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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특성 1 (고전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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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특성, 첫 번째 시간을 지난 주에 가졌다. 지난 주 우리는, 사랑이란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대할 때마다 오래 참는 특성을 가졌음을 배웠다. 그리고 사랑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온유라는 사실도 배웠다. 또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우월함이나 행복, 그리고 성공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뿐 만 아니라 사랑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우월감을 내세우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섬기는 것임을 배웠다. 이제 오늘도 이 사랑의 15가지 특성을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여섯째,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5절). 무례하다는 말은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무례한 사람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을 곧 잘 무시한다. 뿐 만 아니라 이런 사람은 초라하게 옷을 입은 사람을 멸시하며, 누추한 집에 사는 사람을 천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 땀흘려 일을 해 사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무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권위와 권리도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자신의 권위와 권리만 주장하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처신해 놓고선 타인은 그저 따라 복종만 하라고 한다. 이런 행동은 사랑을 가진 사람의 태도가 결코 아닌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렇게 표현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는 이 말의 원어는 '아스케모네이'라는 말인데 이 단어가 동일하게 사용되어진 곳이 바로 고린도전서 7:36이다. 고전 7:36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고전 7:36-38까지를 통해 바울은 결혼 적령기에 이른 딸의 혼인과 관련하여 주어진 권면의 말씀인데 여기서 '아스케모네이'라는 단어는 '결혼 적령기에 딸에게 무례히 행치 말라.' 다시 말해 '함부로 대하지 말고 예의를 갖추라.' '자녀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해 주어라'는 권면을 부모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향한 사랑은 때가 되면 그렇게 표현되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의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주의깊게 듣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이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조그마한 권리라도 존중하고 이를 지켜 준다. 이는 사랑의 사람만이 갖는 기본적인 예의인 것이다. 예의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에 대한 예의가 있고, 뿐만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있으며 또래 배들에 대한 예의가 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도 예의가 있다. 이런 모든 관계 속에서 예의를 지키는 사랑을 보이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일곱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5절).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항상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사람, 또 다른 하나는 항상 자신의 책임을 잘 감당하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전자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에 대하여는 전연 무관심하고 자기의 유익을 철저히 지키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혹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이 있을 찌라도 자신의 유익만은 결코 양보가 없는 사람이다. 그 유익이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하며 애쓴다. 바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참 신앙의 사람이다. 성도는 자기를 위한 이기심을 버린 만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애쓸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란다. 여덟째,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5절). 사람은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때, 급히 성내는 일이 있다. 타인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우리 모두는 성을 낼 수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삶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이런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을 잘 믿으려는 사람과 적당히 믿으려는 사람과 갈등 있다. 전도를 열심히 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다.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갈등도 있다. 뿐만 아니라. 중직자들 간의 갈등과 중직자와 평신도와의 갈등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신앙적이고 옳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의분이라는 명분으로 성을 내어 버려서 이윽고 그 갈등은 하나되기 어려운 극과 극의 상태로 치닫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참 사랑은 이런 성내는 것을 자제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만 하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더 앞서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불이익을 받는다고만 생각지를 않는다. 참 사랑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비록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를 다시 갚으려 하지 아니하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갈구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셨던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더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분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는 결단코 화가, 성이 계속해서 그 속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약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아홉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5절). '생각지 않는다'는 말은 영어를 보면 '저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심령에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것들을 계속 저장해 두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입은 손해나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계속해서 자신의 심령 속에다 저장을 해 놓는 것이다. 십년전 이십년 전에 있었던 잘못된 일들도 가득 저장해 놓고, 이로 인해 입었던 상처들까지도 다 차곡차곡 저장을 해 놓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때가 되면, 기회 주어지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한 것'의 원어를 살펴보면, 단순히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악한 것이 아니라 '아주 비열하고 행동으로, 저속한 행동으로 표현되는 악한 것'이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다. '생각지'라는 말도 원어의 뜻을 살펴보면 '계산하다', '갚는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심령 속에 저장시켜 둔 모든 일은 때가 되면, 그 때 당한 모든 수모와 모욕을 갚아 줄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아주 비열하고도 저속한 방법으로 그 때의 일을 다 갚아 주는 행동으로 표현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고 때가 되면 그것을 표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처받은 모든 일을 다 심령 속에 저장해 두는 것은 무서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모든 과거를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덮어 주는 것이다. 사랑은 남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는다. 설혹 내게 확실하게 잘못한 증거들이 있다고 할 찌라도 사랑은 그것을 악한 방법으로 갚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이다. 포용하고 감싸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 각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바로 그 사랑인 것이다. 열째,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6절). 여기서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신이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하여 듣고 말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지극히 옳지 못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시는가 만약 그 사람의 불의에 대하여, 혹은 불경건이나, 또 혹은 부도덕이던지 그것을 듣는 것을 즐기거나 혹은 그것을 말하는 것을 즐긴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인간의 그릇된 본성은 타인의 잘못을 이해 해주려고 애쓰고 덮어 주려는 것 보다는 들추어내고 옮겨 말하는 것을 즐기는 일을 더 기뻐한다. 무슨 말을 들었던, 무슨 말을 하였던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나 실수나 허물에 대하여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결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사람은 타인의 부족함을 숨겨주려 하고 이해 해주려 하고 기도하자고 말하며 그것을 옮겨 전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향한 눈물을 가진 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변화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열한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6절). 여기서 '진리'란 앞의 불의라는 말과 반대가 되는 개념으로'옳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해석한다면 '옳은 것과 함께 기뻐한다'는 말이 된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나를 위하지 않고 타인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사람은 남을 해롭게 하는 '불의'의 편에 설 수가 없고 항상 '옳은 것'만을 추구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불의한 일과 불의한 인격을 배척하고, 의로운 일과 의로운 인격과 더불어 동거동락 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살후 2:12'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미워하실 뿐 아니라 불의한 자를 심판하신다." 이러므로 참사랑을 소유한 사람은 단순히 부드러운 성격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불의를 미워하고 옳은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진정한 진리, 다시 말해 하나님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부단히 나누어주는 일을 해서 우리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므로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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