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아2:10-17)
본문
간사한 모습을 띠고 우리와 가까이 있는 동물에 모습을 보면서 제목을 먼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라는 본문말씀 그대로 제목을 잡았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먹고 살아가는 기생충같은 짐승을 봅니다 본문말씀을 볼때 우리를 위하여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라고 했습니다 이 작은 여우는첫째,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괴롭히고둘째, 고난받고 일어서는 성도를 괴롭히며셋째, 희망과 용기를 잃지않고 살아가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이며넷째,기도의 사람들을 방해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다섯째는 성도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이토록 우리와 가까이 있으며, 요리로 피하고 저리로 피하면서 우리를 고통중에 몰아넣는 작은여우 주님의 축복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게 하는 사탄의 용한 기술력 과거에 애덴동산을 넘나들면서 아담과 하와를 괴롭혔던 그 마귀 사탄의 역사 오늘은 현실의 눈앞에 나타나 고통을 실제적으로 더한 중압감(重壓感)에 사로잡혀 용신(容身)하지 못하게 하는 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해봐도 할수없고 차라리 큰 동물이면 어떤 조치와 수단을 동원하지만 이토록 교묘하게 사람을 골탕먹이고 애간장만 끌게하는 작은 여우 어미는 어디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흥 ! 어미는 다음 기회에 손을 좀 봐 줘야 할텐데 말입니다 오늘 이 작은 여우라도 한번 잡아 볼까요 분명 이 작은 여우는 우리를 괴롭게 하는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지친 성도에게 희망은 주지못할 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할것이 아닌가요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심정으로 주님을 찾는 저들에게 신경질만 부리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요 얼마전에 저희집에 쥐가 들어왔습니다, 이 쥐를 잡기위해 온 소동이 일어 났습니다 이 쥐를 잡으려다 보니 신경이 보통 날카러워진것이 아닙니다 이 쥐를 잡지못하고 그냥 잠을 잘려니 도무지그냥 잘수가 있어야지요 끈끈이를 사다놓고 기다렸지만 허탕을 치니 이 쥐를 잡느라 온 구석구석을 다 뒤집어 놓아야 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이것이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더군요 언제 이곳에서 저기로 갔는지 말입니다 온식구가 몽둥이를 들고 토끼몰이 식을 벌렸지만 역시 쥐는 쥐였습니다 이 쥐는 결국 소탕하고 말았지만 어디서 들어왔는지 원인을 알고보니 현관문 우유와 신문통으로 침투한것을 알고 그 통을 폐쇄하고 말았습니다 신문과 우유가 와야하는데 이런 쥐새끼가 왔으니 아유 징그러워. 다시 본문에 귀한 내용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의 귀한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주님앞에 이토록 곱고 아름다운 신부의 단장한 모습일진데 이토록 곱고 아름다운 모습의 자태를 겨우 들어내려 할때 당하는 우리의 고통 이 문제가 시급한 문제기에 나는 이 말씀과 함께 이 작은 여우를 한번 함께 잡아 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무슨방법으로 이 여우를 잡아 낼것인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본문 말씀에 여우를 잡으라고는 하셨는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다는 설명이 없음을 볼때 이 문제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당면한 과제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고 우리의 행복을 막는 여우(사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함께 이문제를 기도하면서 해결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이 작은 여우는 첫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괴롭히고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동안의 긴세월의 겨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부간(可否間)에 그의 세월의 짧고 긴것보다 얼마나 남다른 고생을 했는가를 생각 하기로 합니다 주님의 어여쁜자 주님앞에 아름다운성도 주님의 귀한 성도 차디찬 겨울을 맛보며 울부짖는 종들의 모습을 봅니다 언제나 한번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오직 주님만 향해 밤낮으로 기도하며 금식하며, 철야하며 기나긴 세월도 주님이 한번 인정해 주실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성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않다는소리를 들으며 죽은자는 죽은자 대로 두고. 너는 나를 쪼ㅈ으라 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 여타 성도같이 자기 수단도 한번 부려보지도 못하고 오금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성도, 주님을 믿은지는 오래 되지만 이렇다할만한 축복을 받지 못한 성도 그저 보기에도 가소롭게 믿는 성도 부자집 문간거지 나사로같은 성도들이 아니더란 말입니까 설상가상이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있다는 예측불허함속에서도 믿음을 잃지않고 밤낮 수고 하시고 있었던 그런 성도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그토록 오랫동안 주님을 불러봐도 대답 조차없이 지나온 그들 마치 힘빠진 소와같이 휘청되고 비실거리지 않았던가요 반가움에 그지없는 소리에 귀를 쫑긋세운 토끼같이 우리의 삶의 희망을 소원했던 그대들이 아니던가요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면서도 못내 아쉬움속에 그리워하는 음성이 아니더란 말입니까 주님의 귀한 소유에 맛을 보아 새로운 목적을 세워나간 저들 한번의 귀한 은혜에 그 맛에 결코 잊을수없다던 저들 늘상 하는말이지만. 할렐루야 아멘 겉치례의 인사도 주님앞에 귀여워 보여진 모습을 가진 저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왜 이들을 괴롭게 하고 있단 말이요 주님의 귀한 만남에 찬물을 끼얻는듯 작은 여우(사탄) 신경질나게 굴어대니 적은 믿음조차 쌍스러운 소리와 함께 받은 은혜 다 달아나네 옛끼! 이 못된것들 때문에 괜스례 . 주님앞에 죄송하기만 하네요 그러나 오늘도 주님은 이들중에 함께 하심에 그속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간다우 주님의 사랑하심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둘째, 고난받고 일어 서는 성도를 괴롭히며 돌아 다니는 여우가 아닌가 시금방지게 재수없게스리 끼어들어 난장판들 벌여 놓은 작은 여우 그토록 많은 고난에도 참고 견디어 냈는데 이따위 것이 끼어 다 만들어 놓은것을 망쳐놓고 마누나 애태우며 살아온 나날의 희망의 나즉한 소리 들으며 여기 보시오 할때 거저 스치지않고 모든것에 귀담아들으면서 살아왔지 않았던란 말입니까 좋다고 하시는 설교말씀이란 다 들으면서 여기까지 온것이 아니오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도 무언가 좀 배워보려고 애쓰고 좋다한것이 있으면 그대로 실천의 흉내라도 내어 보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힘겨운 일도 끝내 다 해드리고, 교회의 굳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손수 그 모든일을 해내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구린내 나는 구석도 다 주의 이름으로 참아내며 아끼던 저금통장도 뜯어내어 주님께 드리며 어설픈 행동에도 기쁨을 맛보았던 그림자가 있지 않았는가요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감추어진 눈물 훔쳐내며 당신의 뒤를 따를듯한 말을 해본 생각이 들었던 그들 잠시 생각에도 작은 미소의 감사를 올리며 오늘은 내가 세벽기도회 나가서 조용히 말씀을 여쭈어 봄직한 모습의 믿음이 아니던가요 큰소리 내어 울어 보고 싶어도 신분상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할까봐 그렇지도 못했던 자가 아니더란 말인가요 그러면서도 목사님의 설교는 안중에도 없으며. 축복의 그날을 기약했던 우리 아유! 언제 저 설교가 끝날지 지루해 죽겠던 그날 말씀이오 난 정말 고통을 당해도 싸다하면서도 주님의 받을 복 다 챙긴 우리가 아니더란 말입니까 시대에 아차 아뿔사하며 놓쳐진 말씀을 다시듣고 싶어 기웃거렸던 당신 그래도 가관(可觀)이시구려 그래도 그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고난이라 말하며 살아온 그들 너무도 솔직타 못해 별것을 다 공개해도 주님만은 아신다며 중얼되던 너 그것이 고생이냐 했지만, 나 이제 더 고생하면 교회 안다닐거야 했던그가 이 고난의 길을 딛고 일어서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누나 기껏해봐야 남의 헌금에 100분의 1도 못하는 손내밀고 그래도 그자리에 함께 쭈그리고 않아서 복받을 손은 내밀던 당신도 이제 고난을 넘어서니 이런 문제가 보이구나 자 가자 잘못한 것은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이 부르시니 그냥 가는것이지 뭐 목사님 죄송해요! 부족하지만 이 칸(저를 좀 인정해 달라는 말입니다)을 넘겨 주세요 나도 나이는 저들과 같거든요 교회생활 나이 든다고 다된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저만치 가는데 나라는 자도 요만치라도 가야 될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쪼ㅈ아낼때 쪼ㅈ아낼 삼아도 나를 이제 놓아 주시오 나는 이제 너무 나이가 많아요, 주님의 귀한 은혜 기대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용서하심만 빕니다 주님 그래도 나도 성도라고 마귀가 나를 괴롭히나 봅니다 나도 괴로움을 당하는 성도 내가 그런 성도가 되었다고 이제 소리치니 이제나 철이 들었나 보죠 이죄인 축복의 그날을 기대합시다
셋째, 희망과 용기를 잃지않고 살아가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의미하며 새벽하늘 잠깨어 새로운 목적을 설계하고 어제의 지친 모습도 살짜기 감추고 다른 삶의 연속적인 시간도 뒤로한체 어제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힘의 의미를 갖는다 주님의 귀한 뜻에도 뜻밖의 새로운 계기를 만난다 하마터면 잃어버릴듯한 인생 그래도 희망과 용기라는 글자의 미명아래 들어온 모든것들을 손상시키지않고 그래도 보배로 여긴다 주님의 귀한 말씀이 미련하고 미천한것에 까지 밀려왔다니 . 어쩌서 나는 당신의 소리에 귀가 열린지 모를 일입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저들은 다 어디가고 나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단 말입니까 나홀로 듣고있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주님의 음성, 그 그리움에 사무쳐 살아가는 나를 부럽지도 않은지 이토록 감사와 찬양의 소리. 주님 이땅에 많은자에게 함께 들려 주세요 하지만 실족할자를 말고요 실족당한자의 모습은 차라리 이름조차 싫어요 시험에 빠진자의 모습은 나를 삼키려하듯 하니까요 무조건 즐거움이 아니라 그냥 힘겨워도 참아낼줄 아는자들 말입니다 즉 희망과 용기를 잃지않고 좀 꾸준한자들 말입니다 주님 이렇게 꾸준하게 살려니 여간 고난이 많은것이 아닌가 봅니다 주님의 귀한 소식 전해주고 고난도 당하니, 주님 왠지 그러네요 전도하고 싶지도 않는단 말입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속에서도 연속적인 고통과 고난의 소리 가도가도 끝이없을 듯한 일들, 예측불허의 고정관념의 탈을 벗기다 못해 안타까움을 더해가는 수많은 일들, 홀로 느껴도 슬플일들 함께하니 온통 울음바다가 되네요 모르긴 해도 주님의 귀한자녀 받는 괴로움도 여간 많은게 아니 더군요 또한 여차하면 감사보다 더 깊은 궁지에 몰려들고 뭐좀 할려면 너무도 많은 장애물에 걸려 요지부동되고 조그마한 계획속에서도 찾잔의 태풍같이 사라지고 꿈을 꾸었던것 자체의 모순을 느끼며 살아온 지난날의 과거의 상흔(傷痕)은 정말 지을수없는 오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네요 주님의 귀함에 거절할수없는 일도 그 자그마한 부딪힘에 쉽게 깨어지고 무슨병이라하면 골다공증같은 것이있어 누가 옆에서 살짝 부딪혀도 감당할길없는 아픔의 쓰라림의 상처 체, 털고 일어서기도 전에 또 부딪히는 수많은 것들 그냥 홀로 외롭게 살고 말꺼나요 그렇다해서 여기서 이것마져 그만 둔다면 나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모시고 가는길이 이렇게 혼탁스럽고 깝깝함에 내몰리고 말아 버린답니다 이러다보니 어디를가나 길을가나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길가다가 아.-썩은 고목나무도 유심히 처다보이는구나 저 모습이 저 모습인가 어디부터 썩어들어간 것인지 알것같다나요 겉치례가 그래도 가꾸어진것 보니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없고 위를 처다보니 그래도 희망의 상징 심볼마크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으니 저렇게 해서라도 세상끝까지 갈 모양이구만요 그래도 속단은 말라구유 이래뵈도요 아이 참 아 그러면 그렇치 그의 모습은 국보급이 아니더란 말인가 내 마음같으면 정일품(正一品)의 벼슬을 주어 이나라 자손만대 이르러 영광돤 조국을 건설하고 주님오심의 기다리는 초석같은 역활 다하리라 말하리라 어디서 많이 듣던소리 들이다 그래도 나는 괴롭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것이 분명있다 이것이 고난이란것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 아멘하며 모퉁이길 어귀에 돗자리 깔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심이 분명한 확인을하고 길을 간다 고난의 시간적인 개념이 나를 더욱 자극 시킨다 내가 너무싫어하니 나를 더 따라 다니는 것일까 차라리 그와함께 친구가 되어 살까 너 갈길에나서면 나 갈길가리 마음껏 가면 되겠지 그러면 참 좋겠구나 그러면 그렇게 하기로 오늘 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장을 열어 가련다
넷째, 기도의 사람들을 방해하는 자들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어쩌다 길을 가니 이길에 들어 섰네 모자람의 그 헛점도 어디로 가고 여기서 무엇을 하는것 보니 사람 좀 되어 가는것 같구려 아예 고난의 봇따리를 싸네요, 뭐라고요 이 행복의 봇따리가 아니더란 말인가요 , 주님의 귀한 종의 길이 아니더란 말인가요 당신의 받는 고난에 허튼 모습 사라지고 희망찬 미래가 보여진답니다 희망의 세계는 주님을 만나는자 주님을 만나는자, 내 주님을 만나는자 입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할수 밖에 없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그래요 기도하니까, 마귀도 당신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당신이 기도로 저들을 방해하는것은 아시는지 모를일이지만, 분명 나와 상관없는일은 방해꾼이 될수 밖에 없지요 예수를 믿는다는것 정말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르지만 마귀가 볼때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겠느냐고요, 그래요 내가 언제 남의 사정보게 돼 있나요 이제는 정말 주님의 귀한 종으로 부족함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과거에 주님은 이땅에 오셔서 고기잡는 베드로를 부르시고 그물깁는 요한을 부르시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그물로 고기를 잡다보면 그물이 찢어지고 그 그물도 기워야 하지않을까요 우리도 이제보니 모두 잘 만났어요 정말 기도의 응답은 기도해야 알지요 눈감고 기도하고 눈뜨고 살아가니 잘 안맞는게 더러있지요 눈감으세요 그래야 될게 아니요 요즘보면 눈을 감았다가 떳다가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그렇게 할바에는 아예 눈을 뜨시오 그 뒤는 저는 책임없으니까요 잠깐 그렇다고 영영 눈을 감지않으면 않됩니다 속히 눈감을 날을 기대하지요 . 에 그러면! 그렇치요 암요! 그래요 우리다 생각하면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것이랍니다 다 쓰일때가 있어서 맞추어서 부르셨겠지요 그러고보니 나나 여러분이나 다 맞추어서 부르심에는 확실합니다 마귀의 자녀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으니 쓸모없는것이라도 주님앞에 귀하게 쓰일것을 확신합니다 오늘의 기쁨이 언제나 변치않고 주님오실때까지 간직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나의 기도의 사탄의 방해는 당연지사(當然之事)라 주여 도우소서 아멘.
다섯째는 성도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주님주신 귀한 사랑에 살아가는우리 보다 새롭게 보다 안전하게 항구로 향하는 배, 충만한 은혜실고 항해하는 배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이배 항구에 닿을때 마다 한없는 기쁨의 감사와 함께 마중나온 저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과 용기를 주며 저들의 쓸것을 공급하여 언제나 주신 사명 다하는 축복의 사람들의 배, 항구의 기적인 뱃고동 소리 움터일때 멀리서도 그 소리를 알고 희망을 가진 주님의 귀한 성도 마귀는 우리의 틈바구니를 엿보며 우리의 기쁨을 샘내고 있단 말이요 우리의 잘못됨에 킥킥 웃으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주님의 기쁨을 빼앗길 수 없을것이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쉽게 마귀에게 속혀 주님이 주신 기쁨을 송두리채 앗아간 경험은 수많은 사람의 파수꾼으로 살아갈 것이요. 피나는 고통을 감래하고, 도래(渡來)하는 새로운 즐거움에 모든것을 잊어버린다오 새로움의 기쁨이 줄이어 오는데 ,과거에 젖어서 살 시간이 어디 있을라고요 욥이 고난받아 얻어진 딸은 동방에서 제일 아름답다했는데 여기 이들의 받은 고난 그 이상이 아닐까요 ,주님의 받은 고난에 우리는 그 그늘에만 있어도 우리의 기쁨은 한량없을 것이라 너와 나 십자가 밑에가서 벗은짐 수북히 쌓여져가는 것보니 이제 내 등에 진짐 남에것도 한번 져 보고 싶어 지네요 가자 저들의 짐도 지고와서 주님의 십자가 그 그늘에 내려놓자 이제 이 일에 재미가 나누나 무엇도 싫어, 못하는것이 이제 제법 사람이 되어 가는것 보니 인생의 제맛이 나는구나 그래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누군들 안믿겠나 이 좋은 우리 주예수님 말로 떠들면 뭐해 말할 필요 조차 없지 않은가,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나의 형제의 깃발을 들으라 영광의 깃발을! 그의 영광이 나타나리 이제 마귀가 내 기쁨 빼앗아 가도 이 많은 기쁨 쌓아놓을데가 없으리니 이제 난 몰라요 너희 마음데로 하렴 우리의 기쁨에 너희도 녹아나리 감사의 충만함에 마귀도 제할일을 다했을것이라 나도 좋다 그래 우리 모두 다함께 이 위대한 하나님의 집으로 위대한 요새(要塞)의 집으로 오라 이 믿음의 기쁨을 나누리라 .
이 작은 여우는 첫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괴롭히고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동안의 긴세월의 겨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부간(可否間)에 그의 세월의 짧고 긴것보다 얼마나 남다른 고생을 했는가를 생각 하기로 합니다 주님의 어여쁜자 주님앞에 아름다운성도 주님의 귀한 성도 차디찬 겨울을 맛보며 울부짖는 종들의 모습을 봅니다 언제나 한번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오직 주님만 향해 밤낮으로 기도하며 금식하며, 철야하며 기나긴 세월도 주님이 한번 인정해 주실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성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않다는소리를 들으며 죽은자는 죽은자 대로 두고. 너는 나를 쪼ㅈ으라 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 여타 성도같이 자기 수단도 한번 부려보지도 못하고 오금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성도, 주님을 믿은지는 오래 되지만 이렇다할만한 축복을 받지 못한 성도 그저 보기에도 가소롭게 믿는 성도 부자집 문간거지 나사로같은 성도들이 아니더란 말입니까 설상가상이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있다는 예측불허함속에서도 믿음을 잃지않고 밤낮 수고 하시고 있었던 그런 성도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그토록 오랫동안 주님을 불러봐도 대답 조차없이 지나온 그들 마치 힘빠진 소와같이 휘청되고 비실거리지 않았던가요 반가움에 그지없는 소리에 귀를 쫑긋세운 토끼같이 우리의 삶의 희망을 소원했던 그대들이 아니던가요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면서도 못내 아쉬움속에 그리워하는 음성이 아니더란 말입니까 주님의 귀한 소유에 맛을 보아 새로운 목적을 세워나간 저들 한번의 귀한 은혜에 그 맛에 결코 잊을수없다던 저들 늘상 하는말이지만. 할렐루야 아멘 겉치례의 인사도 주님앞에 귀여워 보여진 모습을 가진 저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왜 이들을 괴롭게 하고 있단 말이요 주님의 귀한 만남에 찬물을 끼얻는듯 작은 여우(사탄) 신경질나게 굴어대니 적은 믿음조차 쌍스러운 소리와 함께 받은 은혜 다 달아나네 옛끼! 이 못된것들 때문에 괜스례 . 주님앞에 죄송하기만 하네요 그러나 오늘도 주님은 이들중에 함께 하심에 그속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간다우 주님의 사랑하심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둘째, 고난받고 일어 서는 성도를 괴롭히며 돌아 다니는 여우가 아닌가 시금방지게 재수없게스리 끼어들어 난장판들 벌여 놓은 작은 여우 그토록 많은 고난에도 참고 견디어 냈는데 이따위 것이 끼어 다 만들어 놓은것을 망쳐놓고 마누나 애태우며 살아온 나날의 희망의 나즉한 소리 들으며 여기 보시오 할때 거저 스치지않고 모든것에 귀담아들으면서 살아왔지 않았던란 말입니까 좋다고 하시는 설교말씀이란 다 들으면서 여기까지 온것이 아니오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도 무언가 좀 배워보려고 애쓰고 좋다한것이 있으면 그대로 실천의 흉내라도 내어 보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힘겨운 일도 끝내 다 해드리고, 교회의 굳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손수 그 모든일을 해내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구린내 나는 구석도 다 주의 이름으로 참아내며 아끼던 저금통장도 뜯어내어 주님께 드리며 어설픈 행동에도 기쁨을 맛보았던 그림자가 있지 않았는가요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감추어진 눈물 훔쳐내며 당신의 뒤를 따를듯한 말을 해본 생각이 들었던 그들 잠시 생각에도 작은 미소의 감사를 올리며 오늘은 내가 세벽기도회 나가서 조용히 말씀을 여쭈어 봄직한 모습의 믿음이 아니던가요 큰소리 내어 울어 보고 싶어도 신분상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할까봐 그렇지도 못했던 자가 아니더란 말인가요 그러면서도 목사님의 설교는 안중에도 없으며. 축복의 그날을 기약했던 우리 아유! 언제 저 설교가 끝날지 지루해 죽겠던 그날 말씀이오 난 정말 고통을 당해도 싸다하면서도 주님의 받을 복 다 챙긴 우리가 아니더란 말입니까 시대에 아차 아뿔사하며 놓쳐진 말씀을 다시듣고 싶어 기웃거렸던 당신 그래도 가관(可觀)이시구려 그래도 그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고난이라 말하며 살아온 그들 너무도 솔직타 못해 별것을 다 공개해도 주님만은 아신다며 중얼되던 너 그것이 고생이냐 했지만, 나 이제 더 고생하면 교회 안다닐거야 했던그가 이 고난의 길을 딛고 일어서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누나 기껏해봐야 남의 헌금에 100분의 1도 못하는 손내밀고 그래도 그자리에 함께 쭈그리고 않아서 복받을 손은 내밀던 당신도 이제 고난을 넘어서니 이런 문제가 보이구나 자 가자 잘못한 것은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이 부르시니 그냥 가는것이지 뭐 목사님 죄송해요! 부족하지만 이 칸(저를 좀 인정해 달라는 말입니다)을 넘겨 주세요 나도 나이는 저들과 같거든요 교회생활 나이 든다고 다된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저만치 가는데 나라는 자도 요만치라도 가야 될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쪼ㅈ아낼때 쪼ㅈ아낼 삼아도 나를 이제 놓아 주시오 나는 이제 너무 나이가 많아요, 주님의 귀한 은혜 기대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용서하심만 빕니다 주님 그래도 나도 성도라고 마귀가 나를 괴롭히나 봅니다 나도 괴로움을 당하는 성도 내가 그런 성도가 되었다고 이제 소리치니 이제나 철이 들었나 보죠 이죄인 축복의 그날을 기대합시다
셋째, 희망과 용기를 잃지않고 살아가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의미하며 새벽하늘 잠깨어 새로운 목적을 설계하고 어제의 지친 모습도 살짜기 감추고 다른 삶의 연속적인 시간도 뒤로한체 어제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힘의 의미를 갖는다 주님의 귀한 뜻에도 뜻밖의 새로운 계기를 만난다 하마터면 잃어버릴듯한 인생 그래도 희망과 용기라는 글자의 미명아래 들어온 모든것들을 손상시키지않고 그래도 보배로 여긴다 주님의 귀한 말씀이 미련하고 미천한것에 까지 밀려왔다니 . 어쩌서 나는 당신의 소리에 귀가 열린지 모를 일입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저들은 다 어디가고 나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단 말입니까 나홀로 듣고있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주님의 음성, 그 그리움에 사무쳐 살아가는 나를 부럽지도 않은지 이토록 감사와 찬양의 소리. 주님 이땅에 많은자에게 함께 들려 주세요 하지만 실족할자를 말고요 실족당한자의 모습은 차라리 이름조차 싫어요 시험에 빠진자의 모습은 나를 삼키려하듯 하니까요 무조건 즐거움이 아니라 그냥 힘겨워도 참아낼줄 아는자들 말입니다 즉 희망과 용기를 잃지않고 좀 꾸준한자들 말입니다 주님 이렇게 꾸준하게 살려니 여간 고난이 많은것이 아닌가 봅니다 주님의 귀한 소식 전해주고 고난도 당하니, 주님 왠지 그러네요 전도하고 싶지도 않는단 말입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속에서도 연속적인 고통과 고난의 소리 가도가도 끝이없을 듯한 일들, 예측불허의 고정관념의 탈을 벗기다 못해 안타까움을 더해가는 수많은 일들, 홀로 느껴도 슬플일들 함께하니 온통 울음바다가 되네요 모르긴 해도 주님의 귀한자녀 받는 괴로움도 여간 많은게 아니 더군요 또한 여차하면 감사보다 더 깊은 궁지에 몰려들고 뭐좀 할려면 너무도 많은 장애물에 걸려 요지부동되고 조그마한 계획속에서도 찾잔의 태풍같이 사라지고 꿈을 꾸었던것 자체의 모순을 느끼며 살아온 지난날의 과거의 상흔(傷痕)은 정말 지을수없는 오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네요 주님의 귀함에 거절할수없는 일도 그 자그마한 부딪힘에 쉽게 깨어지고 무슨병이라하면 골다공증같은 것이있어 누가 옆에서 살짝 부딪혀도 감당할길없는 아픔의 쓰라림의 상처 체, 털고 일어서기도 전에 또 부딪히는 수많은 것들 그냥 홀로 외롭게 살고 말꺼나요 그렇다해서 여기서 이것마져 그만 둔다면 나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모시고 가는길이 이렇게 혼탁스럽고 깝깝함에 내몰리고 말아 버린답니다 이러다보니 어디를가나 길을가나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길가다가 아.-썩은 고목나무도 유심히 처다보이는구나 저 모습이 저 모습인가 어디부터 썩어들어간 것인지 알것같다나요 겉치례가 그래도 가꾸어진것 보니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없고 위를 처다보니 그래도 희망의 상징 심볼마크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으니 저렇게 해서라도 세상끝까지 갈 모양이구만요 그래도 속단은 말라구유 이래뵈도요 아이 참 아 그러면 그렇치 그의 모습은 국보급이 아니더란 말인가 내 마음같으면 정일품(正一品)의 벼슬을 주어 이나라 자손만대 이르러 영광돤 조국을 건설하고 주님오심의 기다리는 초석같은 역활 다하리라 말하리라 어디서 많이 듣던소리 들이다 그래도 나는 괴롭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것이 분명있다 이것이 고난이란것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 아멘하며 모퉁이길 어귀에 돗자리 깔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심이 분명한 확인을하고 길을 간다 고난의 시간적인 개념이 나를 더욱 자극 시킨다 내가 너무싫어하니 나를 더 따라 다니는 것일까 차라리 그와함께 친구가 되어 살까 너 갈길에나서면 나 갈길가리 마음껏 가면 되겠지 그러면 참 좋겠구나 그러면 그렇게 하기로 오늘 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장을 열어 가련다
넷째, 기도의 사람들을 방해하는 자들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어쩌다 길을 가니 이길에 들어 섰네 모자람의 그 헛점도 어디로 가고 여기서 무엇을 하는것 보니 사람 좀 되어 가는것 같구려 아예 고난의 봇따리를 싸네요, 뭐라고요 이 행복의 봇따리가 아니더란 말인가요 , 주님의 귀한 종의 길이 아니더란 말인가요 당신의 받는 고난에 허튼 모습 사라지고 희망찬 미래가 보여진답니다 희망의 세계는 주님을 만나는자 주님을 만나는자, 내 주님을 만나는자 입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할수 밖에 없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그래요 기도하니까, 마귀도 당신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당신이 기도로 저들을 방해하는것은 아시는지 모를일이지만, 분명 나와 상관없는일은 방해꾼이 될수 밖에 없지요 예수를 믿는다는것 정말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르지만 마귀가 볼때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겠느냐고요, 그래요 내가 언제 남의 사정보게 돼 있나요 이제는 정말 주님의 귀한 종으로 부족함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과거에 주님은 이땅에 오셔서 고기잡는 베드로를 부르시고 그물깁는 요한을 부르시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그물로 고기를 잡다보면 그물이 찢어지고 그 그물도 기워야 하지않을까요 우리도 이제보니 모두 잘 만났어요 정말 기도의 응답은 기도해야 알지요 눈감고 기도하고 눈뜨고 살아가니 잘 안맞는게 더러있지요 눈감으세요 그래야 될게 아니요 요즘보면 눈을 감았다가 떳다가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그렇게 할바에는 아예 눈을 뜨시오 그 뒤는 저는 책임없으니까요 잠깐 그렇다고 영영 눈을 감지않으면 않됩니다 속히 눈감을 날을 기대하지요 . 에 그러면! 그렇치요 암요! 그래요 우리다 생각하면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것이랍니다 다 쓰일때가 있어서 맞추어서 부르셨겠지요 그러고보니 나나 여러분이나 다 맞추어서 부르심에는 확실합니다 마귀의 자녀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으니 쓸모없는것이라도 주님앞에 귀하게 쓰일것을 확신합니다 오늘의 기쁨이 언제나 변치않고 주님오실때까지 간직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나의 기도의 사탄의 방해는 당연지사(當然之事)라 주여 도우소서 아멘.
다섯째는 성도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주님주신 귀한 사랑에 살아가는우리 보다 새롭게 보다 안전하게 항구로 향하는 배, 충만한 은혜실고 항해하는 배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이배 항구에 닿을때 마다 한없는 기쁨의 감사와 함께 마중나온 저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과 용기를 주며 저들의 쓸것을 공급하여 언제나 주신 사명 다하는 축복의 사람들의 배, 항구의 기적인 뱃고동 소리 움터일때 멀리서도 그 소리를 알고 희망을 가진 주님의 귀한 성도 마귀는 우리의 틈바구니를 엿보며 우리의 기쁨을 샘내고 있단 말이요 우리의 잘못됨에 킥킥 웃으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주님의 기쁨을 빼앗길 수 없을것이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쉽게 마귀에게 속혀 주님이 주신 기쁨을 송두리채 앗아간 경험은 수많은 사람의 파수꾼으로 살아갈 것이요. 피나는 고통을 감래하고, 도래(渡來)하는 새로운 즐거움에 모든것을 잊어버린다오 새로움의 기쁨이 줄이어 오는데 ,과거에 젖어서 살 시간이 어디 있을라고요 욥이 고난받아 얻어진 딸은 동방에서 제일 아름답다했는데 여기 이들의 받은 고난 그 이상이 아닐까요 ,주님의 받은 고난에 우리는 그 그늘에만 있어도 우리의 기쁨은 한량없을 것이라 너와 나 십자가 밑에가서 벗은짐 수북히 쌓여져가는 것보니 이제 내 등에 진짐 남에것도 한번 져 보고 싶어 지네요 가자 저들의 짐도 지고와서 주님의 십자가 그 그늘에 내려놓자 이제 이 일에 재미가 나누나 무엇도 싫어, 못하는것이 이제 제법 사람이 되어 가는것 보니 인생의 제맛이 나는구나 그래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누군들 안믿겠나 이 좋은 우리 주예수님 말로 떠들면 뭐해 말할 필요 조차 없지 않은가,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나의 형제의 깃발을 들으라 영광의 깃발을! 그의 영광이 나타나리 이제 마귀가 내 기쁨 빼앗아 가도 이 많은 기쁨 쌓아놓을데가 없으리니 이제 난 몰라요 너희 마음데로 하렴 우리의 기쁨에 너희도 녹아나리 감사의 충만함에 마귀도 제할일을 다했을것이라 나도 좋다 그래 우리 모두 다함께 이 위대한 하나님의 집으로 위대한 요새(要塞)의 집으로 오라 이 믿음의 기쁨을 나누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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