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 (시8:1-9)
본문
시편 8편은 경이로운 자연의 조화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기쁨을 찬양하도록 이끌어주시는 말씀입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했고 마지막 9절에도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온 땅에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지구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인간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지혜로우심과 세밀하심을 알게 되고 우주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별을 보고, 온 우주의 삼라만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경배해야 되는 것입니다.
1. 내게 능력 주시는 창조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시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하기 위해서 강한 자를 들어쓰시지 않고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상대편이 장군이면 장군이 나아가야 되는데, 하나님은 일하실 때 언제나 젖먹이와 어린아이 같이 대적이 될 수 없는 자를 세우셔서 원수와 보수자로 하여금 잠잠케 하시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지상에서 가장 힘있는 장군이었지만 하나님은 막대기와 물맷돌을 든 다윗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고, 애굽의 바로 앞에 노인 모세를 보내셔서 지팡이만 잡고 이스라엘 백성이 훙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어부 베드로를 세우기도 하시고, 어린아이같이 아무 힘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언제나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부족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이 시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을 우리가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무 능력도 없게 하셔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능력과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지혜와 세상의 능력을 가져야만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많이 가질수록 하나님 앞에 훈련받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르고 “저 사람은 원래 착하니까, 원래 실력이 있으니까, 원래 배경이 있으니까”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원수들을 대적하실 때 언제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찬송가 405장을 보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했으며 411장에는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같이 연악하나 주님의 손에 이끌리면 주님께서 잡아주시고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익한 내 것은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없고 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종교는 대체로 자기 힘으로, 자기 공로로, 자기 정성으로 자기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교에서도 자기가 노력을 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선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로, 능력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항복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적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갈 수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는 일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비하면 극히 보잘것없고, 어린아이들의 소꼽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모든 만물을 만드셨고, 모든 만물은 그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아니하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지혜로 홀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능력이 무궁무한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손을 의지해야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속 일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창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배와 감사로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찾아 나왔습니까 누구에게 경배합니까 일반 종교에서처럼 “내가 정성을 들이면 나를 도와주겠지”하는 맹목적인 신앙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확신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있습니다. 그 응답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계속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물리면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귀신은 우리에게 물질, 자녀 등 현실에만 관심을 갖게 해서 영적으로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십자가의 부활과 재림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큰 사명이 있습니다.
2. 나를 택하여 주신 창조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시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특히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아시고 택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가 노력해서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택하시고 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 미리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의해서 그 뜻대로 지금 진행되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해도 버림받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설령 자녀가 잘못한다 해도 버리지 않고, 좀 잘한다고 해서 떠받드는 것이 아니듯이 부모에게는 잘할 때도 아들이요, 못할 때도 아들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고, 기도하다 보면 서서히 황태가 되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밤낮으로 얼었다녹았다 하면서 명태가 서서히 맛있는 황태가 됩니다 새벽기도에 왔다갔다하고 3월 특벽새벽집회에 참석하다 보면 좋아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빨리 자나가는데 젊음이 지나기 전에 좀 놀고 재미도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열심히 기도해서 주님 앞에 가는 그날,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나를 아신다는 것은 참 감사할 일입니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같이 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오늘 새벽기도에 나온 것도 아시고, 안 나온 것도 아십니다. 내 모든 일을 아십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택해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안 택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지 아니하셨다면 내가 어찌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사람의 덕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목사님과 저와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관계가 될 겁니다. 저를 한 번만 도와주시면 세상 끝날까지 충성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은 절대로 안 도와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말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습니까 그런 관계는 도움을 주면 줄수록 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가려주시고, 무거운 짐을 들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위험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의지하면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도 사람을 의지하고 자꾸 사람을 의식하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매인 것이 많을수록 어려워집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에게는 독수리같이 새 힘을 주셔서 곤비치 아니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구역원과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구역을 이끌어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내가 아무리 주어도 예수 안에서 주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또 어떤 허물이 있더라도 탓하지 말고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주님만 의지하여 주님의 은혜 가운데 복을 받아야 잘살 수 있습니다. 어떠한 관계도 인간적으로 깊어지면 안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더 이상 크지를 못합니다. 어떤 어려움, 어떤 장애물이 되더라도 인간 관계를 맺을 때는 예수 안에서, 냉정하게 믿음으로 맺어야 됩니다. 인간적인 것은 양보할지라도 영적인 것은 끝까지 분명하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하면 주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러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내게 능력 주시는 창조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시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하기 위해서 강한 자를 들어쓰시지 않고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상대편이 장군이면 장군이 나아가야 되는데, 하나님은 일하실 때 언제나 젖먹이와 어린아이 같이 대적이 될 수 없는 자를 세우셔서 원수와 보수자로 하여금 잠잠케 하시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지상에서 가장 힘있는 장군이었지만 하나님은 막대기와 물맷돌을 든 다윗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고, 애굽의 바로 앞에 노인 모세를 보내셔서 지팡이만 잡고 이스라엘 백성이 훙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어부 베드로를 세우기도 하시고, 어린아이같이 아무 힘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언제나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부족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이 시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을 우리가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무 능력도 없게 하셔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능력과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지혜와 세상의 능력을 가져야만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많이 가질수록 하나님 앞에 훈련받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르고 “저 사람은 원래 착하니까, 원래 실력이 있으니까, 원래 배경이 있으니까”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원수들을 대적하실 때 언제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찬송가 405장을 보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했으며 411장에는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같이 연악하나 주님의 손에 이끌리면 주님께서 잡아주시고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익한 내 것은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없고 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종교는 대체로 자기 힘으로, 자기 공로로, 자기 정성으로 자기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교에서도 자기가 노력을 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선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로, 능력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항복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적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갈 수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는 일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비하면 극히 보잘것없고, 어린아이들의 소꼽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모든 만물을 만드셨고, 모든 만물은 그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아니하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지혜로 홀로 천지만물을 만드신, 능력이 무궁무한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손을 의지해야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속 일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창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배와 감사로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찾아 나왔습니까 누구에게 경배합니까 일반 종교에서처럼 “내가 정성을 들이면 나를 도와주겠지”하는 맹목적인 신앙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확신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있습니다. 그 응답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계속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물리면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귀신은 우리에게 물질, 자녀 등 현실에만 관심을 갖게 해서 영적으로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십자가의 부활과 재림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큰 사명이 있습니다.
2. 나를 택하여 주신 창조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시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면 감사할 뿐입니다. 특히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아시고 택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가 노력해서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택하시고 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 미리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의해서 그 뜻대로 지금 진행되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해도 버림받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설령 자녀가 잘못한다 해도 버리지 않고, 좀 잘한다고 해서 떠받드는 것이 아니듯이 부모에게는 잘할 때도 아들이요, 못할 때도 아들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고, 기도하다 보면 서서히 황태가 되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밤낮으로 얼었다녹았다 하면서 명태가 서서히 맛있는 황태가 됩니다 새벽기도에 왔다갔다하고 3월 특벽새벽집회에 참석하다 보면 좋아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빨리 자나가는데 젊음이 지나기 전에 좀 놀고 재미도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열심히 기도해서 주님 앞에 가는 그날,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나를 아신다는 것은 참 감사할 일입니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같이 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오늘 새벽기도에 나온 것도 아시고, 안 나온 것도 아십니다. 내 모든 일을 아십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택해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안 택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지 아니하셨다면 내가 어찌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사람의 덕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목사님과 저와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관계가 될 겁니다. 저를 한 번만 도와주시면 세상 끝날까지 충성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은 절대로 안 도와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말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습니까 그런 관계는 도움을 주면 줄수록 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가려주시고, 무거운 짐을 들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위험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의지하면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도 사람을 의지하고 자꾸 사람을 의식하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매인 것이 많을수록 어려워집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에게는 독수리같이 새 힘을 주셔서 곤비치 아니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구역원과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구역을 이끌어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내가 아무리 주어도 예수 안에서 주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또 어떤 허물이 있더라도 탓하지 말고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주님만 의지하여 주님의 은혜 가운데 복을 받아야 잘살 수 있습니다. 어떠한 관계도 인간적으로 깊어지면 안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더 이상 크지를 못합니다. 어떤 어려움, 어떤 장애물이 되더라도 인간 관계를 맺을 때는 예수 안에서, 냉정하게 믿음으로 맺어야 됩니다. 인간적인 것은 양보할지라도 영적인 것은 끝까지 분명하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하면 주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러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