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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치 (고전13:1-3)

본문

고린도전서 12:31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한다. 12장은 많은 은사를 소개한다. 그래서 12장을 은사장이라고 부른다. 이제 은사장을 마무리 하면서 31절의 말씀으로 지금까지 소개했던 이런 많은 은사들 보다 더 큰 은사가 있는데 이것을 사모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 더 큰 은사는 사랑이다. 본문은 이 사랑이 성도가 받은 은사들 중에 가장 큰 은사라고 말한다. 은사 중 최고의 은사로 사랑을 정하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는 사랑에 비하여 다른 은사들은 작은 은사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은사들은 다 중요하다. 그러나 성도들마다 받은 은사들이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덜 귀하다고 여길 수 없다. 모든 성도들은 다 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기 받은 귀하고 필요한 은사들 중에 사랑을 더 큰 은사로 하나님이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랑의 은사는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모든 은사를 다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은사를 가졌던 상관없이 모든 성도는 사랑의 은사를 공통적으로 가져야 한다. 어떤 대단한 은사를 가졌다 해도 사랑의 은사가 없다면 그가 가진 은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더 큰 은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사모함은 이를 귀중히 여겨 갈망함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고 그것만을 원하는 마음의 간절한 소원을 의미한다. 사모하면 사모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얻을 수 있는 제일 좋은 길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 제일 좋은 길 즉 방법이 13장이다. 13장에서는 먼저 성도들에게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귀한 은사를 가졌다해도 아무 가치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첫째, 사랑은 어떤 방언보다 귀하다(1절 ).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것이라'고 본문은 말한다. 여기서 '방언'과 '말'은 실은 동일한 말이다.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사람들과 천사들의 방언들'이다. '방언'이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알아듣도록 말하고 설명함을 의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의 사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성도에게는 성경 말씀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다. 이는 성령님이 주시는 여러가지 은사들 중에서 최고의 은사이다. 고전12:8은 성령님이 주시는 여러 은사들 중에서 제일 우선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셨으며 다음 '지식의 말씀'을 주셨다고 설명한다. 성도들 중에는 이 제일 우선된 은사를 받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나가서 성도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전하며 또 지식의 말씀을 전하기도 한다.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이나 다 성경 말씀이다. 성경 말씀을 잘 설명하여 그대로의 의미를 이해되게 하면 지식의 말씀이 된다. 이 지식의 말씀을 성도들의 삶 속에 가장 적절하게 적용되도록 가르치면 이것이 바로 지혜의 말씀이 된다. 교회 안에서 교역자나 당회원, 권사, 집사 혹은 구역장이나 교사들이 열심으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전한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형식이나 외식이 아니다.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사람의 음성이면서도 동시에 천사의 음성처럼 들린다. 교회가 이런 분위기를 이룬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교회 내에 이렇듯 풍성한 말씀의 은사가 있다고 해도 성도와 성도간에 사랑이 없다면 이런 모든 말씀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리나는 구리'란 구리로 만든 악기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트럼펫과 같은 악기이다. 관현악을 연주함에 있어 연주곡의 가장 중요한 멜로디는 대개 트럼펫과 같은 나팔에 의해 연주된다. '꽹과리'는 심벌즈를 의미한다. 연주곡의 절정에서 대개 이 심벌즈가 연주된다. 다른 음을 주도하는 구리로 만든 트럼펫 소리나 혹은 연주의 절정에서 연주되는 심벌즈를 마주치는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 곡에 대한 깊은 감동과 흥분을 자아낸다. 그러나 연주가 다 끝나고난 다음에 나팔이나 심벌을 만져 보면 구리와 같은 딱딱하고 차가운 쇠붙이로 만들어진 악기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사람들 앞에서 마치 천사가 설명하는 것과 같은 깊은 감동을 주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성도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애정이 없다면 그는 차갑고 딱딱한 악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에 서서 말씀을 증거할 때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데도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눌 때 딱딱하고 차가운 악기처럼 사랑없는 냉랭함을 느끼게 된다면 그가 증거하는 모든 말씀들도 진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위대한 목회자는 성도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더 위대한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목회자에게서 이런 사랑을 공급받기 위해 다같이 노력하시고 이런 목회자를 사모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란다.
둘째, 사랑은 어떤 능력보다 귀하다(2절). 어떤 이에게는 예언하는 능이 있다. 예언이란 장래 사를 미리 알고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는 은사이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를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야 한다. 이들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보통 사람이 쉽게 할 수 없는 신령한 모든 지식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신령하고 귀한 종들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이런 신령한 종들에게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우리는 이런 선지자들 중에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로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비교될 수 없는 신령한 비밀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동시에 이들은 신령한 세계에 관한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죽은 아이도 살아나도록 하였다. 갈멜산에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단의 제물을 다 태워지게도 하였다. 삼년 육개월간 땅에 비가 오지 않았는데 엘리야가 기도하자 비가 왔다. 이들을 통하여 나타난 이런 일들은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분명히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의 결과였다. 성도 여러분! 예언의 능이나 모든 비밀과 신령한 지식을 깨달아 아는 것이나, 산을 옮길 만한 믿음에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런 능력을 소유한 이들이 있을 때, 교회는 더욱 활기에 차고 부흥하며 힘이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겸손히 섬기며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며 군림하려고 한다. 이런 경우 이런 귀한 은사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교회는 놀라운 은사가 시행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은사로 사람들의 영혼을 바로 인도하고자 하는 깊은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길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자.
셋째, 사랑은 어떤 희생보다 귀하다(3절). 흔히 사랑이란 자기 희생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 두 가지 큰 자기 희생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일부가 아니라 그 재산의 전부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재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한 사랑을 최고로 실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가지, 사랑이 없다면 이런 일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깨닫는 게 있다. 사랑이 없이도 자신의 모든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함보다는 일종의 자기 의를 자랑했거나 공명심을 나타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그는 의를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웃을 행한 지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면 이웃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이는 교회의 국내, 국외선교나 구제사업에도 동일하다. 교회가 이웃을 향한사랑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없어도 그리고 농어촌 교회 성도들을 사랑함이 없이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보에 깨알같은 글씨로 우리가 돕고 선교하는 곳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교회의 사업일 뿐이지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물질의 나눔보다는 뜨거운 사랑의 나눔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본문이 소개하는 다른 하나의 큰 자기 희생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고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놓는 것이다. 원수들은 그를 붙잡아 화형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화형대에 세워 놓고 불을 질렸다. 곧 그의 몸은 불길에 휩싸였고, 불태워져 마침내 재가 되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사랑을 최고로 실천한 사람이다. 그러나 본문은 말한다. 사랑이 없다면 이런 일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 없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수 있는가 본문을 보면 이런 일이 가능하며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남다른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시간을 내어 물질을 투자하여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이는 오히려 또 다른 형제에게 상처를 주며 자기 의만 과시할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이런 감정적인 자기 희생보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런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넘쳐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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