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흘러간 사람 (룻1:1-14)
본문
인생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과정이다.” 이 말처럼 우리는 인생의 순간 순간 모든 것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비근한 예로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실 때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넥타이를 맬까 선택하셨을 겁니다. 좀더 큰 문제도 있겠죠. 학생들 같으면 대학 진학할 때 전공 학과 선택, 졸업하면 직업의 선택, 그리고 장성하면 배우자 선택, . 이처럼 사소한 문제에서 큰 문제까지 인생에는 선택할 문제들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시각각 몰려오는 그 수많은 선택 사항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행, 불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깁니다만 가전 제품 광고로 힛트를 친 선전 문구가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이처럼 선택은 나 자신의 자유요 특권이지만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해서도 역시 나 자신이 담당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선택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인생의 큰 자산입니다. 어려운 문제, 상황일수록 그렇습니다. 본문 성경은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인생길에 계속 펼쳐지는 선택의 상황 가운데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선택의 중요성을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옛날 사사 시대(여호수아 사후 400여년 계속된 암흑 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그 지방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고난을 피하고자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이끌고 이방 나라인 모압 땅으로 이민을 합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는 그곳에서 죽고 맙니다. 그후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장성하여 모압 여자들과 결혼했는데, 묘하게도 둘다 요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 말론의 아내 룻, 기룐의 아내 오르바 이렇게 세 여인이 미망인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딱하지만, 그 당시 여자들이 마음대로 사회 활동을 못했던 시대 상황으로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미는 새로운 선택을 결정합니다. 그것은 곧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자기 남편 엘리멜렉이 잘못 선택한 사실을 뉘우치는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며느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민 온 이스라엘인들이 죽자 졸지에 혼자가 된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 소망이 없는 극단적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나마 시어머니까지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갈 것이냐 말것이냐 일단 그들은 따라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한참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만류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그들이 자기를 따라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8절-9절상. 돌아가라며 입맞춥니다.(이스라엘인들에게 입맞춤은 이별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 9절하-10절. 두 며느리는 소리 높이 울며 기어이 따라가겠노라 고집합니다.
11절-13절. 그러자 나오미는 논리적으로 차근 차근 상황을 설명합니다. 당시 계대 결혼의 율법(형사취수)이 있었는데, 그들의 상황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더 이상 아들이 없고, 나오미가 늙어 재혼도 불가능하고, 가능하다 치더라도 그 오랜 세월을 언제까지 기다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논리는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적어도 육신적인 관점에서 보면 . 더욱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이방 결혼을 기피하는 풍습으로 보건대 이스라엘에 가면 룻과 오르바의 재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오직 고생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금 냉정하게 상황 판단이 된 후 이제는 정말 룻과 오르바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14절. 오르바는 입맞추고 오던 길을 돌아갑니다. 룻은 끝끝내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갑니다. 여러분 한 번 마음 속에 그려 보십시오. 허허벌판에 지친 모습으로 가던 세 여인 . 한 곳에 서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세 여인 . 그러다가 두 여인은 아스라엘로 계속 가고, 다른 한 여인은 돌아서서 모압땅으로 갑니다. 그들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사이인지라 멀어지면서 눈물을 훔치면서 돌아 보고 또 돌아 봅니다. 그러기를 한참 . 이제는 지평선에 가물거리는 점이 됩니다. 그리고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후로는 더 이상 오르바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맙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기 길로 영영 떠나 버린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르바의 이름의 뜻입니다. ‘뒷목, 젊음, 구름’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구름처럼 영영 흘러간 여인! 우리는 더 이상 오르바를 성경에서 만나지 못합니다. 오직 룻과 나오미를 만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15절을 통해서 . 그녀는 모압 백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모압의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모압인과 재혼해서 어쩌면 육신적으로 편안하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옛날 섬기던 모압신을 섬기며 별 갈등없이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놓쳤습니다. 자기와 너무나 동일한 상황에 있었던 룻이 얻은 그 모든 것들을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잃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룻이 얻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룻은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지만, 그리고 그것을 각오했지만 사실은 후일 상상도 못했던 모든 것을 얻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1) 육신의 복을 얻습니다. 보아스 베들레헴 유지와 결혼하게 됩니다.
(2) 이방 여인인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3) 더 나아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다윗의 증조 할머니) 룻4:21 보아스-오벳-이새-다윗-.-예수 그리스도 마1:5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여인 마6:33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 하신다는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원리를 따라 선택하는 사람과 자기 마음대로 육신의 원리를 따라 선택하는 사람은 한때 동일한 상황에서 있었더라도 미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도저히 만날 수도 없는 모습으로 .
예> 백두산 천지-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두만강이 되어 동해 바다로 .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압록강이 되어 서해 바다로 . 그 물은 영영 서로 만날 수 없이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룻처럼 축복의 주인공, 영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선택 원리는 [1] 육신의 안일보다 영혼의 평강을 선택하였습니다. 룻도 오르바와 동일한 사람입니다. 별종이 아닙니다. 그녀도 나오미의 말을 알아 들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알았습니다. 고생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10여년 간 듣고 보면서 배운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현실이, 육신이 고달파도 영혼의 평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 그녀가 시집 오기 전 섬기던 모압의 신은 영혼에 평강을 주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모스神(삿11:24-몰렉 혹은 몰록이리고도 불렀다)은 공포의 신이었습니다. 소원을 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어린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제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가르쳐 준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극심한 고난 중에 있지만 그래도 나오미가 위로받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강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환란을 당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견디게 해 주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위로가 있습니다. 고후1:3-5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넘치는 고난, 넘치는 위로 하나님이 고난 자체를 제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단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욥23:10 정금같은 신앙으로 승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라 하나님의 평강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고난 가운데 있어 봐야 압니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위로는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더 큰 환란이 오면 금새 소멸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그 어느 환란도 이기게 해 줍니다. 요14:27 세상 주는 것과 같지 않는 것! 세상의 것은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예) 인간 심령 속의 블랙홀-다 삼키고도 만족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예수님 한분만이 그 영적 공백을 채워 주십니다. 안타깝게도 오르바는 이런 비밀을 몰랐습니다. 육신의 안일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육신의 안일은 환경 조건에 따라 가변적인 것임에도 . 그래서 그는 그저 고생하는 것, 고난을 피하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육신의 안일과 더불어 진정한 영적 평강으로부터 멀리 흘러간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 롯-창13:아브라함에게서 떠나 소돔성으로 갑니다. 육신적으로 안일하지만 죄가 가득한 곳 . 거기서 얼마나 심령이 상했는지 .(벧후2:7 고통하는 롯)
예) 모세-히11:24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 안에 있는 평강, 하나님 안에 있는 위로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평안함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잠시 후 다시 공허해 지는 것입니다.
[2] 세상의 행복보다 천국의 복락을 선택했습니다. 오르바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모압을비교하면 당연히 모압이 행복을 얻는 곳입니다. 그러나 룻은 달랐습니다. 이 세상은 언젠가 사라질 장망성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너머 천국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룻1:17에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장사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갖고도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머지 않아 사라지고 말 이 세상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세상에 집착하면 서글퍼 집니다. 하나씩 둘씩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을 가장 귀히 여기면 아무리 세상이 흉용하고 뒤흔들려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굳굳하게 견딥니다. 고후4:16-18 겉사람은 후패하나 영혼은 새롭고 . 보이지만 잠깐인 것보다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것(천국)을 소망하자! 그 영원한 천국 가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 미국 플로리다 코랄 리치 교회 케네디 목사-한때 춤 선생이었는데, 일을 마친 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 듣고 회심-“당신은 영원한 운명의 시간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주의 재림의 날 나는 어디 있을 것인가 춤이나 가르치다 인생을 끝낼 것인가” 오르바는 사실 크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착한 면도 있었습니다. 상당 거리 따라왔던 것을 보면 . 그러나 착한 것 하고 영적인 것 하고는 다릅니다. 더욱이 인간은 착해 봤자 죄인입니다. 누구도 예수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영원한 복락울 위해 예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오르바가 그랬듯이 구름처럼 흘러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현실이 고달픕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선택을 잘 하십시오. 신앙적 선택을! 육신의 안일보다 영혼의 평강을, 이 세상의 행복보다 천국의 복락을 . 그런 사람이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생입니다. 우리 앞에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오르바가 갔던 구름처럼 흘러가는 인생길, 룻이 갔던 영원한 천국길 .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습니까 어느 길을 선택하시렵니까
그러므로 잘 선택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인생의 큰 자산입니다. 어려운 문제, 상황일수록 그렇습니다. 본문 성경은 그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인생길에 계속 펼쳐지는 선택의 상황 가운데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선택의 중요성을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옛날 사사 시대(여호수아 사후 400여년 계속된 암흑 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그 지방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고난을 피하고자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이끌고 이방 나라인 모압 땅으로 이민을 합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는 그곳에서 죽고 맙니다. 그후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장성하여 모압 여자들과 결혼했는데, 묘하게도 둘다 요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 말론의 아내 룻, 기룐의 아내 오르바 이렇게 세 여인이 미망인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딱하지만, 그 당시 여자들이 마음대로 사회 활동을 못했던 시대 상황으로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미는 새로운 선택을 결정합니다. 그것은 곧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자기 남편 엘리멜렉이 잘못 선택한 사실을 뉘우치는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며느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민 온 이스라엘인들이 죽자 졸지에 혼자가 된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 소망이 없는 극단적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나마 시어머니까지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갈 것이냐 말것이냐 일단 그들은 따라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한참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만류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그들이 자기를 따라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8절-9절상. 돌아가라며 입맞춥니다.(이스라엘인들에게 입맞춤은 이별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 9절하-10절. 두 며느리는 소리 높이 울며 기어이 따라가겠노라 고집합니다.
11절-13절. 그러자 나오미는 논리적으로 차근 차근 상황을 설명합니다. 당시 계대 결혼의 율법(형사취수)이 있었는데, 그들의 상황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더 이상 아들이 없고, 나오미가 늙어 재혼도 불가능하고, 가능하다 치더라도 그 오랜 세월을 언제까지 기다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논리는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적어도 육신적인 관점에서 보면 . 더욱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이방 결혼을 기피하는 풍습으로 보건대 이스라엘에 가면 룻과 오르바의 재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오직 고생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금 냉정하게 상황 판단이 된 후 이제는 정말 룻과 오르바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14절. 오르바는 입맞추고 오던 길을 돌아갑니다. 룻은 끝끝내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갑니다. 여러분 한 번 마음 속에 그려 보십시오. 허허벌판에 지친 모습으로 가던 세 여인 . 한 곳에 서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세 여인 . 그러다가 두 여인은 아스라엘로 계속 가고, 다른 한 여인은 돌아서서 모압땅으로 갑니다. 그들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사이인지라 멀어지면서 눈물을 훔치면서 돌아 보고 또 돌아 봅니다. 그러기를 한참 . 이제는 지평선에 가물거리는 점이 됩니다. 그리고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후로는 더 이상 오르바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맙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기 길로 영영 떠나 버린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르바의 이름의 뜻입니다. ‘뒷목, 젊음, 구름’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구름처럼 영영 흘러간 여인! 우리는 더 이상 오르바를 성경에서 만나지 못합니다. 오직 룻과 나오미를 만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15절을 통해서 . 그녀는 모압 백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모압의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모압인과 재혼해서 어쩌면 육신적으로 편안하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옛날 섬기던 모압신을 섬기며 별 갈등없이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놓쳤습니다. 자기와 너무나 동일한 상황에 있었던 룻이 얻은 그 모든 것들을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잃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룻이 얻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룻은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지만, 그리고 그것을 각오했지만 사실은 후일 상상도 못했던 모든 것을 얻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1) 육신의 복을 얻습니다. 보아스 베들레헴 유지와 결혼하게 됩니다.
(2) 이방 여인인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3) 더 나아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다윗의 증조 할머니) 룻4:21 보아스-오벳-이새-다윗-.-예수 그리스도 마1:5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여인 마6:33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 하신다는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원리를 따라 선택하는 사람과 자기 마음대로 육신의 원리를 따라 선택하는 사람은 한때 동일한 상황에서 있었더라도 미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도저히 만날 수도 없는 모습으로 .
예> 백두산 천지-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두만강이 되어 동해 바다로 .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압록강이 되어 서해 바다로 . 그 물은 영영 서로 만날 수 없이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룻처럼 축복의 주인공, 영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선택 원리는 [1] 육신의 안일보다 영혼의 평강을 선택하였습니다. 룻도 오르바와 동일한 사람입니다. 별종이 아닙니다. 그녀도 나오미의 말을 알아 들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알았습니다. 고생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10여년 간 듣고 보면서 배운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현실이, 육신이 고달파도 영혼의 평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 그녀가 시집 오기 전 섬기던 모압의 신은 영혼에 평강을 주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모스神(삿11:24-몰렉 혹은 몰록이리고도 불렀다)은 공포의 신이었습니다. 소원을 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어린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제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가르쳐 준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극심한 고난 중에 있지만 그래도 나오미가 위로받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강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환란을 당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견디게 해 주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위로가 있습니다. 고후1:3-5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넘치는 고난, 넘치는 위로 하나님이 고난 자체를 제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단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욥23:10 정금같은 신앙으로 승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라 하나님의 평강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고난 가운데 있어 봐야 압니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위로는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더 큰 환란이 오면 금새 소멸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그 어느 환란도 이기게 해 줍니다. 요14:27 세상 주는 것과 같지 않는 것! 세상의 것은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예) 인간 심령 속의 블랙홀-다 삼키고도 만족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예수님 한분만이 그 영적 공백을 채워 주십니다. 안타깝게도 오르바는 이런 비밀을 몰랐습니다. 육신의 안일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육신의 안일은 환경 조건에 따라 가변적인 것임에도 . 그래서 그는 그저 고생하는 것, 고난을 피하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육신의 안일과 더불어 진정한 영적 평강으로부터 멀리 흘러간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 롯-창13:아브라함에게서 떠나 소돔성으로 갑니다. 육신적으로 안일하지만 죄가 가득한 곳 . 거기서 얼마나 심령이 상했는지 .(벧후2:7 고통하는 롯)
예) 모세-히11:24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 안에 있는 평강, 하나님 안에 있는 위로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평안함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잠시 후 다시 공허해 지는 것입니다.
[2] 세상의 행복보다 천국의 복락을 선택했습니다. 오르바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모압을비교하면 당연히 모압이 행복을 얻는 곳입니다. 그러나 룻은 달랐습니다. 이 세상은 언젠가 사라질 장망성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너머 천국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룻1:17에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장사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갖고도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머지 않아 사라지고 말 이 세상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세상에 집착하면 서글퍼 집니다. 하나씩 둘씩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을 가장 귀히 여기면 아무리 세상이 흉용하고 뒤흔들려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굳굳하게 견딥니다. 고후4:16-18 겉사람은 후패하나 영혼은 새롭고 . 보이지만 잠깐인 것보다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것(천국)을 소망하자! 그 영원한 천국 가는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 미국 플로리다 코랄 리치 교회 케네디 목사-한때 춤 선생이었는데, 일을 마친 후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 듣고 회심-“당신은 영원한 운명의 시간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 “주의 재림의 날 나는 어디 있을 것인가 춤이나 가르치다 인생을 끝낼 것인가” 오르바는 사실 크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착한 면도 있었습니다. 상당 거리 따라왔던 것을 보면 . 그러나 착한 것 하고 영적인 것 하고는 다릅니다. 더욱이 인간은 착해 봤자 죄인입니다. 누구도 예수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영원한 복락울 위해 예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오르바가 그랬듯이 구름처럼 흘러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현실이 고달픕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선택을 잘 하십시오. 신앙적 선택을! 육신의 안일보다 영혼의 평강을, 이 세상의 행복보다 천국의 복락을 . 그런 사람이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생입니다. 우리 앞에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오르바가 갔던 구름처럼 흘러가는 인생길, 룻이 갔던 영원한 천국길 .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습니까 어느 길을 선택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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