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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음악의 유산 (시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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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주후 604년, 그레고리 1세(Gregor y
I)는, 지금 우리가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라고 부르는 음악 형식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징은, 아직 변성기에 이르지 않은 소년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반주 없이, 시편을 가사 삼아 부르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이후 16세기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챤 음악의 뿌리가 되었 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역시,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마틴 루터 가 얼마나 음악을 아꼈던지, "나는 신학 다음으로, 나의 가장 큰 찬사와 존 경을 음악에 바친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요한 세바스챤 바하(Joha nn Sebastian Bach)는 그의 전 생애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만드는 데 바쳤습니다. 또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은, 인간 역사상 가장 위 대한 음악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오라토리오 메시야(Messiah)를 작곡했습니다. 형식과 방법은 다르지만, 그레고리 1세, 마틴 루터, 그리고 바하와 헨델, 이 네 사람은, 그들의 믿음을 음악으로 표현한 사람들입니다. 이들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시편 96편 1절에서 3절을 보십시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 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찌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찌어다/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 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찌어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된 모든 이들은, 마음을 열고 입술을 열어, 구원의 주님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를 들고, 384장을 펴보십시오. 내 주는 강한 성 이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1529년, 마틴 루터는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 였습니다. 전문 음악가만 음악을 만들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찬양했던 수많은 사람이 남긴 훌륭한 유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노랫말과 음율이 탄생하는 법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을 아는 누구라도, 그분을 소리높여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서 이뤄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어떻게 찬양할 것인가 시 150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 가운데, 그 표현 범위가 가장 넓은 것이 어 쩌면 음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 감정은 끝 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말(言)은 말하는 사람의 뜻을 전하는 수단이지만, 노래는 단순히 노랫말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노래는 정서라고 하는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찬양하는 사람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적 취향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클레식 음악이 유일한 순수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중 음악을 즐기는 대다 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취향의 차이가 세대 차이 에서 온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꼭, 세대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나팔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으십니까 거리에서 울 리는 북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조용한 실내에서 갑자기 들려온 금속성 물체 부딪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적이 있으십니 까 시편 150편 3절에서 5절을 보십시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 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 할지어다." 놀랍게도 성경은, 귀한 비파와 수금 만이 아닌, 요란한 나팔 소 리로도, 그리고 고상한 현악과 퉁소 만이 아닌, 소고와 춤으로, 그리고 큰 소리와 높은 소리내는 제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언뜻, 요 즘 우리가 TV 쇼에서 흔히 보는, 요란스러운 장면이 연상됩니다. 일부 청 년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는,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라는 성경 말씀을 들 어, 드럼치고 춤추며 찬양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지고, 값싼 오락 수단으로 전락한 현대 대중 문화를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편 150편은 시편 전체를 마무리 짓는 찬양시입니다. 호흡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있는 어떤 것으로도, 주 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음악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 객 관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호가, 예술의 편식을 낳고, 이로 인해 예술에 대한 편견을 가져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베토벤의 음 악도 그가 살아있던 당대에는 휴지조각처럼 냉대받았습니다. 오늘도 우리 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찬송의 시간 출 15장 전도서 3장 2절에서 솔로몬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거둘 때가 있으며"로 시작해서, 8절까지, 모두 스물 여덟 가지의 예를 들어, 인생의 모든 일에 때와 기한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한 가지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 든 사람에게는 노래할 때가 있고, 노래하지 않을 때가 있으며.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님을 찬양하기에 적당한 때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주님을 찬양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성도가 함께 모여 예 배드리는 시간일 것입니다. 주님이 곁에 계신 것을 함께 느끼고, 그분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신 것을 믿고, 또 우리 죄를 참으시고, 사랑으로 인내하 시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찬양으로, 감사로 그분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예배를 위해 함께 모였을 때, 하나님을 향한 경의를 음악을 통해 표현해 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애굽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입니까 모세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은,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가 홍해 속에 잠기는 것을 보고 나서, 어떤 일을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5장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 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 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계속되는 노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그들을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힘있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는 사람의 감사 찬양입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주님 앞에, 어떤 찬양을 드 리고 있습니까 오늘도 마음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새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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