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성도 (고전13:11)
본문
마18:3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의 말씀에서는 “이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두가 지의 말씀은 서로 상반되는 말씀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 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겸손하며 진실하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초보적인 신앙을 버리고 성숙하고 발전된 장성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자라나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머니의 젖을 빨고 눈에 보이지 않게 자라 나듯이 모든 사람의 신앙도 시간이 지나 감에 따라서 자라서 강해지고 담대해 져야 할 것입니다. 자라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나 병든 것입니다. 병든 신앙은 자라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어 있습니다. 죽은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엊그제 메마른 대지위에 봄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대지는 싹이 나고 잎이 돋아날 것이며 생명을 가진 모든 식물들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비가 하늘에서 내리지만 생명이 있는 나무는 이 빗물을 통하여 그 생명에 활기를 얻고 힘차게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똑 같은 비가 내리지만 죽은 나무는 그 빗물로 더 빨리 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신앙 장성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의 단비가 내리고 하나님의 뜨거운 은혜가 쏟아질 때마다 신앙이 자라고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살아있는 나무는 바람이 세계 불어 쳐서 뿌리가 흔들리게 되면 뿌리가 충격을 받아서 뿌리를 땅속 깊이 깊이 내리게 되듯이 살아 있는 신앙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시험이 닥쳐오면 그 신앙은 더욱 강하게 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비바람 속에서 썩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은 신앙, 병든 신앙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낙망하며 쓰러지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 제일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통하여 장성한 신앙이 어떠한 신앙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장성한 신앙은 스스로 자립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장성하지 못한 어린아이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남을 의지하게 됩니다. 먹는 일, 잠자는 일, 배설하는 일, 모두가 어머니의 손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남의 도움속에서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갓 태어나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게 되고 조금 자라서는 스승의 도움을 받게 되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도 부부간에 도움을 주고 받고 살아 가게 되며 늙게 되면 자식들의 도움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온전하게 성숙한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도리어 남에게 도움을 베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부모를 의지하는 의존도가 외국 사람들에 비하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 이들은 고등학교 대학을 가르치고도 결혼까지 부모가 시켜주고 결혼 후에 살 집까지 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구 젊은 이들은 18세가 되면 부모에게 독립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18세가 되면 부모의 집을 떠나 직장에서 생활을 하여 스스로 자립하여 살게 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자기들이 스스로 돈을 벌면서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나라와는 환경적인 차이가 많이 있겠지만 외국의 젊은 이들이 한국의 젊은이들보다는 자립정신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이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립정신을 키워주기 위하여 한 가지씩 기술을 가르처 주게 되는 데 사도바울도 어렸을 때 배운 기술이 천막을 만드는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어렸을 때 부모에게 배운 천막을 만드는 기술로 생활을 하면서 전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이 자립정신이 약한 것이 신앙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몸은 어른 들이지만 신앙은 장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간신히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성한 신앙은 스스로 알아서 기도하고 스스로 전도하고 스스로 말씀을 붙잡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일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자립하는 신앙을 가지셔야 합니다. 해라 해라 소리질러서 억지로 하는 것은 기쁨이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도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은 그 일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며 일의 결과도 귀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잊어버리지 말고 스스로 해야 합니다. 주일성수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전도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빛과 소금이 되여 남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가 장성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장성한 신앙이란 어려운 환경도 극복하여 이기는 신앙이 장성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영향은 많이 받고 자라게 됩니다. 추위도 잘 못 참고 더위도 잘 못 참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렸을 때 잘 참지 못하던 것도 잘 참게 됩니다. 또한 어린애들은 주위 환경이 나쁘면 금방 물들어서 금새 불량한 아이로 자라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교회 안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자라난 아이와 세상에서 자라난 아이는 나중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교육이 참으로 중요하여 무엇이든지 본대로 말하고 배운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성도는 사도 바울이 빌4:12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의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배고픔도 당하고 비천과 고통을 당했지만 자신은 장성한 신앙인으로서 이를 잘 이겼다는 확신에 찬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장성한 신앙은 주변 환경이 험하여 우리에게 고통이 온다고 하여도 환경0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 환경을 잘 활용해서 신앙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 바로 장성한 산앙인 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장성한 신앙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 잘 해결하는 능력을 소유 하는 자 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문제만 만들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부모가 책임을 지고 부모들이 먹여주고 입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을 깨고 들어오기도 하고 유리창을 깨기도 하고 남의 아이를 때려 주고 오기도 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이의 특성입니다. 아이 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비정상적인 아이인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문제만 일으키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몇 가지로 재미있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팔꽃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아침에만 잠깐 얼굴을 비치고 저녁에는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해바라기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교인입니다. 즉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만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감투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감투를 주어야 교회에 잘 나오고 감투를 써야만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감투교인이고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력거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심방을 가서 끌고 와야 나오는 교인입니다. 핑계교인이 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 교인입니다. 벙어리 교인이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는 친구끼리 모이면 그렇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를 하려고 하면 입이 달라 붙는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험채점관 교인이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목사의 설교를 비평을 하고 교회에 왔다 가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흠을 잡는 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판자의 자세로 교회에 오는 그는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람선교인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입니다. 이는 이 교회 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교인입니다. 묵상교인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입니다. 집에서는 잠이 안 와서 고생을 하고 텔레비전은 동해물과 나올 때까지 보면서 교회에 와서는 예배가 시작하면서부터 조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인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이고 이런 교인은 자신과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4. 장성한 신앙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린아이가 가장 잘하는 일중에 하나는 달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입으로 달라고만 합니다. “신발 사줘” “옷 사줘” “돈 줘”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옷도 사다 드리고 신발도 사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도 그와 같습니다.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매일 달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게 되고 또한 “내가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몸을 받쳐서 살게 되고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충성하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나 같은 못난 사람을 부르시고 주님의 귀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가 어린아이와 같을 때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오순절날 성령님을 충만이 받고 그 신앙이 뜨거워 졌습니다. 장성한 신앙이 된 후에는 주님을 위하여 잡혀가고 매를 맞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어린아이 신앙은 작은 일에도 불평을 하고 낙심을 하지만 장성한 신앙은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내가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감사를 드리게 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때 힘들다고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가 작은 일을 시켜도 그것이 그렇게 하기가 싫었습니다. 친구들과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일을 시키니 짜증만 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린아이 신앙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피곤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열심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으로 충성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장성한 신앙은 무엇이든지 잘 먹게 됩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딱딱한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든지 씹어서 삼킬 수 있는 이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젖을 먹어야만 살수 있는 것이지요. 옛날 텔레비전에서 에스키모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내용의 영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유명한 배우 안소니퀜입니다. 넓은 눈 속에서 두 남녀가 눈 집을 짖고 살아갑니다. 남편은 한번 사냥을 나가면 삼개월 씩 걸리기도 합니다. 남편이 사냥을 떠난 사이에 부인은 혼자서 아이를 낳게 되는 데 아이가 이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와서 아이를 보더니 이빨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고 내다 버리라고 합니다. 그 때 아내는 내가 고기를 씹어서 먹이겠으니 같이 살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애원을 하는 것이 였습니다. 그 에스키모 인들은 사람이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지면 눈 속에 집을 짖고 버리는 것이 그들의 풍속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이빨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신앙도 튼튼한 이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거친 음식도 씹어서 삼켜야 하고 덜익은 음식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이빨이 없고 위장병에 걸려서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우유나 먹는다면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잘 이해를 하고 잘 받아드려서 은혜로운 생명의 양식을 삼는 장성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6. 장성한 신앙은 분별력이 있는 신앙입니다. 아이들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눈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눈치가 빠르면 어찌 아이들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1) 최소한 주일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이며 이날은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께 예배하는 날이라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 나의 소득의 십분의 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네 것 내 것을 구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치는 교육중에 하나가 내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거짓 선지자와 참 목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병을 고치고 복을 준다고 진리인줄 알고 따라 가다가는 이단 사이비에 빠져 멸망을 당합니다. 거룩한 척하고 진실한 척하고 능력 있는 척하지만 이단 거짓 목자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인가 인간의 뜻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일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리시고 장성한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의 말씀에서는 “이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두가 지의 말씀은 서로 상반되는 말씀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 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겸손하며 진실하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초보적인 신앙을 버리고 성숙하고 발전된 장성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자라나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머니의 젖을 빨고 눈에 보이지 않게 자라 나듯이 모든 사람의 신앙도 시간이 지나 감에 따라서 자라서 강해지고 담대해 져야 할 것입니다. 자라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나 병든 것입니다. 병든 신앙은 자라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어 있습니다. 죽은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엊그제 메마른 대지위에 봄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대지는 싹이 나고 잎이 돋아날 것이며 생명을 가진 모든 식물들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비가 하늘에서 내리지만 생명이 있는 나무는 이 빗물을 통하여 그 생명에 활기를 얻고 힘차게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똑 같은 비가 내리지만 죽은 나무는 그 빗물로 더 빨리 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신앙 장성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의 단비가 내리고 하나님의 뜨거운 은혜가 쏟아질 때마다 신앙이 자라고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살아있는 나무는 바람이 세계 불어 쳐서 뿌리가 흔들리게 되면 뿌리가 충격을 받아서 뿌리를 땅속 깊이 깊이 내리게 되듯이 살아 있는 신앙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시험이 닥쳐오면 그 신앙은 더욱 강하게 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비바람 속에서 썩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은 신앙, 병든 신앙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낙망하며 쓰러지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 제일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통하여 장성한 신앙이 어떠한 신앙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장성한 신앙은 스스로 자립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장성하지 못한 어린아이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남을 의지하게 됩니다. 먹는 일, 잠자는 일, 배설하는 일, 모두가 어머니의 손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남의 도움속에서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갓 태어나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게 되고 조금 자라서는 스승의 도움을 받게 되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도 부부간에 도움을 주고 받고 살아 가게 되며 늙게 되면 자식들의 도움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온전하게 성숙한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도리어 남에게 도움을 베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부모를 의지하는 의존도가 외국 사람들에 비하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 이들은 고등학교 대학을 가르치고도 결혼까지 부모가 시켜주고 결혼 후에 살 집까지 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구 젊은 이들은 18세가 되면 부모에게 독립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18세가 되면 부모의 집을 떠나 직장에서 생활을 하여 스스로 자립하여 살게 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자기들이 스스로 돈을 벌면서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나라와는 환경적인 차이가 많이 있겠지만 외국의 젊은 이들이 한국의 젊은이들보다는 자립정신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이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립정신을 키워주기 위하여 한 가지씩 기술을 가르처 주게 되는 데 사도바울도 어렸을 때 배운 기술이 천막을 만드는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어렸을 때 부모에게 배운 천막을 만드는 기술로 생활을 하면서 전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이 자립정신이 약한 것이 신앙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몸은 어른 들이지만 신앙은 장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간신히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성한 신앙은 스스로 알아서 기도하고 스스로 전도하고 스스로 말씀을 붙잡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일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자립하는 신앙을 가지셔야 합니다. 해라 해라 소리질러서 억지로 하는 것은 기쁨이 없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도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은 그 일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며 일의 결과도 귀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잊어버리지 말고 스스로 해야 합니다. 주일성수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전도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빛과 소금이 되여 남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가 장성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장성한 신앙이란 어려운 환경도 극복하여 이기는 신앙이 장성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영향은 많이 받고 자라게 됩니다. 추위도 잘 못 참고 더위도 잘 못 참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렸을 때 잘 참지 못하던 것도 잘 참게 됩니다. 또한 어린애들은 주위 환경이 나쁘면 금방 물들어서 금새 불량한 아이로 자라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교회 안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자라난 아이와 세상에서 자라난 아이는 나중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교육이 참으로 중요하여 무엇이든지 본대로 말하고 배운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성도는 사도 바울이 빌4:12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의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배고픔도 당하고 비천과 고통을 당했지만 자신은 장성한 신앙인으로서 이를 잘 이겼다는 확신에 찬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장성한 신앙은 주변 환경이 험하여 우리에게 고통이 온다고 하여도 환경0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 환경을 잘 활용해서 신앙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 바로 장성한 산앙인 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장성한 신앙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 잘 해결하는 능력을 소유 하는 자 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문제만 만들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부모가 책임을 지고 부모들이 먹여주고 입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을 깨고 들어오기도 하고 유리창을 깨기도 하고 남의 아이를 때려 주고 오기도 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이의 특성입니다. 아이 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비정상적인 아이인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문제만 일으키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몇 가지로 재미있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팔꽃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아침에만 잠깐 얼굴을 비치고 저녁에는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해바라기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교인입니다. 즉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만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감투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감투를 주어야 교회에 잘 나오고 감투를 써야만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감투교인이고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력거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심방을 가서 끌고 와야 나오는 교인입니다. 핑계교인이 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 교인입니다. 벙어리 교인이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는 친구끼리 모이면 그렇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를 하려고 하면 입이 달라 붙는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험채점관 교인이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목사의 설교를 비평을 하고 교회에 왔다 가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흠을 잡는 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판자의 자세로 교회에 오는 그는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람선교인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입니다. 이는 이 교회 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교인입니다. 묵상교인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입니다. 집에서는 잠이 안 와서 고생을 하고 텔레비전은 동해물과 나올 때까지 보면서 교회에 와서는 예배가 시작하면서부터 조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인이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이고 이런 교인은 자신과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4. 장성한 신앙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린아이가 가장 잘하는 일중에 하나는 달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입으로 달라고만 합니다. “신발 사줘” “옷 사줘” “돈 줘”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옷도 사다 드리고 신발도 사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도 그와 같습니다.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매일 달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게 되고 또한 “내가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몸을 받쳐서 살게 되고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충성하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나 같은 못난 사람을 부르시고 주님의 귀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가 어린아이와 같을 때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오순절날 성령님을 충만이 받고 그 신앙이 뜨거워 졌습니다. 장성한 신앙이 된 후에는 주님을 위하여 잡혀가고 매를 맞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어린아이 신앙은 작은 일에도 불평을 하고 낙심을 하지만 장성한 신앙은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내가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감사를 드리게 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때 힘들다고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가 작은 일을 시켜도 그것이 그렇게 하기가 싫었습니다. 친구들과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일을 시키니 짜증만 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린아이 신앙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피곤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열심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으로 충성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장성한 신앙은 무엇이든지 잘 먹게 됩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딱딱한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든지 씹어서 삼킬 수 있는 이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젖을 먹어야만 살수 있는 것이지요. 옛날 텔레비전에서 에스키모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내용의 영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유명한 배우 안소니퀜입니다. 넓은 눈 속에서 두 남녀가 눈 집을 짖고 살아갑니다. 남편은 한번 사냥을 나가면 삼개월 씩 걸리기도 합니다. 남편이 사냥을 떠난 사이에 부인은 혼자서 아이를 낳게 되는 데 아이가 이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와서 아이를 보더니 이빨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고 내다 버리라고 합니다. 그 때 아내는 내가 고기를 씹어서 먹이겠으니 같이 살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애원을 하는 것이 였습니다. 그 에스키모 인들은 사람이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지면 눈 속에 집을 짖고 버리는 것이 그들의 풍속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이빨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신앙도 튼튼한 이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거친 음식도 씹어서 삼켜야 하고 덜익은 음식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이빨이 없고 위장병에 걸려서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우유나 먹는다면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잘 이해를 하고 잘 받아드려서 은혜로운 생명의 양식을 삼는 장성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6. 장성한 신앙은 분별력이 있는 신앙입니다. 아이들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눈치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눈치가 빠르면 어찌 아이들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1) 최소한 주일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이며 이날은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께 예배하는 날이라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 나의 소득의 십분의 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네 것 내 것을 구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치는 교육중에 하나가 내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에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거짓 선지자와 참 목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병을 고치고 복을 준다고 진리인줄 알고 따라 가다가는 이단 사이비에 빠져 멸망을 당합니다. 거룩한 척하고 진실한 척하고 능력 있는 척하지만 이단 거짓 목자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인가 인간의 뜻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일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리시고 장성한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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