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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을 때 (시94: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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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다가 보면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을 심방할 기회가 참으로 많습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원이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좋은 일만 있고, 축복 받은 가정에 가서 축하하는 것을 바라지만 그렇게만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언젠가 정말 참담한 일을 당한 가정에 가서 어쩔줄 몰라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셔서 이 말씀으로 위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가정은 분명히 발이 미끄러진 가정입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라는 말이 나오지요. 이 것이 riving bible 에 보면 '주여,내가 미끄러집니다 하고 비명을 지를 때에'라고 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끄러져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으니, 모든 식구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생각이 얼마나 많을까 식구들의 마음은 밤낮없이 수없이 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편 94편은 이 세상에 너무나 고통이나 시험이 많기 때문데 부르짖는 의인의 기돕니다. 우리가 1-2절을 보아도 주여, 언제까지 이렇게 악인이 개가를 부르도록 내버려 둡니까 언제까지 오만하며,죄를 범하는 자들이 자긍하면서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소리치게 만들 것입니까 언제까지 불의를 행하는 자가 치부하고, 언제까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장수하는 이러한 모순된 세상을 남겨 놓을 것입니까 의인이 모순된 세상을 보고 고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씀인데요. 오늘 우리의 교회 안에서 보더라도,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고 쓰러지는 것을 보게되고,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해를 입고, 고통 당하는 것을 봅니다. 인생의 길은 마치 빙판과 같아요. 사랑이 식어 버리고 아첨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득실 거리는 세상이라, 꼭 얼음 위를 걸어 가는 것 같단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넘어질지도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길이 아닙니까 그러나 어떤 때는 18절에 있는 말씀대로 주여, 내가 미끄러집니다! 하고 위기를 당해서 소리를 치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붙들어 줄 때도 있어요. 얼음 위를 자녀와 함께 걸어가던 아빠가 애가 비틀하면 넘어가지 전에 아빠가 꽉 붙잡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의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휘청하고 위기를 당할 때 하나님이 강하신 오른손으로 똑바로 붙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자로 붙드셨다 그랬지요. 이런 때가 있어요. 그러나 어떤 때는 넘어진다고 소리를 쳐도 붙들어 주지 않고, 그냥 넘어지게 내버려 둘 때가 있습니다. 왜 저렇게 믿음으로 살려는 형제에게 어려움이 왔을까 왜 저렇게 뜨거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형제에게 이와같은 실수가 일어 났을까 제가 심방을 하다가 보면 안타까워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꿰뚫어 볼수 없는 어떤 심오한 뜻을 가지고 넘어지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한번 강하게 미끄러진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자녀를 끝까지 붙들어만 줄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자녀가 미끄러워서 못가겠다고 칭얼대고 우니까 삽을 가지고 와서 길바닥에 있는 모든 얼음을 다 깨어서 들어 내 주지는 않습니다. 미끄러져도 좋으니 건너가라.이것이 지혜로운 아버지가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 중의 하납니다. 지난 휴가 때에 아이들과 바닷가엘 갔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와서 물결이 높아서 수영은 할수 없고, 물가에 서서 파도 맞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것도 수영하는 것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신애는 옆에 꼭 붙어서 있는데, 규화는 잠간 사이에 저만큼 들어가서 물속에 잠겨 버릴 지경이 되곤 합니다. 안 되겠어서 손으로 붙잡고 둘이 함께 뛰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넘어지고 중심을 못잡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손을 놓아 주니까 넘어지기도, 물에 밀려 다니기도 하다가 곧 밀려오는 파도에 잘 적응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도 가끔씩 자기 자녀에게 미끄러진다고 소리를 치는 데도 들은 둥 마는 둥 하시고,그대로 내버려 두실 때가 있습니다. 아마 제가 심방했던 가정은 그런 가정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저와 여러분의 가정형편이 그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이 나오지요.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하는 말이 나옵니다. 언제 생각이 많을까요 넘어진 다음에 생각이 많아요. 나쁜 사람에게 속아서 내 재산을 다 날리고난다음에 생각이 많아요.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인생을 자신만만 하게 살던 사람이 생각 밖에 무서운 위기를 당한 다음에 병상에 누우면 생각할 때가 많아요. 많은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언제나 평안하다고 생각하고,남이 부러울 정도로 화목하던 가정이 갑자기 어두운 구름이 덮쳐오면 생각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많아지면 잠 못이루는 밤이 연속 될때가 많습니다.우리가 다 경험하는 바와같이 이생각 저생각 때문에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보면 2시가 되고 3시가 되고 4시가 되고 날이 밝아 옵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고 하는 미국인들의 통계를 보아도 수면제의 종류가 2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수면제의 종류가 많아졌습니까 잠 못이루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수면제를 먹다가 보니,면역이 생겨서 안들어요, 그러니 새것을 개발하고,또 새것을 개발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수면제를 1년에 사먹는 량이 얼마냐 하면 5억불이라고 했습니다. 한 10여년 전의 이야기니까 지금은 최소한 10억불 정도는 될 것입니다. 8000억원 정도입니다.제가 볼때에 세계에서 제일 잠을 자지 못하는 국민을 꼽으라면 미국 국민을 쳐야 합니다. 왜 그렇게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는 그들에게 잠이 없는 밤이 그렇게 많습니까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인생은 벌써 30년 40년을 살다가 보면 우리에게도 어느새 생각이 많아져서 잠을 설치는 때가 많아요.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생각는 마음을 깨어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어 있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평안하고 태평스러울 때는 마음이 잠을 잡니다. 그러나 내가 미끄러진다. 하고 위기가 드디어 덥쳐 온다고 판단 되는 상황 속에서는 드디어 마음이 깹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파스칼의 말을 기억합니까 인간은 자연계에서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갈대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인간의 모든 존엄성은 바로 생각한다는데 있다고 그는 규정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요.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겨 버린 마른 갈대가 되어 버렸다는데 현대인의 비극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왜그럴까요 학자들은 요즈음은 정보공해 시대라고 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처리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옵니다. 각종 매스컴의 자료들,주간-월간지들 수많은 책들의 정보 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그것을 쫒아가기 바빠서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할 틈을 일어 버렸습니다. 듣는데 바쁘고,보는데 바쁘고,느끼는데 바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깊이 생각하는 자유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내 속에 생각이 많아질 때가 중요한 시깁니다. 비록 내가 미끄러져서 위기를 당한 다음에 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즐겁게 하는 위안을 언제 주신다고 했어요. 19절에-생각이 많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는자에게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넘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오셔서 그와함께 그 깊은 생각에 동참하시는 예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내 발이 미끄러져서 위기를 당한 다음에 오는 생각은 잘못하면 병든 생각이 되기가 쉽습니다. 많은 잡념들, 많은 공상들, 많은 원한과 많은 공포와 불안 같은 것이 엉켜 가지고 드디어 번뇌를 일으키고,그 번뇌가 이어지면 병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건전하지 못한 생각은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건전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건전하게 생각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그 방법을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미끄러졌다고 생각하는 형제들이 많을 것입니다. 쓰러져 누워 있을 때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가는데 어떻게 하면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느냐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는 깊은 은혜의 경지까지 들어 갈수 있느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첫째는 사람이 바로 되어야 건전한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이 중요해도 사람이 바로 되어야지요. 사람이 변하지 않았는데 바른 생각이 나옵니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될 문제에 있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아니할 만큼 아직도 마음 바닥이 변화되지 않고 있다면, 그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건전한 생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항상 남을 원망하기를 잘 하고, 자기 자신은 완전하다는 교만한 마음의 상태를 가진 사람에게 건전한 생각을 요구한다는 것은 언어 도단입니다. 생각이 바르게 될려면 사람이 바로 되어야 돼요. 현대심리학자들이 생각을 바로하고,적극적으로 하면 사람도 바뀐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만입니다.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중생을 받아야 만이 생각도 중생을 받는다.-네가 중생 받아야 만 바르게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바닥이 바로 되어 있지 않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완전히 그 마음 바닥이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더러웠던 생각이 나오던 마음 바닥을 거룩한 마음으로 고쳐야 합니다. 양심도 없고, 법도 없고, 질서도 없고, 자기 욕심.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던 사람이 그 마음.그 인간 그대로 가지고 건전한 생각 할수 있나요 안돼요. 하나님 앞에 모든 자기의 악을 다 내어 놓고 회개한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부드러운 마음.깨끗한 마음을 가진 다음에 비로소 생각이 건전해 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저 미국에 잠을 자지 못하는 수천만의 사람들! 그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새사람이 되었다고 한다면 잠을 자기 위하여 1년 동안 투자하는 수억불의 돈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고,10만여명의 사람이 살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사람을 바꾸는 종굡니다. 새사람을 만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바뀔 때에 바른 생각을 하게됩니다. 우리의 삶은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사고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면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을 닮아 가려고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 자연히 우리의 생활이 바뀌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세요. 그리고 바꾸세요. 이 작업을 누가 해 줍니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해 주십니다. 이것을 체험하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챤입니다. 두번째로는 건전한 생각은 믿음에서 생깁니다. 사람이 바뀌면 드디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 이것은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아는 바와같이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라는 의미는 독립된 思考를 할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萬若에 被造物이 創造자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독립적인 사고에 선다면 그는 분명히 잘못된 길로 빠질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독단적으로 행동했을 때에 그들은 무서운 過誤를 범했고,다시 돌이킬수 없는 비극으로 그들은 치달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지 마십시요! 이 피조물이라는 단어 안에 기독교의 모든 진리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해도 하나님께 예속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자 되신 하나님에게 나의 모든 생각을 위탁하고 그분의 생각에 나를 맞추고 그 분의 생각에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예속적인 사고를 할 때에 이것이 건전한 사곤데,이것을 일컬어서 믿음의 思考라고 그럽니다. 이 믿음을 어디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 없는 자를 믿음 있는 자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믿음이 없어서 날마다 방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의 닻을 힘있게 내리게 만드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날로 번창하는 큰 회사의 사장의 초대를 받아서 그 회사를 둘러 보고 마지막에 사장실로 들어 왔습니다. 모든 것이 최고급으로 되어 있습니다.시설도 최신식입니다. 사장실에 들어와서 보니 품위 있고 멋있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 한권만이 낡은 것이요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가죽으로 된 성경책인데, 너덜너덜 하고 많이 읽어서 손 때가 묻어서 많이 읽은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가장 낡은 고물에 속하는 것은 이 성경책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사장에게 '저렇게 낡은 성경책은 왜 저렇게 얹어 놓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예 목사님, 이 성경책이 보기에는 낡아도요. 우리 회사에서 최신식,최첨단을 걷는 가장 새로운 것이 이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성경을 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음성으로 나에게 가르쳐 줍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줍니다. 새로운 심령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성경책을 나의 책상에서 옮겨 놓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언제부터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변화를 받았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대답을 합니다. 대학을 다닐때 하루는 어머니가 부르더니 이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얘야,인생을 살려면 성경책이 없으면 안된다. 틈만 있으면 이 책을 잃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받기는 했지만,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어머니는 구식사람이야, 그러니 아직도 저 성경에 매여 가지고 저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나는 다르다'고 하면서 그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고는 한번도 펴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 들어서 이일 저일을 하는데 이상하게 일이 잘 안됩니다. 생각이 점점 삐뚜러집니다. 순진하던 생각도 없어지고, 건전하던 생각도 점점 병이들어 갑니다. 모든 것은 독단이 되어 버립니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고,내가 판단하는 것만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도무지 받아 들이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일이 제대로 될리가 없지요. 만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미끄러진 것입니다. 넘어졌습니다. 실의에 빠져서 이책 저책을 맥없이 뒤적이다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성경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울적한 심사로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뒤적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편 27편 1-3절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그 사람의 간증에 의하면 그 귀절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은 완전히 그 말씀에 붙들렸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으로 완전히 변화를 맛보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변해 버렸어요. 사람이 변해 버리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하던 스타일, 대인관계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서 발견하게 되고,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음에 따라서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이 자람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생각하는 자세를 확립한 다음에 시작한 사업이 지금 목사님이 방문한 이 회사인데 그렇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번창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세요. 그러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진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리를 배우면요, 지금까지 내가 매여서 꼼짝 못하던 더러운 생각에서 나는 해방되고,지금까지 자유롭게 사고하지 못하던 모든 나의 집념에서 완전히 나는 해방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귀하고 건전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믿음의 사람! 여러분, 하나님을 모시고 인생을 삽니까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합니까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누가 더 건전한 사고를 하는자냐 창조자 되신 하나님을 나의 생의 중요한 위치에 모시고 사는 사람! 이 사람이 건전한 사고를 할수 있습니다. 왜 피조물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건전한 생각은 기도로서 열매를 맺습니다. 내 마음의 생각이 많은 밤! 잠을 이룰수 없는 번민을 안고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내 마음의 생각이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하나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그 기도하는 마음에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로 하나 하나 은혜를 주셔서 그 들고 나간 나의 모든 생각이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로 축축하게 젖게 되고, 이슬을 머금은 내 모든 생각들이 아름다운 꽃봉오리처럼 피기 시작합니다. 근심이 변하여 찬양이 되고, 원망이 변하여 감사가 되고, 모든 잡념들이 변하여 하나님 앞에 즐거운 환희를 표현할 수 있는 기도의 제목들이 됩니다. 이 꽃들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많은 생각들! 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추려 버리고, 건전한 생각만 안고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서 그 모든 생각을 하나님 앞에 하나하나 아뢰기 시작하면 이슬을 머금고 하나하나 터져요. 아름답게 꽃이 피워요. 여러분 이런 체험해 보셨어요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하나님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나이다-어디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까 기도의 골방에서!
그러므로 여러분, 생각이 많은 밤에 베게를 안고 뒤척이다가 새벽이 오면 그것을 곤란합니다. 다 집어 치우고 일어나서 조용한 방을 찾아가 앉든지, 교회를 찾아 나오든지 꿇어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다 토해 놓으세요. 다 내어 놓으면 하나님이 내 마음에 아름다운 은혜를 충만하게 주십니다. 에베소 3;20절을 보면,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시는 예수님 이라고 했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마음에 많은 생각이 있지 않아요. 그 많은 생각이 기도로 표현 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 알고 계세요.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고 내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기도의 골방에서 나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예수님을 여러분이 기도의 골방에서 만나야 됩니다. 더 멋있는 말씀이 한 곳있습니다. 예레미야 31:25절입니다.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라 하였음으므로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아마 이 사람은 분명히 잠자리에 누워서 많은 슬픔과 고통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 하던 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괴로움과 그 모든 피곤한 심령과 그 모든 생각들을 가지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잠자리에서 아뢰었더니 하나님이 드디어 그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이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나는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하는 자요,나는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는 자라.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깊은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확신을 가지자 말자 드디어 예레미야의 마음 속에 있는 많은 슬픔과 고통, 많은 잡념들은 사라지고, 자기도 모르게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기가 막히지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생각이 많아요. 아무래도 안 믿는 사람들보다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하되 건전한 믿음의 생각을 하도록 하십시요.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을 주님의 은혜의 기도의 골방으로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내 모든 마음을 그 분에게 다 토하면 내 슬픔 마음 위로해 주시고, 피곤한 내 심령을 상쾌케 해 주시고, 나에게 놀라운 기쁨을 주십니다. 그 날밤은 유난히 단잠을 이룰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와같은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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