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 (룻3:1-9)
본문
우리들의 삶이 너무도 바쁘게 살아온 나머지 우리들 입에는 피곤하다, 바쁘다, 힘들어 죽겠다, 괴롭다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유럽 선진국이 300년 걸려 이룬 부강을 일본은 100년 만에 이루었고,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이를 따라 잡으려고 하다보니 너무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그 후유증이 대단합니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일 하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기랴’ 하여 물질 경제는 이만해도 너무 부유한 삶을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진정 이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생의 욕심은 무저갱이라 그 욕심을 물질로, 편리로, 쾌락으로 다 채울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다고, 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바로 살아보세, 바로 살아보세’를 외쳐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 오늘 살펴 본 본문의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의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평강과 안식의 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룻은 평강과 안식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도 잃었고, 대를 이을 만한 자식도 없는 참 과부였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고향도 아닌 멀리 이국 땅에서 이삭을 주워 먹고 살아야하는 룻의 생활은 한 마디로 피곤하고, 불안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은혜를 입는 중에 이삭으로 양식을 얻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녀의 모든 삶을 맡아줄 남편이 되므로 모든 것을 보아스에게 맡기고 살 수 있는 평강과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랑 보아스를 만나서 룻의 모든 운명은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운명도 바뀌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랑되신 주님으로 만나서 우리가 얻게 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이를 믿으십니까 구속의 은혜를 입을 뿐 아니라, 날마다의 우리 삶을 보호하시는 풍성한 삶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또 불안하고, 쉼이 없는 우리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이 놀라운 평강과 안식이 주어집니다. 주님을 만나서 이 평강과 안식의 은혜를 얻게 주어지는데, 어떻게 주님께 만납니까 어떻게 주님께 나아갑니까
첫째로, 간절히 구하여야합니다. (룻3: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룻은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씀을 따라 안식할 곳을 구하는 일을 합니다. 참 이 나오미는 좋은 시어머니입니다. 그녀 자신도 과부로서 어떻게 재가할 곳을 찾아서 안식할 곳을 구해야하는데, 저는 돌아보지 않고, 제 며느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 일을 하나님께 구해야겠다. “너를 위하여.내가 구하여.복되게 해야하지 않겠느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고부 사이의 갈등으로 어렴고, 힘들다고하지만, 믿음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서로를 생각해 주는 이 나오미와 룻은 친 어머니, 친 딸 이상의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나오미는 룻을 부를 때에도 내 딸아,(1,10절) 했고, 룻도 자신의 친어머니라고 생각될 만큼 다정한 관계였습니다. 나오미는 생각합니다. “룻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안식이다”. 내가 이 룻에게 해 줄 것이 없다, 그를 행복되게 하는 것은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 가정을 이루어 평강과 안식을 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이 일을 하나님께 구하여 룻을 복되게 해야하겠다고 했습니다. 참, 인생이 세상에서 평강과 안식을 얻으려하나,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바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밤을 새워 계획합니다. 어쩌다가 쉬는 날도 노는 일로 육신을 더 피곤하게 합니다.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백발이 되어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이 시간까지 달려왔던고. 후회와 좌절을 하지만, ‘예수 믿으세요’ 하면,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다 한결같이 ‘바빠서.’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시는 날에는 아무리 바빠도 가야합니다. 우리 교회도 40대가 제일 많은데, 40대 남자 사망이 제일 많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몸도 돌아 보지 않고 일에 종노릇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에 가장 먼저 주신 선물이 바로 안식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일을 다스리는 자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쉬셨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목적도 그러합니다.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일하는 인생에게 쉼이 필요한 것을 아시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에는 안식하는 일을 합니다. 이상한 말이지요 안식하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왜 안식하는 일을 합니까 안식이 일을 쉬는 데서 있는 것 아닙니다. 안식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은 무거운 죄와 생활의 모든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자기 육신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때에 비로소 참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또 가정을 주셨는데, 이 가정이 안식을 누리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과 안식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가정”하면 우리는 먼저 쉴 수 있는 곳, 안식있는 곳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습니다. 하우스는 있으나, 홈은 없다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 비로서 참된 안식을 얻었나이다”라고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입니다. 참된 안식을 말하면, 거짓된 안식이란 것이 있습니까 예, 위장된 평화, 위장된 안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곳이 파라다이스다. 이것이 안식하는 방법이다. 꾀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돈이 있으면, 지식을 가지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그러면 안식도, 평안도 있다 하지만,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해서 그 곳까지 갔지만, 그 곳에는 행복이란 없고, 또 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해서 달리고 달려 오늘 까지 왔습니다. 세상에 우리 인생의 행복이 있습니까 세상에 낙원이 있습니까 인간의 죄악이 그치지 않는 한, 인간의 무저갱의 욕심이 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인간세계에 행복은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아니면서 위장된 평화, 위장된 안식으로 꾀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말로 할 때에 우리로 평강과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자로서 평강이 없습니다.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에는 결코 인생에게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천국은 영원한 평강과 안식의 나라입니다. 룻은 어떻게 이 안식을 얻게됩니까 나오미는 어떻게 이 은혜를 룻에게 입히게 됩니까 나오미는 지혜있고, 좋은 어머니였습니다. 그 자신에게도, 며느리 룻에게도 무엇보다 안식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문에서 유력한 자요, 아주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룻에게 안식의 은혜를 베풀어 줄 사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룻이 보아스를 통해 은혜입기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바쁘게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들에게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안식은 누가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과 평강과 안식이심을 믿습니까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 막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예수께서 다 허셨습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분에게 구해야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은 다 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안식과 평강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정결히 단장을 했습니다. 보아스를 만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룻에게 나오미는 (룻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 라고 했습니다. 신랑을 만나려는 신부가 어떻게 단장하겠습니까 룻은 보아스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품에서의 안식을 얻으려고한다면 이제는 주님이 보실 때에 아름답게 보이도록 자신을 가꾸는 일을 해야합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신부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순간입니다. 씻고, 화장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르 입듯이 주님의 품에 안기려는 성도는 그렇게 자신을 가꾸어야합니다.
1).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씻어야합니다. 여인으로서 아무 매력이 없다면 누가 그를 신부로 받겠습니까 여인으로서 아름다움의 제일 조건은 깨끗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한다면 그의 몸과 행실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단장해야할 것입니다.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간다고 하면서 주님을 만나려고 교회에 나오면서 몸만 씻고, 얼굴만 화장한다고, 좋은 옷만 걸치고 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깨끗케해야합니다. 깨끗한 몸, 마음으로 예배하고, 찬양드려야 하나님께 은혜를 얻게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귀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으로 받지 못합니다.
2). 성령님의 기름으로 단장해야합니다. 깨끗한 몸으로 목욕한 후에 기름을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의 화장을 말합니다 얼굴에 윤기를 더해주고, 향기로운 냄새를 더해주는 화장을 하고, 보아스를 만나도록 했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내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충만한 삶을 살 때에 세상은 우리에게서 그리스도를 냄새맡습니다. 더러운 모든 악취로 고통하는 우리를 볼 때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야합닏다. 그리스도만이 세사의 소망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를 말합니다. 인간의 냄새 나는 껏을 막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게해야 합니다. 인간은 나면서 부터 부패성을 가지고 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사랑이나,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다 (롬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3: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자기만 위하는 이기적이고, 죄악적인 인간냄새를 덮고,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어떤 것입니까 그분은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인격을 가졌습니다. 또 지극히 거룩하셔서 죄를 미워하시는 인격입니다. 당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해 드려서 구원하신 온유와 겸손의 마음과 행위입니다. 인격의 시작은 마음밉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은 그 마음에 먹은대로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말이나, 행동에나, 하나님의 자녀다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부터 그리스도의 마음같이 되어야합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성도들은 성령님충만한 삶과 그리스도같이 섬김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나타내어야합니다. 이 향기를 주님은 좋아하십니다.
3). 새 의복을 입어야합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른 후에, 새 의복을 입어야합니다. 하얀 세마포를 입고 결혼식에 신부가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의복은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 (계19:8) 그러나 이는 성도가 바른 행실을 해서 입은 자기의 의로운 행실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계3:18에는 희ㄴ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입혀주신 그리스도의 의가 있는 줄 믿습니까(아멘) 이 의를 입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류가 제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저희가 급하게 만들었던 무화과잎사귀 치마와 다른 짐승을 잡아서 만든가죽 옷이 있는데, 이를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입혀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행위의 의로 어떻게 가릴 수 없는 이 부끄러움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대속으로서 우리에게 의를 입혀주셨습니다. 이 의를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입혀주신 의를 벗지 않고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이 새 의복을 입어야합니다. 3 모든 것을 다 맡겨야합니다. 나오미는 (룻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고 룻에게 시켰습니다. 이를 음란한 이야기로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신부된 자로서 모든 것을 자신을 채임질 자에게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현숙한 여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까 가슴떨리고, 불안한 일입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의 품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그가 네게 할 일을 말할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다 주님께 맡겼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은 없는 것 아닙니까 법적인 관계는 되어 있으나, 실제의 삶에서의 교제는 없는 것 아닙니까 오늘에 법적으로는 부부관계이지만, 실제로는 남남인 부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에 법적으로는 부자관계이지만, 실지적으로는 원수된 사이도 많습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룻이 보아스의 품안에서 안식얻기를 원하여 모든 것을 다 맡긴 것 같이 주님께 나의 모든 삶을 다 맡겼습니까 주님의 품 속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믿습니까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나의 삶을 다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다 당신의 것이라는 것이요, 또 당신의 모든 것은 다 나의 것입니다. 신부와 신랑이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아낌없이 다 맡길 때에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못 믿고, 서로 딴 주머니를 찬다면 이는 말만 부부지 참 부부 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하므로 이제 룻의 모든 것은 보아스의 것이 됩니다. 또 보아스의 모든 것은 룻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룻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룻에게는 가난과 멸시ㅘ 천대와 서러움 뿐이었습니다. 부아스에게 있는 것은 어떠 것입니까 보아스는 부요와 존경과 대우와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 룻의 가난과 멸시는 보아스가 책임지고, 보아스의 모든 부요와 존귀는 룻의 것이 되는 것이 기업을 무르는 것입니다. 결혼으로 얻는 은혜입니다. 아, 여러분, 우리들이 주님과 결혼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라 부르시고, 당신은 신랑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과 결혼하였으니, 우리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이전에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죄와 저주와 사망이 우리의 가진 전부였습니다. 이를 주님이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 없는 은혜로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주님께서 다 가져 가셨습니다. 우리의 신랑되신 주님께서 이를 다 책임지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복과 은혜 뿐입니다. 모든 죄와 사망이 다 물러 갔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그의 운명이 완전히 바귄 것 같이 우리들은 예수님한 분 잘 만나서 모든 운명이 다 바귀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감사와 찬송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룻3: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룻은 보아스의 옷 자락 아래서 안식하기를 원했습니다. 보아스가 이전에 룻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룻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날개 아래 룻을 품었습니다. 이제 룻은 보아스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옷자락으로 이 종을 덮으소서” 했습니다. 이 룻은 보아스에게서 안식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가 보아스를 만나기 위해서 목욕을 했고, 기름을 바르고, 새 의복을 입고 보아스에게 나아온 것입니다. 이 룻에게 안식이 주어졌습니다. 어디에 우리 쉴 곳이 있습니까 주님의 품안에서 우리는 영원하고, 참된 안식과 평강을 얻습니다. 주님의 안식과 평강을 간절히 구합시다. 깨끗한 신부의 단장으로 단장합시다. 항상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님의 충만한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나타내고, 입혀주신 의를 벗지 않고, 의로운 행위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준비입니다. 주님과 사귐을 실제로 가져야합니다. 룻이 얻게된 복이 우리에게 없습니까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죄와 저주는 주님께서 다 가져 가시고, 주님의 대속의 은혜와 영원한 영생의 복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왠 은혜입니까 웬 사랑입니까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이 땅에는 쉼이 없고, 평강이 없습니다. 죄 많고 마귀역사 있는 세상에서는 위장된 안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십니다. 안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품에서 안식을 얻은 것 같이 주님 품 안에서 얻고, 누리게 되는 평강과 안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고 날마다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진정 이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생의 욕심은 무저갱이라 그 욕심을 물질로, 편리로, 쾌락으로 다 채울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다고, 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바로 살아보세, 바로 살아보세’를 외쳐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 오늘 살펴 본 본문의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의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평강과 안식의 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룻은 평강과 안식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도 잃었고, 대를 이을 만한 자식도 없는 참 과부였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고향도 아닌 멀리 이국 땅에서 이삭을 주워 먹고 살아야하는 룻의 생활은 한 마디로 피곤하고, 불안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은혜를 입는 중에 이삭으로 양식을 얻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녀의 모든 삶을 맡아줄 남편이 되므로 모든 것을 보아스에게 맡기고 살 수 있는 평강과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랑 보아스를 만나서 룻의 모든 운명은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운명도 바뀌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랑되신 주님으로 만나서 우리가 얻게 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이를 믿으십니까 구속의 은혜를 입을 뿐 아니라, 날마다의 우리 삶을 보호하시는 풍성한 삶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또 불안하고, 쉼이 없는 우리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이 놀라운 평강과 안식이 주어집니다. 주님을 만나서 이 평강과 안식의 은혜를 얻게 주어지는데, 어떻게 주님께 만납니까 어떻게 주님께 나아갑니까
첫째로, 간절히 구하여야합니다. (룻3: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룻은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씀을 따라 안식할 곳을 구하는 일을 합니다. 참 이 나오미는 좋은 시어머니입니다. 그녀 자신도 과부로서 어떻게 재가할 곳을 찾아서 안식할 곳을 구해야하는데, 저는 돌아보지 않고, 제 며느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 일을 하나님께 구해야겠다. “너를 위하여.내가 구하여.복되게 해야하지 않겠느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고부 사이의 갈등으로 어렴고, 힘들다고하지만, 믿음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서로를 생각해 주는 이 나오미와 룻은 친 어머니, 친 딸 이상의 친밀한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나오미는 룻을 부를 때에도 내 딸아,(1,10절) 했고, 룻도 자신의 친어머니라고 생각될 만큼 다정한 관계였습니다. 나오미는 생각합니다. “룻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안식이다”. 내가 이 룻에게 해 줄 것이 없다, 그를 행복되게 하는 것은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 가정을 이루어 평강과 안식을 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이 일을 하나님께 구하여 룻을 복되게 해야하겠다고 했습니다. 참, 인생이 세상에서 평강과 안식을 얻으려하나,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바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밤을 새워 계획합니다. 어쩌다가 쉬는 날도 노는 일로 육신을 더 피곤하게 합니다.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백발이 되어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이 시간까지 달려왔던고. 후회와 좌절을 하지만, ‘예수 믿으세요’ 하면,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다 한결같이 ‘바빠서.’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시는 날에는 아무리 바빠도 가야합니다. 우리 교회도 40대가 제일 많은데, 40대 남자 사망이 제일 많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몸도 돌아 보지 않고 일에 종노릇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에 가장 먼저 주신 선물이 바로 안식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일을 다스리는 자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쉬셨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목적도 그러합니다.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일하는 인생에게 쉼이 필요한 것을 아시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에는 안식하는 일을 합니다. 이상한 말이지요 안식하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왜 안식하는 일을 합니까 안식이 일을 쉬는 데서 있는 것 아닙니다. 안식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은 무거운 죄와 생활의 모든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자기 육신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때에 비로소 참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또 가정을 주셨는데, 이 가정이 안식을 누리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과 안식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가정”하면 우리는 먼저 쉴 수 있는 곳, 안식있는 곳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습니다. 하우스는 있으나, 홈은 없다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 비로서 참된 안식을 얻었나이다”라고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입니다. 참된 안식을 말하면, 거짓된 안식이란 것이 있습니까 예, 위장된 평화, 위장된 안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곳이 파라다이스다. 이것이 안식하는 방법이다. 꾀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돈이 있으면, 지식을 가지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그러면 안식도, 평안도 있다 하지만,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해서 그 곳까지 갔지만, 그 곳에는 행복이란 없고, 또 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해서 달리고 달려 오늘 까지 왔습니다. 세상에 우리 인생의 행복이 있습니까 세상에 낙원이 있습니까 인간의 죄악이 그치지 않는 한, 인간의 무저갱의 욕심이 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인간세계에 행복은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아니면서 위장된 평화, 위장된 안식으로 꾀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말로 할 때에 우리로 평강과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자로서 평강이 없습니다.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에는 결코 인생에게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천국은 영원한 평강과 안식의 나라입니다. 룻은 어떻게 이 안식을 얻게됩니까 나오미는 어떻게 이 은혜를 룻에게 입히게 됩니까 나오미는 지혜있고, 좋은 어머니였습니다. 그 자신에게도, 며느리 룻에게도 무엇보다 안식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문에서 유력한 자요, 아주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룻에게 안식의 은혜를 베풀어 줄 사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룻이 보아스를 통해 은혜입기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바쁘게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들에게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안식은 누가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과 평강과 안식이심을 믿습니까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 막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예수께서 다 허셨습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분에게 구해야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은 다 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안식과 평강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정결히 단장을 했습니다. 보아스를 만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룻에게 나오미는 (룻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 라고 했습니다. 신랑을 만나려는 신부가 어떻게 단장하겠습니까 룻은 보아스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품에서의 안식을 얻으려고한다면 이제는 주님이 보실 때에 아름답게 보이도록 자신을 가꾸는 일을 해야합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신부는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순간입니다. 씻고, 화장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르 입듯이 주님의 품에 안기려는 성도는 그렇게 자신을 가꾸어야합니다.
1).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씻어야합니다. 여인으로서 아무 매력이 없다면 누가 그를 신부로 받겠습니까 여인으로서 아름다움의 제일 조건은 깨끗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한다면 그의 몸과 행실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단장해야할 것입니다.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간다고 하면서 주님을 만나려고 교회에 나오면서 몸만 씻고, 얼굴만 화장한다고, 좋은 옷만 걸치고 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깨끗케해야합니다. 깨끗한 몸, 마음으로 예배하고, 찬양드려야 하나님께 은혜를 얻게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귀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으로 받지 못합니다.
2). 성령님의 기름으로 단장해야합니다. 깨끗한 몸으로 목욕한 후에 기름을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의 화장을 말합니다 얼굴에 윤기를 더해주고, 향기로운 냄새를 더해주는 화장을 하고, 보아스를 만나도록 했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내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충만한 삶을 살 때에 세상은 우리에게서 그리스도를 냄새맡습니다. 더러운 모든 악취로 고통하는 우리를 볼 때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야합닏다. 그리스도만이 세사의 소망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를 말합니다. 인간의 냄새 나는 껏을 막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게해야 합니다. 인간은 나면서 부터 부패성을 가지고 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사랑이나,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다 (롬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3: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자기만 위하는 이기적이고, 죄악적인 인간냄새를 덮고,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어떤 것입니까 그분은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인격을 가졌습니다. 또 지극히 거룩하셔서 죄를 미워하시는 인격입니다. 당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해 드려서 구원하신 온유와 겸손의 마음과 행위입니다. 인격의 시작은 마음밉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은 그 마음에 먹은대로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말이나, 행동에나, 하나님의 자녀다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부터 그리스도의 마음같이 되어야합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성도들은 성령님충만한 삶과 그리스도같이 섬김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나타내어야합니다. 이 향기를 주님은 좋아하십니다.
3). 새 의복을 입어야합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른 후에, 새 의복을 입어야합니다. 하얀 세마포를 입고 결혼식에 신부가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의복은 성도의 옳은 행실입니다. (계19:8) 그러나 이는 성도가 바른 행실을 해서 입은 자기의 의로운 행실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계3:18에는 희ㄴ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입혀주신 그리스도의 의가 있는 줄 믿습니까(아멘) 이 의를 입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류가 제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저희가 급하게 만들었던 무화과잎사귀 치마와 다른 짐승을 잡아서 만든가죽 옷이 있는데, 이를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입혀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행위의 의로 어떻게 가릴 수 없는 이 부끄러움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대속으로서 우리에게 의를 입혀주셨습니다. 이 의를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입혀주신 의를 벗지 않고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이 새 의복을 입어야합니다. 3 모든 것을 다 맡겨야합니다. 나오미는 (룻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고 룻에게 시켰습니다. 이를 음란한 이야기로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신부된 자로서 모든 것을 자신을 채임질 자에게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현숙한 여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까 가슴떨리고, 불안한 일입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의 품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그가 네게 할 일을 말할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다 주님께 맡겼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은 없는 것 아닙니까 법적인 관계는 되어 있으나, 실제의 삶에서의 교제는 없는 것 아닙니까 오늘에 법적으로는 부부관계이지만, 실제로는 남남인 부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에 법적으로는 부자관계이지만, 실지적으로는 원수된 사이도 많습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룻이 보아스의 품안에서 안식얻기를 원하여 모든 것을 다 맡긴 것 같이 주님께 나의 모든 삶을 다 맡겼습니까 주님의 품 속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믿습니까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나의 삶을 다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다 당신의 것이라는 것이요, 또 당신의 모든 것은 다 나의 것입니다. 신부와 신랑이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아낌없이 다 맡길 때에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못 믿고, 서로 딴 주머니를 찬다면 이는 말만 부부지 참 부부 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하므로 이제 룻의 모든 것은 보아스의 것이 됩니다. 또 보아스의 모든 것은 룻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룻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룻에게는 가난과 멸시ㅘ 천대와 서러움 뿐이었습니다. 부아스에게 있는 것은 어떠 것입니까 보아스는 부요와 존경과 대우와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 룻의 가난과 멸시는 보아스가 책임지고, 보아스의 모든 부요와 존귀는 룻의 것이 되는 것이 기업을 무르는 것입니다. 결혼으로 얻는 은혜입니다. 아, 여러분, 우리들이 주님과 결혼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라 부르시고, 당신은 신랑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과 결혼하였으니, 우리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이전에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죄와 저주와 사망이 우리의 가진 전부였습니다. 이를 주님이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 없는 은혜로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주님께서 다 가져 가셨습니다. 우리의 신랑되신 주님께서 이를 다 책임지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복과 은혜 뿐입니다. 모든 죄와 사망이 다 물러 갔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그의 운명이 완전히 바귄 것 같이 우리들은 예수님한 분 잘 만나서 모든 운명이 다 바귀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감사와 찬송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룻3:9)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룻은 보아스의 옷 자락 아래서 안식하기를 원했습니다. 보아스가 이전에 룻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룻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날개 아래 룻을 품었습니다. 이제 룻은 보아스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옷자락으로 이 종을 덮으소서” 했습니다. 이 룻은 보아스에게서 안식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가 보아스를 만나기 위해서 목욕을 했고, 기름을 바르고, 새 의복을 입고 보아스에게 나아온 것입니다. 이 룻에게 안식이 주어졌습니다. 어디에 우리 쉴 곳이 있습니까 주님의 품안에서 우리는 영원하고, 참된 안식과 평강을 얻습니다. 주님의 안식과 평강을 간절히 구합시다. 깨끗한 신부의 단장으로 단장합시다. 항상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님의 충만한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나타내고, 입혀주신 의를 벗지 않고, 의로운 행위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준비입니다. 주님과 사귐을 실제로 가져야합니다. 룻이 얻게된 복이 우리에게 없습니까 어떤 것입니까 우리의 죄와 저주는 주님께서 다 가져 가시고, 주님의 대속의 은혜와 영원한 영생의 복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왠 은혜입니까 웬 사랑입니까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이 땅에는 쉼이 없고, 평강이 없습니다. 죄 많고 마귀역사 있는 세상에서는 위장된 안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십니다. 안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품에서 안식을 얻은 것 같이 주님 품 안에서 얻고, 누리게 되는 평강과 안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고 날마다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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