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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 되자 (룻3:1-5,4:13-17,히9:24-28,막12:38-44)

본문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 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물론 아름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쁜 소문을 만들어 내거나 퍼뜨리는 사람들은, 그 결과가 아주 좋 지 않은 반면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많은 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 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신체 구조와 성격을 극복하면서 조화를 이루 어 살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고부간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부부관계 란, 어느 정도 선택을 해서 이루어집니다. 서로 마음이 드는 부분이 있 어서 애정을 갖게 되고, 그래서 결혼합니다. 그러나, 고부관계는, 본인 뜻과는 상관없이, 아들과 남편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피동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니, 고부 관계는, 그 관계를 갖는 처음 순간부터, 여러 갈등 구 조를 내포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갈등을 이겨내고, 서로 아끼며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문제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서로 양보 하고 이해를 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참 좋은 책입니다. 그야말로, 생명의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여러 경우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수한 경우를 빼놓고는, 어느 가정이든지 고부관계를 이루 어 살게 마련인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한, 아주 확실한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룻기 3장과 4장의 말씀은, 그야말로 한 편의 아름다 운 풍경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를 사랑하고 돌보는 모습이, 너무나 지극하고 정성스럽습니다. 오랫동안, 나오미는 며느리 룻의 신랑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얼마든 지 더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었으련만, 굳이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타 국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 며느리가, 참으로 가상하면서도 안쓰러웠 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스러운 며느리를 위하여, 신랑감을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온 것은, 자기 나라보다 유다가 더 살기 좋았 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어머니에게 무슨 큰 재산이 있어서, 그 재산을 바라보고 온 것도 아닙니다. 아무 희망도 없고 기댈 것도 없는 시어머 니이지만, 한 번 맺은 고부관계의 인연을, 룻은 소홀히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룻은 자기 인생보다, 시어머니의 인생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짓입니다. 늙은 시어머니가 뭐 그 리 소중하다고, 젊은 청춘을 희생한다는 말입니까 더군다나, 남편도 없 고 자식도 없는데, 무슨 덕을 보겠다고 시어머니를 계속 섬기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인생과 자기 인생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인생으로 보았습니다. 고부관계의 인연을 맺는 순간부터, 룻은 자기 스스로를, 시어머니와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나오미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어머니 가시는 곳에 저 도 가겠습니다. 어머님께서 섬기시는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마음과 그 자세가 굳건했습니다. 어 쩔 수 없어서 모시는 시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룻은 확실한 믿음을 갖 고 정성스럽게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또한, 그 며느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습니다. 못된 시어머니 같으면, 며느리를 부려먹기만 했을 텐데, 나오미는 며느 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며느리의 신랑감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 로,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는 보아스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시집가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룻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하고 순종합니다.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지시에도 불구하고, 며느리 룻은 아무 불평 없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물 론, 룻이 시어머니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있거니와,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하랴 싶 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보아스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때, 마을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 아이가 당신에게 살맛 나게 해줄 것입니다"라 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일곱 아들보다, 더 당신을 극진히 모시던 며느리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살맛 나게 해주는 사람'의 출생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고부간의 아름다운 관계와 깊은 사랑의 열매로 잉태되어 출생했습니다. 그 씨가 어디로 갑니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훌륭한 신앙을 가 진 좋은 부모가 좋은 자녀를 낳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오미와 룻에 비교할 때에, 우리는 서로 얼마 나 사랑하며 섬기고 있습니까 금쪽같은 자녀에게 정말 모범이 될만한, 그런 고부관계와 부부관계를 이루어 살고 있는지요 우리의 자녀로 하 여금, 이 사회에서 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면, 부모되는 우리 가 먼저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1.베풀 생각은 하지 않고, 대접만 받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복음성가 중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예수님처럼, 바울과 같이,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 들의 온 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 이 거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 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9:27)예수께서도 죽으셨습니다. 교통 사고나 병들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대신, 희생 제물이 되 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예수님의 은혜를 갚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예수님의 희생 정신을 제대로 본받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와 자식을 위해서는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그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룻 이 받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룻이 자기만 생각했더라면, 그는 결코 다윗과 예수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을 회피했다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없 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와 가족보다는, 이웃과 교회를 먼저 생각할 때, 진정 모든 사람들에게 살맛 나게 하는 존재가 되고, 자기 자신도 큰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와 내 가족만을 먼저 생각할 경우에는, 결코 빛된 삶 을 살 수가 없습니다. 당장,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지만, 하나님의 복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2위선적인 행동만 하고, 진정한 헌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됩니다. 그러나, 거짓된 모습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에게서 제 일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척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일이든지, 교회 일을 하던지, 아니면 마을 공동 작업 을 할 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과부의 엽전 두 푼 헌금을 칭찬하신 것은, 그 액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최선 을 다해야, 살맛 나는 교회와 세상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다할 때에, 교회가 발전 하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색만 갖추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하거나 모양만 내려하지, 실질적으로 마음을 다 기울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 면서도, 그 자녀들은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으니, 우리는 모 두,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3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이 분명 두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주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음이 눈앞에 있어도, 세상 욕심에 때문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행한 바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자기 몸 을 바쳐 희생한 사람들은, 부활의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 기만을 위하여 산 사람들은, 그 악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2.하나님은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히브리서 9장 26절에 보면,예수께서는, 죽음과 죄악의 세력을 영원 히 제거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죄는, 이기심이 그 원인입니다. 희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를 따 르지 않고, 허세나 부리며, 사람들 앞에서 착한 사람인 척 위장하고 있는, 거짓된 자를 본받게 될 때에,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고 믿음의 승리를 하려면, 예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주는 희생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누구를 위하여 살고 또한 누굴 위해 죽어야 하는 지를, 보여 주셨습니다.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대원 칙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은 우리 욕심을 이용하여 죽음의 길로 인도하지만, 예수는 그 욕심을 이김으로써 생명 길 가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2예수는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물론, 그 심판의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 하여 자신을 희생하면 영원히 살거니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할 경우에는 영원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룻과 나오미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 같 은 이는, 한 번 살자고 잘못 재판하는 바람에, 영원히 심판 받아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나와 내 가족에게 진정 복 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3.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극진히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여의주 11 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강원도 홍천에 사는 '장선미'라는 분이, 결혼한 지는 7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시어머니는 계모입니다. 그리고, 시할머니가 계신데, 식당을 했 습니다.
그런데, 그 시할머니가 사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그 동안 애 써 마련한 새집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그 때, 시할머니가 쓰러져 대소변 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식당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식당 일에 다가 할머니 수발까지 드느라, 정말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 지만, 시어머니는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집을 다시 사서,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해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쉴 틈도 없이 열심 히 일했습니다. 드디어, 아파트를 마련하여 이사하던 날,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는 두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두 분이 다투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날 목욕을 하자는 것이고, 시할머니는 그 다음날 하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를 짓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계모로 들어와서, 희생적으로 헌신 하고 있는 장선미의 시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 시어머니 가 자랑스러워서, 장선미 씨는 글을 써서 투고한 것입니다. 이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살맛이 나게 마련 입니다.
1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바쳐 희생함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했듯이, 우리 또한 그 희생 정신을 배워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죄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죄를 없 애는 방법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더 엄격 한 법을 제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경찰을 아무리 늘려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이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닌 이웃 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희생만이, 우리 자신과 사회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주의 뒤를 열심 히 따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어디 가든지, 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쁜 소문의 근원이 되거나, 그 나쁜 이야기를 퍼뜨림으로써, 이 세상의 독소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직장과 교회, 또는 일반 사회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살맛 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 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맛 나는 세상 이 됩니다. 교회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교회 생활이 살맛 날 것입니다. 마을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살맛 나는 마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천국 백성입니다. 그 하늘 의 복을 받으려면, 이 세상의 죄악을 이기고 살맛 나게 하는 존재가 되 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서, 살맛 나게 하는 복된 심령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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