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肢體) (고전12:18-21)
본문
미국에서 공부할 때 시험준비를 몇 달 한적이 있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 지 않고 책 읽고 노트에 정리하고 외우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보고 말했다. "아이구 난 돈주고 하라고 해도 공부는 못하겠다. 그걸 어떻게 해냅니까" 물 론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집중되어 있었다. 사실 상 공부하는 방법만 알면 공부처럼 쉬운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정작 어려운 것은 한국에 와서 일을 할 때였다. 대인관계는 공부처럼 쉽지 가 않았다. 나 자신은 좋은 생각으로 잘 하려고 해도 남들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밥맛 없는 사람도 있었고 정말 형제보다 더 가깝고 친하다가도 어느날 별안간 원수 로 돌변하는 수도 종종 있었다. 나이가 먹어도 인간관계는 어려웠다. 공부나 일은 여기 비하면 쉬운 것이다. 단지 피곤하지만 않으면 하는 것만 큼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공부가 나를 미워하거나 원수 취급하는 일은 없었다. 일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를 주고 몸이 아파서 계속하지 못할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나하고 원수가 되고 이 패이고 뒤에서 나를 욕하고 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그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웠다. 이 일은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자신도 뒤에서 비판을 많이 듣고 남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스럽게 꼬이거나 과장이 되어서 돌 아들어오기도 한다.
교회에 나와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예배하고 좋게 친교 하고 가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말이 나고 오해도 하고 서로 상처도 받고 하나님을 믿어도 괴로워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성경에 교회에 소속되니 사람들을 뭐라고 일컫는가 서로 친구라고 하지 않았다. 서로 동업자나 계모임이나 친목단체라고 하지 않았다. 의리를 지키는 결사단체라고도 하지 않았다. 공산당처럼 "동무 동무"하고 부르라고 하지도 않 았다. 돈 갖다 바치고 절대 복종하는 무서운 단체도 아니다. 교회의 멤버들을 무엇이라고 불렀던가 肢體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한 몸이란 말이다. 이 한 몸이란 말은 남녀의 결혼에나 사용되는 말이다. 부모나 형제를 보고 한 몸이라 하지 않는다. 부부간에만 사용되는 기막힌 말이다. 왜 이 말을 교인 들에게 사용하는가 신앙적으로 보면 오히려 부부관계보다도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다. 놀랄 일이다. 남녀의 결혼은 육체및 정신의 결합일뿐이다. 그러기에 한쪽이 죽으면 관계가 끝이 난다. 천국에서까지 부부는 아닌 것이다. 교인들 간에는 그 보다 더 심각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몸이라는 말이다. 이 관계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도 있지만 그것보다 도 오히려 영혼의 차원까지 이르른다. 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내 형제는 내 말대로 하는 이들이다." 그리스도와 형제 관계는 살아있는 동안만이 아 니라 영원까지다. 이는 교인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여기 의미가 있다. 만약 교인끼리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요 심지어는 한 지체라는 생각이 없다면 그들의 영적 힘은 약할 것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유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이 적으며 적을수록 자신이 머 리인 그리스도와 느슨하게 연결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령도 느껴지 지 않고 그의 생명과 능력과 비죤도 물론 깨달아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지체를 성경은 사람의 몸을 비유해서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신자들은 몸이다. 머리의 생각대로 지체 모두가 잘 움직이면 건 강한 사람이다. 지체의 감각이 느껴지면 몸이 제대로 된 사람이다. 만약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상이 생긴 것이다. 팔이나 다리가 고통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문제이다. 몸의 중요 부분이 마비되면 죽은 사람이다. 교회도 이와 꼭 같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잘 움직이면 건강한 교회요 교인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된다면 절대로 바로된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바로 된 교회의 조건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적으로 선포될 것과 성찬 예식이 그 의미대로 바로 이행될 것을 들고 있다. 바로 된 교회의 멤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생명과 능력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몸에 아픔이 생기듯, 교회도 그러하다. 만약 교인중 누가 아픔을 당할 때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 었다. 거기다가 만약 교인중 누가 아픔을 당함을 알면서도 전체가 무관심하다 면 그것은 죽은 교회이다. 정말로 서로 지체라고 한다면 아픔을 같이 느껴야 할 것이다. 병이 있거나 아이들이 시험을 보거나 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큰 도움은 두 가지다. 기도를 하는 것과 조심스럽게 같은 마음을 나 누는 것이다. 무조건 덤벼들어서 도와주기보단 마음을 같이하고 기도하는 일을 더 해야 한다. 또 이런 것을 이용하여서 교인들에게 부담 주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면 감싸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본인을 정말 위하는 일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실망할 일이 너무 많다. 마귀는 우리가 교회에서 재미 를 보고 은혜 받아서 행복하게 살고 영원한 천국까지 잘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목사에게 실망하거나 교인들끼리 낙심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신앙생활은 절대로 쉬운게 아니다. 이 심사를 잘 통과해야만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실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로 다니거나 큰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좋은 설교만 듣고 오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절대로 주의 몸이 아니다. 절대로 주의 은혜를 누리며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교회를 주신 것은 그를 통해서 신자가 탄생하고 성장하게 하려는 것이다. 외형적인 교회는 아직 천국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돕는 훈련장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제대로 훈련되도록 지체를 각각 두셨다고 한다. 우리의 몸을 보라. 모두가 다르다. 그러나 서로들 이해를 못하면 비판만 할 것이다. 만약 눈이 발을 깔보고 발은 눈을 비난한다면 몸이 제대로 설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르다.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마음이 상한다. 서로 실망해서 비난만하면 교회는 서지 못한다. 얼마 전에 성격 테스트를 했다. 그것을 하고나서 나 자신과 남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 테스트는 네 부분이다. 우선 주의집중이나 관 심의 방향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에 사람이 달라진다. 다음으로는 정보 수집 을 사실적 구체적으로 보던지 상상력과 영감을 더 의지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이해를 가진다. 경험이냐 아니면 아이디어를 의지하느냐의 차이다. 다음에는 결정을 내리는데 진실과 사실을 더 중시하느냐 아니면 사람과 관 계를 더 중시하느냐를 본다. 마지막으로 규칙과 습관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융 통성이 많고 그때 그때 적응하느냐에 따라서 행동방식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 렇듯 네 분야가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임에 따라서 사람 성격의 유형은 16가지로 다른게 나타난다. 이처럼 사람의 성격과 이해와 행동방식은 다르다. 외향적인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바로 말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사람은 절 대로 금방 말하지 않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성적인 사람이 한 마디 한 것이 더 오래간다. 외향적인 사람의 말은 바뀔 가능성이 더 많고 잊어버리기도 하며 때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외향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의 말도 자기 처럼 가볍게 여기고 반대로 내성적인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마음에 새긴다. 어떤 사람은 예의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내용이나 의리를 오히려 중시한다. 어떤 사람은 책임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다 른 사람은 타인의 감정과 대인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자기가 소중히 여 기는 부분이 상처를 받으면 상대방과 갈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비난하게 되고 쉽게 나쁜 인간이요 신앙이 없고 인격도 없는 사람으로 간단히 몰아버린다. 논리와 규칙을 좋아하는 사람이 즉흥적이고 융통성이 많은 사람을 이해하 기 쉽지 않다. 서로 상대방을 참기 어렵다.
그러므로 서로 싫어할 가능성이 많다. 사람들이 속이거나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았을 때도 말이나 행동을 보고 대단한 상처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행동 양식과 생각이 달라서이다. 왜 사람들은 서로 같지 않은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만물에 여러가지 피조물이 있고 서로 조화가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서 로 다르게 지으셨다. 그래서 세상 만사는 복잡하고 묘미가 있게 마련이다. 만 약 똑같은 성격의 사람들만 있다면 혼란은 훨씬 줄겠지만 너무도 인간관계는 무미건조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몸의 여러 지체가 서로 다르듯이 교회의 구성원들도 서로 성격과 생각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이제사람들 이해하는 것이 훨씬 달라질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귄다면 대인관계에서 상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회사건 학교이건 동네이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면 훨씬 이해도 좋아 지고 조화스럽게 살게 된다. 특별히 교회는 더욱 그러하다. 세상 사람들은 안 사귀면 그만이지만 주의 몸은 밀접하게 연관이 않되면 은혜는 내리지 못한다. 자 이제 우리가 특별히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 주가 우리의 머리라는 사실 이다. 그로부터 생명과 힘이 각자에게 전달되어 내려온다. 우리가 주에게 확실 하게 붙어있기만 한다면 주의 능력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공급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들을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뼈 가 있고 신경이 있고 피가 흐르듯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서로를 맺어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 진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서 조화로운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야만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진다. 아름다 운 교회라는 것은 아름다운 주의 몸이라는 뜻이다. 지체는 서로 감싼다. 서로 상하게 하면 모두가 망하는 것이다. 손은 발을 위하고 발은 손을 위한다. 서로 가 이해하고 도울 때 몸은 산다. 이렇게 천국의 삶이 미리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에는 주가 머리가 되신다. 또한 교회에는 눈에 보이는 어른들이 있고 서로의 지체들이 있다. 서로가 남 비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부모를 욕하 고 부부끼리 늘 비난하는 집안은 잘 될 수 없다. 내 귀에도 목사를 비난하고 어른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이해는 하지만 말하는 본인들에게는 해로운 일이다. 그렇게 주의 몸을 상하게 하면 자기 자신이 먼저 상한다. 그리스도는 절대로 하늘에서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기 위 해서 우리처럼 되셨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사랑은 우선 같아져야 만 한다. 그렇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남의 말을 할 때는 그 사람 의 입장이 되어서 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구조를 좀 더 이해하는 자세 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더욱 주의 몸에 참여한다. 그렇게 뼈가 연결되고 힘줄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머리로부터 생명과 힘 은 더욱 확실하게 전달되어 올 것이다. 그의 사랑이 흐르고 기쁨과 행복도 역 시 넘쳐올 것이다. 아름다운 지체는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생긴 그대로 있는 그대로 자부심을 가지라. 그리고 이 시간 다시 한번 마음을 모으고 회개 하자. 지체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그 사람의 생긴대로 사랑하지 못한것을.
교회에 나와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예배하고 좋게 친교 하고 가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말이 나고 오해도 하고 서로 상처도 받고 하나님을 믿어도 괴로워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성경에 교회에 소속되니 사람들을 뭐라고 일컫는가 서로 친구라고 하지 않았다. 서로 동업자나 계모임이나 친목단체라고 하지 않았다. 의리를 지키는 결사단체라고도 하지 않았다. 공산당처럼 "동무 동무"하고 부르라고 하지도 않 았다. 돈 갖다 바치고 절대 복종하는 무서운 단체도 아니다. 교회의 멤버들을 무엇이라고 불렀던가 肢體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한 몸이란 말이다. 이 한 몸이란 말은 남녀의 결혼에나 사용되는 말이다. 부모나 형제를 보고 한 몸이라 하지 않는다. 부부간에만 사용되는 기막힌 말이다. 왜 이 말을 교인 들에게 사용하는가 신앙적으로 보면 오히려 부부관계보다도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다. 놀랄 일이다. 남녀의 결혼은 육체및 정신의 결합일뿐이다. 그러기에 한쪽이 죽으면 관계가 끝이 난다. 천국에서까지 부부는 아닌 것이다. 교인들 간에는 그 보다 더 심각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몸이라는 말이다. 이 관계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도 있지만 그것보다 도 오히려 영혼의 차원까지 이르른다. 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내 형제는 내 말대로 하는 이들이다." 그리스도와 형제 관계는 살아있는 동안만이 아 니라 영원까지다. 이는 교인들끼리도 마찬가지다. 여기 의미가 있다. 만약 교인끼리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요 심지어는 한 지체라는 생각이 없다면 그들의 영적 힘은 약할 것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유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이 적으며 적을수록 자신이 머 리인 그리스도와 느슨하게 연결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명령도 느껴지 지 않고 그의 생명과 능력과 비죤도 물론 깨달아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지체를 성경은 사람의 몸을 비유해서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신자들은 몸이다. 머리의 생각대로 지체 모두가 잘 움직이면 건 강한 사람이다. 지체의 감각이 느껴지면 몸이 제대로 된 사람이다. 만약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상이 생긴 것이다. 팔이나 다리가 고통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문제이다. 몸의 중요 부분이 마비되면 죽은 사람이다. 교회도 이와 꼭 같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잘 움직이면 건강한 교회요 교인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된다면 절대로 바로된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바로 된 교회의 조건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적으로 선포될 것과 성찬 예식이 그 의미대로 바로 이행될 것을 들고 있다. 바로 된 교회의 멤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생명과 능력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몸에 아픔이 생기듯, 교회도 그러하다. 만약 교인중 누가 아픔을 당할 때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 었다. 거기다가 만약 교인중 누가 아픔을 당함을 알면서도 전체가 무관심하다 면 그것은 죽은 교회이다. 정말로 서로 지체라고 한다면 아픔을 같이 느껴야 할 것이다. 병이 있거나 아이들이 시험을 보거나 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큰 도움은 두 가지다. 기도를 하는 것과 조심스럽게 같은 마음을 나 누는 것이다. 무조건 덤벼들어서 도와주기보단 마음을 같이하고 기도하는 일을 더 해야 한다. 또 이런 것을 이용하여서 교인들에게 부담 주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면 감싸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본인을 정말 위하는 일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실망할 일이 너무 많다. 마귀는 우리가 교회에서 재미 를 보고 은혜 받아서 행복하게 살고 영원한 천국까지 잘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목사에게 실망하거나 교인들끼리 낙심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신앙생활은 절대로 쉬운게 아니다. 이 심사를 잘 통과해야만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실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로 다니거나 큰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좋은 설교만 듣고 오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절대로 주의 몸이 아니다. 절대로 주의 은혜를 누리며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교회를 주신 것은 그를 통해서 신자가 탄생하고 성장하게 하려는 것이다. 외형적인 교회는 아직 천국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돕는 훈련장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제대로 훈련되도록 지체를 각각 두셨다고 한다. 우리의 몸을 보라. 모두가 다르다. 그러나 서로들 이해를 못하면 비판만 할 것이다. 만약 눈이 발을 깔보고 발은 눈을 비난한다면 몸이 제대로 설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르다.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마음이 상한다. 서로 실망해서 비난만하면 교회는 서지 못한다. 얼마 전에 성격 테스트를 했다. 그것을 하고나서 나 자신과 남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 테스트는 네 부분이다. 우선 주의집중이나 관 심의 방향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에 사람이 달라진다. 다음으로는 정보 수집 을 사실적 구체적으로 보던지 상상력과 영감을 더 의지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이해를 가진다. 경험이냐 아니면 아이디어를 의지하느냐의 차이다. 다음에는 결정을 내리는데 진실과 사실을 더 중시하느냐 아니면 사람과 관 계를 더 중시하느냐를 본다. 마지막으로 규칙과 습관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융 통성이 많고 그때 그때 적응하느냐에 따라서 행동방식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 렇듯 네 분야가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임에 따라서 사람 성격의 유형은 16가지로 다른게 나타난다. 이처럼 사람의 성격과 이해와 행동방식은 다르다. 외향적인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바로 말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사람은 절 대로 금방 말하지 않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성적인 사람이 한 마디 한 것이 더 오래간다. 외향적인 사람의 말은 바뀔 가능성이 더 많고 잊어버리기도 하며 때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외향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의 말도 자기 처럼 가볍게 여기고 반대로 내성적인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마음에 새긴다. 어떤 사람은 예의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내용이나 의리를 오히려 중시한다. 어떤 사람은 책임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다 른 사람은 타인의 감정과 대인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자기가 소중히 여 기는 부분이 상처를 받으면 상대방과 갈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비난하게 되고 쉽게 나쁜 인간이요 신앙이 없고 인격도 없는 사람으로 간단히 몰아버린다. 논리와 규칙을 좋아하는 사람이 즉흥적이고 융통성이 많은 사람을 이해하 기 쉽지 않다. 서로 상대방을 참기 어렵다.
그러므로 서로 싫어할 가능성이 많다. 사람들이 속이거나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았을 때도 말이나 행동을 보고 대단한 상처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행동 양식과 생각이 달라서이다. 왜 사람들은 서로 같지 않은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만물에 여러가지 피조물이 있고 서로 조화가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서 로 다르게 지으셨다. 그래서 세상 만사는 복잡하고 묘미가 있게 마련이다. 만 약 똑같은 성격의 사람들만 있다면 혼란은 훨씬 줄겠지만 너무도 인간관계는 무미건조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몸의 여러 지체가 서로 다르듯이 교회의 구성원들도 서로 성격과 생각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이제사람들 이해하는 것이 훨씬 달라질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귄다면 대인관계에서 상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회사건 학교이건 동네이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면 훨씬 이해도 좋아 지고 조화스럽게 살게 된다. 특별히 교회는 더욱 그러하다. 세상 사람들은 안 사귀면 그만이지만 주의 몸은 밀접하게 연관이 않되면 은혜는 내리지 못한다. 자 이제 우리가 특별히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 주가 우리의 머리라는 사실 이다. 그로부터 생명과 힘이 각자에게 전달되어 내려온다. 우리가 주에게 확실 하게 붙어있기만 한다면 주의 능력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공급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들을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뼈 가 있고 신경이 있고 피가 흐르듯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서로를 맺어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 진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서 조화로운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야만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진다. 아름다 운 교회라는 것은 아름다운 주의 몸이라는 뜻이다. 지체는 서로 감싼다. 서로 상하게 하면 모두가 망하는 것이다. 손은 발을 위하고 발은 손을 위한다. 서로 가 이해하고 도울 때 몸은 산다. 이렇게 천국의 삶이 미리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에는 주가 머리가 되신다. 또한 교회에는 눈에 보이는 어른들이 있고 서로의 지체들이 있다. 서로가 남 비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부모를 욕하 고 부부끼리 늘 비난하는 집안은 잘 될 수 없다. 내 귀에도 목사를 비난하고 어른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이해는 하지만 말하는 본인들에게는 해로운 일이다. 그렇게 주의 몸을 상하게 하면 자기 자신이 먼저 상한다. 그리스도는 절대로 하늘에서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기 위 해서 우리처럼 되셨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사랑은 우선 같아져야 만 한다. 그렇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남의 말을 할 때는 그 사람 의 입장이 되어서 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구조를 좀 더 이해하는 자세 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더욱 주의 몸에 참여한다. 그렇게 뼈가 연결되고 힘줄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머리로부터 생명과 힘 은 더욱 확실하게 전달되어 올 것이다. 그의 사랑이 흐르고 기쁨과 행복도 역 시 넘쳐올 것이다. 아름다운 지체는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생긴 그대로 있는 그대로 자부심을 가지라. 그리고 이 시간 다시 한번 마음을 모으고 회개 하자. 지체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그 사람의 생긴대로 사랑하지 못한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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