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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희생으로 천국을 가까이 (룻1:1-18,히9:11-14,막12:28-34)

본문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김갑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어느 정도 큰 기업을 하던 분인데, 80년대 초에 그만 기업 운영이 어렵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도 어수선하고 복잡하니까, 아예 모든 것을 정리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가족은 그의 부인 최영 순 씨와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살만 하자, 김갑수 씨가 갑자기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부인 최영순 씨는 모든 슬 픔을 딛고 다시금 일어섰습니다. 아들 둘도 연달아 장가를 보냈습니다. 공교롭게도 며느리는 둘 다 미국 여자였습니다. 큰며느리의 이름은 '룻'이었고, 작은며느리의 이름은 '오르바'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아들 내외가 동부 해안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아가다가, 앞에서 오던 차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큰 교통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바람에, 앞에 탔던 두 형제는 그 자리에서 죽고, 뒷좌석에 있던 며느리들은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은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최씨 가족은 과부만 셋 남았습니다. 정든 고향 산천을 등 지고 낯선 미국을 향하여 갈 때에는, 한국에서보다 더 잘 살리라는 기대를 갖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영순 씨는 남편 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는, 지극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처럼 불행하게 되는 경우란, 극히 드물 예입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최영순 씨 친정에서는, 아무 미련 없이 고 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최 씨 또한, 미국에 대해서는 만정이 떨어져서, 귀국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는 재혼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두 며느리는, 혼자된 시어머니가 안타 깝던지, 시어머니를 따라서 한국에 들어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영순 씨는 며느리들에게 "얘들아, 너희는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나는 늙어 재혼할 수 없는 몸이지만, 너희는 얼마든지 가능 하지 않느냐 자식도 없고 나이도 젊으니, 좋은 남자 만나서 새 인생을 살도록 하라"고, 며느리들을 타일렀습니다. 작은며느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시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큰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곁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큰며느리는 "저도 어머니 따라서 한국에 가겠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가서, 한국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미국인 여자로서는 보기 드문 훌륭한 며느리였습니다. 자신의 앞날만을 생각하는 여자였다면, 시어머니가 함께 살자고 애원했더라도, '무슨 말이냐'고 하면서 떠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낯선 땅에 와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혼자되어 살다가, 의지하던 두 아들마저 한꺼번에 잃어버린 시어머니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 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들려드린 이야기는, 오늘의 말씀인 룻기 1장을,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꾸며본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으로 분명히 있었던 사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룻'이라고 하는 한 여인이 자신을 희생하여, 시어머니 '나오미'를 지성으로 섬겼을 때 에, 그 후손 중에서 성군 '다윗'이 나왔으며, 그리고 인류의 영원 한 빛이 되시는 예수가 탄생했습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사람이 달라지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 중심 적인 생활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을 갖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룻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여자였지만, 나오미의 며느리가 된 다음부터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시어머니 를 따랐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도 물론 달라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허락하셨기 때문 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 말씀을 보면, 짐승의 피가 우리 죄를 씻어낼 수 있다면, 예수의 피가 우리 마음과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더욱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주께서 십자가의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활 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자기만 아는 존재가 아니라,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 되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리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이 희생은, 보통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을 가졌노라 하지만,
1.자기 희생이 부족합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에서는 폐결핵 환자들의 공동체인 '예가원' 에 가서 수고했습니다. 각기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우리 가 예수의 희생 정신을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대가도 없이 땀 흘려 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그 동안, 우리는 주님과 이웃을 위한 일에 너무 무관심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저 나를 위한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예수의 제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1우리의 마음과 생활이, 주의 피로 인한 변화가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룻은 하나님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신속하게 그 믿음이 자란 까닭에, 시어머니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안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신 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만 드리고 십일조만 드리면, 신앙 생활을 다한 줄로 아십니까 하기야, 예수를 믿기 시 작한 지 수 십 년이 넘었어도, 주일성수하는 일조차 어려운 사람 이 있으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뿌리는 대로 거둔다고 하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희생과 봉사의 땀을 흘리지 않고, 어찌 무슨 신앙의 열 매를 거둘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과 이웃을 위한 봉사가 거의 전 무하다시피 한데, 어떻게 자녀의 영광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주께서 흘리신 피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삶 의 변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삶의 변화가 없으면, 결코 주님의 영광을 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녀 를 위한 희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짐승들도 하고 있는 희 생입니다. 진정한 희생은 예수를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당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2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룻이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 다윗의 증조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엄대환 권사님이 자기 것만 알고 희생을 몰랐다면, 오늘의 영춘교회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훌륭한 인생을 사 신 분들은, 한결같이 자기를 희생하신 분들입니다. 지난 번, 우리는 원종수 권사의 간증을 관람했습니다. 그의 인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은, 거지 할아버지를 데려다가 목욕시킨 일입니다. 물론, 어머니가 모시고 와서, 당시 고등학생인 원종수로 하여금 씻기게끔 했습니다. 그 때에는 어머니가 어지간히도 원망 스러웠지만, 지금은 그가 지닌 신앙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오직 너 만 잘되면 된다. 무조건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가도록 하라.' 과연, 그런 자녀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까요 그런 사람이 나중에 성장해서, 이 사회에 무슨 유익을 끼칠 수가 있을까요
3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네 생명 이 길리라(출20:1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레25:43)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 며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신6:24) 이와 같이, 부모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은, 우리 인간 의 본분입니다. 그리고, 복 받고 잘 사는 길입니다. 진정,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부모를 공경할 때, 그 자손 만대로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방법을 외면한 채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자녀를 사랑하고 아껴서, 그 집안이 잘된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주께 충성하고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이, 자녀를 진실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성경은 가 르쳐 주고 있습니다. 희생이란, 나올 것이 없는 사람에게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 을 말합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베푸는 것은, 사랑도 아니고 희생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주 예수는 진정 우리를 위하여 희 생하셨습니다. 아무 보잘것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2.예수는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께,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다"고 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룻1:16-17). 이 정신이 다윗을 거쳐서 예수께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에서,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그 피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 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께서 흘리신 희생의 피야말로, 우리가 천국을 향할 때에 지니고 가야할 가장 귀중한 징표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요, 평안함과 소망도 예수의 피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우리의 의(義)도, 예수의 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184장) 이처럼, 예수께서는
1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 옛날,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에, 주께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짐승 피를 바침으로써, 그 죄를 씻어야만 했습니다. 짐승이 인간 대신에 피를 흘림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런 제도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 제도를 악용했습니다. 쉽게 죄를 짓고 쉽 게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짐승이 죽어갈 때,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짐승을 바라보면서, 자기 죄를 뉘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뻔뻔스럽게도 "무슨 짐승 제물을 더 바치오리까"하면 서, 죄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 오셔서, 당신 스스로 가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사람은, 바 로 우리 자신임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은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가 무슨 죄가 있어서 죽는 줄로 알 았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2예수께서 흘리신 희생의 피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ㄱ.하나님께 대한 충성입니다.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의 뜻에 순 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물론, 마귀 에게 충성하는 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ㄴ.인간의 죄를 없애시는, 속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 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만큼 사랑한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죽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ㄷ.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돌 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잘못도 없으시면서, 모 든 허물을 자신이 뒤집어쓰셨습니다.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의 의를 밝혀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서로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죄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들춰내서 심판하 기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었으나, 간음죄를 지은 여 인에게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게 보여주신 것은 '섬기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최후에는 희생의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영원히 우리를 구원하셨 습니다. 이러한 주의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가 그토록 가기를 원하는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3.자기 희생으로 천국을 이루어갑시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테레사 수녀는, "싫증내지 말고 주십시오. 남는 것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상처를 받을 때까지,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상처를 받고 고통을 느낄 때까지 도 줄 수 있는 마음이 희생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나 상대방이 잘해줄 때에, 사랑을 베푸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배신을 하거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있더라도, 변함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늘 깨닫게 되는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1예수님의 희생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가 너무 멀게 느껴지면, 룻을 생각하도록 합시다. 룻에게도 얼마든지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버린다고 해서, 흉잡힐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결혼을 한다고 해서, 누가 시비를 걸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먼저, 시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결 과, 훌륭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도 했거니와, 그 후손 중에서 예수가 탄생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희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을 믿 으면, 희생적인 삶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우리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주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기쁨으로 주를 섬기며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한 율법학자가 예수께 물었을 때에, 주는 마음과 목숨, 생각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 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막12:30-31)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말씀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 다는 점입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되면, 서로 우스운 꼴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태도 를 갖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높여주는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 입니다. 이 비밀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예수 믿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기쁨이 충만하게 될 때에,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 그 사회는 천국이 이루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3우리 모두,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함께 노력합시다. 나오미는 정말 아주 비참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도무 지,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큰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 룻의 희생으로, 그 가정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의 가정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내가 먼저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 회는 좋은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자꾸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영원히 우리 사회는 어둡게 되고, 가정도 또한 평화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집안이 잘 되고 후손이 잘 되기를 원한다면, 부모를 잘 공경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 면,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내 몸과 마음, 시간과 물질을 바쳐서, 희생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이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실천함으로 써, 천국에 더 가까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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