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눈물, 성숙 (시50:14-15)
본문
6월하면 우리는 6 ,25를 생각하게 됩니다. 6 .25는 이제는 먼 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6 .25는 언제나 형용할 수 없이 고달팠던 고난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쟁에는 고난과 아픔과 눈물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본문을 보면 고난과 신앙을 대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에는 아픔이 있고 그 아픔 속에서 부르짖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이 주어진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끊임없이 고난이 따라 다닙니다. 그래서 욥기 5장을 보면 “(욥5:6)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얼마든지 고난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고난은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좀더 큰 고난이 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좀 적은 고난이 오는 것뿐이지 고난은 모든 사람에게 다 찾아오는 하나의 필수 과정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고난이라는 것은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제만큼은 그렇게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난은 어떤 면에서 보면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적당한 고난이 주어지는 것은 참 좋은 학습이며 성숙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덥고 무척이나 추울 때 덥지도 말고 춥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이 덥고 추운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뚜렷한 계절변화 때문에 우리 민족의 체질이 얼마나 질기고 단단합니까 일년 내내 기온이 비슷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약하고 단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난도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고난에는 자기 실수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또 애매한 고난도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 고난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데도 예수 때문에 자청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우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명분이 있습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는 그 죽음과 고난을 즐거워했습니다. 사람이 죽어 갈 때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이 그만큼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어 갈 때 하늘에서는 주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께서 내려다보시는 가운데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웃으면서 죽어 갔습니다. 이것이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의 특징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 하나님의 섭리로 주어지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 고난은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훈련하실 때 그런 고난을 주십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6 .25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의 고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고난이 얼마나 큰 고난이었습니까 오늘날에 와서 생각하니까 그렇지 이 6 .25가 얼마나 참혹한 고난이었고 고된 훈련이었습니까
1. 6 .25는 피해가 컸습니다. 6 .25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발발해서 1952년 7월 27일 밤 10시에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방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만 3년 1개월 동안 우리 국군이 185.000면이 죽었고 유엔군이 38,000명 죽었습니다. 학도 의용군이 2,000명, 북한군이 290,000명, 중공군이 190,000명 죽어서 도합 705,000면이 이 전쟁으로 죽었습니다. 그뿐 아니고 민간인이 150만 명이나 죽었고 이 전쟁으로 과부가 30만 명, 고아가 20만 명이나 발생하였습니다. 이 전쟁이 이 좁은 땅에서 발생했는데 근대사 최악의 전쟁이었으며 3년 동안 무려 당시 돈으로 150억 달러를 썼으면서도 남은 것은 철저한 파괴뿐이었습니다.
공업시설 43%가 부서졌고, 발전시설 41%, 탄광 50%, 주택의 1/3이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전쟁 후 투자한 돈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1997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13조 9천 794억 원입니다. 이 돈을 1/10씩만 매년 감축하면 한국의 농민 부채를 모두 탕감해 줄 수 있습니다. 전투기 120대를 구입하려면 50억 달러가 들어가는데 이 돈은 아파트 7만 가구를 지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고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남도 전쟁 기간 동안 전마을의 2/3가 파괴되었고 200만 명의 국민이 죽었으며 돈은 200억 달러나 버려졌습니다.
그런데도 그 결과 남은 것이라고는 철저한 파괴와 고통과 가난뿐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제 1 차 세계 대전(1914-1918) 때 죽은 사람이 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 2 차 대전(1939-1945) 때 죽은 사람은 한국전쟁, 월남전쟁, 걸프전에서 죽은 사람을 모두 합한 수인 4천만 명이나 됩니다. 그러니까 금세기 동안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모두 5천만 명이나 된다는 말입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그만입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매시간 1,500명씩 굶어 죽어 가고 있고 매년 1,5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도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매초마다 18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6억 원씩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전쟁이 주는 피해가 얼마나 큽니까
2. 전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6 .25는 단순한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전쟁으로 인해서 이 작은 나라의 허리가 잘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고난을 당하고 이산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누기는 쉬운데 나뉜 것을 합하기는 어렵습니다. 찢기는 쉬워도 찢어진 것을 회복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릇을 깨기는 쉬워도 깨진 그릇을 봉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누지를 말아야 합니다. 이제 와서 나누어진 것을 합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우리끼리 합하자고 합의하기도 어렵지만 우리끼리 합의해도 통일이 금방 되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나라들이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다께무라 겐히찌라는 평론가가 국제회의 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일본은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남북한의 통일은 일본의 유익을 위해서도 가능한 한 지연시켜야 한다. 만일 남복한이 통일이 되는 날이면 북한의 120만 군대와 남한의 60만 군대가 합해져 180만의 군대가 한반도에 있게 된다. 우리 일본의 자위대는 18만밖에 안 되는데 180만 대 18만은 게임이 안된다. 한국이 지난 과거에 일본에게 많은 설움을 받았기 때문에 통일 국가를 이루면 그 군대로 일본을 침략할 것이 분명함으로 한국이 통일되지 않도록 외교 역량을 다해서 저지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을 비롯해서 우리 주변 국가들의 생각입니다. 한 번 갈라지면 합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서 주어진 교훈도 참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6. 25전쟁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선물같이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생각해 보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갖게 된 경험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3. 엄청나게 쓰라린 고난을 통해서 평화를 배웠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 6 .25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을 통해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참 기구할 정도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전쟁 통에 피난을 가는데 살기 위해서 등에 엎힌 아이를 버리고 혼자 울면서 한강을 건너 가기도 했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어머니가 아이를 강물에 버리고 강를 건너갔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피난을 가면서 “나는 가난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을 미처 몰랐다”고 했다고 합니다. 피난을 가려 하는데 집에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서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남겨둔 것이 많은 사람들은 피난은 가야 하겠고 그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갈 수는 없고 그래서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난길에 들어 섰으면서도 두고 온 그 물건들 때문에 그렇게 아쉬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마 앞으로 피난갈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일 또 그런 일이 있다면 그때는 고민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고난을 당한 민족이 이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인사가 “샬롬”입니다. 로마는 절대권력 안에서의 평안을 추구했습니다. 헬라는 자유 안에서의 평안을 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난을 받아 본 민족은 그런 평안은 값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이 추구했던 평안은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평안이었습니다. 그것이 샬롬입니다. 우리 민족은 전쟁을 겪는 동안 이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아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4. 고난을 통해서 나라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살아가는 동안 한두 번씩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6 .25를 겪는 동안 우리 민족이 얼마나 뜨거운 피눈물을 흘렸습니까 아마 그때 흘린 눈물은 두고두고 잊지를 못할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3가지 액체가 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피는 용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헌혈을 마친 뒤에 느끼는 기분은 참 좋습니다. 헌혈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땀도 있습니다. 땀은 노력하는 사람만이 흘립니다. 사람이 땀을 흘릴 때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이 울어야 할 때 흘리는 눈물은 참 소중합니다. 멸망할 예루살렘성을 내려다보시며 하염없이 흘리시던 주님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6 .25 사변을 겪는 동안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까 부르짖기도 많이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오늘 큰소리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 혹 비웃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때 훈련된 버릇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내어 부르짖는 기도 때문에 살아남은 민족입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깨달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라의 소중함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많이 겪어 본 민족은 나라를 생각할 줄 압니다. 우리 민족은 8 .15나 6 .25를 거치는 동안 평안이라는 것과 나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론이지만 이 6 .25는 우리 민족에게 굉장히 큰 교훈을 안겨 준 사건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음악가 쇼팽은 폴란드 사람인데 그가 20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갑니다.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디를 가든지 폴란드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아.” 얼마나 좋은 아버지입니까 “몸 조심해라, 공부 잘해라.” 그런 통상적인 충고보다 얼마나 깊고 무게 있는 당부입니까 그래서 아들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어려서부터 그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국가관을 심어 주었습니다. 또 떠나는 쇼팽에게 선생님이 조그만 병에 폴란드의 흙을 담아 주면서 말씀합니다. “너는 어디를 가든지 폴란드를 잊지 말아라.” 얼마나 좋은 스승입니까 자라나는 어린 지성 속에 심어진 이 무게 있는 교훈이 어린 쇼팽의 평생을 좌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당부를 받은 쇼팽은 공부하는 동안 그 흙병을 책상 위에 놓고 늘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38세의 나이로 요절을 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나의 조국 폴란드의 흙이 담긴 저 병을 내 무덤에 함께 묻어 달라.” 얼마나 성숙한 정신의 유산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런 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5. 전쟁을 통해서 강해졌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강해집니다. 고난은 확실히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북 출신들을 보고 흔히 강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고향이 충청도라고 하면 사람들은 “물러터진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충청도도 “천안이다, 대전이다”하면 그래도 조금 봐 주는데 “예산이다”하면 이건 느려터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고향이 어딥니까” 하고 물었을 때 “이북입니다.” 하면 사람들은 일단 독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이북 출신들은 독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피난을 오느라고 있던 것 다 버리고 몸만 가지고 내려와서 살아가자니까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민족이 6 .25를 거치는 동안 공산주의와 그렇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 공산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것을 두눈으로 분명하게 보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짝사랑하는 사람처럼 저 야단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6 25때 우리 민족이 고생은 했지만 그때 그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생각하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제 36년의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6 25때 공산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6 25가 없었더라면 오늘 이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으로 밀려나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숱한 고난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도 많이 흘린 민족입니다. 그러는 동안 목청이 터져라 얼마나 부르짖어 기도를 했습니까 그때부터 우리 기독교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하나의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나라가 이 정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때의 침략자는 빈사상태에 놓여서 링거 주사로 연명하는 환자같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던 이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폐허 위에 오늘의 삶을 재건하여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또다시 돌아온 6월 25일을 맞이해서 이 나라를 오늘까지 이렇게 사랑하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소중히 살아가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고난은 어떤 면에서 보면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적당한 고난이 주어지는 것은 참 좋은 학습이며 성숙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덥고 무척이나 추울 때 덥지도 말고 춥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이 덥고 추운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뚜렷한 계절변화 때문에 우리 민족의 체질이 얼마나 질기고 단단합니까 일년 내내 기온이 비슷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약하고 단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난도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고난에는 자기 실수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또 애매한 고난도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 고난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데도 예수 때문에 자청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우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명분이 있습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는 그 죽음과 고난을 즐거워했습니다. 사람이 죽어 갈 때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이 그만큼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어 갈 때 하늘에서는 주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께서 내려다보시는 가운데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웃으면서 죽어 갔습니다. 이것이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의 특징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 하나님의 섭리로 주어지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 고난은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훈련하실 때 그런 고난을 주십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6 .25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의 고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고난이 얼마나 큰 고난이었습니까 오늘날에 와서 생각하니까 그렇지 이 6 .25가 얼마나 참혹한 고난이었고 고된 훈련이었습니까
1. 6 .25는 피해가 컸습니다. 6 .25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발발해서 1952년 7월 27일 밤 10시에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방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만 3년 1개월 동안 우리 국군이 185.000면이 죽었고 유엔군이 38,000명 죽었습니다. 학도 의용군이 2,000명, 북한군이 290,000명, 중공군이 190,000명 죽어서 도합 705,000면이 이 전쟁으로 죽었습니다. 그뿐 아니고 민간인이 150만 명이나 죽었고 이 전쟁으로 과부가 30만 명, 고아가 20만 명이나 발생하였습니다. 이 전쟁이 이 좁은 땅에서 발생했는데 근대사 최악의 전쟁이었으며 3년 동안 무려 당시 돈으로 150억 달러를 썼으면서도 남은 것은 철저한 파괴뿐이었습니다.
공업시설 43%가 부서졌고, 발전시설 41%, 탄광 50%, 주택의 1/3이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전쟁 후 투자한 돈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1997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13조 9천 794억 원입니다. 이 돈을 1/10씩만 매년 감축하면 한국의 농민 부채를 모두 탕감해 줄 수 있습니다. 전투기 120대를 구입하려면 50억 달러가 들어가는데 이 돈은 아파트 7만 가구를 지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고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남도 전쟁 기간 동안 전마을의 2/3가 파괴되었고 200만 명의 국민이 죽었으며 돈은 200억 달러나 버려졌습니다.
그런데도 그 결과 남은 것이라고는 철저한 파괴와 고통과 가난뿐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제 1 차 세계 대전(1914-1918) 때 죽은 사람이 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 2 차 대전(1939-1945) 때 죽은 사람은 한국전쟁, 월남전쟁, 걸프전에서 죽은 사람을 모두 합한 수인 4천만 명이나 됩니다. 그러니까 금세기 동안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모두 5천만 명이나 된다는 말입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그만입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매시간 1,500명씩 굶어 죽어 가고 있고 매년 1,5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도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매초마다 18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6억 원씩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전쟁이 주는 피해가 얼마나 큽니까
2. 전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6 .25는 단순한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전쟁으로 인해서 이 작은 나라의 허리가 잘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고난을 당하고 이산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누기는 쉬운데 나뉜 것을 합하기는 어렵습니다. 찢기는 쉬워도 찢어진 것을 회복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릇을 깨기는 쉬워도 깨진 그릇을 봉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누지를 말아야 합니다. 이제 와서 나누어진 것을 합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우리끼리 합하자고 합의하기도 어렵지만 우리끼리 합의해도 통일이 금방 되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나라들이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다께무라 겐히찌라는 평론가가 국제회의 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일본은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남북한의 통일은 일본의 유익을 위해서도 가능한 한 지연시켜야 한다. 만일 남복한이 통일이 되는 날이면 북한의 120만 군대와 남한의 60만 군대가 합해져 180만의 군대가 한반도에 있게 된다. 우리 일본의 자위대는 18만밖에 안 되는데 180만 대 18만은 게임이 안된다. 한국이 지난 과거에 일본에게 많은 설움을 받았기 때문에 통일 국가를 이루면 그 군대로 일본을 침략할 것이 분명함으로 한국이 통일되지 않도록 외교 역량을 다해서 저지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을 비롯해서 우리 주변 국가들의 생각입니다. 한 번 갈라지면 합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서 주어진 교훈도 참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6. 25전쟁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선물같이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생각해 보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갖게 된 경험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3. 엄청나게 쓰라린 고난을 통해서 평화를 배웠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 6 .25라는 전대미문의 전쟁을 통해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참 기구할 정도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전쟁 통에 피난을 가는데 살기 위해서 등에 엎힌 아이를 버리고 혼자 울면서 한강을 건너 가기도 했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어머니가 아이를 강물에 버리고 강를 건너갔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피난을 가면서 “나는 가난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을 미처 몰랐다”고 했다고 합니다. 피난을 가려 하는데 집에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서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남겨둔 것이 많은 사람들은 피난은 가야 하겠고 그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갈 수는 없고 그래서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난길에 들어 섰으면서도 두고 온 그 물건들 때문에 그렇게 아쉬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마 앞으로 피난갈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일 또 그런 일이 있다면 그때는 고민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고난을 당한 민족이 이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인사가 “샬롬”입니다. 로마는 절대권력 안에서의 평안을 추구했습니다. 헬라는 자유 안에서의 평안을 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난을 받아 본 민족은 그런 평안은 값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이 추구했던 평안은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평안이었습니다. 그것이 샬롬입니다. 우리 민족은 전쟁을 겪는 동안 이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아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4. 고난을 통해서 나라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살아가는 동안 한두 번씩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6 .25를 겪는 동안 우리 민족이 얼마나 뜨거운 피눈물을 흘렸습니까 아마 그때 흘린 눈물은 두고두고 잊지를 못할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3가지 액체가 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피는 용기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헌혈을 마친 뒤에 느끼는 기분은 참 좋습니다. 헌혈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땀도 있습니다. 땀은 노력하는 사람만이 흘립니다. 사람이 땀을 흘릴 때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이 울어야 할 때 흘리는 눈물은 참 소중합니다. 멸망할 예루살렘성을 내려다보시며 하염없이 흘리시던 주님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6 .25 사변을 겪는 동안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까 부르짖기도 많이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오늘 큰소리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 혹 비웃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때 훈련된 버릇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내어 부르짖는 기도 때문에 살아남은 민족입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깨달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라의 소중함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많이 겪어 본 민족은 나라를 생각할 줄 압니다. 우리 민족은 8 .15나 6 .25를 거치는 동안 평안이라는 것과 나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론이지만 이 6 .25는 우리 민족에게 굉장히 큰 교훈을 안겨 준 사건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건강한 나라가 됩니다. 음악가 쇼팽은 폴란드 사람인데 그가 20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갑니다.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디를 가든지 폴란드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아.” 얼마나 좋은 아버지입니까 “몸 조심해라, 공부 잘해라.” 그런 통상적인 충고보다 얼마나 깊고 무게 있는 당부입니까 그래서 아들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어려서부터 그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국가관을 심어 주었습니다. 또 떠나는 쇼팽에게 선생님이 조그만 병에 폴란드의 흙을 담아 주면서 말씀합니다. “너는 어디를 가든지 폴란드를 잊지 말아라.” 얼마나 좋은 스승입니까 자라나는 어린 지성 속에 심어진 이 무게 있는 교훈이 어린 쇼팽의 평생을 좌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당부를 받은 쇼팽은 공부하는 동안 그 흙병을 책상 위에 놓고 늘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38세의 나이로 요절을 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나의 조국 폴란드의 흙이 담긴 저 병을 내 무덤에 함께 묻어 달라.” 얼마나 성숙한 정신의 유산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런 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5. 전쟁을 통해서 강해졌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강해집니다. 고난은 확실히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북 출신들을 보고 흔히 강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고향이 충청도라고 하면 사람들은 “물러터진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충청도도 “천안이다, 대전이다”하면 그래도 조금 봐 주는데 “예산이다”하면 이건 느려터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고향이 어딥니까” 하고 물었을 때 “이북입니다.” 하면 사람들은 일단 독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이북 출신들은 독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피난을 오느라고 있던 것 다 버리고 몸만 가지고 내려와서 살아가자니까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민족이 6 .25를 거치는 동안 공산주의와 그렇게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 공산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것을 두눈으로 분명하게 보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짝사랑하는 사람처럼 저 야단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6 25때 우리 민족이 고생은 했지만 그때 그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생각하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제 36년의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6 25때 공산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6 25가 없었더라면 오늘 이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으로 밀려나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숱한 고난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도 많이 흘린 민족입니다. 그러는 동안 목청이 터져라 얼마나 부르짖어 기도를 했습니까 그때부터 우리 기독교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하나의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나라가 이 정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때의 침략자는 빈사상태에 놓여서 링거 주사로 연명하는 환자같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던 이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폐허 위에 오늘의 삶을 재건하여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또다시 돌아온 6월 25일을 맞이해서 이 나라를 오늘까지 이렇게 사랑하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소중히 살아가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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