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교회 (고전10:16-17)
본문
몇 년 전에 일본에서 동북아 신학대학협의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미국계 일본 사람이 훌륭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탁월했고 영어는 완벽했다. 그 에게 물었다. "일본 사람들의 신학교육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당 황해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인지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학생의 교육이 마쳐졌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그는 당황했다. 다른 일본인들과 토의한 뒤에 말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신학교육의 목표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것이 신학교육으로서의 고유한 것입니까"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의 목표는 일본 신학생들을 선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복음과 영혼구원에 대한 관심은 아무데도 없었다.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다. 우선 쉽게 말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라. 내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가 더 쉽게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앞으로 십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또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가 20년 뒤에는 아니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어떤 상태이어야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는가 때때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이러한 생각이 없다면 그냥 닥치는대로 사는 사람 이다. 결혼한 사람은 가족의 목표를, 그리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의 목표 를 가져야 한다. 목적의식이 없다면 십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지금보다 아무 것도 나아진게 없을 것이다. 여생은 훨씬 줄어들어있고 얼굴은 주름살로 채워졌고 몸의 기력은 쇠했을 것이다. 어느날 죽음이 별안간 들어닥친다. 아름다운 교회가 선지 4년이 되었다. 이 교회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제 한 번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냥 교회에 와서 예배하고 돌아가고 그렇게 살 다가 천당가는 것인가 우리의 목표는 죽은 뒤에나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이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이루는 목표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이미 목표의 맛을 보고 경험하는 목표이다. 무엇이 우리의 목표여야 하는가 그것은 주께서 세우신 교회의 목표에 가장 접근하려는 것이 목표이다. 주 께서 왜 교회를 세우셨던가 그 목적을 우리가 알아야 거기에 우리의 목표를 맞출 것이다. 그것은 간단하다.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이 전해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두 가지의 방법을 취하셨다. 하나는 외형적 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내면적인 것이다. 이 둘이 합쳐서 온전케 한다. 내면적으로는 주께서 믿는 사람들의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는 영으로 믿는 사람의 속에 들어오신다. 그래서 한 몸을 이루신다.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다 면 그는 들어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신자가 되려면 먼저 할 일이 그를 자기 속에 모셔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 그 가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속의 그리스도를 보고 신자를 자녀 삼으신다. 어떤 사람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점점 죽어가게 되었다. 심 장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병원에서 죽어가 고 있을 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그에게 행운이 닥쳤다. 어떤 청년이 교 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는데 부모가 심장을 기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 서 몸의 일부라도 계속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곧 심장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심장을 제공받은 사람은 바른 정신이 돌아왔다. 뇌 에 피가 잘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계단도 문제 없이 뛰어오를 수 있었다. 혈색도 달라졌다. 매사에 용기가 생겼다. 심장을 제공한 청년의 부모는 이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아들의 한 부분을 느끼는 것이다. 둘 사이는 가족 이상의 관계가 된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다 받았다. 신자는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 자는 언제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의 모든 축복을 공유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특별한 것이 된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신자의 속에서 계속된다. 그의 생명, 그의 능력, 그 의 사랑과 꿈은 그리스도인 속에 확실히 살아있다.
그러므로 이제 온 세상은 신자에게 복종하게 된다. 천사도 마귀도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신자 에게 당할 수 없다. 단지 신자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알아야 한다. 신자는 자 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수록 그 생활도 놀라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더욱 강하고 분명해지려면 신자는 외부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서 로를 격려하고 자기들의 삶으로 서로를 유익하게 한다. 그래서 그들 전체가 다 모여 강한 모임을 형성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작은 그리스도들은 모여서 온전한 몸을 만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온전한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 신자들은 이 외형적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내 면적으로 누리는 그리스도가 이제 외형적으로 더 분명하게 경험된다. 그리하 여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예배한다. 그리고 교회에 내리는 축복을 통해서 더욱 더 자기 속에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 힘을 누리게 된다. 마치 아기가 젖을 먹듯, 신자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젖을 받아먹는 것이다. 떼를 지어 사는 동물들을 보라. 그들에게서 이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들소떼들이 모여있을 때는 사자들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리 저리 몰 아쳐서 무리에서 이탈되게 만든다. 그러면 간단히 사자들의 밥이 되어버린다. 마찬가지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탈된다면 간단히 마귀의 밥이 된다. 교회를 떠나서 참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어디 말해보라. 요즘 많은 신자들은 교회에 가지만 교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 가 큰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에 참석한다. 좋은 설교를 듣고 훌륭한 연 주를 듣는다. 그리고 돌아온다. 그게 다다. 아무 의무도 봉사도 할게 없다. 얼마나 편한가 그러나 그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몸은 서로 간에 교제가 있어야 한다. 머리의 지시대로 힘든 일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한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다면 개인이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힘을 더 가지게 된다. 신앙의 성장도 무리에 붙어 있어야 가능하다. 몸은 항상 다 른 부분을 위해서 일하면서도움을 받는다. 운동을 하고 필요한 일을 한다. 괴로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식당에 가기 위해서 다리는 바삐 움직여야 한다. 음식 먹기 위해서 허리는 불편하다. 그러나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회 집회에 열심을 내라고 성경은 말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관습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더욱 힘써서 모이라는 것이다.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에 모이는데는 이유가 없다. 길이 막힌다던지 시간이 없다든지 몸이 아프다 든지 그러면 안와도 된다는 말이 없다. 몸에 참여하는 것은 무조건이다. 왜 그런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지 않 고 어디서 말씀을 듣겠는가 거기에 가지 않고 어떻게 합심해서 기도하겠는 가 거기 가지 않고 어떻게 성도의 교제를 나누겠는가 하나님은 신자 각 사람을 다르게 만드셨다. 받은 은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모임에 합해야 완전한 힘을 발휘하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해 진다. 이것은 보여지는 말씀 성찬을 통해서 더 분명해 진다. 이제 가끔 우리는 성찬을 나눈다. 그리스도는 떡을 놓고서 자기의 모습을 상징하셨다. "내가 영 으로 너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이 떡을 나눔과 같다." 그는 자기 몸을 찢듯 떡을 나누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떡은 그들 속에 들어가서 한 몸이 된다. 다 시 그 떡들은 모여서 본래의 완전한 한 덩어리의 떡을 이루어 준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축복해 주시는 방법이다. 내면적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서 한 몸을 이룬다. 그래서 그의 모든 축복이 우리 것이 되게 하신다. 또한 우리가 다 모여서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몸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 각자는 그 의몸의 한 부분이다. 손도 있고 발도 있고 눈도 귀도 입도 있다. 안보이는 내 장도 혈관도 있다. 모두가 모여서 한 몸을 이루고 서로를 유익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보완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쏟 아주신다. 둘중 하나만 없어도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 것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을 모른다면 우리는 그의 몸 구실을 할 수 없다. 아무 힘이 몸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들려지지 않고 그것이 삶에 적용되도록 가르쳐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아름다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이 바로 전 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러가지 면에서 혼탁 한 과정에 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말씀에는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가 빠져 있음을 본다. 아무리 유명한 교회라도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들려지지 않 고 다른 복음이 들려지면 저주가 있을 것이다. 절대로 축복은 없다. 교회는 다른 기초 위에 서 있어서는 않된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위에 세워져야 한다. 목사나 지도자들의 인간적 욕심이 지배해서는 않된다. 그러한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서 로 기도해야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일들만이 들 려지고 그것으로 우리의 삶이 힘을 얻어야 한다. 그것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던가 교회에서 봉 사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은 축복된 사람들이다. 꽃을 꽂고, 청소를 한다.
제 2여전도회원들이 토요일에 와서 교회를 청소한다. 청소하는 사람에게 돈주고 하라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에 헌금 바치기를 기뻐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라. 우리 주 예수님 믿고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문제이다. 우리 주 예수님를 믿을수록 얼굴은 더욱 굳어지고 사람은 사나워진다면 삶도 더 힘들어 진다면 분명하다. 우리 주 예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난 몇년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셨다. 우리를 잘못된 신앙에서 건 져주셨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억압했고 얼마나 미신에 빠지게 만들었던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큰 축복의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려고 한다. 더 복음을 듣기 위해 열심히 모일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하 신 일들의 내용을 하나도 헛되히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다 내 마음 옥 토 밭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꽃피고 열매맺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앞에 갔던 위대한 신앙인들 축복의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 살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교회의 일원됨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를 통해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셨다. 우리를 모든 억압에세 자유케 하기 위해서 사슬에 묶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거룩한 복종을 하게 하려고 자신의 능력을 제공하셨다. 이제 아름다운 교회의 일원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삶을 목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가 되려면 먼저 할 일이 그를 자기 속에 모셔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 그 가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은 속의 그리스도를 보고 신자를 자녀 삼으신다. 어떤 사람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점점 죽어가게 되었다. 심 장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병원에서 죽어가 고 있을 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그에게 행운이 닥쳤다. 어떤 청년이 교 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는데 부모가 심장을 기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 서 몸의 일부라도 계속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곧 심장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심장을 제공받은 사람은 바른 정신이 돌아왔다. 뇌 에 피가 잘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계단도 문제 없이 뛰어오를 수 있었다. 혈색도 달라졌다. 매사에 용기가 생겼다. 심장을 제공한 청년의 부모는 이 사람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아들의 한 부분을 느끼는 것이다. 둘 사이는 가족 이상의 관계가 된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다 받았다. 신자는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 자는 언제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의 모든 축복을 공유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특별한 것이 된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신자의 속에서 계속된다. 그의 생명, 그의 능력, 그 의 사랑과 꿈은 그리스도인 속에 확실히 살아있다.
그러므로 이제 온 세상은 신자에게 복종하게 된다. 천사도 마귀도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신자 에게 당할 수 없다. 단지 신자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알아야 한다. 신자는 자 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수록 그 생활도 놀라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더욱 강하고 분명해지려면 신자는 외부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서 로를 격려하고 자기들의 삶으로 서로를 유익하게 한다. 그래서 그들 전체가 다 모여 강한 모임을 형성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작은 그리스도들은 모여서 온전한 몸을 만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온전한 그리스도를 보게 한다. 신자들은 이 외형적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내 면적으로 누리는 그리스도가 이제 외형적으로 더 분명하게 경험된다. 그리하 여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께 예배한다. 그리고 교회에 내리는 축복을 통해서 더욱 더 자기 속에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 힘을 누리게 된다. 마치 아기가 젖을 먹듯, 신자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젖을 받아먹는 것이다. 떼를 지어 사는 동물들을 보라. 그들에게서 이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들소떼들이 모여있을 때는 사자들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리 저리 몰 아쳐서 무리에서 이탈되게 만든다. 그러면 간단히 사자들의 밥이 되어버린다. 마찬가지이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탈된다면 간단히 마귀의 밥이 된다. 교회를 떠나서 참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어디 말해보라. 요즘 많은 신자들은 교회에 가지만 교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 가 큰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에 참석한다. 좋은 설교를 듣고 훌륭한 연 주를 듣는다. 그리고 돌아온다. 그게 다다. 아무 의무도 봉사도 할게 없다. 얼마나 편한가 그러나 그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몸은 서로 간에 교제가 있어야 한다. 머리의 지시대로 힘든 일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한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다면 개인이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힘을 더 가지게 된다. 신앙의 성장도 무리에 붙어 있어야 가능하다. 몸은 항상 다 른 부분을 위해서 일하면서도움을 받는다. 운동을 하고 필요한 일을 한다. 괴로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식당에 가기 위해서 다리는 바삐 움직여야 한다. 음식 먹기 위해서 허리는 불편하다. 그러나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회 집회에 열심을 내라고 성경은 말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관습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더욱 힘써서 모이라는 것이다.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에 모이는데는 이유가 없다. 길이 막힌다던지 시간이 없다든지 몸이 아프다 든지 그러면 안와도 된다는 말이 없다. 몸에 참여하는 것은 무조건이다. 왜 그런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지 않 고 어디서 말씀을 듣겠는가 거기에 가지 않고 어떻게 합심해서 기도하겠는 가 거기 가지 않고 어떻게 성도의 교제를 나누겠는가 하나님은 신자 각 사람을 다르게 만드셨다. 받은 은사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모임에 합해야 완전한 힘을 발휘하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해 진다. 이것은 보여지는 말씀 성찬을 통해서 더 분명해 진다. 이제 가끔 우리는 성찬을 나눈다. 그리스도는 떡을 놓고서 자기의 모습을 상징하셨다. "내가 영 으로 너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이 떡을 나눔과 같다." 그는 자기 몸을 찢듯 떡을 나누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떡은 그들 속에 들어가서 한 몸이 된다. 다 시 그 떡들은 모여서 본래의 완전한 한 덩어리의 떡을 이루어 준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축복해 주시는 방법이다. 내면적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서 한 몸을 이룬다. 그래서 그의 모든 축복이 우리 것이 되게 하신다. 또한 우리가 다 모여서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몸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 각자는 그 의몸의 한 부분이다. 손도 있고 발도 있고 눈도 귀도 입도 있다. 안보이는 내 장도 혈관도 있다. 모두가 모여서 한 몸을 이루고 서로를 유익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보완하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쏟 아주신다. 둘중 하나만 없어도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 것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을 모른다면 우리는 그의 몸 구실을 할 수 없다. 아무 힘이 몸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들려지지 않고 그것이 삶에 적용되도록 가르쳐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아름다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이 바로 전 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러가지 면에서 혼탁 한 과정에 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말씀에는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가 빠져 있음을 본다. 아무리 유명한 교회라도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들려지지 않 고 다른 복음이 들려지면 저주가 있을 것이다. 절대로 축복은 없다. 교회는 다른 기초 위에 서 있어서는 않된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위에 세워져야 한다. 목사나 지도자들의 인간적 욕심이 지배해서는 않된다. 그러한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서 로 기도해야 한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일들만이 들 려지고 그것으로 우리의 삶이 힘을 얻어야 한다. 그것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케 하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있던가 교회에서 봉 사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은 축복된 사람들이다. 꽃을 꽂고, 청소를 한다.
제 2여전도회원들이 토요일에 와서 교회를 청소한다. 청소하는 사람에게 돈주고 하라면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에 헌금 바치기를 기뻐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라. 우리 주 예수님 믿고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문제이다. 우리 주 예수님를 믿을수록 얼굴은 더욱 굳어지고 사람은 사나워진다면 삶도 더 힘들어 진다면 분명하다. 우리 주 예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난 몇년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셨다. 우리를 잘못된 신앙에서 건 져주셨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억압했고 얼마나 미신에 빠지게 만들었던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큰 축복의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려고 한다. 더 복음을 듣기 위해 열심히 모일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하 신 일들의 내용을 하나도 헛되히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다 내 마음 옥 토 밭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꽃피고 열매맺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앞에 갔던 위대한 신앙인들 축복의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 살 것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교회의 일원됨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를 통해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셨다. 우리를 모든 억압에세 자유케 하기 위해서 사슬에 묶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거룩한 복종을 하게 하려고 자신의 능력을 제공하셨다. 이제 아름다운 교회의 일원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삶을 목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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