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고전12:12-27)
본문
제가 처음 개척을 하고 목회를 할 때는 정말 힘이 빠지는 게 바 로 무관심이었습니다. 목사가 밥을 굶는지 어떤지, 교회 청소와 교회 관리는 누가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개척 초기 시절 저희 집과 교회에서 통틀어 한 달에 쌀 한 가마가 없어 졌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드나들면서 신나게 먹어댔습니다. 저희도 신이 나서 밥을 열심히 해 댔습니다. 교회와 목사 가정의 사정 이 어떤 지는 전혀 관심 밖입니다. 그저 열심히 먹어대는 겁니다. 뿐만아니라, 교우 서로에게도 전혀 관심을 돌릴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 정도의 신앙이었습니다. 그저 내 앞만 바라봅니다. 내 치닥거리만 열심히 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상의할 사람이 없었었습니다. 어떤 교우가 너무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릴 형편도 못되었습니다. 그저 목사를 중심으로 방사선처럼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옆의 교우는 보이 지 않을 뿐 더러 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정도의 신앙들이 었지요. 이사를 가도 짐 하나 날라줄 생각을 못했고, 아파서 병원 에 입원해 있어도 병 문안을 가지도 않았습니다. 직장이나 일터 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더구나 나눌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하고 근근히 신앙 유지하는 정도이지, 남을 돌아보거나 이 웃 형제 교우와 생활 나눔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 때는 너무 무관심한 따로 국밥 같은 모래알 교우들 때문에 어 떻게 하면 비빔밥을 만들까 무진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너무 비빔밥이 되어서 야단들입니다. 아예 비빔밥이 아니라 찰떡들이 되어서 야단들입니다. 한 사람의 고통이 커지면 주변의 교우들이 안절부절을 못하고 자기가 해체될 것 같은 위험 에 빠집니다. 정작 본인은 담대한데도 옆에서 기도해주고 걱정하는 이웃 교우들은 한숨의 세월을 보내는 겁니다. 이 정도면 찰떡 도 보통 찰떡이 아니지요. 본드표 찰떡입니다. 한 사람이 폭격을 맞으면 제풀에 다른 사람들이 다 넘어집니다. 한 사람이 우울하 면 다른 교우들이 제풀에 더 우울해집니다. 개척 초기에는 너무 둔감해서 문제였는데 이제는 또 너무 민감해져서 탈입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구나. 죽은 미이라에서 피가 흐르고 신경줄이 민감하게 연결 된 건강한 인간이 되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그렇지요 이건 바로 건강하다는 표시입니다. 한 가지만 조 심하면 됩니다. 너무 민감해서 자신의 지체활동이 망가지지만 않 으면 됩니다. 저희 교회는 조그맣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처음 오면 마음이 부담스럽다(경상도 사투리로 '마음이 데다')고 합니다. 우선은 낮은 교회라서 그렇습니다. 또 하 나는 개척 교회이니 지체가 서로 환하게 보여서 그런 겁니다. 저 희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이상적인 그리스도의 몸에 가까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교회는 몸이요, 그리스도인 각자는 지체이다' 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비유 중에서 왜 교회를 굳이 몸에 다 비유했을까요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교회를 몸에 비유 한 사실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몸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 라"(12절) 교회로 바꿔도 같은 뜻이 통합니다. "교회는 하나인데 많은 교우가 있고, 교회의 교우는 많으나 한 교회인 것과 같이 " 이렇게 해석해도 됩니다. 몸 안의 각 기관은 전체 몸을 다 담고 있다고 합니다. 동양의학 에서 밝혀 낸 것입니다. 그,래서 손과 발은 모든 전체 몸의 축소 판이라고 합니다. 사지백체의 기관이 손과 발의 혈맥에 다 연결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수지침이 발전했습니다. 눈동자를 찍어서 몸의 상태를 알아맞히는 그런 한의학이 있습니다. 이것을 홍체학 이라 합니다. 눈동자 홍체에 인체의 사지백체가 다 축소되어 있 다는 겁니다. 그래서 건강진단을 홍체로 합니다. 독일에서 기계를 들여왔다니까 서양의학에서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서 임상에 활용하는 겁니다. 이렇듯 한 지체는 전체 지체의 축소판입니다. 한 지체는 전체 지체의 잘못과 건강을 다 담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몸은 하나라는 겁니다. 조직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입니다. 한 지체에게 전체 교회의 건강과 질병이 다 투영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떨어져 있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발이 손 더러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이 붙지 아니하였다 할 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15절) 너무 마음이 부담 스럽다고 해서 떨어질 수 있나요 이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건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면 그 뿐입니다. 관심 안 두면 그뿐입니다. 마음 철수시키면 그 뿐입니다. 심지어는 친척간에도 그렇고,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우끼리는 완벽하게 연결된 한 몸이기에 불가능합니다.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절대절명의 관계 이게 바로 교회입니다.
셋째는 쓸데없다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눈이 손 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21절)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쓸데없다'하는 겁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쓸데없다 하는 주체 가 누굽니까 예수님이 아닙니다. 바로 "나"입니다. 교회에 쓸데 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쓸 데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 쓸데가 있고 또 요긴합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요즈음 우리말로 말하면 백해무익한 존재다. 아무 도움이 되는 게 없어! 이렇게 말합니다. 부담스러운 지체, 약한 지체, 어리석은 지체, 비판의 칼 날을 가지고 있는 지체, 덜 성숙한 지체, 이런 교우들을 향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어!"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쓸 데 없는 지체라고 선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바로 영적인 원리입니다.
넷째로는 약한 지체, 추한 지체가 더 요긴하다는 사실입니다. "몸 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 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22-23절) 거 참 심장이 참 예쁘게 생겼다 이런 말 안 하지요 콩팥 참 근사하 게 생겼다 안 하지요 췌장이 참 멋있게 생겼네 안 하지요 그러나 그런 지체가 더 요긴합니다. 간은 약하고 못생겼지만 아주 요긴합니다. 다섯째 기쁨과 슬픔의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26절) 고통은 같이 고통받고 영광은 단지 즐거워하는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한 지체'와 '모든 지체'라는 단어입니다. 한 지체의 고통이 모든 지체에게로 가는 겁니다. 제적 과반수 지체의 고통이라야 모든 지체의 고통으로 갈 수 있다. 이게 아닙니다. 출석 과반수의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우리가 다 같이 즐거 워하는 걸로 합시다. 이게 아닙니다. 한 지체라도 고통과 영광이 있으면 당연히 모든 지체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생 산적입니까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당연히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 교회입니다. 그렇게 되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건 대단한 위험성 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고통으로 인해 해체될 위험 까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이게 이상적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이 이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 지체로 인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당하는 겁니다. 이게 십자가입니다. 왜요 몸이니까요. 그러면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일까요 이 세상에서 죽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토록 거룩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했나요 수많은 것 중에서 왜 몸으로 비유했나요 이것이 오늘 본문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핵심적인 질문이어야 합니다. .
바로 예민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가 이상적인 교회 입니다. 건강성을 빨리 회복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더 나아가 서로 치유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암 세포가 있으면 모든 인체가 함께 노력합니다. 총력을 기울입니다. 인체는 미생물이나 병균 등 원래 자기와 다른 것이 침입한 것을 인식하고 파괴하는 자연적인 치유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면역이라고 합니다. 백혈구는 몸 안에서 아메바 운동을 하며 몸 안에 들어온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몸에 염증이 생기면 백혈구 수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백혈병은 백혈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면역이 없어집니다. 나쁜 세균 과의 전쟁을 하지 못합니다. 몸 안에는 항상 세균이 득실득실 거립니다. 그러나 건강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약해지면 그 병균이 병을 일으킵니다. 마 찬가지입니다. 모자라는 지체, 악한 지체, 이방적인 지체, 덜 성숙 한 지체, 세상의 구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지체, 세속의 독소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지체, 이런 지체들이 있습니다. 건강하면 아 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활력소가 됩니다. 그러나 병들면 이런 지체들 때문에 전체 몸이 쓰러집니다. 그런 까닭 에 우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항상 깊은 영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가 살고, 남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항상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 이런 운동력으로 강철도 녹이 고 문제도 삼킬 수 있게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문제를 문제로 보지 말게 하시고 문제를 덮을 수 있는 해일 같고 폭포수 같은 은총을 주시 옵소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내가 병들고 아플 때, 고통 당하고 힘겨울 때, 우리의 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유해 주십니다. 건 강하게 회복해 주십니다. 잘 활동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건강 해진 우리 지체들은 이웃 형제 지체의 고통과 아픔을 섬겨야 합니다. 모자람과 부족을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병을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지체의 상호 사역이라 하지 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땅 위에서의 작음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의 이상을 포 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지체이니까 다른 지체가 병들 때도 내가 열심히 해 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전체 몸이 병을 물리치고 건강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들었다고 내가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 시간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시다. 우리 교회는 정말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우리 교회는 몸의 역할을 잘 해 내고 있습 니까 정말 우리 교회는 서로를 잘 치유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몸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 라"(12절) 교회로 바꿔도 같은 뜻이 통합니다. "교회는 하나인데 많은 교우가 있고, 교회의 교우는 많으나 한 교회인 것과 같이 " 이렇게 해석해도 됩니다. 몸 안의 각 기관은 전체 몸을 다 담고 있다고 합니다. 동양의학 에서 밝혀 낸 것입니다. 그,래서 손과 발은 모든 전체 몸의 축소 판이라고 합니다. 사지백체의 기관이 손과 발의 혈맥에 다 연결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수지침이 발전했습니다. 눈동자를 찍어서 몸의 상태를 알아맞히는 그런 한의학이 있습니다. 이것을 홍체학 이라 합니다. 눈동자 홍체에 인체의 사지백체가 다 축소되어 있 다는 겁니다. 그래서 건강진단을 홍체로 합니다. 독일에서 기계를 들여왔다니까 서양의학에서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서 임상에 활용하는 겁니다. 이렇듯 한 지체는 전체 지체의 축소판입니다. 한 지체는 전체 지체의 잘못과 건강을 다 담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몸은 하나라는 겁니다. 조직체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입니다. 한 지체에게 전체 교회의 건강과 질병이 다 투영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떨어져 있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발이 손 더러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이 붙지 아니하였다 할 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15절) 너무 마음이 부담 스럽다고 해서 떨어질 수 있나요 이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건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면 그 뿐입니다. 관심 안 두면 그뿐입니다. 마음 철수시키면 그 뿐입니다. 심지어는 친척간에도 그렇고,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우끼리는 완벽하게 연결된 한 몸이기에 불가능합니다.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절대절명의 관계 이게 바로 교회입니다.
셋째는 쓸데없다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눈이 손 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21절)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쓸데없다'하는 겁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쓸데없다 하는 주체 가 누굽니까 예수님이 아닙니다. 바로 "나"입니다. 교회에 쓸데 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쓸 데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 쓸데가 있고 또 요긴합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요즈음 우리말로 말하면 백해무익한 존재다. 아무 도움이 되는 게 없어! 이렇게 말합니다. 부담스러운 지체, 약한 지체, 어리석은 지체, 비판의 칼 날을 가지고 있는 지체, 덜 성숙한 지체, 이런 교우들을 향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어!"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쓸 데 없는 지체라고 선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바로 영적인 원리입니다.
넷째로는 약한 지체, 추한 지체가 더 요긴하다는 사실입니다. "몸 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 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22-23절) 거 참 심장이 참 예쁘게 생겼다 이런 말 안 하지요 콩팥 참 근사하 게 생겼다 안 하지요 췌장이 참 멋있게 생겼네 안 하지요 그러나 그런 지체가 더 요긴합니다. 간은 약하고 못생겼지만 아주 요긴합니다. 다섯째 기쁨과 슬픔의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26절) 고통은 같이 고통받고 영광은 단지 즐거워하는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한 지체'와 '모든 지체'라는 단어입니다. 한 지체의 고통이 모든 지체에게로 가는 겁니다. 제적 과반수 지체의 고통이라야 모든 지체의 고통으로 갈 수 있다. 이게 아닙니다. 출석 과반수의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우리가 다 같이 즐거 워하는 걸로 합시다. 이게 아닙니다. 한 지체라도 고통과 영광이 있으면 당연히 모든 지체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생 산적입니까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당연히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 교회입니다. 그렇게 되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건 대단한 위험성 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고통으로 인해 해체될 위험 까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이게 이상적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이 이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 지체로 인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당하는 겁니다. 이게 십자가입니다. 왜요 몸이니까요. 그러면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일까요 이 세상에서 죽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토록 거룩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했나요 수많은 것 중에서 왜 몸으로 비유했나요 이것이 오늘 본문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핵심적인 질문이어야 합니다. .
바로 예민하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가 이상적인 교회 입니다. 건강성을 빨리 회복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더 나아가 서로 치유하는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암 세포가 있으면 모든 인체가 함께 노력합니다. 총력을 기울입니다. 인체는 미생물이나 병균 등 원래 자기와 다른 것이 침입한 것을 인식하고 파괴하는 자연적인 치유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면역이라고 합니다. 백혈구는 몸 안에서 아메바 운동을 하며 몸 안에 들어온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몸에 염증이 생기면 백혈구 수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백혈병은 백혈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면역이 없어집니다. 나쁜 세균 과의 전쟁을 하지 못합니다. 몸 안에는 항상 세균이 득실득실 거립니다. 그러나 건강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약해지면 그 병균이 병을 일으킵니다. 마 찬가지입니다. 모자라는 지체, 악한 지체, 이방적인 지체, 덜 성숙 한 지체, 세상의 구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지체, 세속의 독소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지체, 이런 지체들이 있습니다. 건강하면 아 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활력소가 됩니다. 그러나 병들면 이런 지체들 때문에 전체 몸이 쓰러집니다. 그런 까닭 에 우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항상 깊은 영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가 살고, 남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항상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 이런 운동력으로 강철도 녹이 고 문제도 삼킬 수 있게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문제를 문제로 보지 말게 하시고 문제를 덮을 수 있는 해일 같고 폭포수 같은 은총을 주시 옵소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내가 병들고 아플 때, 고통 당하고 힘겨울 때, 우리의 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유해 주십니다. 건 강하게 회복해 주십니다. 잘 활동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건강 해진 우리 지체들은 이웃 형제 지체의 고통과 아픔을 섬겨야 합니다. 모자람과 부족을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병을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지체의 상호 사역이라 하지 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땅 위에서의 작음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의 이상을 포 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지체이니까 다른 지체가 병들 때도 내가 열심히 해 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전체 몸이 병을 물리치고 건강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들었다고 내가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 시간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시다. 우리 교회는 정말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우리 교회는 몸의 역할을 잘 해 내고 있습 니까 정말 우리 교회는 서로를 잘 치유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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