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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우신 재판장 (시7:11-17)

본문

“(시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십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옳고 그른 것을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죄인이라고 하시면 죄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죄인이라 하지도 아니하시고, 죄인을 의인이라 하지도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매일 분노하십니다. 이 세사에서는 어떠한 재판도 공평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바른 판단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내 자신이 부족하고 또 그 사람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증거가 있다고 할지라도 보이는 증거로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재판은 누가 누구를 비판한다든지, 재판장이 아무리 공정한 판결을 한다 할지라도 항상 실수하고 잘못 판결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늘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잘못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수만 가지 잘못이 샅샅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죄를 짓고도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이 세상을 매일매일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행한 대로 하나님 앞에 하나하나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또다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매일매일 심판하시며, 인류의 종말에 또 최후의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시7: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7: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칼을 갈고 활을 당겨 예비하신다고 했습니다.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죄인을 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칼을 갈고 계십니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죄를 해결하는 종교입니다. 이미 지은 죄를 고민하고 근심하면서 더 이상 죄를 안 지으려고만 애쓰는 것이 세상의 일반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은 죄를 해결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시고 흘리신 피로 죄인을 구원하여 살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죄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교회에 나오면 죄의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수고스럽고 무거운 죄의 짐을 다 벗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지은 죄 때문에 근심하고 또 죄를 안 지으려고 죄를 피해 떠납니다.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다고 죄를 안 짓게 됩니까 그러나 기독교는 죄악 세상에서 살게 합니다. 죄를 사하여 주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오히려 이 죄악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피흘려 세우신 이 교회로 우리를 부르시고 이곳에 살게 하시고 이곳에서 복을 받게 하십니다. 교회를 떠나 이 세상으로 나가면 죄가 점점 더해질 뿐입니다. 세상에는 한 사람도 의인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다 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죄짐을 주님께 내놓고,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은혜를 힘 입어서 하나님의 재앙을 면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칼을 갈고 계시는 공의로운 심판자 앞에 무죄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인인데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칼을 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됩니다. 이 세상에 염려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먹고 사는 염려, 자녀 염려, 건강 염려, 이런 것은 염려가 아닙니다. 우리가 염려해야 될 것은 죄입니다. 우리가 병들어 죽는다 해도 천국에 가는 것이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신앙은 조금 자라다가 멈추어버립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을 깨닫지 못하는 신앙은 크게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삽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 아들을 보내주셨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에 보내주셨습니다. 다른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모세 같은 지도자가 나오면 남북통일도 곧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다윗 같은 왕이 세워지면 우리 나라 GNP가 10만 불도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100층 건물이 금방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벨론 문화가 그렇게 찬란했어도 죄 때문에 망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세계를 지배했어도 죄 때문에 망하고, 헬라도 앗수르도 죄 때문에 망했습니다. 다윗도 죄의 그물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도 권력도 오래 못 간다는 것입니다. 방지일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 병이 얼마나 차느냐” 와 “기도는 죄를 찾는 현미경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연결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은혜를 못 받는 것은 자신의 죄를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세밀한 것까지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세밀한 죄까지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새벽시도입니다. 그러나 죄를 찾지 않으면서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은 헛되고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시7: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며 궤휼을 낳았도다 ”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자라나듯이 죄는 놓아두면 점점 확대됩니다. 죄악을 품으면 환난이 태어나고 질병이 태어납니다. 불행이 태어나고 사고가 태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 범죄한 후에 하와만 망한 것이 아닙니다. 죄는 연결되어서 다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탈무드를 보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왜 온 가족이 다 망합니까 하고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유대 인 랍비가 대답합니다. 큰 배를 탔는데 한 사람이 밑에 들어가 구명을 뚫었다는 것입니다. 구멍 하나쯤 뚫었는데 다른 사람은 괜찮겠지 하고 마음놓고 있다가 그 배 전체가 가라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했듯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죄가 있으면 피해야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폭탄 옆에 가까이 있으면 터질 때 자기도 함께 당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어느 곳이라도 터뜨려버리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의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로워야 됩니다. 나는 의롭지 못하나 “주의 공로 힘입어 천국 가게 하소서”하고 간구해야 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죄를 경홀히 여기는 교인은 신앙생활에 발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교회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신앙이 조금 자라다가 더 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니까,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냐고 생각합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눈물 병이 차지 않습니다. 죄를 경홀히 여긴다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일에 감격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3. 회개하면 죄의 심판을 면해 주십니다. 봄이 되면 제비가 돌아오듯이 3월 특별새벽집회도 늘 돌아오는 것이므로 경홀히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대를 가지십시오. 회개하고 죄의 짐을 벗는 것이 제일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사람은 회개할 기회도 주시지 않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같이 나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아합도 회개하니까 용서하셨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얼마나 애를 먹였습니까 주의 종들을 핍박하고 우상숭배했던 아합도 하나님 앞에 굵은 배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적극적이어야 됩니다. 회개는 눈물 흘리며 금식 철야기도라도 해야 됩니다. “(잠6:16)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잠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잠6: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잠6: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싫어하시는 죄가 일곱 가지나 있습니다. 조상들이 이런 죄를 저지르면 후손이
3, 4대 안에 망합니다. 이런 가정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3년 동안 나라에 흉년이 들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사울 왕이 지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의 목을 매달아 사울이 범죄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자 3년 동안 안오던 비가 내렸습니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행한 범죄 때문에 당하는 어려우이었지만 다윗이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을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왜 어렵습니까 세상은 여러 가지로 이유를 설명하지만 성경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왜 타락합니까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입니까 사업이 왜 안됩니까 불경기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자꾸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마귀는 언제든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나니까 마귀가 얼마나 역사합니까 “(창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는 변명합니다. “(창3:12)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사랑하는 아내의 간구를 물리칠 수 없어서 받아먹었다고 그럴듯하게 변명합니다. 마귀는 늘 논리적이고 얼마나 현실적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13절에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하고 물으셨을 때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담도 하와도 원칙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다윗은 한 번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사람은 분명히 잘못이 있어도 남이 지적하면 펄쩍 뜁니다. 그런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고백하는 분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처럼 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했던 다윗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베드로도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렇지만 누구나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되기는 어렵습니다. 행위로 죄를 짓지만 마음으로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칼을 드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죄를 용사하는 종교입니다. 죄를 없이하는 종교입니다. 죄로 인한 재앙과 죄의 심판을 면해 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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