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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슥11:4-14)

본문

본문은 앞 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하는 사실을 부인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본문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좀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1.예수님의 지상 사역 본문 4-6절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여서 어떠한 일을 하실 것인지를 스가랴를 통해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1).목양사역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슥11:4) ‘잡힐 양떼를 먹이라’ 잡힐 양떼란 어리석게도 목자 보호를 배척하고 결과적으로 죽을 운명을 맞게 된, 도살의 선고를 받은 양떼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져 버리고 멀리멀리 떠나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예언은 후에 예루살렘 성이 디도 장군을 중심으로한 로마 군인에게 점령되어 무너지는 날 예루살렘 거민 일백오십만 명이 학살을 당하는 것으로 성취가 됐습니다. 일백오십만의 예루살렘 거민이 잡혀가서 도살당하는 양처럼 죽임을 당하는 모습은 잡힐 양떼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그들을 목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산 자와 판 자’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과 같이 유대인을 상품화시켜 사고 파는 행위를 하는 로마 사람을 말합니다. 로마 사람들 가운데 유대인을 돈주고 산 사람들은 유대인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또 판 사람들은 돈을 받고 팔므로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양하리라 하며 그 행위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도다’ ‘목자’란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교인의 유대 지도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자기들이 지도자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혀가서 고통을 당하는 비참한 자리에 떨어져 있을 때도 제 배만 부르면 좋다고 그들을 상관치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외면해 버렸습니다. ‘이웃의 손’이란 이웃 나라의 힘, 밖의 모든 힘을 말하여 ‘임금의 손’ 이란 로마 세력을 말합니다. 안과 밖에서부터 오는 힘에 이스라엘 백성을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건져 내지 아니하신다고 말씁하십니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자기 백성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도 죄이지만 자기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지도자도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도성을 주시고 지도자의 자리를 주신 것은 백성을 돌아보라고 하심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됩니다. 또한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면 안팎에서부터 우리를 공격해 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을 이겨낼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사탄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하므로 우리에게는 죄와 싸울 만한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과 싸우면 백전백패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윗이 골리앗 장군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싸워 주시지 안이하면 별 수 없이 쓰러지고 결국 실패의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2).보호 사역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새”(슥11:7) 모든 양들이 돌보는 사람 없이 잡힐 양떼처럼 되었지만 그 가운데 가련한 양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련한 양이란 메시야를 기다리고 메시야를 붙드는 얀, 즉 남은 자를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고, 하나는 연락이라 하여 남은 자를 보호하십니다. ‘은총’이란 영어 성경을 보면 아름다움, 사랑 받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또한 ‘연락’이란 내적 조화를 말합니다. 백성들이 흩어지지 않게 내적으로 연락을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남은 자를 보호하시는데 하나는 사랑의 막대기로 그들을 몰아서 악마에게 끌려가지 아니하도록 그 울타리에 머물게 하시고 또 하나는 연락의 막대기로 백성들로 하여금 흩어지지 아니하도록 서로 연결시켜 놓으신다는 말입니다.
3).치리 사역 “한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슥11:8)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끊으신다는’는 해석이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세 목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이미 말씀드린 대로 본문은 메시야를 예언한 것이라고 했으므로 세 목자는 개인 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세 부류의 사람들인 선지자, 제사장, 왕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이란 오래 끌지 아니하는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짧은 시간 동안에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들을 끊어 버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하나님을 미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라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싫어했고 하나님을 미워했으며 하나님 또한 그들을 싫어했으므로 단기간 동안에 그들을 치리 하시는데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셨으니 이것이 주님을 거절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파멸인 것입니다.
1.죽음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게 되면 역경과 기근에 의해서 흑은 질병과 환난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는 자는 죽는 대로 이 죽음의 재난이 떨어집니다.
2.패망 망할 재앙입니다. 개인이 망하고 가정이 망하며 또 전쟁의 재앙이 일어나서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3.내란 피차 살을 먹는 내부적 갈등과 알력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밖에서부터 옴으로 힘에 의해서 망하기도 하지만 나라가 안락하고 편안해지고 국민간에 부패하고 타락해서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물고 찢고 하는 내란과 알력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그 단체,, 국가, 민족, 사회는 저절로 허물어지는 법입니다. 차라리 외세로 인하여 환난이 오면 허리를 동이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만 이같이 피차에 살을 먹는 것은 재난 중의 재난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막대기, 사랑의 막대기를 취하여 자르셨으니 하나님이 백성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 저주 시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생에게 떨어지는 저주 중의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관심입니다. 차라리 몽둥이로 때리시고, 차라리 어려움을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 가장 무섭게 저주하시는 방법으로 택하신 것은 네 맘대로 하라고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무관심 속에 있으면 인간은 그때부터 자행자지하게 되는데 제멋대로 움직이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발을 구르는데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결국에 가는 곳은 멸망의 함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2.메시야의 거절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슥11:12) 본문에는 메시야가 거절을 당하여 온 은 삼십에 팔려 가는 비참한 모습이 나옵니다(12-13). 왜 하필이면 은 삼십이라고 했을까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그 은 삼십이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21:31절을 보면 은 삼십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데 한 집의 소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주인의 아들이나 딸이 아닌 종을 받아서 죽었을 경우에 그 종의 몸값으로 지불되는 돈이 은 삼십입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판 것은 하나님께 대한 엄청난 모욕입니다. 또한 토기장이라고 하는 말은 그 당시의 토기장이들이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작업장에서 그릇을 구했는데 힌놈 골짜기란 무시무시한 곳일 뿐 아니라 지옥과 같은 곳, 불결한 곳, 부정한 곳, 쓰레기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렇게 천대하여 소에 받쳐서 죽은 종 하나의 몸값으로 쳐서 토기장이에게 집어 던졌다고 했으니 이것은 은 삼십으로 그 부정한 땅, 필요 없는 것을 사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이에둘째 막대기 곧 연락의 막대기가 또 잘라집니다. 앞에서 은총의 막대기가 잘려졌는데 이번에는 내부적 띠를 띠어 준 그 막대기가 꺾어져 형제의 의가 무너지고 성도들 간에 서로 이간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먼저 은총의 막대기가 부러지니까 연락의 막대기까지도 부러지는 비극의 장면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제목을 몇 가지 찾아야 됩니다.
첫째,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양들을 아시므로 남은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의 양들을 놀라웁게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됩니다.둘째, 목자의 음성을 듣는 사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목자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별해야 됩니다. 거짓 목자는 양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불쌍히 여겨 끝까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양을 버리고 제 길로 가거니와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자기 백성을 자기 품 안에 넣고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은총의 막대기로 보호하시고 연락의 막대기로 띠를 뛰어서 백성들이 그 품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목양하시는 그 울타리 안에서 은총과 연락의 막대기로 보호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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