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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니 (습3:14-20)

본문

한국인들은 웃음보다는 눈물에 더 익숙하다. 고난과 시련의 역사였고 가난과 아픔이 서린 날들을 더 많이 보냈으니, 슬퍼도 울고 기쁜 일이 있어도 운다. 작금의 상황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보다는 암울하고 답답한 일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매일 들려 오는 뉴스는 기쁨의 소식보다는 가슴 아프고 답답한 뉴스들로 가득차 있다. 인간사에는 기뻐할 일보다는 눈물 흘릴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아픔과 한숨 서린 삶 가운데서도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기뻐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고, 일이 잘 되기 때문에도 아니다. 문제가 없거나 있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물질적인 풍요 때문 또한 아니다. 말씀이 요구하는 기쁨이 신앙는 인간 삶의 조건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심판의 메시지를 증거하던 요시야의 입술에 하나님께서는 전격적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주신다.
긍휼히 여기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떨고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바냐는 담댕하게 “기뻐하라”고 증거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기뻐할 이유는 무엇인가 징계의 매를 맞고 사회적인 혼동과 침체,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그들이지만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결코 그들에게 있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서, 주변 환경에서 기쁨의 이유, 감사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면 기뻐할 사람보다는 불평하고 근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은 결코 자신에게서 기쁨의 이유를 찾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흐르는 냉기에 누더기 이불로 무뤂을 감싸며 빕립보서를 썼을 바울은 외적인 환경을 바라보면 기뻐할 수가 도무지 없었지만 주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었고, 임박한 환란 가운데 서 있는 빕립보 교우들에게 주 안에서 그분으로 인해 기뻐하자고 말씀을 써 보내고 있다(빌 4:4-7). 하박국의 신앙도 넉넉함과 풍요와 성취 속에서 기쁨의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었고, 여호와로 인하여 그는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한다(합 3:17-19). 오늘 구약의 본문도 기뻐할 이유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기뻐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는가
1.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하나님 도심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15).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이 무지로부터 왔다면, 그들의 치유와 회복은 야웨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이 찬송하라는 말씀과 함께 15절은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한다. 그분은 형벌받아야 할 우리의 형벌을 제하신 분이시며, 우리 대신 싸우셔서 우리의 원수를 제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전까지, 우리가 온전히 그분을 신뢰하기 전까지 우리는 기쁨의 삶을 살 구가 없다. 외적인 환경이나 조건으로 인해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기쁨의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러나 내 삶 속에 계신 하나님, 내 삶을 통치하고 계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롬 8:28)을 발견한 사람만이 온전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은 우리의 환경이 바뀌고 여건이 변하기를 먼저 구하기보다는 우리가 주님으로 더욱 충만해지기를 구해야 한다. 주님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은 깊은 밤에도 찬송하며 기뻐할 수 있었다. 오랜 기도 중에 있는 선다싱에게 환상 중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물으셨다고 한다. “아들아,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선다싱은 대답하기를 “주님, 저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 주님으로 충만해져서 내 삶의 중심에 계시는 그분을 바로 아는 그 사람만이 기쁨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다. 스바냐가 민족적인 비극과 암울한 현실 가운데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17). 그 하나님이 행하실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18-20)
2.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16).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이다.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부정적인 생각과 삶의 자세를 던져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불평”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사랑으로 전격적인 구속함을 받아 출애굽을 했지만, 홍해 앞에서 이러한 신앙의 암적 요인에 사로잡혔을 때 그들이 가진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출 14:10-13). 두려워하는 자세는 신앙을 잃어버린 자세요,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자포자기해 버리는 자세입니다.
3. 기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신다(14). 찬양은 우리 삶의 염려와 근심들을 희석시키고, 우리의 심령에 기쁨을 생성시켜 주며 증폭시켜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요, 하나님께로 나의 전 존재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찬양은 우리의 심령을 맑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해 준다. 찬양이 살아 있는 심령은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문제에 짓눌리지 않게 된다. 한밤중에 불렀던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그 억울한 삶의 여건들을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건으로 바꾸어 준다(행 16).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침략을 받아 민족이 멸망할 위기 가운데 있던 남왕국 왕 여호사밧이 찬양하는 사람들을 세워 찬양하며 나갔을 때, 그 찬양과 함께 여호와께서 대신 싸우시기 시작하신다.(대하 20:20-23). 오랜 불신앙 가운데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잃어버린 것은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찬양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으로 인해 노래하라고 권고한다. 찬양할 때 기쁨의 삶은 이어지고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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