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들 (고전10:1-13)
본문
우리 말 중에 "귀감(龜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감이란 본보기 가 된다는 뜻으로 명감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이 귀감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잘 모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때 귀감을 가지고 나의 생활을 판단하며 살아가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귀감이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귀감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를 때,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런데 무엇을 우리의 삶의 귀감으로 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귀감으로 삶는 그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귀감"이란 말을 "거울"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거울이란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거울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울을 보지 않는자는 자기의 단점과 문제를 보지 못하고 살아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형제 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합니다."(마 7:3) 우리는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어찌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할 수 있느냐 "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거울이 없는 자들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자들은 보는 눈은 있으나 소경과 다를 바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성찰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unexamined life is worth not living)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 고 사는 사람은 다 인생을 헛되이 사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의 삶에 거울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의 신앙 생활이 바른가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역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내용은 매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 중요할 때마다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듯이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럼 거울로서의 이 말씀들을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말씀을 우리가 매일 묵상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묵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묵상하면 나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보여줄 뿐만 아 니라, 그 말씀속에 우리가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 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자기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자 들만이 바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듯이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는 자들은, 거울을 보 지 못하는 자들과 같이, 자기의 신앙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죄악으로 더러워져서, 우리의 바른 삶의 자세를 모 릅니다. 더럽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알지를 못합니다. 잘못되어 있 어도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거울이 되는 이 말씀이 우리의 바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롤드 성 요한(Harold St. John)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한번은 베니스에 갔다가, 고귀한 옛궁궐엘 갔다. 나는 거기서 매 우 아름답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장엄한 천장을 보았다.
그런데 그 방 의 천장은 너무나 높아서 그 그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기가 어렸웠다. 그 찬란한 그림이 지리멸렬하게 보일 뿐이였다. 그래서 그 방 가운데에 거울을 수평으로 박아넣은 탁자를 갖다가 놓았다.
그런데 그 거울을 아주 기술적으로 놓아서, 천장에 있는 그림이 그 거울속에 그 그림의 모양과 색깔 그대로 보이게 해 놓았다. 그 걸울이 천 장의 그림을 반사해주고 있다. 우리가 성경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이 완전 하게 그대로 다 보인다. 이렇게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죄악으로 더러워져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의 삶의 모범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시간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우리의 삶의 거울이 되는 것 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우상숭배자가 되지 말라는 거울입니다.(7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 1 계명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고, 제 2 계명을 우상을 숭 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절대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랍비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 중에 한 제자가 "만약 하나님이 우상 들을 그렇게 몸서리 나게 싫어하시면, 왜 사람들이 숭배하는 그 우상들을 진멸하지 않느냐 "고 물었다. 랍비는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 중에는, 예를 들면, 태양과 달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 구조의 근본적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잠시 있다가 그 학생이 또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그렇 다면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의 구조의 근본적인 것이 아닌 것들은 진멸 하시지, 왜 않으시냐 " 그 질문에 대하여 랍비는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진멸하지 않은 것들은 우상숭배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 같이 인식 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어쨋든 절대로 우상숭배를 해서는 안됩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거울의 배경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 가 시내산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때, 시내산에서 40 일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밑에서 아무리 백성들이 기다려도 모세가 내려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기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그 지도자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지금 광야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잘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정착할 땅 한평 없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강 요를 했습니다. 아론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금으로 부어서 큰 덩어리를 만든 후, 각도로 송아지 모양을 새겼 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에게 이 금송아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 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신에게 번제 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살아가다가 하나님이 눈에 안보인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살아가다가 보면, 불안할 때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두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음성은 귀에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면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져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보이는 것들을 더 의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러한 일을 하지 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 가치를 두고,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보다는 보이는 이 세상에 더 가치를 두고, 보이는 이 세상에 더 소망을 두고 사는 삶을 의 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를 사랑하기 보다는 보이는 이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보이는 이 세상 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사랑 해야 합니다. 보이는 이 세상에 가치를 두고 소망을 두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저 하늘나라에 가치를 두고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을 "부패(腐敗)"하였다고 하셨읍니다.(출32:7) 부패하였다는 말씀은 썩었다는 말씀입니다. 썩었으면 다 버림받게 됩니다. 아무리 귀한 음식도 썩으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먹었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아무리 사람이 귀해도 우상숭배하면, 부패한자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더이상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자는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출 32:10) 진멸한다는 말씀은 다 쓸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다 파멸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불안하고,답답 한데,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말고 세상의 다른 것을 더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저 하늘 나라는 눈에 보지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고 해서, 저 하늘 나라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마틴 로이드 죤스(Martyn Lloyd Jones)가 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 했다. 사람의 신은
(1) 그 사람이 그를 위하여 살고,
(2) 그 사람이 그의 시 간, 에너지, 돈을 그를 위하여 드리려고 예비하는 분이며,
(3) 그 사람을 자극하고
(4) 그 사람을 분발시키고
(5) 그 사람을 흥분시키며,
(6) 그를 열광케 하는 분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을 위하여 살고, 우리의 시간 과, 에너지와 돈을 다 바쳐서 살아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를 분발시키고,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리를 열광케하는 분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신은 꼭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 외에 다른 것 이 되면, 그 신들은 우리를 이용하고, 결국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아도 저절로 멸 망하게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 길에 절대로 우상 을 숭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간음하지 말라는 거울입니다.(8절) 신앙인들로 하여금, 신앙심을 흐리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력을 흐 리게 하는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음행에 빠져서 신앙이 타락하고, 판단 력이 흐려져서 가정이 파탄에 이른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왕이였던 다윗 왕도, 옆집에서 목욕하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몸을 지붕에서 흠쳐보다, 판단력이 흐려져서, 남의 아내를 취하여 간음하고, 그러자 더욱더 눈이 흐려져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교살하는 무서운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간음은 무섭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0계명중 제 7 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 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음행과 우상숭배를 연결해서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 간음하지 말라는 거울의 배경은 (민25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다가, 싯딤이란 곳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남정내들이 모압여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압 여인들은 자기들의 신들에게 제사할때, 자기들과 음행하는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해서 도 안되지만, 우상숭배하는 자리에 서지도 말아야 합니다. (시1:1) 말씀 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 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압여인들이 초청하는 우상에게 제사하는 자리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음행을 하게되면, 그 여자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여자의 종이 되고맙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가지말아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뜻이 여기게 있습니다. 우리가 간음 을 하게 되면, 그것에게 사로잡히고, 그것의 종이 되어서, 나의 행복을 빼 앗기고, 나의 삶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할 수 없이 초청에 응했으며, 모압 여인들이 그들의 신에게 절할때, 같이 절했으며, 그 앞에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사람의 우상인 바알브올에게 부속(附屬)이 되었읍니다. 하나님은 430년간 종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시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 시고, 인도하였는데, 그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로 가자 진노가 임했 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질투하는 하나님 이십니다.(출20:5)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용서하시 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갚데, 자손
3,4대까지 갚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우상숭배하는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시니 벌이 잔인하다고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벌하셨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찮가 지 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 하십니다. 화가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병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막 죽어갑니다. 이스라엘 집집마다 염병으로 죽은자로 인하여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음행하는 일에 참 가했던 백성의 두령을 잡아서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을 매달라. 그리고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자들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의 화가 풀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화가 나시고 하나님의 이렇게 무서운 저주의 심판이 임 했는데도, 한 남자가 모세와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기 장막에 들어가서 음행을 합니다. 음행에 빠지면,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지금 불이나서 난리가 났는데, 가스통을 메고 그 불속으로 들어가는 자와 같습니다. 이렇게 어리석게 됩니다. 그러자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그들의 천막속으 로 들어가서 음행하는 그 남자의 등위를 찔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창이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배를 꿰뚫었습니다. 창으로 이렇게 꿰뚫기가 힘이 듭니다. 비느하스가 힘이 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뚫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비느하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런데 그 염병으 로 죽은 자가 24,000명이였습니다. (민25:9)에서는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전10:8)에서는 23,000명이라고 했읍니다. 이 원인은 바울이 성경을 보고 성경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다가 숫자가 틀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이 이런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니, 음행하지 말라고 하 셨습니다. 이 싯딤에서 있었던 사건이 우리 신앙생활의 거울이 된다고 하 셨습니다. 이것은 이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항상 이 말씀을 들여다 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젊은 남자들에게는 수 없는 음행의 유혹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완전히 음행의 유혹에 노출되어 삽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거울을 항상 마음속에 묵상하고, 자주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그 음행의 유혹에빠져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래서 행복을 빼앗기고, 가정 이 파탄나고, 자기 자신이 파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한 음행의 유혹이 있는 곳으로 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법입니다. 한 부자 부부가 자가용 운전기사를 고용하기로 했다. 부인은 자가용 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했다. 그리고 지원자들을 선별하여, 지원자를 4명 으로 압축했다. 4명의 지원자가 마지막 선택을 위하여 부인에게 왔다. 부인은 4명의 지원자를 자기 발코니로 오라고 했다. 부인은 그 4명의 지 원자들에게 현관에서 대문까지 가는 길을 따라 있는 담벼락을 그들에게 가 리키면서, "차를 저 담벼락에 긁지 않고, 얼마나 그 담벼락을 가까이 하고 차를 운전할 수 있겠느냐 "고 물었다. 첫번째 지원자는 1피트(약 45 cm)내에서 차를 긁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 고 대답을 했다. 두번째 지원자는 6인치(15 cm) 내에서 차를 긁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세번째 지원자는 3인치(7.5 cm) 내에서 차를 긁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네번째 지원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저는 얼마나 담 가까이에서 차에 상처를 내지 않고 운전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한 그 담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서 운전할 것입니다." 이 네번째 지원자는 다른 지원자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원자는 참된 운전 기술은 담벼락에 얼마나 바짝 붙여서 운전할 수 있 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담으로 부터 얼마나 넓은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운전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해를 했다. 우리 인간의 본성 속에는 이 네번째 지원자와 같이 가능한 한 최대의
넓은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책인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적인 유혹이다. 우리가 성인 영화와 같이 성적인 유혹이 있는 의 심스러운 영역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네번째 지원자 와 같이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떨어지는 것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음 행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음행으로 인하여 생긴 불행의 거울을 늘 들여다 보고, 마음속에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음행으로 부터 멀 리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3. 주를 시험하지 말라(9절)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6:16)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시험의 주체이시지, 우리 인간에게 시험을 받 으시는 시험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시나 안주시나 하나만을 시험하라고 하 시고, 그외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 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괴심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민수기 21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을 따 라,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나빠서 백성 의 마음이 상하였습니다.(민21:4)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 여 올려서 이 광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가 이 박한 식물을 싫어 하노라"하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뱀들을 보내서어서 원망하는 백성들을 물게 하였읍니다. 이 불뱀에 물린 자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와와서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에게 원망하 여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불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해 주옵소서"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 불뱀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달 고 뱀에 물린 자들로 그 뱀을 쳐다보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뱀에 물린 자 들이 그 놋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놋뱀을 쳐다보자마자 뱀에 물리 자들 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뱀에 물린 자들을 보고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 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실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뱀에 물려 죽은 자들이라고 해야 더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사건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는 것을 (시78:18ff)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저희가 저희 탐욕으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 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 광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 하였노라" (시78:18-2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때,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실 수 있을까 "하고 하나님이 먹이히고 입히시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 곳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같이 가고 계시는 가를 의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수 있을까를 의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여 시험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그것을 못 믿고,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는가 ", "하나님이 나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실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서서 만나를 내리시고, 하나님이 동풍으로 하늘에 서 일게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 기 새를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이 날라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분 명하게 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런 기 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못 믿고 의심하는 것이 하나님을 화나게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격동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 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의심하여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이른비와 늦은 비로 우리에게 은택을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미래에 대한 걱정속에서 삽니다.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 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을 격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우리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확증을 자연등 여러가지를 통하여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러 한 확증을 보면서 절대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David Brainerd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에 갔던 유명한 선교사입니다. 그의 수 많은 노력의 댓가로 많은 인도인이 우리 주 예수님를 믿게 되었습니다. Brainerd는 기도의 사람이였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그가 전도 여행하며 겪었던 많은 경험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는 종종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그가 인도 부족을 방문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엄청난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피할 곳을 찾았읍니다. 그는 드디어 큰 나무에 속이 텅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속에 들 어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인도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 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돌봐 주시고 그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식사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하 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람쥐가 그 나무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람쥐는 잠시동안 지껄이더니 갔습니다. 그 작은 동물이 사라졌을때 Brainerd는 그가 몇개의 밤들을 남겨 두고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먹었습니다. 3일 동안 폭풍은 계속되었습니다. 3일 동안 Brainerd 선교사는 통나 무 속에 피해있었습니다. 매일 다람쥐는 그 굴에 밤을 저장하기 위하여 밤을 몰고 왔습니다. David Brainerd 선교사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이 다람 쥐를 보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렇게 필요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도, 다람쥐를 통해서도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 히신 것을 거울로 삼아서 늘 들여다보고, 마음에 묵상하여,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공급하심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4. 원망하지 말라(v.10)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의 소리를 좋아하십니다. 감사의 소리를 좋아 하십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의 소리는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 인간이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싫어하듯이, 하나님도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듣기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민수기 14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 왔을 때, 각 지파에서 1명씩 대표를 택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정탐군들 중에 10명의 정탐군들이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 실과가 바로 그 땅의 실과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클뿐 아니라, 그곳에서는 네피림의 후예인 아낙자손을 보았습니다."(민13:25-29) 그러다가 조금 있다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더 격동시키기 위하여 그 땅을 악평하였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 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의 후 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 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민13:32-33)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을 하 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 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3) 그러면서 장관을 세워 다 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화가난 하나님은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 를 믿지 않겠느냐 "(민14:11)고 모세에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열번이나 시험하여 원 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읍니다. 이렇게 인생의 길을 가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원망하는 자들 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그들 로 복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가는 길이 힘들고, 가는 길 앞에 힘든 일이 놓여 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행복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복된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무서운 사건을 늘 기억하기 위하여 신앙의 거울 로 삼으라고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때에도 능히 헤쳐나갈 능력과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13)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 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 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늘 들여다보고, 마음에 묵상하여 가는 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놓여 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잘 모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때 귀감을 가지고 나의 생활을 판단하며 살아가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귀감이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귀감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를 때,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런데 무엇을 우리의 삶의 귀감으로 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귀감으로 삶는 그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귀감"이란 말을 "거울"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거울이란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거울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울을 보지 않는자는 자기의 단점과 문제를 보지 못하고 살아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형제 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합니다."(마 7:3) 우리는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어찌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할 수 있느냐 "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거울이 없는 자들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자들은 보는 눈은 있으나 소경과 다를 바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성찰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unexamined life is worth not living)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 고 사는 사람은 다 인생을 헛되이 사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의 삶에 거울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의 신앙 생활이 바른가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역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내용은 매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 중요할 때마다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듯이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럼 거울로서의 이 말씀들을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말씀을 우리가 매일 묵상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묵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묵상하면 나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보여줄 뿐만 아 니라, 그 말씀속에 우리가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 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자기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자 들만이 바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듯이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는 자들은, 거울을 보 지 못하는 자들과 같이, 자기의 신앙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죄악으로 더러워져서, 우리의 바른 삶의 자세를 모 릅니다. 더럽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알지를 못합니다. 잘못되어 있 어도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거울이 되는 이 말씀이 우리의 바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롤드 성 요한(Harold St. John)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한번은 베니스에 갔다가, 고귀한 옛궁궐엘 갔다. 나는 거기서 매 우 아름답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장엄한 천장을 보았다.
그런데 그 방 의 천장은 너무나 높아서 그 그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기가 어렸웠다. 그 찬란한 그림이 지리멸렬하게 보일 뿐이였다. 그래서 그 방 가운데에 거울을 수평으로 박아넣은 탁자를 갖다가 놓았다.
그런데 그 거울을 아주 기술적으로 놓아서, 천장에 있는 그림이 그 거울속에 그 그림의 모양과 색깔 그대로 보이게 해 놓았다. 그 걸울이 천 장의 그림을 반사해주고 있다. 우리가 성경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이 완전 하게 그대로 다 보인다. 이렇게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죄악으로 더러워져서 보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의 삶의 모범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시간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우리의 삶의 거울이 되는 것 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우상숭배자가 되지 말라는 거울입니다.(7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 1 계명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고, 제 2 계명을 우상을 숭 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절대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랍비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 중에 한 제자가 "만약 하나님이 우상 들을 그렇게 몸서리 나게 싫어하시면, 왜 사람들이 숭배하는 그 우상들을 진멸하지 않느냐 "고 물었다. 랍비는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 중에는, 예를 들면, 태양과 달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 구조의 근본적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잠시 있다가 그 학생이 또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그렇 다면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의 구조의 근본적인 것이 아닌 것들은 진멸 하시지, 왜 않으시냐 " 그 질문에 대하여 랍비는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진멸하지 않은 것들은 우상숭배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 같이 인식 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어쨋든 절대로 우상숭배를 해서는 안됩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거울의 배경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 가 시내산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때, 시내산에서 40 일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밑에서 아무리 백성들이 기다려도 모세가 내려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기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그 지도자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지금 광야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잘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정착할 땅 한평 없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강 요를 했습니다. 아론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금으로 부어서 큰 덩어리를 만든 후, 각도로 송아지 모양을 새겼 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에게 이 금송아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 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선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신에게 번제 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살아가다가 하나님이 눈에 안보인다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살아가다가 보면, 불안할 때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두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음성은 귀에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면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져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보이는 것들을 더 의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러한 일을 하지 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 가치를 두고,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보다는 보이는 이 세상에 더 가치를 두고, 보이는 이 세상에 더 소망을 두고 사는 삶을 의 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를 사랑하기 보다는 보이는 이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보이는 이 세상 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사랑 해야 합니다. 보이는 이 세상에 가치를 두고 소망을 두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저 하늘나라에 가치를 두고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을 "부패(腐敗)"하였다고 하셨읍니다.(출32:7) 부패하였다는 말씀은 썩었다는 말씀입니다. 썩었으면 다 버림받게 됩니다. 아무리 귀한 음식도 썩으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먹었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아무리 사람이 귀해도 우상숭배하면, 부패한자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더이상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자는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출 32:10) 진멸한다는 말씀은 다 쓸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다 파멸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불안하고,답답 한데,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말고 세상의 다른 것을 더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저 하늘 나라는 눈에 보지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고 해서, 저 하늘 나라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마틴 로이드 죤스(Martyn Lloyd Jones)가 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 했다. 사람의 신은
(1) 그 사람이 그를 위하여 살고,
(2) 그 사람이 그의 시 간, 에너지, 돈을 그를 위하여 드리려고 예비하는 분이며,
(3) 그 사람을 자극하고
(4) 그 사람을 분발시키고
(5) 그 사람을 흥분시키며,
(6) 그를 열광케 하는 분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을 위하여 살고, 우리의 시간 과, 에너지와 돈을 다 바쳐서 살아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를 분발시키고,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리를 열광케하는 분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신은 꼭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 외에 다른 것 이 되면, 그 신들은 우리를 이용하고, 결국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아도 저절로 멸 망하게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 길에 절대로 우상 을 숭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간음하지 말라는 거울입니다.(8절) 신앙인들로 하여금, 신앙심을 흐리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력을 흐 리게 하는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음행에 빠져서 신앙이 타락하고, 판단 력이 흐려져서 가정이 파탄에 이른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왕이였던 다윗 왕도, 옆집에서 목욕하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몸을 지붕에서 흠쳐보다, 판단력이 흐려져서, 남의 아내를 취하여 간음하고, 그러자 더욱더 눈이 흐려져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교살하는 무서운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간음은 무섭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0계명중 제 7 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 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음행과 우상숭배를 연결해서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 간음하지 말라는 거울의 배경은 (민25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다가, 싯딤이란 곳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남정내들이 모압여인들과 음행하기를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압 여인들은 자기들의 신들에게 제사할때, 자기들과 음행하는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해서 도 안되지만, 우상숭배하는 자리에 서지도 말아야 합니다. (시1:1) 말씀 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 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압여인들이 초청하는 우상에게 제사하는 자리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음행을 하게되면, 그 여자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여자의 종이 되고맙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가지말아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뜻이 여기게 있습니다. 우리가 간음 을 하게 되면, 그것에게 사로잡히고, 그것의 종이 되어서, 나의 행복을 빼 앗기고, 나의 삶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할 수 없이 초청에 응했으며, 모압 여인들이 그들의 신에게 절할때, 같이 절했으며, 그 앞에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사람의 우상인 바알브올에게 부속(附屬)이 되었읍니다. 하나님은 430년간 종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시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 시고, 인도하였는데, 그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로 가자 진노가 임했 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질투하는 하나님 이십니다.(출20:5)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용서하시 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갚데, 자손
3,4대까지 갚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우상숭배하는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시니 벌이 잔인하다고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벌하셨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찮가 지 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 하십니다. 화가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병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막 죽어갑니다. 이스라엘 집집마다 염병으로 죽은자로 인하여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음행하는 일에 참 가했던 백성의 두령을 잡아서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을 매달라. 그리고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자들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의 화가 풀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화가 나시고 하나님의 이렇게 무서운 저주의 심판이 임 했는데도, 한 남자가 모세와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기 장막에 들어가서 음행을 합니다. 음행에 빠지면,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지금 불이나서 난리가 났는데, 가스통을 메고 그 불속으로 들어가는 자와 같습니다. 이렇게 어리석게 됩니다. 그러자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손에 창을 들고 그들의 천막속으 로 들어가서 음행하는 그 남자의 등위를 찔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창이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배를 꿰뚫었습니다. 창으로 이렇게 꿰뚫기가 힘이 듭니다. 비느하스가 힘이 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뚫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비느하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런데 그 염병으 로 죽은 자가 24,000명이였습니다. (민25:9)에서는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전10:8)에서는 23,000명이라고 했읍니다. 이 원인은 바울이 성경을 보고 성경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다가 숫자가 틀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이 이런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니, 음행하지 말라고 하 셨습니다. 이 싯딤에서 있었던 사건이 우리 신앙생활의 거울이 된다고 하 셨습니다. 이것은 이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항상 이 말씀을 들여다 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젊은 남자들에게는 수 없는 음행의 유혹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완전히 음행의 유혹에 노출되어 삽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거울을 항상 마음속에 묵상하고, 자주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그 음행의 유혹에빠져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래서 행복을 빼앗기고, 가정 이 파탄나고, 자기 자신이 파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한 음행의 유혹이 있는 곳으로 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법입니다. 한 부자 부부가 자가용 운전기사를 고용하기로 했다. 부인은 자가용 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했다. 그리고 지원자들을 선별하여, 지원자를 4명 으로 압축했다. 4명의 지원자가 마지막 선택을 위하여 부인에게 왔다. 부인은 4명의 지원자를 자기 발코니로 오라고 했다. 부인은 그 4명의 지 원자들에게 현관에서 대문까지 가는 길을 따라 있는 담벼락을 그들에게 가 리키면서, "차를 저 담벼락에 긁지 않고, 얼마나 그 담벼락을 가까이 하고 차를 운전할 수 있겠느냐 "고 물었다. 첫번째 지원자는 1피트(약 45 cm)내에서 차를 긁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 고 대답을 했다. 두번째 지원자는 6인치(15 cm) 내에서 차를 긁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세번째 지원자는 3인치(7.5 cm) 내에서 차를 긁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네번째 지원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저는 얼마나 담 가까이에서 차에 상처를 내지 않고 운전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한 그 담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서 운전할 것입니다." 이 네번째 지원자는 다른 지원자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원자는 참된 운전 기술은 담벼락에 얼마나 바짝 붙여서 운전할 수 있 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담으로 부터 얼마나 넓은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운전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해를 했다. 우리 인간의 본성 속에는 이 네번째 지원자와 같이 가능한 한 최대의
넓은 안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책인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적인 유혹이다. 우리가 성인 영화와 같이 성적인 유혹이 있는 의 심스러운 영역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네번째 지원자 와 같이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떨어지는 것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음 행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음행으로 인하여 생긴 불행의 거울을 늘 들여다 보고, 마음속에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음행으로 부터 멀 리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3. 주를 시험하지 말라(9절)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6:16)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시험의 주체이시지, 우리 인간에게 시험을 받 으시는 시험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시나 안주시나 하나만을 시험하라고 하 시고, 그외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 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괴심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민수기 21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을 따 라,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나빠서 백성 의 마음이 상하였습니다.(민21:4)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 여 올려서 이 광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가 이 박한 식물을 싫어 하노라"하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뱀들을 보내서어서 원망하는 백성들을 물게 하였읍니다. 이 불뱀에 물린 자들이 죽어 갔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나와와서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에게 원망하 여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불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해 주옵소서"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 불뱀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달 고 뱀에 물린 자들로 그 뱀을 쳐다보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뱀에 물린 자 들이 그 놋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놋뱀을 쳐다보자마자 뱀에 물리 자들 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뱀에 물린 자들을 보고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 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실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뱀에 물려 죽은 자들이라고 해야 더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사건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는 것을 (시78:18ff)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저희가 저희 탐욕으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 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 광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 하였노라" (시78:18-2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때,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실 수 있을까 "하고 하나님이 먹이히고 입히시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 곳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같이 가고 계시는 가를 의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수 있을까를 의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여 시험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그것을 못 믿고,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는가 ", "하나님이 나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실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서서 만나를 내리시고, 하나님이 동풍으로 하늘에 서 일게하시며, 그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 기 새를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이 날라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분 명하게 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런 기 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못 믿고 의심하는 것이 하나님을 화나게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격동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 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의심하여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이른비와 늦은 비로 우리에게 은택을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미래에 대한 걱정속에서 삽니다. 미래에 대하여 불안해 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을 격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우리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확증을 자연등 여러가지를 통하여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러 한 확증을 보면서 절대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David Brainerd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에 갔던 유명한 선교사입니다. 그의 수 많은 노력의 댓가로 많은 인도인이 우리 주 예수님를 믿게 되었습니다. Brainerd는 기도의 사람이였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그가 전도 여행하며 겪었던 많은 경험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는 종종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그가 인도 부족을 방문하기 위하여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엄청난 폭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피할 곳을 찾았읍니다. 그는 드디어 큰 나무에 속이 텅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속에 들 어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인도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 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돌봐 주시고 그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식사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하 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람쥐가 그 나무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람쥐는 잠시동안 지껄이더니 갔습니다. 그 작은 동물이 사라졌을때 Brainerd는 그가 몇개의 밤들을 남겨 두고 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먹었습니다. 3일 동안 폭풍은 계속되었습니다. 3일 동안 Brainerd 선교사는 통나 무 속에 피해있었습니다. 매일 다람쥐는 그 굴에 밤을 저장하기 위하여 밤을 몰고 왔습니다. David Brainerd 선교사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이 다람 쥐를 보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렇게 필요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도, 다람쥐를 통해서도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 히신 것을 거울로 삼아서 늘 들여다보고, 마음에 묵상하여,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공급하심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4. 원망하지 말라(v.10)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의 소리를 좋아하십니다. 감사의 소리를 좋아 하십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의 소리는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 인간이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싫어하듯이, 하나님도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듣기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민수기 14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 왔을 때, 각 지파에서 1명씩 대표를 택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정탐군들 중에 10명의 정탐군들이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 실과가 바로 그 땅의 실과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클뿐 아니라, 그곳에서는 네피림의 후예인 아낙자손을 보았습니다."(민13:25-29) 그러다가 조금 있다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더 격동시키기 위하여 그 땅을 악평하였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 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의 후 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 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민13:32-33)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을 하 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 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3) 그러면서 장관을 세워 다 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화가난 하나님은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 를 믿지 않겠느냐 "(민14:11)고 모세에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열번이나 시험하여 원 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읍니다. 이렇게 인생의 길을 가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원망하는 자들 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그들 로 복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가는 길이 힘들고, 가는 길 앞에 힘든 일이 놓여 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행복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복된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무서운 사건을 늘 기억하기 위하여 신앙의 거울 로 삼으라고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때에도 능히 헤쳐나갈 능력과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13)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 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 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늘 들여다보고, 마음에 묵상하여 가는 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놓여 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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