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양을 다시 한 번 (시8:1-9)
본문
우리들 모두에게 지금 매우 신나는 일 하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엇인 지 아십니까 저는그 일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이 즐거워집니다. 다름아니고 21세기가 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밀레니엄을 위한 축 제들이 여러 모습으로 준비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그리 신나는 일입니까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까 더구 나 21세기가 어떻게 될지, 분홍빛일지, 회색일지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신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경제위기가 그 때까지 끝난다는 보장도 없 지 않습니까' 하실지 모르겠지만 신나는 일로 여기고 많은 계획을 세워 야합니다. 그것이 바른 생각이고 또 신앙인이 가져야 할 자세 가운데 하 나입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소망 가운데 맞이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몇가지 힘써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전쟁이 억제 되어야합니다.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나고 핵이라도 동 원된다면 21세기이고 무엇이고 간에 없습니다. 인구문제도 지혜로운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질병문제도 심각한 것입니다. 에이즈 같은, 아니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불 치병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일 힘써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환경문제입니다. 환경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지구는 죽음의 별이 될 것이고 21세 기는 죽음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환경재앙이라고 불리우는 엘리뇨 같은 것이 다시 한 번, 또는 더 심한 모 습으로 아온다면 새로운 세기는 축복의 세기가 아니고 재앙의 세기가 됩니다. 1997년 4월부터 지금까지 세계가 엘리뇨 때문에 얼마나 골탕을 먹었습니까 월드 컵이 개최 되기 이전에 제일 많이 쓰이던 말이 바로 엘 리뇨였는데 이상기후, 폭풍, 홍수 등 재해가 잇달아 동남아에서만 200억 불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라고 생태계까지 뒤죽박죽이 되 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엘리뇨는 소멸되어가고 있으나 그 반대현상인 라니냐가 일어날 가 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환경문제 개선이 전제되지 않으면 21세기란 말을 함부로 쓰기 어려울 것 입니다. 시편 8편은 피조물의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이 창조권능과 영광을 찬양한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에 오늘날 새로운 부제목을 붙인다면 "환경찬양의 시"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첫 절과 끝 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 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이렇게 시작과 끝에 같은 말 을 두는 것을 문장에서 "수미쌍관법"(首尾雙關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 을 쓰면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다윗은 이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이 창조권능과 영광을 북바치는 마음으로 이렇게 찬 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찬양을 할 수 있을까요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주라 불리우시는 하나님이시어, 하나님이 만 드셨다는 이 세상의 환경이 왜 이렇게 지저분한지요" 해야 할 형편입니다. 3절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 을 내가 보오니" 했는데 주의 하늘은 심한 대기오염으로 찌들어 있습니다. 공기가 탁해져서 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8절에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했는데 바 다의 어족들은 씨가 말라가고 있고 기형물고기들이 많이 잡히고 있습니다. 시편 8편의 아름다운 찬양을 다시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세 가지를 해야합니다.
첫째, 환경문제는 생명문제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생명과 관련된 문제야!" 하면 누구나 긴장을 하고 정신을 차립니다. 병원에 가보면 피부과, 치과, 이비인후과, 안과 이런 곳들과 암센터, 심장센터 이런 곳들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뒤의 것들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분야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긴장되어 있고 비장한 분 이기도 감돕니다. 환경문제는 그것 이상으로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수질오염, 공기오염이 심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환경이라는 말 부터가 그렇습니다. 환경이라는 말이 전에는 "주위의 사물, 또는 사정"이런 뜻으로 많이 쓰였 지요. "그 사람은 성장환경이 좋다이 학급은 환경정리가 잘 되어 있 다",
그런데 지금은 꽁뜨(Comte)라는 사람이 환경이라는 말에 붙인 정의 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모든 유기체의 생존에 필요한 외부조건 전체" 이런 뜻입니다. 환경문제,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것입니다. 제일 중요하고 심각한 것입니다. 1961년에 나온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어사전 가운데 하나입니다)을 보니까 "환경"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어가 다섯 개 실려 있습니다. 에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 을 보니까 환경이라는 말 이 들어간 단어가 열아홉 개로 늘어났습니다. 1995년에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한국세계대백과사전 에는 환경과 관련 된 항목이 스물두 개가 실려 있고 그 가운데 "환경오염"이라는 말은 무려 다섯 쪽에 걸쳐서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참고삼아 그 말들을 소개해 드 립니다. 환경감시원, 환경결정론, 환경공학, 환경관리, 환경관리공단, 환경교육, 환 경권, 환경기술감리단, 환경기준, 환경마크, 환경변이, 환경보전위원회, 환 경생물학, 환경심리학, 환경영향평가, 환경예술, 환경오염, 환경위생, 환경 음악, 환경정책, 환경정책기본법, 환경처, 환경파괴무기. 우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환경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게 됩니다. 환경문제는 생명문제입니다. 환경을 보존하고 자연을 되살리는 일 은 곧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살아 숨쉬는 지구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8편은 생명의 찬가이기도 합니다. 이 생명의 찬가를 제대 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위협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찬가가 다시 한 번번 울려 퍼지게 해야하겠습니다.
둘째, 환경문제는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해결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경문제는 창조의 선하심을 회복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은 시편 8편의 찬양대로 아름다웠었습니다. 하나님도 피조세계를 바라보며 보시기에 좋아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환경문제는 창조의 처음 모습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호주에서 야생동식물보호운동을 하던 앤드루 콕스라는 30대 초반 호주인 내외가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환경운동을 돕다가 어제(6월 13일)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환경분야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을 말 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환경운동은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야하는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의 환경단체들은 정 부를 향해 "이렇게 해야합니다저렇게 해야합니다"하는 캠페인을 많이 하는데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합시다저렇게 합시다"하는 운동을 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환경문제는 이 분의 지적대로 정부보다 국민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보다는 교회중심이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교회는 환경문제의 근원에 맥을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나쁘면 가슴에 심한 통증이 자주 일어납니다. 저의 체험에 따르면 이 때 동네 병원에 가면 안정제를 주거나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일시적으 로 확장되는 약을 줍니다. 심장전문병원에 가면 근본적으로 혈관 좁아진 곳을 넓히거나 막힌 것을 뚫는 수술을 합니다.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하는 환경운동이 동네병원에서 하는 일이라면 교회 가 하는 일은 전문병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마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공해 상품에 대해 환경마크위원회에서 심 사를 해서 자격이 있는 상품에 붙이도록 하는 것인데 독일카나다일본 등세계 20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2 년 6월 1일부터 이 환경마크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환경 마크를 붙이고 있는 상품들은 공신력을 얻어 판매에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 게 된다고 합니다. 만일 공해문제 방지에 힘쓰는 단체들에게도 이 환경 마크를 붙이도록 해 야한다면 모든 교회에 이 환경 마크가 붙어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선교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왜 환경선교에 앞장서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환경문제가 심각 해진 이유가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환경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기독교 때문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전도사로 수고했던 분 가운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석사 논문으로 "생태계 위기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생태계 위기를 조 성해 온 기독교에 대한 진단과 그 대안을 중심으로"라는 좋은 논문을 쓴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이 논문에서 "전통적으로 그동안 성경을 잘못 해 석해서 빚어진 오류가 생태계 위기를 조장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인간중심주의가 지배와 정복, 성차별과 인종차별 논리를 강화시 켜 결국 생태계에 대한 지배와 억압도 정당화해 았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은 기독교 뿐만 아니라 동양종교도 자연친화사상을 내세우면서 자 연을 착취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교회 때문에 심각해졌다는 근본적인 이유는 본문 가운데 6절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하나님은 사람에게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더 구 채적인 것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 잘 다스렸으면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지요.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정복과 개발에서 이제는 공존으로 나 가야합니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군사독재의 통치 밑에 있었는데 사람은 피조세계에 대해 군사통치정권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군림하고 빼앗는 것에서 위해 주고 보호하며 북돋아 주는 선량한 통치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민통치가 이뤄져야합니다. 선교라는 말은 처음에는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해주는 일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간화(人間化)라고도 하고 사회참여, 사회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이제는 선교의 범위가 환경문제로까지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환경선교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을 단순히 "환경주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환경선교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환경문제는 지극히 적은 일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지난 주일에 환경주일 연합예배가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6월 5일이 환경 의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전후해서 환경주일을 지키게 되어 있는데 감리 교는 6월첫째주일을 평신도주일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둘째 주일을 환경 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환경주일 연합예배에서 환경신조라는 것이 발표되었는데 환경신조는 "환경오염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 의해 동등 하게 창조된다는 사실을 망각한채 무분별한 개발을 일삼은 인간들의 오만 의 결과"라고 지적하고 "생명이 제자리를 고 평화를 누리는 그 날을 기 대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부터 신앙을 실천하는 교회의 생명운동을 펼쳐나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 개선은 지극히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6월의 목회계획을 짜면서 '6월둘째주일이 환경선교주일이다. 그 주일에는 환경선교에 대한 설교를 해야한다'라는 것이 머리 속에 입력되었습니다. 설교자의 고민은 자기가 자신 없는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 기서 자신이 없다는 것은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을 말합니다. 환경선교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전에는 쥬스 같은 것을 마시고 병이나 깡통을 일반 휴지통에 넣어서 그대로 쓰레기 장 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따로 내다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관리하는 권사님들에게 분리수거하도록 부탁드리고 잘 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무실에 병이나 깡통을 담는 통을 따 로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른바 분리수거가 잘 되도록하는 일부터 시작했 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맥주병을 예순 번 내지 여든 번을 다시 사용한다고 합니다. 카나다와 노르웨이에서는 설흔 번 이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열네 번에 그 친다고 합니다. 알류미늄 깡통의 재활용율이 일본은 42.6%인데 우리나라는 4%라고 하니까 분리수거를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교회가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페지수집은 불우이웃을 돕는 기금을 마 련하는 일에는 물론 환경문제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한 번은 나정희라는 목사님(지금은 은퇴하셨습니다)이 담임하고 계시는 월계동의 한양교회에서 청장년연합예배가 있어서 설교 부탁을 받고 가서 설교를 마치고 교제를 나누는데 접대하는 집사님이 일회용 종이 컵에 음 료를 담아 내 왔습니다. 그랬더니 담임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는 일회용 컵은 사용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데 왜 이런 실수를 하십니까 다시 가져 오십시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생수 마실 때 1회용 컵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주일 저녁이 되면 쓰레기통이 1회용 컵으로 수북해졌습니다. 지금은 식당에 가서 물 마실 때 1회용 컵도 있지만 여러분 대개 쇠 컵이나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 실 것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적은 일인 것 같지만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청년들을 지도하는데 한 번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돌아가면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이 "나는 우리 교회 아무개 장로 님을 제일 존경합니다"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그 장로님 아들과 친구여서 그 집에서 가서 놀다가 자게 되었는데 샤워를 하러고 하니까 그 아들이 하는 말이 '야, 우리 집에서는 수질오염 막느라고 아버지가 샴프를 못쓰게 해서 샴프가 없으니까 샴프 지 마!' 하더군요. 그래서 그 장로님 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하더군요. 그 대답 듣고 '아! 존경 받기 쉽구나!'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청년, 참 단순하지요. 이 청년은 지금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성실하게 근무해서 계속 순탄한 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 존경한다고 한 장로님은 한동안 저희 교 단 살림 전체를 맡고 있던 분이었는데 그 장로님이 교단 살림을 맡고 있 을 때는 교단 행정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간단한 일, 작은 일부터 해야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호주의 환경 전문가 부부는 자기들은 어렸을 때 샤워를 5 분 이내에 끝내는 물 절약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 의 물낭비에 놀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양교회는 환경선교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양교회가 지향하는 전원교회는 파괴되지 않은 환경에 대한 향수의 표현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목양교회 새 성전 조감도를 보는 사람들은 누 구나 주변 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감탄합니다. 이상한 인연으로 저는 저희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건너 편 동천리와 동원 동, 동막골의 40년 전 풍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희 선친께서 토목업 을 하시던 분이어서 전국 여러 곳에서 댐 공사도 하시고 저수지 공사도 하셨는데 저 위에 있는 낙생(樂生) 저수지는 1957년을 전후해서 저희 선 친께서 하신 공사입니다. 그 때 중학생이던 저는 이 곳에 가끔 왔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앞의 동막천 냇물을 보면서 '어, 비교적 맑네!' 합니다. 저 위에 고기리(古基里)에 식사하러 종종 가는데 그 곳의 냇물을 보고는 "참 맑다!"합니다.
그런데 40년 전에는 그대로 마셔도 좋을 정도였었습니다. 실제로 그대로 마셨습니다. 이 냇물에서 가제를 참 많이 잡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회복시킬 책임이 저희 교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선교주일입니다. 환경선교는 생명과 직결된 것임을 깨달아야합니다. 교회가, 특별히 목양교회가 환경선교에 앞장서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이런 일들을 잘 해서 21세기를 희망의 세기로 맞이하는데 앞장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우리를 보고 모든 피조물을 잘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소망 가운데 맞이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몇가지 힘써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전쟁이 억제 되어야합니다.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나고 핵이라도 동 원된다면 21세기이고 무엇이고 간에 없습니다. 인구문제도 지혜로운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질병문제도 심각한 것입니다. 에이즈 같은, 아니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불 치병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일 힘써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환경문제입니다. 환경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지구는 죽음의 별이 될 것이고 21세 기는 죽음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환경재앙이라고 불리우는 엘리뇨 같은 것이 다시 한 번, 또는 더 심한 모 습으로 아온다면 새로운 세기는 축복의 세기가 아니고 재앙의 세기가 됩니다. 1997년 4월부터 지금까지 세계가 엘리뇨 때문에 얼마나 골탕을 먹었습니까 월드 컵이 개최 되기 이전에 제일 많이 쓰이던 말이 바로 엘 리뇨였는데 이상기후, 폭풍, 홍수 등 재해가 잇달아 동남아에서만 200억 불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라고 생태계까지 뒤죽박죽이 되 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엘리뇨는 소멸되어가고 있으나 그 반대현상인 라니냐가 일어날 가 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환경문제 개선이 전제되지 않으면 21세기란 말을 함부로 쓰기 어려울 것 입니다. 시편 8편은 피조물의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이 창조권능과 영광을 찬양한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에 오늘날 새로운 부제목을 붙인다면 "환경찬양의 시"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첫 절과 끝 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 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이렇게 시작과 끝에 같은 말 을 두는 것을 문장에서 "수미쌍관법"(首尾雙關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 을 쓰면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다윗은 이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이 창조권능과 영광을 북바치는 마음으로 이렇게 찬 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찬양을 할 수 있을까요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주라 불리우시는 하나님이시어, 하나님이 만 드셨다는 이 세상의 환경이 왜 이렇게 지저분한지요" 해야 할 형편입니다. 3절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 을 내가 보오니" 했는데 주의 하늘은 심한 대기오염으로 찌들어 있습니다. 공기가 탁해져서 별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8절에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했는데 바 다의 어족들은 씨가 말라가고 있고 기형물고기들이 많이 잡히고 있습니다. 시편 8편의 아름다운 찬양을 다시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세 가지를 해야합니다.
첫째, 환경문제는 생명문제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생명과 관련된 문제야!" 하면 누구나 긴장을 하고 정신을 차립니다. 병원에 가보면 피부과, 치과, 이비인후과, 안과 이런 곳들과 암센터, 심장센터 이런 곳들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뒤의 것들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분야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긴장되어 있고 비장한 분 이기도 감돕니다. 환경문제는 그것 이상으로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수질오염, 공기오염이 심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환경이라는 말 부터가 그렇습니다. 환경이라는 말이 전에는 "주위의 사물, 또는 사정"이런 뜻으로 많이 쓰였 지요. "그 사람은 성장환경이 좋다이 학급은 환경정리가 잘 되어 있 다",
그런데 지금은 꽁뜨(Comte)라는 사람이 환경이라는 말에 붙인 정의 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모든 유기체의 생존에 필요한 외부조건 전체" 이런 뜻입니다. 환경문제,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것입니다. 제일 중요하고 심각한 것입니다. 1961년에 나온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어사전 가운데 하나입니다)을 보니까 "환경"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어가 다섯 개 실려 있습니다. 에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 을 보니까 환경이라는 말 이 들어간 단어가 열아홉 개로 늘어났습니다. 1995년에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한국세계대백과사전 에는 환경과 관련 된 항목이 스물두 개가 실려 있고 그 가운데 "환경오염"이라는 말은 무려 다섯 쪽에 걸쳐서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참고삼아 그 말들을 소개해 드 립니다. 환경감시원, 환경결정론, 환경공학, 환경관리, 환경관리공단, 환경교육, 환 경권, 환경기술감리단, 환경기준, 환경마크, 환경변이, 환경보전위원회, 환 경생물학, 환경심리학, 환경영향평가, 환경예술, 환경오염, 환경위생, 환경 음악, 환경정책, 환경정책기본법, 환경처, 환경파괴무기. 우리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환경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게 됩니다. 환경문제는 생명문제입니다. 환경을 보존하고 자연을 되살리는 일 은 곧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살아 숨쉬는 지구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8편은 생명의 찬가이기도 합니다. 이 생명의 찬가를 제대 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위협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찬가가 다시 한 번번 울려 퍼지게 해야하겠습니다.
둘째, 환경문제는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해결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경문제는 창조의 선하심을 회복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은 시편 8편의 찬양대로 아름다웠었습니다. 하나님도 피조세계를 바라보며 보시기에 좋아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환경문제는 창조의 처음 모습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호주에서 야생동식물보호운동을 하던 앤드루 콕스라는 30대 초반 호주인 내외가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환경운동을 돕다가 어제(6월 13일)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환경분야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을 말 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환경운동은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야하는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의 환경단체들은 정 부를 향해 "이렇게 해야합니다저렇게 해야합니다"하는 캠페인을 많이 하는데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합시다저렇게 합시다"하는 운동을 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환경문제는 이 분의 지적대로 정부보다 국민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보다는 교회중심이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교회는 환경문제의 근원에 맥을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나쁘면 가슴에 심한 통증이 자주 일어납니다. 저의 체험에 따르면 이 때 동네 병원에 가면 안정제를 주거나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일시적으 로 확장되는 약을 줍니다. 심장전문병원에 가면 근본적으로 혈관 좁아진 곳을 넓히거나 막힌 것을 뚫는 수술을 합니다.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하는 환경운동이 동네병원에서 하는 일이라면 교회 가 하는 일은 전문병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마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공해 상품에 대해 환경마크위원회에서 심 사를 해서 자격이 있는 상품에 붙이도록 하는 것인데 독일카나다일본 등세계 20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2 년 6월 1일부터 이 환경마크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환경 마크를 붙이고 있는 상품들은 공신력을 얻어 판매에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 게 된다고 합니다. 만일 공해문제 방지에 힘쓰는 단체들에게도 이 환경 마크를 붙이도록 해 야한다면 모든 교회에 이 환경 마크가 붙어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선교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왜 환경선교에 앞장서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환경문제가 심각 해진 이유가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환경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기독교 때문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전도사로 수고했던 분 가운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석사 논문으로 "생태계 위기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생태계 위기를 조 성해 온 기독교에 대한 진단과 그 대안을 중심으로"라는 좋은 논문을 쓴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이 논문에서 "전통적으로 그동안 성경을 잘못 해 석해서 빚어진 오류가 생태계 위기를 조장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인간중심주의가 지배와 정복, 성차별과 인종차별 논리를 강화시 켜 결국 생태계에 대한 지배와 억압도 정당화해 았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은 기독교 뿐만 아니라 동양종교도 자연친화사상을 내세우면서 자 연을 착취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교회 때문에 심각해졌다는 근본적인 이유는 본문 가운데 6절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하나님은 사람에게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더 구 채적인 것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 잘 다스렸으면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지요.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정복과 개발에서 이제는 공존으로 나 가야합니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군사독재의 통치 밑에 있었는데 사람은 피조세계에 대해 군사통치정권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군림하고 빼앗는 것에서 위해 주고 보호하며 북돋아 주는 선량한 통치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민통치가 이뤄져야합니다. 선교라는 말은 처음에는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해주는 일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간화(人間化)라고도 하고 사회참여, 사회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이제는 선교의 범위가 환경문제로까지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환경선교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을 단순히 "환경주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환경선교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환경문제는 지극히 적은 일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지난 주일에 환경주일 연합예배가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6월 5일이 환경 의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전후해서 환경주일을 지키게 되어 있는데 감리 교는 6월첫째주일을 평신도주일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둘째 주일을 환경 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환경주일 연합예배에서 환경신조라는 것이 발표되었는데 환경신조는 "환경오염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 의해 동등 하게 창조된다는 사실을 망각한채 무분별한 개발을 일삼은 인간들의 오만 의 결과"라고 지적하고 "생명이 제자리를 고 평화를 누리는 그 날을 기 대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부터 신앙을 실천하는 교회의 생명운동을 펼쳐나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 개선은 지극히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6월의 목회계획을 짜면서 '6월둘째주일이 환경선교주일이다. 그 주일에는 환경선교에 대한 설교를 해야한다'라는 것이 머리 속에 입력되었습니다. 설교자의 고민은 자기가 자신 없는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 기서 자신이 없다는 것은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을 말합니다. 환경선교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전에는 쥬스 같은 것을 마시고 병이나 깡통을 일반 휴지통에 넣어서 그대로 쓰레기 장 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따로 내다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관리하는 권사님들에게 분리수거하도록 부탁드리고 잘 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무실에 병이나 깡통을 담는 통을 따 로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른바 분리수거가 잘 되도록하는 일부터 시작했 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맥주병을 예순 번 내지 여든 번을 다시 사용한다고 합니다. 카나다와 노르웨이에서는 설흔 번 이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열네 번에 그 친다고 합니다. 알류미늄 깡통의 재활용율이 일본은 42.6%인데 우리나라는 4%라고 하니까 분리수거를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교회가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페지수집은 불우이웃을 돕는 기금을 마 련하는 일에는 물론 환경문제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한 번은 나정희라는 목사님(지금은 은퇴하셨습니다)이 담임하고 계시는 월계동의 한양교회에서 청장년연합예배가 있어서 설교 부탁을 받고 가서 설교를 마치고 교제를 나누는데 접대하는 집사님이 일회용 종이 컵에 음 료를 담아 내 왔습니다. 그랬더니 담임목사님이 "우리 교회에서는 일회용 컵은 사용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데 왜 이런 실수를 하십니까 다시 가져 오십시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생수 마실 때 1회용 컵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주일 저녁이 되면 쓰레기통이 1회용 컵으로 수북해졌습니다. 지금은 식당에 가서 물 마실 때 1회용 컵도 있지만 여러분 대개 쇠 컵이나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 실 것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적은 일인 것 같지만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청년들을 지도하는데 한 번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돌아가면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이 "나는 우리 교회 아무개 장로 님을 제일 존경합니다"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그 장로님 아들과 친구여서 그 집에서 가서 놀다가 자게 되었는데 샤워를 하러고 하니까 그 아들이 하는 말이 '야, 우리 집에서는 수질오염 막느라고 아버지가 샴프를 못쓰게 해서 샴프가 없으니까 샴프 지 마!' 하더군요. 그래서 그 장로님 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하더군요. 그 대답 듣고 '아! 존경 받기 쉽구나!'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청년, 참 단순하지요. 이 청년은 지금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성실하게 근무해서 계속 순탄한 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 존경한다고 한 장로님은 한동안 저희 교 단 살림 전체를 맡고 있던 분이었는데 그 장로님이 교단 살림을 맡고 있 을 때는 교단 행정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간단한 일, 작은 일부터 해야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호주의 환경 전문가 부부는 자기들은 어렸을 때 샤워를 5 분 이내에 끝내는 물 절약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 의 물낭비에 놀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양교회는 환경선교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양교회가 지향하는 전원교회는 파괴되지 않은 환경에 대한 향수의 표현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목양교회 새 성전 조감도를 보는 사람들은 누 구나 주변 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감탄합니다. 이상한 인연으로 저는 저희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건너 편 동천리와 동원 동, 동막골의 40년 전 풍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희 선친께서 토목업 을 하시던 분이어서 전국 여러 곳에서 댐 공사도 하시고 저수지 공사도 하셨는데 저 위에 있는 낙생(樂生) 저수지는 1957년을 전후해서 저희 선 친께서 하신 공사입니다. 그 때 중학생이던 저는 이 곳에 가끔 왔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앞의 동막천 냇물을 보면서 '어, 비교적 맑네!' 합니다. 저 위에 고기리(古基里)에 식사하러 종종 가는데 그 곳의 냇물을 보고는 "참 맑다!"합니다.
그런데 40년 전에는 그대로 마셔도 좋을 정도였었습니다. 실제로 그대로 마셨습니다. 이 냇물에서 가제를 참 많이 잡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회복시킬 책임이 저희 교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선교주일입니다. 환경선교는 생명과 직결된 것임을 깨달아야합니다. 교회가, 특별히 목양교회가 환경선교에 앞장서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이런 일들을 잘 해서 21세기를 희망의 세기로 맞이하는데 앞장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우리를 보고 모든 피조물을 잘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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