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되어 주님의 평화를 이루자 (습3:14-20,빌4:4-7,눅3:7-18)
본문
기독교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보다 앞서가는 것이 '이 해와 용서'이고, 뒤따르는 것이 '평화와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해와 용서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그 사랑의 삶을 실천하게 될 경우에는 자연히 평화와 기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위대한 사랑'을,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내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죄와 죽음에 처한 사람들을 구원했으며, 또한 이 땅 위에 참 평화의 씨를 심으셨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를 믿고 의지할 때, 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바울도 빌4:7에서,예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의 평화가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며 안식 을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를 '사랑과 평화의 주님'으로 영 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의지할 경우,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여기에,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더할 때, 인간의 이해를 초월 하는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밝혔 습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시골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 들었습니다.
어느 집사님도 그 목사님의 설교를 은혜스럽게 듣다가, 그만 밤 근무를 하고 오는 남편의 식사시간을 잊어버 렸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매우 노 한 표정으로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도대체, 당신은 어디를 다녀오는 거요"하고 물었 습니다. 그 집사님은 "부흥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하고 대답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은 화를 내면서, "당신이 그 목사 얼굴에 침을 뱉고 오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집사님은 이웃의 다른 집사님 댁에서 기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은 도저 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목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서, 그 가정에 다시 평화를 찾아 줄 지혜를 짜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을 강사 숙소 로 오라고 했습니다. "내 눈이 아주 많이 아픈데, 이것은 침 으로 씻어내야 낫습니다. 집사님의 침으로 좀 닦아주십시오" 하고 얼굴을 내 밀었습니다. 그 집사는 깊은 생각 없이 목사 님 눈에다가 침을 뱉어 닦아주었습니다. 이윽고,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이제는, 당신이 내 얼굴 에 침을 뱉었으니, 남편에게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때서야 목사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의 눈물 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 의 가정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를 잘해서 성도들에게 은혜만 끼친 것이 아니라, 지나쳐버려도 될 일에 직접 관심과 사랑을 기울임으 로써, 한 가정에 평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 에 오신 그 목적대로, 그 목사님은 몸소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여 평화를 이 뤄가려면, 먼저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 4:5에서 자기 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너 그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보 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다시 오시는 주님 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1.주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가 필요 없는 사람은, 굳이 주님 맞을 준비를 할 필요 가 없습니다. 예수 없이도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회개했다는 것을 생활로 증명하라고 한,세례 요한의 말 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살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가진 분 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겹고 따분하기만 한 분들은, 오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바냐 선지자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를 강하게 하시는 주께서 네 가운 데 오셔서 사신다(3:16-17)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잘 모시고 살아간다면, 삶의 두려움과 걱정을 몰아내고,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이려면,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주 님을 의지하면서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물을 먹으려면 최소한 입은 벌리고 있어야 하듯이, 주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주님 맞이 할 준비는 되어야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례 받으러 온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려 하지 않고 지옥만을 피하려 하 고 있다(눅3:7)고, 질책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건만,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지옥 가는 것만 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주께서 네 가운데 계시니, 네 가 재앙 당할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 살 걱정을 하면서 주의 뜻대로 살기를 외면한 다면, 그것은 주의 능력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리고, 주께 돌아오지 않은 두 번째 증거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안다고 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진정으 로 회개하지 않고서 살 경우
2우리는 기도와 감사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은, 마치 레일이 없는 기차 처럼,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평화 를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감사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화를 맛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없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신앙 생활 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3쭉정이 신앙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알맹이 없는 신앙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수치와 빈축 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쭉정이를 모아서 꺼 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신다고 했습니다. 눅 3:9에도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어 던져지리라고, 기록되 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평화의 주(主)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켜서, 평화와 기쁨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 신 주님을 의지하고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하나님은 평화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1모든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주께서 너희 대적들을 제거하셨다(3:1 5)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할 필 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2뿐만 아니라, 하나님은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에 너를 강하게 하시는 주께서, 네 가운데 오셔서 함께 사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강하게 훈련 시키시는 트레이너가 우리 곁에 계시니, 정말 우리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님 곁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저절로 굳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평화를 맛보면서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3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채찍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시대가 악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심령이 강퍅해졌습니다. 우리의 강퍅한 심령이 새롭게 되 려면,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십일 기도회 기간 동안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말씀을 은혜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 고, 믿음의 씨앗이 자랄 수 있습니다. 메마른 심령 속에서는, 싹이 틀 수도 없고 자랄 수도 없습니다. 따뜻한 주님을 그 마음에 영접하지 않으면, 마음은 동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얼어죽게 됩니다. 아직도 주님 을 떠나서 사는 심령이 있다면, 어서 그 마음 속 깊이 주님을 맞아들이십시오.
3.그래서, 우리 중에 계신 주님과 함께 평화를 이뤄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너무나 유명한 성 프랜시스코의 기도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소서. 미움 있는 곳에 사랑을 심게 하소서. 상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 에는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의 씨를 뿌리는 자가 되 게 하소서. 오, 주님! 나로 하여금,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자가 되 게 하시고, 이해 받으려는 것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 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가 먼저 용서할 때 너도 용서를 받으며, 내가 먼저 줄 때 나도 받을 수 있으며, 내가 죽을 때 영원히 살 수 있음 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같이 숭고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1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삶의 패턴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두려 움과 걱정 속에서 살던 삶이, 이제는 신실한 하나님을 의지하 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기도와 감사의 생활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 다고, 바울은 빌 4:6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2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평화를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 태도는 '자기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너그러움'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살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공동 파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평화를 누리려면,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생각과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주께서는 베푸시는 성령님 세례를 받 아야 합니다. 그래서, 옷 두 벌 가진 사람은 한 벌을 가난한 이에게 주 고, 먹을 것이 있거든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부패한 관리는 정직하게 살아야 하며, 공직자는 받는 봉급으 로 만족해야 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때, 이 땅 위에는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그 국운(國運)을 바꿔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 해서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으로 그 마음과 생각과 생활이 주님의 뜻에 맞게끔 바뀌게 될 때, 우리의 국운 도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3아무쪼록, 우리는 항상 주님 맞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우리 중에 오신 주를 마음에 모시고 이웃 사랑을 실 천하는 것이, 영원하신 주님을 모셔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충실한 알곡이 되 어, 칭송과 존중을 받는 사람이 됩시다. 그러면,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 때,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삶을 살려면 반드시 이해와 용서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그 사랑의 삶을 실천하게 될 경우에는 자연히 평화와 기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위대한 사랑'을,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내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죄와 죽음에 처한 사람들을 구원했으며, 또한 이 땅 위에 참 평화의 씨를 심으셨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를 믿고 의지할 때, 우리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바울도 빌4:7에서,예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의 평화가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며 안식 을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를 '사랑과 평화의 주님'으로 영 접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의지할 경우,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여기에,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더할 때, 인간의 이해를 초월 하는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밝혔 습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시골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 들었습니다.
어느 집사님도 그 목사님의 설교를 은혜스럽게 듣다가, 그만 밤 근무를 하고 오는 남편의 식사시간을 잊어버 렸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매우 노 한 표정으로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도대체, 당신은 어디를 다녀오는 거요"하고 물었 습니다. 그 집사님은 "부흥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하고 대답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은 화를 내면서, "당신이 그 목사 얼굴에 침을 뱉고 오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집사님은 이웃의 다른 집사님 댁에서 기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은 도저 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목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서, 그 가정에 다시 평화를 찾아 줄 지혜를 짜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을 강사 숙소 로 오라고 했습니다. "내 눈이 아주 많이 아픈데, 이것은 침 으로 씻어내야 낫습니다. 집사님의 침으로 좀 닦아주십시오" 하고 얼굴을 내 밀었습니다. 그 집사는 깊은 생각 없이 목사 님 눈에다가 침을 뱉어 닦아주었습니다. 이윽고,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이제는, 당신이 내 얼굴 에 침을 뱉었으니, 남편에게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때서야 목사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의 눈물 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 의 가정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를 잘해서 성도들에게 은혜만 끼친 것이 아니라, 지나쳐버려도 될 일에 직접 관심과 사랑을 기울임으 로써, 한 가정에 평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 에 오신 그 목적대로, 그 목사님은 몸소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여 평화를 이 뤄가려면, 먼저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 4:5에서 자기 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너 그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보 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다시 오시는 주님 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1.주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가 필요 없는 사람은, 굳이 주님 맞을 준비를 할 필요 가 없습니다. 예수 없이도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회개했다는 것을 생활로 증명하라고 한,세례 요한의 말 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살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가진 분 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겹고 따분하기만 한 분들은, 오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바냐 선지자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를 강하게 하시는 주께서 네 가운 데 오셔서 사신다(3:16-17)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잘 모시고 살아간다면, 삶의 두려움과 걱정을 몰아내고,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이려면,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주 님을 의지하면서 그 뜻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물을 먹으려면 최소한 입은 벌리고 있어야 하듯이, 주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주님 맞이 할 준비는 되어야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례 받으러 온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려 하지 않고 지옥만을 피하려 하 고 있다(눅3:7)고, 질책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건만,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지옥 가는 것만 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주께서 네 가운데 계시니, 네 가 재앙 당할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 살 걱정을 하면서 주의 뜻대로 살기를 외면한 다면, 그것은 주의 능력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리고, 주께 돌아오지 않은 두 번째 증거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안다고 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진정으 로 회개하지 않고서 살 경우
2우리는 기도와 감사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은, 마치 레일이 없는 기차 처럼,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평화 를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감사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화를 맛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없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신앙 생활 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3쭉정이 신앙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알맹이 없는 신앙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수치와 빈축 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쭉정이를 모아서 꺼 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신다고 했습니다. 눅 3:9에도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어 던져지리라고, 기록되 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평화의 주(主)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켜서, 평화와 기쁨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 신 주님을 의지하고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하나님은 평화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1모든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주께서 너희 대적들을 제거하셨다(3:1 5)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할 필 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2뿐만 아니라, 하나님은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에 너를 강하게 하시는 주께서, 네 가운데 오셔서 함께 사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강하게 훈련 시키시는 트레이너가 우리 곁에 계시니, 정말 우리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님 곁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저절로 굳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평화를 맛보면서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3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채찍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시대가 악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심령이 강퍅해졌습니다. 우리의 강퍅한 심령이 새롭게 되 려면,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십일 기도회 기간 동안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말씀을 은혜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 고, 믿음의 씨앗이 자랄 수 있습니다. 메마른 심령 속에서는, 싹이 틀 수도 없고 자랄 수도 없습니다. 따뜻한 주님을 그 마음에 영접하지 않으면, 마음은 동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얼어죽게 됩니다. 아직도 주님 을 떠나서 사는 심령이 있다면, 어서 그 마음 속 깊이 주님을 맞아들이십시오.
3.그래서, 우리 중에 계신 주님과 함께 평화를 이뤄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너무나 유명한 성 프랜시스코의 기도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소서. 미움 있는 곳에 사랑을 심게 하소서. 상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 에는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의 씨를 뿌리는 자가 되 게 하소서. 오, 주님! 나로 하여금,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자가 되 게 하시고, 이해 받으려는 것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 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가 먼저 용서할 때 너도 용서를 받으며, 내가 먼저 줄 때 나도 받을 수 있으며, 내가 죽을 때 영원히 살 수 있음 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같이 숭고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1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삶의 패턴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두려 움과 걱정 속에서 살던 삶이, 이제는 신실한 하나님을 의지하 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기도와 감사의 생활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 다고, 바울은 빌 4:6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2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평화를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 태도는 '자기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너그러움'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살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공동 파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평화를 누리려면,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생각과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주께서는 베푸시는 성령님 세례를 받 아야 합니다. 그래서, 옷 두 벌 가진 사람은 한 벌을 가난한 이에게 주 고, 먹을 것이 있거든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부패한 관리는 정직하게 살아야 하며, 공직자는 받는 봉급으 로 만족해야 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때, 이 땅 위에는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그 국운(國運)을 바꿔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 해서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으로 그 마음과 생각과 생활이 주님의 뜻에 맞게끔 바뀌게 될 때, 우리의 국운 도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3아무쪼록, 우리는 항상 주님 맞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미 우리 중에 오신 주를 마음에 모시고 이웃 사랑을 실 천하는 것이, 영원하신 주님을 모셔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충실한 알곡이 되 어, 칭송과 존중을 받는 사람이 됩시다. 그러면,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 때,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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