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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가자 (룻1:1-5룻1:15-17)

본문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 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 지 십년 즈음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 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 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 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올해 농사는 풍년이라고 합니다. 요 근래에 들어선 홍수가 나도, 태풍이 불어 와도 매번 대풍이라고 합니다. 올해도 풍년은 올 것 같습니다. 이번주에 시골 길을 갈 기회가 많았는데 가는 곳마다 누런 벼이삭들이 고개를 못 가누고 휘청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농경문화권에서는 자연히 풍년이냐, 흉년이냐 가 그 나라의 살림을 좌우하게 됩니다. 저장기술과 대량경작이 힘들었던 옛날 에는 한해 흉년이면 그해는 굶어죽은 사람이 부지기수로 생기게 마련이었습니다. 오늘 룻기는 어느 한 가족이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피신을 가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 흉년을 만난 유대를 떠나 모압으로 피신하는 엘리멜렉의 가정 엘리멜렉 이라는 가장과 나오미 라는 두 부부는 흉년이 들자 도저히 자식들 과 살 길이 막막해져서 이스라엘을 뜨기로 합니다. 이들의 고향은 베들레헴, 즉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들레헴이 얼마나 풍요로운 땅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떡집이 하도 많으니 떡집이란 동네이름이 붙었을테이지요. 그 동네 에까지 흉년의 검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견디다 견디다 못해 서 베들레헴을 뜨기로 합니다. 이 땅이 어디입니까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 르는 땅이라 부르셨던 땅입니다. 그 땅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이 가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괴로왔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을 포기하고 가겠습니까 우리네 인생길에는 늘 풍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다보면 폭풍도 지나고 캄캄한 밤도 지나갑니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도 있고, 거친 들판을 걸어갈 때 도 있을 겁니다. 오르막 길이 있는가 하면, 천길 낭떠러지도 만납니다. 이러 한 악한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떠합니까 도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저 앉아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담 대히 맞서서 싸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이 가정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내어 버리고 이 방인의 땅, 모압으로 피신했습니다. 모압은 어떤 땅입니까 모압은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을 간신히 피한 롯과 두 딸에 의해서 세워진 땅의 이름입니다. 두 딸은 자손이 끊어질 것이 염려되어서 그 아비에게 '술을 먹이우고' 동침한 결과 맏딸이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모압입니다. (창 19:30-38) 이 모압이 후에 요단강 동편에서 한 민족과 국가를 이루어서 모압족속이 됩니다. 민수기 25장에 이들과 접촉하여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으 로 보아서 모압족속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그들의 신 '그모스' 우상을 숭 배하고 음란한 문화를 가졌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민 25장) 이사야 와 예레미야는 모압족속이 부르짖음과 절망으로 가득찬 피정복민이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 15-16장 , 렘 48장) 그렇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은 아무리 이곳 유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택했습니다. 그곳에는 풍요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에는 안락과, 편안함과, 온갖 쾌락이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을 간 그 가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 모압은 행복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었다. 그들의 가족중 남자는 모두 죽게 됩니다. 모압 땅에 들어간 그들에게 행복과 배부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엄청나게도 가장 엘리멜렉이 죽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살자고 갔던 길이 죽음 의 길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하는데에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먹고 살자고 도둑질도 해야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슬쩍 거짓말도 보태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도 때로는 눈 질끈 감고 어겨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남을 짓밟고 일어나서 눌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 들 엘리멜렉의 가정도 '먹고 살자고' 모압 땅으로 이주했으나 그 먹고 살자는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그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 상황에 두 아들은 이방여인을 자신 의 부인으로 맞아 들입니다. 당시 그들이 살던 시대에 지켜야 할 법인 율법에 금하고 있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여인을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할 상황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 신앙인들도 이러한 변명을 자주 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불신앙의 환경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변명할 때가 많습니다. 직장을 잡을 때, 주일 성수 하는 직장을 먼저 기도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의 뜻과 욕심으로 도 저히 주일성수 할 수 없는 직장을 잡아 놓고는 어쩔수 없지 않느냐고 하나님 앞 에 항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내가 언제 그리로 가라 고 했더냐' 라고 말입니다.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두 여인을 맞 아 들이지만 설상가상, 엎친데 덥친 격으로 남은 두 아들마저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의 풍습과 생활습관으로는 남자가 모든 여인들의 생활을 책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소유주가 남자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남자의 위 치가 높았던 때입니다. 남자의 죽음은 즉, 가장의 죽음은 곧 가족의 전체의 죽음과도 같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에서는 남편이 없는 과부와, 아 버지가 없는 고아를 보살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혼자만 과부가 되어도 청승 맞은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이 다 과부니 이 얼마나 처량맞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괴롭고, 힘들 고, 지치면 금새라도 십자가를 내어 던지고 주님을 버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편하고, 안락하고, 온갖 편안함이 있을 것 같은 모압땅, 세상으로 향하여 나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죽음만이 그들의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가장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모두 죽 고 말았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 버리고 떠난 하나님의 땅, 잘 살기 위해 취한 모압 땅에서 그들은 더욱 악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 다' 하나님의 십자가를 버리고 멀리 멀리 도망가 버리면 될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모압 땅은 어디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압을 찾아 떠나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먹고 살 것이 있고, 풍요로운 물질이 기다릴것이라고 그곳을 향해 떠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의 삶은 모압 사막에 떨어진 인생 과도 같이 잠깐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잠깐의 목마름을 해결하겠지만 영원한 안 식은 결코 얻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회의 정신적 혼란과 서구사회의 정신적 황 폐함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그들이 모압을 건설하고 그곳에 삶의 풍요 와 기쁨이 있노라고 광고하지만 정작 그곳에 간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어디로 가겠 습니까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배 밑창까지 숨어 들어가 하나님 의 말을 듣지 않고 가라고 명령한 니느웨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집어 탔지만 그 결과는 배가 뒤집힐 정도의 엄청난 죽음의 위협뿐이었 습니다. 결국 그는 베에서 집어 던져지는 죽음의 순간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자의 삶은 곧 죽음의 골짜기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3. 절망의 상황 속에서 그들은 결심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 그 비참한 상황속에서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 온 베들레헴이 더욱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지 쳐 쓰러질 지경이 된 나오미에게 이 소식은 참으로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결심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의 이 결단은 얼마나 훌륭한 결단입니까 이 결단을 먹을 것이 베들레헴에도 생겼으니다시 가자는 천박한 결단으로 낮춰 보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간 모압에서 겪은 역경의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뼈저린 반성을 하고 내린 결단이 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라고 이미 외 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회귀 본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떤 사람이 든지, 동물이라도 죽을 때는 자기의 고향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흙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전도서 5:15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 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그렇다면, 영적인 고향은 어디겠습니까 우리가 돌아가야할 곳은 어딥니까 이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신약성서의둘째 아들의 비유가 생각이 납니다.
둘째아들은 세상이 좋은것 같고, 뭔가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버지를 졸라 돈을 타내어 먼 이방의 나라로 향해 갑니다. 모압 땅입니다. 쾌 락의 땅이요, 환락의 땅입니다. 나태와 게으름과, 놀음과 거짓 행복이 지배하 고 있는 땅인 것입니다. 그는 거기에서 나오미의 가정과도 같이 죽음의 경험을 합니다. 떵떵 거리던 부잣집 아들이 돼지들과 함께 쥐염열매를 먹으면서 그는 생각합니다.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내 아버지 집에서는 종들도 배불리 먹는데 나는 먼 이국에서 이 무슨 꼴일까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자!!" 우린 돌아가야 합니다. 예레미야 15: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 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 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 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이방인의 땅에는 돌아가지 말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모압의 땅을 벗어나야 합니다. 풍족한 물질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진정 영혼의 생명을 상실한 땅인 모 압을 벗어나야 합니다.
4. 룻의 선택 나오미의 귀환 결심을 들은첫째 며느리 오르바와둘째 며느리 룻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여러분이 이미 아시다시피 이 룻이라는 여인은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여인입니다(마 1:5). 룻은 후에 유대땅에 돌아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벱을 낳고 오벱을 통해서 다윗왕의 아비인 이새를 낳게 됩니다. 룻은 이방여인으로 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어 족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두명의 며느리 사이에 어느 한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어 신앙의 어머니가 되었는데 어느 누구는 그렇지 못했습니까 룻은 나오미의 결심을 듣고 자신도 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의 땅으로 가겠다고 결심을 굳힙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그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오르바는 신앙의 어머니와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땅에서 온 어머니의 여호와 신앙을 보지 못했습니다. 생명을 가질 사람의 선택은 중요합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사랑과 은혜가 눈 앞에 놓여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오르바는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육적인 핏줄인 민족과, 우상을 섬기고 따르던 구태의연한 습관의 신숭배가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이전한 그의 시댁 식구들에게 신앙을 전수 받았습니다.
룻은 고백합니다. " 16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의 고백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요, 모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요,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 위대한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이 신앙의 고백이 있었기에 룻은 이방여인 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차지하였던 것 입니다. 그녀의 신앙고백위에 메시야의 탄생의 기초가 놓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신앙도 신앙이지만 그녀의 효성도 지극합니다. 남편도 없이 홀시어머 니를 모시고 살 것을 자청하면서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유숙하는 곳에 나도 유숙하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거기 장사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효성입니까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고부관 계를 들라 하면 이 나오미와 룻의 신앙을 제일로 칩니다.
그녀는 신앙의 선택도 잘 선택했지만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며느리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전환은 선택에서 나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생은 순간순간 바뀌어지게 됩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여인이 있는가 하면, 한 순간의 선택으로 그냥 기억속에 스러져간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의 대전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선택의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는 고백이 드려져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고백이 드려져야 합니다.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이 드려져야 합니다. 내 평생에 하나님 만이 나의 구주임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이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 일생에 이같은 고백이 한번만 드려지기만하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바다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백성을 인 도하시며, 바위에서 생수를 내시고, 문둥병을 고쳐 주시며,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지혜와 명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저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옵 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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