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습3:14-20)
본문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절망 상황들과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낙담하여 실망중에 헤매이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참 기쁨과 구원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으며, 참송과 감사를 드릴 이유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백성됨을 인하여 온갖 수난 속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온 남은 자들은 주께 복을 받습니다. “스반냐”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으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요시야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바냐가 활동을 시작했던 때는 비록 요시야가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아직도 요시야 이전의 므낫세라는 악한 왕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교적으로, 도적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든 면에서 지극히 타락하고 어두운 때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스바냐를 통해 심판의 선포를 내리게 하셨고, 심판의 메시지가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실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신다들은 세상이 점점 더 타락해 가고 끊임없이 전쟁과 살인과 방종이 이어지는 것을 볼 때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숨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김기순=아가동산교주, 중동과 한반도 동시 전쟁억제 능력, 물질만능주의) 그러나 이러할 때 기뻐합시다. 왜 즐거워해야만 합니까
1. 형벌을 면하였기 때문입니다. “(습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 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형벌을 받은 까닭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벌을 제하였다고 하는 것은 형벌의 원인이 되는 죄를 사하였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시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시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던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그렇습니다. 형벌은 죄 때문인데 형벌을 면하였다는 것은 사죄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기뻐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코ㅒ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주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셨으며(사 53:4),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주셨으며(시 103:3), 또한 우리의 원수까지도 쫓아내셔서 평강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형벌을 면하게 하시는 용서의 복을 주셨습니다.
2. 임마누엘의 약 속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습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 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자신이 매우 기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아들이 잘 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만 기쁜 일이 아니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여준 자식도 기쁜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인간들이 죄를 고백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렇게 될 때에 구속받은 성도들은 매우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이 기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 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4. 괴롭게 하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습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받는 괴로움은 오래 가지 아니합니다. 바울 사도는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살후1: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살후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뻐하시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5. 여호와의 목장으로 부르시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죄악 세상에 흩어져서 유리하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기뻐하며 목장으로 인도하듯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아온 양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게 되며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 재림시 땅에서 왕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나라꼴은 엉망이고, 백성들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타락하여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어, 심판의 날이 멀지 않은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스바냐를 부르시고 그 백성들에게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현실을 손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그날, 기쁨의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엄청난 영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부패와 또한 심판의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려오는 가장 고통스러운 때, 그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수많은 핍박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의심치 않고 하나님만을 의탁했던 사람들, 바로 그 남은 자들에게 오늘 본문의 구원과 회복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바로 이런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비록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돌보지 않고 숨은 것닽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고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깨고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그의 오심과 구원하심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참기쁨을 허락하시며 복을주십니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 기쁨, 이 구원의 감격을 맛본 바울은 그래서 감옥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형벌을 면하였기 때문입니다. “(습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 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형벌을 받은 까닭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벌을 제하였다고 하는 것은 형벌의 원인이 되는 죄를 사하였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시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시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던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그렇습니다. 형벌은 죄 때문인데 형벌을 면하였다는 것은 사죄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기뻐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코ㅒ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주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지셨으며(사 53:4),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주셨으며(시 103:3), 또한 우리의 원수까지도 쫓아내셔서 평강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형벌을 면하게 하시는 용서의 복을 주셨습니다.
2. 임마누엘의 약 속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습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 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자신이 매우 기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아들이 잘 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만 기쁜 일이 아니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여준 자식도 기쁜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인간들이 죄를 고백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렇게 될 때에 구속받은 성도들은 매우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이 기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 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4. 괴롭게 하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습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받는 괴로움은 오래 가지 아니합니다. 바울 사도는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살후1: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살후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뻐하시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5. 여호와의 목장으로 부르시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죄악 세상에 흩어져서 유리하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기뻐하며 목장으로 인도하듯이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아온 양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게 되며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 재림시 땅에서 왕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나라꼴은 엉망이고, 백성들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타락하여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어, 심판의 날이 멀지 않은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스바냐를 부르시고 그 백성들에게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현실을 손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그날, 기쁨의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엄청난 영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부패와 또한 심판의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려오는 가장 고통스러운 때, 그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수많은 핍박과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의심치 않고 하나님만을 의탁했던 사람들, 바로 그 남은 자들에게 오늘 본문의 구원과 회복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바로 이런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비록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돌보지 않고 숨은 것닽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고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깨고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그의 오심과 구원하심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참기쁨을 허락하시며 복을주십니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 기쁨, 이 구원의 감격을 맛본 바울은 그래서 감옥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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