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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되어 (고전10:1-12)

본문

바울은 고전 9장에서 자신은 자유자이요 사도이나 모든 사람 의 종이 되어서 섬겼다고 말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과 같이 지혜자에게는 지혜자같이 무식자에 게는 무식자처럼… 되었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 안에서 섬김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오직 하나 저들중 몇몇을 구원하고자 함이었다. 영혼을 복음 안에서 사랑했던 바울의 모습을 볼수 있다. 이제 오늘 10장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하는 말로 본문을 시작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성도에게 꼭 필요한 여호와 하나님의 경륜을 강조하여 말할 때 표현하는 수단 중에 하나이다. 반드시 알기를 원하고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에게는 말씀에 대한 부담이 있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부담이 아니요, 이 말씀을 꼭 성도에게 가르쳐야 겠는데 하는 부담이요, 이 말씀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깨닫고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부담이다. 마 치 불어나는 젖을 아이에게 먹여야 어머니는 기쁨과 만족이 있 듯이. 안 먹이면 도리어 병이 되는 것처럼 성도가 말씀의 진리를 잘 깨달아 받을 수 있는 신앙이 되기까지 목회자에게는 그 것이 체증처럼 남아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광야생활과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 님에 관계에 관한 것이고, 그 때 거역하고 불순종한 것, 그리고 이로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이 닥친 것은 바로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거울이라는 것이다.
본 론
1. 광야의 세례(1-2 ) /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가며, 세례를 받았다. 구름 아래 있다는 말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광야생활을 했다는 의미요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 만이 의 지와 공급자가 되며, 보호자가 되었다. 바다 가운데 행했다는 말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넌 사건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제 죽을 생명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해 주셨으니 그 생명은 이제 더이상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가르켜 세례라고 말했다. 이는 세례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광야에서 구름 가운데 즉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지낸 것같이 이제 세례받은 성도는 세상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여야 하며, 모세에게 속한 것같이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다. 바울의 말대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또한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지난 것같이 자신의 생명이 이제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자이다.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본질상 죄인을 주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쫑아 죽이려는 애굽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한 것처럼.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쫑아 오는 사탄의 머리를 밟으사 완전히 멸하신 것이다. 이것이 세례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 홍해를 건넘과 더불어 애굽 과는 완전한 결별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먹은 고기가마를 그리워했을 때는 저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 고, 저희에게는 원망이 터져 나왔으며, 급기야는 하나님의 진노 가 임하여, 고기가 저희 잇사이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서 수만의 사람이 멸망을 받았다. 이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결코 애굽의 고기가마를 사모해 선 않된다. 뿐만 아니라 애굽 즉 세상이 주는 것은 완전히 거부 해야 한다. 애굽의 고기가마는 단순한 음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애굽의 우상에 드려진 것이요, 우상을 섬기는 예식 에 참여해야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제시하는 고기가마 곁을 맴돌아선 않된다. 홍해를 건넌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세례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으로만 만족해야 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면 많은 돈을 주겠다고 요구하고 제시해도 결코 그리로 한 치의 마음도 두어선 않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안그런 것같으나 언제나 만일 내게 경배하면 이라는 말을 뒤에 여운처럼 남 기기 때문이다. 이제 세례받은 성도는 항상 우리 주 예수님처럼 사탄 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만 그 만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고 단번에 물리쳐야 한다.
2. 신령한 식물과 신령한 음료(3-4 ) / 신령한 식물은 광야에서 40년 간이나 먹은 만나를 의미한다. 이것은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오직 하나님의 공급과 조 리에 의한 신령한 음식이었다. 또한 그 식물은 제공되는 원칙이 있었다. 그저 막연히 쌓아 놓고 먹을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주시는 방법과 관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거 록하신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매일 주셨고, 아침에 주셨 으며, 해가 뜨면 없어져 버렸고, 다음 날까지 두면 벌레가 생겨 먹지 못했다.
그러므로 욕심낼 일도 걱정할 일도 싸울 일도 전 혀 없는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감사로 받아야 하는 음식이었다. 신령한 식물 만나 이것은 신명기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 을 순종하는가 하는 여부를 시험해주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셰례 받은 성도에게는 바로 이 신령한 식물이 공급된다. 그것이 물질이든지 명예든지 지식이든지 무엇이든지 세상에서 육신에 필요한 것 그것은 만나와 같이 공급된다. 오늘날 우리 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또한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이는 광야에서 바 위를 깨뜨려 주신 물을 의미한다. 또한 마라의 쓴물을 달게 만 들어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의미에서 신령한 음료이다. 광야에는 나그네 한 두 사람이 먹을 물마저 귀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 250만명의 식수를 갈하지 않도록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이라는 의미에서 이것은 분명 신령한 음료이다. 이 음료는 저희를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마셨는데 이 반석은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라고 했다. 출애굽기에는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 때 우리 주 예수님이 오시기전 1050년 전 광야에서 아브라함의 자손 즉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고 마시웠던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이시 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 억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 이때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를 치려 했다. 바로 저들 의 조상을 먹이신 그 주님을. 그 자손이 참람하다고 돌로 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실기를 주시고 해빛과 비를 적당히 주셔서 맺어진 것이요, 바로 자신이 지으신 자기의 땅인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지 않는다. 이제 다시한번 이러한 인류를 위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본다. 마가의 다락방 유월절 만찬 때 자신의 십자가 구속 을 눈 앞에 두시고 떡을 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는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내 살이다. 이것은 참된 양식이니 갖다가 먹으라! 하셨고 식후에 잔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새언약의 피니라. 이것은 참된 음료 니 가져다 마셔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 된 음료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마다 영생이 얻을 것이다. 죄인이 육신에 매여 있는 인생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 시는 양식을 주신 것이다. 바로 이것을 기념하고 이를 먹고 마 시는 것이 바로 성찬예식인 것이다. 신령한 떡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 먹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 시는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 오직 성도의 참된 양식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례의 참된 의미요, 이것이 바로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로 하나 가 된 저와 여러분은 과연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십니까 한 성령님을 마시고 살아 갑니까 주님께서 신령한 떡이 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룩한 성도의 삶!! 구별된 삶 !!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
3. 우리의 거울 (5-12 ) / 5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들의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다수를 의미함이 아니 요, 아무리 다수라 할찌라도 다수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서 구름과 바다 가운데 로 지나며 세례를 받은 자요 신령한 양식과 신령한 물을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로 부터 마신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찌라도. 참된 삶, 세례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함으로해서 광야 이스라엘은 하나님 의 진노로 인해서 완전히 엎드러 진 것이다. 하나님은 다수 라고해서 봐주시고 소수 라고해서 무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다수든지 소수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물량주의는 하나님 앞에 크게 잘못된 것이다. 큰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작은 교회는 하나님이 소홀하신다는 생각은 엄청난 잘못 이다. 일단 많으면 그 중에서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도 함께 많 아진다는 생각. 전혀 넌센스이다.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의 집 회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했고, 수 많은 제사와 헌물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것이요, 지기 힘는 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서 자 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혹시 나도 그러하지 않는가 하는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저들이 악을 즐겨한 것처럼 해서는 않되고 오히려 미워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다.(6-11 ) 구체적으로 광야 하나님의 선민은 몇가지 합당치 못한 일을 했다.
1) 우상숭배와 간음(7,8 ) / 이 일은 백성의 공갈 협박 에 의해서 아론이 주도하여 행해졌다. 그리고 애굽에서 우상 앞에서 행하던 예식을 그대로 한나님 앞에서 재현한 것이다. 백성이 먹고 마시고 뛰논다는 것은 바로 애굽에서 우상앞에서 행 했던 예식을 의미한다. 광란과 음란으로 뒤엉킨 최대 쾌락의 예식이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기 원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같은 쾌락을 즐기기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음식을 원 했을 때도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고, 정력이 쇄하여 간다고 했다. 그들은 애굽 땅의 우상 앞에서 고기를 삶아 먹고 진탕 놀며 음란을 행했던 것을 추억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상과 쾌락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율례는 참 으로 따르기 힘드는 고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산위에 올라가 40주야 소식이 없고, 드 디어 자기들의 욕구대로 하나님을 섬기다는 명목하에 쾌락을 즐 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멸망이었다. 저들 은 저들의 이러한 정욕대로 간음을 행하다 하루에 23,000명이 죽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음란에 쌓여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사건을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우상을 섬기지 말자. 그리고 간음하지 말자. 언제나 우 상을 섬기는 목적은 자신의 쾌락에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거의 동일한 말씀이다. 우상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쾌락인 것이다. 저희의 신은 배 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삼가 자신이 혹시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는가 쾌락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를 살펴 삼가고 삼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을 시험(9 ) / 민수기 21:5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으면 좋았었겠다고 하며 어찌하여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는고 하며 하나님을 시험했다. 그 이유인즉은 물이 없고, 만나가 박한 식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말라 견디기 힘들었던 적은 없었고 만나 역시 아주 훌륭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험한 광야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손길 을 체험하고도 잠잠히 믿고 감사하는 신앙을 배우지 못하고 오 히려 인격적인 하나님을 자신의 소욕을 위한 시험거리로 삼은 것이다. 이는 불행한 일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보호의 손길을 잠시 떼시니 광야에 늘 도사리고 있는 불뱀이 나와서 백성을 마 구 물었다. 거룩한 뜻이 있어서 광야를 능력의 손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이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시험의 의미가 담긴 언사와 행동을 할 때가 많이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이다. 사단은 우리 주 예수님 님을 향해서도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유혹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의 대답은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여야 하며, 그리고 내가 할 것은 오직 감사이다.
3) 하나님을 원망(10 ) /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제 이스 라엘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다와서 12정탐을 보내어 정탐 케 했다. 정탐 후 그 땅에 있는 네피림족속과 거대한 아낙자손 을 크게 보고하여 온 백성을 격동하여 낙망케하고, 하나님을 원 망하게하여 또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 을 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40년간을 광야를 방황하며 그 당시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성년은 다 광야 에서 죽고 말았다. 원망의 파괴력은 이와같이 놀랍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해 선 않된다. 아무리 상황이 험해져도 절박해 보여도 결코 원망 해선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의 할 일은 하나님만을 바라 봄으로서 믿음과 감사로 일관해야 한다. 이제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경계로 경계한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면 .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 줄로 생각하는 자가 넘어지기 쉽다. 반역을 일삼았던 무리들 은 똑똑한 자들이었고 자기의 세력을 규합할 줄도 아는 자들이었 고, 그들 중에는 아론과 미리암같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정하 시는 선지자라고 스스로 생각한 자들도 있었다. 서있다 나는 이 정도면 됐다. 생각할 때 사단의 유혹은 시작된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할렐루야!! 결 언 하나님의 말씀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와 거울의 역 활을 한다. 광야에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것처럼 예수 우리 주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애굽을 더이상 동경 해선 않된다. 완전히 수장되어 그 흔적까지도 완전히 없애 버 려야 한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우상숭배와 음란,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악한 마음과 원망이 발동하여 멸망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그 날 부터 우리는 신령한 음식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거룩한 성도이다.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공급, 그리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그리스도의 지 체가 되었고 완전한 하나가 되었으며, 이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 었다. 그리고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이상 애굽의 종이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이다. 오직 믿음과 감사와 성결로 우리 에게 주어진 잠시 잠간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잠시 잠간 후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저와 여러분에게 유업으 로 주어질 그 때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운 데 맞이할 수 있기를 신령한 떡이 되신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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