모 님과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 사랑의
첫째 대상은 바로 우리 가 족들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또 가족 안에서도 자기 배우자가
첫째요, 그 다음이 자녀, 부모 , 형제 순입니다. 친족 다음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예수 믿지 않는 우리 동족들을,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온 세계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개 한 번 은 참아 줍니다. 어떤 사람은 두 번까지도 참아 줍니다. 또 인 격이 아주 훌륭한 사람들은 세 번까지도 참아 줍니다. 그러나 세 번까지 참고 나면 '사람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지. 나도 사람 인데…. 벌레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내가 인간으로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인간으로서는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또 참아 준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 참는 방법 = 참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소극적으로 참는 방법 이것은 속상한 일을 속으로 꾹꾹 씹으면서 분을 삼키는 방법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두 번 세 번 참아 주고는, 네 번째부터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면서 참고 또 참고 또 참 아서 인내해 가는 방법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아들이 아 버지에게, 직장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대들었다가는 늘 구박받 고 직장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억울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두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참을 때 결국 자기 자신만 망가지고 맙니다. 이렇게 참는 사람은 반드시 위장에 탈이 납니다. 소화가 안 되 고 위궤양에 걸립니다. 혈압이 올라갑니다. 잠을 못 자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지기도 합니다. 분을 꾹꾹 눌러 가며 참다 보면 마침내 한이 맺히고 멸시감과 혐오감과 증 오로 가득 차서 성격이 비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참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직장에서 귀가한 남편이 아내에게 공연히 트집 잡고 화를 내고 못 살게 구는 경우들이 이따금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내가 이해를 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직장 풍토 때문에, 또 밖에서 사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들이 이 해하지 못할 어려움을 안고 직장에서 가정으로 돌아옵니다. 직장 생활과 사업 관계에는 늘 긴장감이 따릅니다. 본래 자신의 성격 같은 것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관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을 풀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가정밖에 없게 되고 아내들은 밖에서와는 아주 다른 남 편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의 사정을 이해하고 참아 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참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라톤 선수가 목표 지점을 향 해 애쓰고 노력하며 끝까지 참아서 승리하는 것과 같은 그 적극적 인 자세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참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둘째/적극적으로 참는 방법 화가 잔뜩 나서 참기 어려울 때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로마의 황제 줄리어스 시이저는 A에서 Z까지 알파벳을 읊었는데 Z까지 하고 나면 대체로 화가 가라앉았 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시편 말씀이라든가 주기도문, 사도신경 같은 것을 암송하며 분을 가라앉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분노를 참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을 해 보거나 산보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큰소리로 통성 기도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 성령님의 열매로써 인내하는 것입니다. 몇 번 참다 가 더 이상 잘 안 될 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 에게 상처를 줄 때 바로 기도하기 바랍니다. "제 안에 계신 성령님, 저 사람이 저를 괴롭힙니다. 저에게 상 처를 줍니다. 저에게 욕을 합니다. 멸시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연약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제 마음에 주옵소서." 이렇게 처음부터 성령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께서는 그 고비를 넘기게 하시고, 당신이 사랑으로 참을 수 있도록 돌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인내의 참된 의미입니다. 오래 참는 사랑을 행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 연습이 잘되면, 분을 촉발하는 화살이 날아올 때마다, 미운 생각이 들 때마다, 순간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신앙 인격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랑이 계발되면 인생을 살아가기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 며 다른 사람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적극적인 인내가 부족해서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직장에 어려움이 있고, 사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버 지 하나님, 간절히 간구하오니, 우리 가슴 속을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참을 수 있는 인격을 길러 주시고 오래 참는 사랑을 계발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가 가는 곳마다 사랑의 본이 되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남편들 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사회 생활에서 시달리다 집에 돌아 오지만, 가정에서도 성령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인내하고 가정을 다 스릴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들로 남편들을 세워 주옵소서. 또한 아내들을 축복하옵소서. 자녀들과 잡다한 일들 때문에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내들에게 은혜 베푸사 남편들의 어 려움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들을 돌볼 수 있게 하시고 오래 참음 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가정이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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