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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표의 사람 여호수아 (슥3:8-10)

본문

우리는 지난 주일에 스가랴 선지자가 받은 네 번째 환상인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보았습니다. 그는 선민 이스라엘의 대표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죄인이었고, 더러운 옷을 입은 부정한 죄인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대적자 사단의 송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앞에 서 있는 은총 때문에 하나님의 사유를 받고 예수께로부터 새로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죽음의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완공하면, 제사장의 나라와 백성된, 사명과, 명예와, 권세와,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는 미래적 소망의 환상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네 번째 환상 중에 두 번째 내용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예표의 사람으로서의 여호수아를 보게 됩니다. 3장 8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여기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동료들은 여호수아의 대제사장직을 돕고 있는 다른 동역자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를 위시한 저들은 모두 ‘예표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표는 놀라운 일(wonder), 또는 초자연적 이적(출4:21), 기사(출11:9), 표적(신28:46), 징조(사8:18), 표징(겔24:24) 등을 말하는 내용들입니다. 오늘 이 본문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예표’를 뜻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사8:18, 20:3). 그래서 70인역(LXX)에는 ‘이 사람들은 이적을 보고 있는 자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벌게이트역(volgate)은 ‘
왜냐하면, 이들은 예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 동료들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미래에 일어난 일들은 예시하는 자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우리의 큰 제사장이요, 신령한 제사장이요, 영원한 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이요, 그의 동료들은 그를 수종드는 제사장들로, 오늘에 복음의 제사장된 신약교회 성도들을 예표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벧전 2:5, 9, 계5:10).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준 이 환상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도 되지만, 그는 예표의 사람으로 오실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는 사람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실 대제사장 여호수아 곧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I. 내 종 순이라고 하였습니다. 3장 8절 하반절에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순’은 ‘새로 돋은 싹’ 혹은 ‘새로 나온 가지’를 의미합니다. 내 종 순이라고 하므로 종과 순을 결합시켜 함께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은 메시야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사42:1, 49:3, 50:10, 52:13, 53:11, 겔34:23-2
4). 이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제물이 되기 위하여 잡히고, 끌려가고, 매 맞고, 찔리고, 상처받아 마침내 죽임을 당하는 수난의 종, 어린양을 의미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율법아래 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를 나타내는 말이 ‘종’입니다. 여기 순, 곧 ‘새로 돋은 싹’이란 ‘솟아나다, 빛나다(sprout, spring up, shine)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싹’(사4:2), 예레미야는 ‘의로운 싹’(렘23:5, 33:15), 혹은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6장 12절에는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를 순이라고 예언했는가 이것은 ‘수난의 종’ 예수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순은 싹입니다. 연한 싹, 깨끗한 싹, 순수한 싹을 의미합니다. 그 출발이 심히 미미하고, 약하고, 연한 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고운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아직 꽃도, 향기도, 열매도 없습니다. 참으로 고운 모양이나, 매력적인 멋이나, 맛도 없습니다. 바로 베들레헴 구유에 나시고, 애굽으로 망명 당하시고, 나사렛에서 목사의 아들로 사시고, 배척 당하시고, 십자가에 던지움이 되는 고난의 주님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솟아나는 싹이요, 움직이는 싹이요, 생명의 싹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생명으로 빛을 발하고 나타났습니다. 이는 분명히 수난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내 종 순이라고 한 것입니다.
Ⅱ. 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3장 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1. 돌이 누구인가 무엇인가 잘못된 해석들이 있습니다
1 대제사장의 단이나 예복에 다는 보석
2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석(머릿돌)
3 재건될 성전 등의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말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함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수난의 그리스도 내 종 순이라함과 같이, 영광의 종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사28:16). 시편 118편 22절로 23절에 건축자의 머릿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시켰습니다(마21:42). 사도 바울도 예후께서 친히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엡2:20-22).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산돌(벧전2:4-8)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바울은 예수를 ‘반석’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0:4). 다니엘은 ‘뜨인 돌’이 나타난다고 예언하였습니다(단2:35, 4
5). 그러니 돌은 그리스도 자신이요, 부활 교리의 기초석이요, 만세반석을 가리킵니다.
2. 어떤 돌인가 우리 본문은 몇 가지로 세밀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한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3장 9절에 .보라 한 돌.(one stone)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한 돌은(에벤 아하트)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인데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지정하여 세운 돌을 가리킵니다. 이 말의 뜻은 ‘특별한 돌’, ‘선택된 돌’을 말함인데 구주의 유일성, 유독성, 독특성을 말함입니다.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으로,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천국 아버지께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요14:6). 천하 만인간에게 예수 이름 아니고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는 유일의 구주를 뜻하고 있습니다(행4:12). 예수는 모퉁이의 머릿돌로서 특별하게 세움을 입은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 영원히 살아 계신 전지의 돌을 가리킵니다. 다시 3장 9절에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직역하면, ‘한 돌 위에 일곱 눈이 향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일곱 눈이 그 돌에 새겨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4장 10절에는 온 땅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고 하였다. 계시록 5장 6절에 ‘일곱 눈’을 ‘일곱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전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 앞에 모를 것이나, 숨길 것이 없는 전지의 주님을 보여 줍니다. 곧 살아 계신 돌(Living stone)을 뜻합니다. 그는 마침내 사망을 깨뜨리시고,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전지의 주님이시다.
3. 은총의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3장 9절에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건축자들이 버린 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마21:42, 시118:22).
그런데 하나님이 그 돌에 새길 것은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물의 가장 중요한 모퉁이 돌이 되기 위하여 인류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돌에 새길 것을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그 몸에는 채찍을 맞으시고, 그의 양손과 양 발목에는 못자국을 받으셨습니다. 옆구리에 받은 창자국, 눈에서 솟은 눈물, 마음에 토하는 기도, 행하신 기적, 마침내 쏟으신 보혈 등이 그 몸에 새겨져 버렸습니다. 그 돌에 새길 것을 다 새겼다는 말은 이렇게 우리의 대속을 위하여 대속의 희생을 다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주님이 죄를 지으실 수가 없는 주님이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모든 고초를 다 당하신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몸에는 대속의 흔적, 사랑의 흔적, 구속의 흔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4. 사죄의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3장 9절 하반 절에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의 죄악’이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선민의 죄를 가리킵니다. 궁극적으로 택함 받은 모든 인류의 죄를 총칭합니다. 하루에 제하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루’란 구약에서 대속죄일을 가리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번 속죄의 영원한 효과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속죄 성취의 개가를 선언하였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에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 같이 할 필요가 없나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단 한번의 속죄 사역이 영원한 속죄를 성취시킨 사실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에 도래할 메시야 왕국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존재의 의미요 본질이요, 동력입니다. 오늘 지구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을 바로 단 번에 속죄하신 예수의 은총 때문입니다. 그 영원한 효력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효력이 영원한가
1 속죄주가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2 속죄의 영이 사람들에게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유할 말은 사람이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영원한 은총의 돌이십니다. 불변하는 은총의 돌이십니다.
Ⅲ. 메시야 시대의 축복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 날’은 메시야 시대, 곧 신약의 복음 시대를 가리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는 번영과 평안의 상징입니다(사16:8, 9, 10, 렘48:32). 각각 서로 초대되리라는 말은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이 복음에 초청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 하는 복음왕국 곧 교회운동의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보여 준 네 번째 환상을 통하여 새로 재건되는 성전과 함께 이스라엘의 영적 복구를 알려 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불에서 끌어낸 그슬린 나무에 움이 돋고, 순이나며 꽃이 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젠 저들에게는 부정한 옷 대신에 아름다운 옷이 입혀지고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금관이 씌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며 그 안에서 예배하는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금관이 씌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며, 그 안에서 예배하는 제사장 나라의 영적 복권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참으로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적 복구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고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아니라 참 제사장 예수, 거룩한 제사장 예수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앞으로 재건될 예루살렘 성전에 초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분은 우리 죄를 친히 담당하신 고난의 주님, 곧 내 종 순으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분은 또한 우리의 의롭다 함을 위하여 다시 부활하신 생명의 돌 예수, 영광의 돌 예수, 승리의 돌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분이 성취하신 교회운동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 그분에게 초청 받은 행복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성전)는 예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내 종 순)과 영광의 부활(돌)에 기초하는 생명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새성전 경향의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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